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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예산이 아니라 복지국가를 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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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예산이 아니라 복지국가를 요구하라

[의제27 '시선'] 복지연합와 선거연대의 중요성

한국 사회는 언제나 급변한다. 복지에 대한 민심도 빠르게 변했다. 2012년 1월 서울경제신문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가 '복지 확대'를 원했다. 한 해 전 1월 경향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에 따르면, '세금을 더 내더라도 복지 수준을 지금보다 늘리자'는 답변이 53.1%를 차지했다. 격세지감이다. 1987년 개정한 헌법 34조에 복지가 '국민의 권리'라는 점과 복지를 추구할 '국가의 의무'를 명시했지만, 진보진영은 복지국가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수많은 정치 담론이 등장했지만 복지국가가 진보진영의 목표가 된 적은 없었다. 대신 지역주의 정치구도가 한국 정치를 지배하면서 복지는 중요한 선거 쟁점이 되지 못했다. 지역개발 공약이 주요 선거 쟁점이 되었고 국민의 권리의식은 매우 낮았다.

왜 복지국가 논쟁이 부상했는가?

최근 복지논쟁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복지논쟁은 정치권 밖에서 촉발되었다. 2009년 김상곤 교육감이 선거에서 제기한 '무상급식'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그 후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진보개혁진영은 무상급식을 주요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커다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같은 해 10월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를 강령에 추가했다. 급기야 2011년 7월 무상급식을 반대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중도하차하고, '복지서울'을 주장한 박원순 변호사가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그 후 정당 지지율과 대선 구도가 모두 흔들렸다. '안철수 태풍'이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한나라당 강령도 '복지국가'를 추가했다. 그야말로 나비의 날개 짓이 허리케인을 만들었다.
▲ 김상곤 교육감이 제기한 무상급식 논쟁은 2012년 초미의 화두인 복지국가 논쟁으로 발전했다. ⓒ프레시안

복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 자유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사회적 위험이 커지고 삶의 질이 위협받고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평생고용이 보장되었던 직장인들이 구조조정과 조기퇴직으로 직장을 잃으면 생활비, 교육비, 의료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영세자영업자들은 재벌 대기업의 골목 상권 장악으로 줄도산에 직면하고 있다. 직장 여성은 아이가 낳아도 휴직하기 힘들고 제대로 키우기도 두려워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아도 인구 고령화와 가족 구조의 변화는 부모의 부양과 노인요양에 대한 새로운 정책 대응을 시급하게 요구하고 있다.

복지정책이 아니라 복지국가가 필요하다

아직 한국의 보수세력은 복지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목청을 올린다. 복지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높은 조세는 기업에 부담을 주어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맹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서유럽 복지국가의 역사를 영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복지지출이 경제성장에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복지국가에서 사회보장 혜택을 제공하여 노동자의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의 경험을 보면 사회보장의 발전과 높은 생산성은 상호연관 효과를 가진다. 효율적인 복지제도는 지나친 노사갈등과 사회갈등도 줄일 수 있다. 오히려 복지제도가 부족한 사회에서 경제적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다. 복지가 적은 미국을 보라. 경호업체와 감옥에서 꾸준히 일자리가 생기고 있는데, 이는 고용창출이 아니라 사회비용의 증가일 뿐이다. (미국과 독일에 대한 비교를 위해 토마스 게이건의 단순명쾌한 책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를 보라)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서유럽 국가에서 진보정당 뿐 아니라 보수정당 역시 복지국가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세계 경제가 통합되면서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복지국가의 새로운 역할이 주목을 끈다. 복지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는 비난과 달리 복지가 발전한 스웨덴과 독일의 경제를 보라.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를 갖고 있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은 빈곤에 빠진 시민들에게 사후에 현금을 지급하는 (보수세력의 용어로 말하면, '돈을 퍼주는') 복지국가가 아니다. 이제 복지국가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개인의 고용가능성을 키워주고 노동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역동적 복지국가'(active welfare state)로 전환하고 있다. 사회정책은 예산을 마구 쓰는 사회지출에서 개인의 능력을 키우는 사회투자의 방향으로 이동한다. 한국에서도 복지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소극적 의미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복지정책'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고용확대를 위해 '복지국가'가 필요하다는 정치적 담론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복지가 경제를 살린다. 그래야 경제와 복지가 함께 간다.

