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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의원' 심재옥의 서울시민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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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왕따 의원' 심재옥의 서울시민 지키기

[최우수 서울시 의원 심재옥 인터뷰]

서울 마포구 공덕동 민주노동당 서울시지부 사무실에는 의원 전용 공간이 따로 없었다. 실무자들 속에서 겨우 찾아낸 심재옥 의원(38)은 책상 위에 문서를 어지럽게 쌓아놓은 채 갑작스러운 기자들의 방문에 난감한 기색이다.

<사진 1>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간판으로 최초로 서울시 의회에 입성,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심재옥 의원은 지난 29일 경실련의 '서울시의원 의정활동 평가' 에서 최우수 시의원으로 뽑혀, 창당 4주년을 맞은 민주노동당을 더없이 기쁘게 했다. 전문성과 성실성을 인정받은 영광 뒤에는 '노동자 의원'으로서 숨가빴던 땀과 눈물의 시간이 있었다.

***"저, '왕따'였습니다"**

"거, 심 의원! 초선이어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원래 이렇게 하는 겁니다. 차차 알게 되니 그렇게 나서지 좀 마세요"

40살도 안 된 여성이다. 초선에 노동자 출신 민주노동당 소속이다. 기존 의회에서 소위 '왕따' 당하기 쉬운 조건은 모두 갖춘 셈이다. 특히 노동 운동가 출신인 그의 이력은 많은 시의원들에게 눈엣가시였다.

"회의중 발언은 법으로 보호되는 권리인데도 몇몇 동료 의원들은 마구잡이로 방해했어요. 회의를 주재하는 위원장님도 제지하지 않구요."

지난번 행정사무감사 때 일이다.

서울에는 직업전문학교 4개가 있는데 시 당국은 "취업률도 높고 훈련생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심 의원이 실제 조사한 바와 보고내용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대다수 훈련생들은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었고, 주당 근로시간도 법정 근로시간인 44시간을 훨씬 넘겼다. 심 의원은 "이건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니 당국은 전면적인 실태조사와 함께 훈련생들에게 노동법 교육을 시키라"고 요구했다. 동료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노동운동을 유도하는 발언"이라는 것이다.

"제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니깐 반말과 막말이 마구 나오더군요. 저도 같이 반말 하면서 대판 싸웠습니다. 결국 이 문제로 회의진행에 대한 간담회까지 하게 됐는데... 그 자리가 또 저에 대한 성토대회로 이어지더라구요(웃음). 발언수준 낮다는 둥 운동권이 이래서 싫다는 둥 별의별 얘기를 다 나왔죠. 심지어 '소수면 소수답게 말을 들어라, 다수당의 얘기를 따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심 의원은 "의원들의 회의록이 있더라도 대부분의 시민들이 거기에 관심을 안 가지기 때문에 겁없이(?) '기막힌' 발언들을 마구 쏟아낸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다수당 할 테니 기다려라'고 생각했습니다. '너희가 노동자의원이라 해서 우리를 무시하지만 일하는 노동자가 사회의 주인인 것이 상식이 되는 세상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꿋꿋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한나라당 의원의 '비밀 격려 쪽지'에 가슴 뭉클**

'심 의원, 지난날 발언 잘 들었습니다. 항상 열심인 모습 보며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내놓고는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지지하고 있습니다. 힘내십쇼.'

심의원은 2002년 크리스마스 이브날, 한나라당 소속 모 시의원으로부터 건네받은 '비밀 쪽지'에 "가슴이 뭉클하고 뭔가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한다.

"대선 때라 한창 시끄러운 시기였습니다. 민주당에서 '행정도시이전' 공약을 발표하자, 한나라당 의원이 다수인 시의회는 국회의 국정감사와 같은 행정감사기간을 4일로 축소하는 파행을 저질렀습니다. 너무나 정략적이고 부당한 조처라 항의하고 분주히 움직였죠. 그렇게 반대토론 해봤자 표결 들어가면 몇 대 일로 깨지겠지만은 가만 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 또 얼마나 미웠겠어요(웃음). 그렇게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남들 안 보이게 종이쪽지를 살짝 던지고 나서 쏜살같이 문 밖으로 나가더라구요..."

