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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의 예언, 그리고 얼짱ㆍ몸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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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의 예언, 그리고 얼짱ㆍ몸짱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 <12> ‘15 Minutes’

앤디 워홀은 유달리 명성(fame)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예술가이다. 예술가가 명성에 집착한다는 것은 특이한 것이 아니겠으나, 워홀이라는 작자는 혹시나 병리학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글래머와 명성의 심벌들을 끌어안고 살았다. 그가 조야한 색채로 표현한 명성의 상징들(마릴린 몬로, 재키 케네디, 자기 자신)은 흡사 발정(發情)의 빛을 발하는 듯하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명성이 띠는 그 양상, 그리고 명성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메커니즘에 몰입하며, 무명 시절에는 자신의 명성을 키우는 작업, 그리고 명성을 얻은 후에는 자신의 그 명성을 끊임없이 확대하는 작업에 일생을 바쳤다.

워홀의 명성에 대한 집착을 가장 잘 말해주는 프로젝트 중의 하나로 그가 70년대 초에 창간한 <인터뷰(Interview)>라는 월간지를 꼽을 수 있다. 이 잡지는 일평생 그의 숭배의 대상이었던 명성에 바치는 하나의 찬미였다. 이 잡지는 명성을 뉴스가 아닌 엔터테인먼트의 시각에서 다루었는데, 당시만 해도 이러한 발상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유명인들의 인터뷰와 함께 이 잡지에 매달 실린 대중문화·패션·시네마, 그리고 최첨단 유행에 대한 내용들은 명성에 대한 워홀의 욕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지금도 발행되고 있는 <인터뷰>는 유명인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포화되어 있는 오늘날의 방송과 잡지문화의 원형이다. 미국의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의 시초에는 앤디 워홀이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명성의 대량생산'을 현대 대중문화의 하나의 양상으로 정착시킨 워홀이 중얼거린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은 "미래에는 모두가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라는 말이다. ("In the future, everyone will be famous for 15 minutes.") 여기에서 15분이라는 시간은 상징적 단위로, '잠시' 또는 '찰나'를 의미한다. 이는 워홀 자신이 예술가로서 갈망했을 '불후의 명성'과는 지극히 대조적인, 아주 짧은 '하루살이 명성'을 두고 한 말이다.

얼핏 모두가 평등하다는 식의 민주적인 발상에서 나온 말 같기도 하지만, 실제 이 말에는 명성에 '등급'을 매기려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워홀이 '15분'을 운운한 것은 자신은 불후의 명성을 이미 확고하게 굳혀놓은 상태에서, 자신의 것처럼 오래가는 명성과 잠시 반짝 하다가 없어지는 찰나적 명성 사이에 차별을 두고자 한 말이다. 다시 말해, 현대미술의 하나의 장르를 개척한 인물인 자신과는 달리, <인터뷰> 같이 명사들의 얼굴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매체가 다루는, 유행에 맞춰 상품화 되고 일시적 눈요기가 되는 데에 지나지 않는 '잡류 명사'들에게 날리는 그의 배타적 선언이었다고 하겠다.

어쨌든 워홀이 남기고 간 이 격언은 미국인의 의식 속에 각인되었고,'15분'이란 표현은 일상적으로 흔히 쓰이는 말이 됐다. 예를 들어 "He's had his fifteen minutes"라고 했을 경우 대충 "걘 한 물 갔어"와 비슷한 말로, 달리 유명해질 이유가 없는 사람이 반짝 유명해졌다가 어김없이 시들해졌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15 minutes'라는 개념은 누구에게나 일생에 한번 정도는 찾아온다는 짧은 유명세를 의미한다. 어쩌면 미국에서는 예술가 워홀이 누군지를 아는 사람보다 '모두가 15분 동안 유명해진다'라는 개념을 아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15 minutes'와 비슷한 표현은 이제 하도 많이 쓰이기 때문에 자칫 진부한 표현이 되기 쉬우니 말이다.

2001년에 나온 영화 '15분(15 Minutes)'은 제목에서부터 이러한 진부함이 엿보였던 작품이다. 미국에서는'15분'이라는 개념이 널리 통용되어 왔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만 보아도 그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무언가 색다른 시각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을 가진 영화광의 기대는 대체로 좌절되고 만다. 이 영화의 문제는 지나친 폭력성이 아니라, 그 운치 없이 펼쳐지는 폭력의 진부함에 있다.