사회민주당 정부가 없으면 복지국가는 불가능한가?

한국 사회에서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계급정당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특히 진보세력은 산별노조, 진보정당, 비례대표제 선거제도의 개혁이 없이는 복지국가를 위한 정치동맹의 가능성이 적다고 주장한다. 1936년 노조, 기업, 정부 3자가 타협하여 쌀스세바덴 협약이 만든 스웨덴의 역사적 경험과 비교하면 현재 한국에는 복지국가를 추진할 노동조합도, 진보정당도, 친복지세력도 취약하다. 스웨덴처럼 노사타협의 전통도 없다. 그러면 한국에서 복지국가 건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인가?

그러나 모든 국가에서 복지국가가 발전한 경로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반드시 노동조합과 계급정당이 복지국가를 만든 것은 아니다. 1880년대 독일의 복지제도는 보수적인 지주계급의 지지를 받는 비스마르크 정부가 만들었다. 1910년대 영국의 복지제도는 로이드 조지 자유당 총리가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30년대 미국의 복지제도는 루스벨트 행정부와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루스벨트는 노동조합과 급진적 시민운동과 '뉴딜 연합'을 만들면서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했다.

1930년대 스웨덴의 복지국가도 반드시 노동조합과 사민당이 주도한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 사실상 스웨덴의 복지국가도 오랜 시간 동안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지속적인 타협과 절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사실 스웨덴 복지국가를 가리키는 '인민의 집'(Folkhemmet)이라는 용어도 원래 우파정당이 사용하던 용어이다. 이를 사회민주당 한손 총리가 받아들여 스웨덴 복지국가를 상징하는 용어로 활용했다. 사민당은 국유화와 계급투쟁을 포기하는 대신 교육, 의료 등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는 '인민의 집'을 내세웠다. 우파 정당도 꼼짝없이 끌려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의 복지제도 역시 좌우 정당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의 복지연합과 정치적 예술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의 복지국가도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협력 속에서 발전했다. 1998년 이후 김대중 정부가 도입한 국민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제도는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외환위기 직후 노동자의 대량실업이 발생하면서 복지에 대한 노동조합의 요구도 거셌다. 그리고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부조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30년대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1998년 이후 김대중 정부는 노동조합과 시민운동의 강력한 복지운동에 힘입어 복지제도를 추진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의 복지국가가 역사상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했지만,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 없는 보수적 국가가 주도했기 때문에 복지제도가 부실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은 7.5%수준이다. OECD 국가 평균은 19.5% 수준이다. 아직도 한국에서 복지재정과 조세수준에 관한 논의는 쉽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말로는 복지국가를 주장하지만 조세정책에는 소극적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복지제도의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복지제도의 최종 완성은 입법과 예산 편성 등 복잡한 정치적 과정을 거친다. 오랜 시간 정치적 타협과 조정을 거쳐서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도 더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복지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정치적 지지와 동원을 통한 복지연합이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복지는 정치다.

연합정치와 선거연대

얼마 전 통합진보당은 정당 지지율 반영을 총선을 앞둔 야권연대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또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했다. 특히 선거법 개정은 복지연합의 필수조건이다. 실제로 유럽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비례대표제가 발전한 국가에서 지역적 의제보다 전국적 차원의 복지 관련 의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반대한다면 선거법 개정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현실적 조건을 고려할 때 당장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는 결국 후보단일화에 초점에 맞춰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민주통합당이 정당 지지율의 상승에 편승해 선거연대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만약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연합정치를 외면한다면 선거승리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연합정치만이 살 길이다. 협상의 예술이 한명숙, 문성근, 이정희, 노회찬, 심상정 등 정치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더 많은 대중이 참여하는 시민적 복지운동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복지연합의 성패가 선거연대에 달려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연대를 성사하고 복지국가의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노동자와 서민, 중산층의 눈물을 닦아줄 길이 없다. 한시바삐 야권의 지도자들은 선거연대의 협상이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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