요즘 심의원은 심심찮게 동료의원들로부터 지지-격려 전화를 받는다.

"함께 '왕따' 당할까봐 표면적으로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우회적으로 동감을 표시하는 거죠"

***"다른 의견을 수용치 않는 현재 의회 구조와 분위기는 지방자치의 적"**

심 의원은 민주적인 토론이 불가능하고 의회가 행정을 감시하기는커녕 보좌하고 있는 구조를 타파하지 않는 한 진정한 시민행정과 지방자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공원 건' 때였다. 심 의원이 의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 "이 문제의 본질을 다들 뻔히 알면서 왜들 이러냐"고 호소했을 때 의원들로부터 '미안하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반대하면 당에서 왕따당한다'는 말을 듣고 현재 시의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절실히 느끼게 해준 사건이기도 했다.

서울대 공원 건이란 청소용역업체의 고용승계 문제로 60, 70대 청소부들이 단체로 의회 청원을 한 일이다. 심의원은 그 청원 건으로 두 달동안 피가 말랐다. 업체의 부당 행위가 너무나 명백한데도 한나라당이 조직적으로 청원을 부결시켰기 때문이다. 심 의원이 해당 상임위에 직접 소개해서 만장일치 가결시켰지만 본회의 때 한나라당의 부결당론을 이겨낼 순 없었다.

"억울한 노동자들 문제도 피눈물나지만 이명박 시장이 이 문제에 무지하게 화냈다는 소식에 좌지우지 당하는 의원들의 현실도 슬펐습니다. '왜 소수당이 낸 청원을 다수당이 받아주느냐' 그런 얘기가 버젓이 나올 때도요. '나 찬성하면 왕따당해. 심의원이 이해해줘'라는 말도 변명이 안되고, 부결 후 '너무 가슴 아프겠다'며 해온 힘내라는 전화도 위로가 안되죠."

심의원은 현재 서울시 의회는 시민들의 삶을 반영하는 입법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서울시의 행정을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보호해주고 있다고 혹평했다. 재건축조례같은 경우는 의회가 나서서 개발업자들 이익을 대변해주는 모양새였다는 것이다.

<사진 2>

***"알고보면 의원 개개인은 합리적인 얘기 가능한 경우 많아"**

심의원은 그래도 의원 개개인은 합리적인 얘기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얘기한다. 워낙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한 분위기가 공고하고 충분한 정보와 조사없이 사안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대판 붙는 방식'이 아니고도 내용 공유와 충분한 의논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서울시가 입법예고도 안하고 농업기술센터를 폐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심 의원이 나서서 도시농업이 왜 아직 필요한지 시민의 이해에는 어떻게 부합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나섰다.

"관련자료를 상임위 의원들에게 미리 뿌렸습니다. 얘기가 되더라구요. 결국 '심사보류'가 되서 사실상 폐지 안하기로 결론이 났습니다. 살린 거죠. 행정감사 때 보니 의원들이 오히려 농업기술센터 직원들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더라구요. 그 사이에 칸쿤 이경해 열사 자결사건도 있었지만은 이 건으로 인해 농업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더 생긴 것 같습니다."

***의원은 '주민이 행정의 대상이 아니라 주인'임을 알게 하는 사람**

"머리끈만 묶고 살았지 진짜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시의회 의원이 어떤 존재가 되야 하는가 고민이 많았죠.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의원은 주민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구나 했습니다. 시민들에게 자신이 처한 문제가 어떤 맥락에 있는지 알리고 정보를 주고 주민들이 여론을 움직이면 그 뜻을 의회에 반영하는 사람이죠."