주인공 로버트 드 니로가 살해되는 장면을 담은 스너프 필름까지 동원해 폭력성과 잔인함의 수위를 높이지만, 관객은 이미 그 정도의 쇼크에는 면역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에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싱싱하지 않은 회에 고추냉이 간장을 두 배로 찍어 먹는다 해서 회 맛이 더 좋아지지 않는 것처럼, 이 영화는 신선하지 못한 소재를 폭력으로 메우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우려했던 그 발상의 진부함에서 끝끝내 헤어나지 못한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존 허츠펠드 감독은 군데군데서 살인범들의 입을 빌어 미디어와 폭력이 공생하는 미국사회의 문화(미디어-폭력 복합체라고 할까)에 대한 논평을 시도하지만, 이것은 시늉에 불과할 뿐이다.

시종 난잡하게 벌어지는 폭력을 들어내면, 다소 위선적이기는 하지만서도 이 영화가 내걸은 명제는 '하루살이 명성(15 minutes of fame)'과 그것의 공정(工程)이다. 그 단순 명료한 명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명성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한다는 것이며, 요즘의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은 그러한 사람들을 기꺼이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면, 실제인물 브루스 커틀러를 살인범 에밀(캐럴 로덴 분)의 변호사로 등장시킨 것이다. 미국 뉴스를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이라면 브루스 커틀러는 뉴욕의 '감비노 패밀리'의 두목 존 고티(92년도에 유죄평결ㆍ종신형, 수감 중 2002년 사망)의 말썽 많았던 변호사였다는 사실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알 카포네 이래 매스컴을 가장 많이 탄 마피아 두목인 고티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수십 차례 법원을 드나들며, 거의 10년간 뉴욕은 물론 전국 미디어의 단골메뉴로 등장했었다. 고티와 붙어 다니며 변호사 보다는 마피아 두목의 '똘마니' 쯤으로 인식되었던 커틀러는 고티의 명성에 기생하여 자신도 유명해졌고, 작년에는 고티의 변호사를 지냈던 시절에 대한 회고록을 펴내기도 했다.

90년대 초반 TV 뉴스를 통해, 존 고티와 나란히 법정을 나오면서 신문·방송 기자들이 두 사람을 에워싼 가운데 카메라를 향해 떠들어대던 커틀러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15분'에서 커틀러가 나오는 장면들을 보며 마치 그때 뉴스의 재방송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은 10여 년 전 존 고티의 변호사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15분을 만끽했던 그때의 바로 그 모습이다. 커틀러를 이름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출연시킨 것은, '15분'이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픽션이 실제로 이미 있었던 현실과 대동소이함을 새삼 상기시켜 주는데, 그것이 본의 아니게 이 영화의 존재가치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하는 야릇한 여운을 남긴다.

커틀러야말로 워홀이 말한 '15분 명성'의 화신이다. 변호사로서의 자질이 있는지도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은 그는 기회가 보였을 때 있는 힘을 다해 명성을 좇았고, 명성을 사고 파는 미국의 언론은 그에게 15분 어치의 명성을 부여해 주었다. 그의 짧은 명성은 허츠펠드 감독이 만든 영화를 통해 연장되긴 했지만, 그것은 '15분'이라는 단위의 갱신일 뿐, 오래 가는 명성이 될 수는 없다. 모든 룰이 바뀐 듯한 요즘 시대이지만, 위대한 업적을 통해 얻어지는 불후의 명성과 게걸스런 미디어에서 급조되는 '하루살이 명성'의 차이는 여전히 있다. 앤디 워홀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 두 종류의 명성 사이에 너무도 분명한 선을 그어놓고 갔다.

우리는 매일 방송·신문·잡지를 통해 앤디 워홀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목격하며 살고 있다. 이들 매체에서 쏟아내는 유명인들을 외면하기가 참 어려운 세상이다. '얼짱'이든 '몸짱'이든, 명성을 갈구하는 자에게는 새로운 대중 인기상품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미디어와의 짝짓기가 기다리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언론이 지배하는 요즘에는 누구든 악착같이 노력하기만 하면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유명해질 수 있다. 그게 15분 동안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래저래 우리는 이런 15분짜리 '명사'들에게 참으로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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