심의원은 성미산 건도 자신이 아닌 '마포지역주민들의 승리'라고 말했다. 성미산 사건은 2003년 2월부터 11월까지 주민들이 성미산 배수지 건립을 반대해 공사 중단·철회를 이끌어낸 일이다. 반환경적이고, 비민주적인 서울시의 성미산 배수지 건립 정책에 마포구 주민들이 끈질긴 투쟁을 지속했었다.

당시 심 의원은 현장을 누비며 주민을 독려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했다. 심 의원은 행사장에서 "서울시 행정에는 사람이 없다"며 "행정이든, 정치든 사람이 살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 집행방안을 찾는 것이 임무인데, 주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자 하는 희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고, 효율성과 예산만이 있다"고 서울시의 일방행정을 비판했었다.

"주민들도 다급해져서 막 의원들을 찾아다녔는데 이를 통해 누가 의원으로서 할 일을 했느냐 알게 된 거죠.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법을 찾고 그래도 안 되는 것에 대해서는 의원이 도움을 주는 겁니다. 주민들이 행정의 대상이 아니라 행정의 주인이라는 것에 눈뜨게 하는 게 진짜 중요한 문제죠."

***"민주노동당의 누구라도 제 위치에 있었다면 똑같은 평가 받았을 것"**

심 의원은 당을 내세웠다.

"경실련 발표요? 너무 고맙죠. 근데 진짜로 좋은 건 민주노동당 자존심이 살아서입니다. 상은 사회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투쟁해온 사람들의 성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했던 활동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거든요. 제가 보고 듣고 배우고 고민할 수 있게 해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죠. 진보정치를 배운 사람이라면 민주노동당의 누가 제 위치에 있었더라도 그 정도의 의무감과 활동력은 발휘할 수 있었을 겁니다"

<사진 3 >

심 의원은 비례대표로 이번 총선에 출마할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손사레를 쳤다(출마하려면 시 의회 의원직을 포기해야 한다)

"안그래도 의원들이 물어보길래 '임기는 시민과의 약속인데 그럴 수 없다'했더니 '쟤, 또 저래'하는 표정으로들 쳐다보시더라구요(웃음)."

"선거는 누가 '평소정치'를 꾸준히 해왔느냐의 성적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벼락치기로 분당하고 스타를 영입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민주노동당은 이념·정책 정당입니다. 민주노동당으로서 이번 총선은 2002년 참패 후 그동안 해온 활동들이 평가받는 시기입니다."

***"갈수록 위축되는 사회의 공공성 문제에 주력하고 싶다"**

심의원은 병원과 관공서에서 민간위탁과 비정규직이 최소한의 규제와 평가없이 마구잡이로 늘어나는 문제를 우려해 '민간위탁평가제도' 제안을 생각하고 있다. 민간위탁 기준 선정과정에 주민이 참여해 공공성이 지켜지는지 주민이 감시하자는 내용도 포함된다.

"실제로 보라매 병원이 서울대 병원에 민간위탁 된 후 경영상태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행려병자 수용이나 도시서민 진료율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이런 사회의 공공성 약화가 계속되어 왔죠. 경영개선 목표가 노동자 해고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문제도 경계해야 합니다."

"행정의 민주성은 결국 자기 삶의 문제를 좌지우지 하는 일에 얼마나 시민들이 관여할 수 있냐의 문제거든요. 서울지하철 보세요. 2년마다 1백원씩 올리는 거 사람들이 불만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말할 통로가 없어요. 현재 시의회에 있는 1백여개가 위원회도 들러리거나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게 시급합니다"

민간위탁 규제 및 평가,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저상버스 문제, 콜택시의 노동자성 인정문제, 노동자 임금생활조례제정 문제, 서울시 산하 민간위탁 기관의 노조 인정 문제...

바빠보이는 심의원에게 부탁했던 애초 20~30분의 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심의원이 제기하는 문제와 해결과제는 당최 끝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정상이었다. 그렇게 '왕따의원' 심재옥의 서울시민 지키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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