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2월 15일 발간된 시민단체 공동신문 <시민의신문> 제523호에 게재된 ‘정지환의 취재파일’을 요약, 손질한 것입니다. 기사 전문은 <시민의신문>(ngotimes.net)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필자
***내 아들 세종대 이사장은 패륜아…."**
지난 주 이 같은 충격적 제목의 기사가 시민의신문과 프레시안에 잇따라 보도되자 세종대 안팎에선 격렬한 반향이 일기 시작했다.
우선 족벌재단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던 해직교수 4명, 졸업생 10여 명이 지난 12월 12일 세종대 교정에서 김동우 교수(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2년 동안 줄기찬 1인시위를 통해 학원민주화의 불씨를 지켜온 인물)와 재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모교방문투쟁'을 전개해 눈길을 끌었다.
1990년 민주대학 건설운동 과정에서 족벌재단에 의해 해직됐던 오영숙(영문학과, 1989년 민주총장 역임), 이원우(응용통계학과), 이종일(영문학과), 홍근철(일문학과)씨 등 전직 교수가 세종대를 찾은 것은 13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사진 김동우>
첫 보도가 나간 후 기자는 이 '엽기가족 폭로사건'의 당사자, 즉 세종대 재단의 현 이사장 주명건씨와 그의 부모이자 설립자로 알려진 주영하·최옥자씨와의 직접 인터뷰를 시도했다. 부모와 자식이 '건너올 수 없는 다리'를 넘으면서까지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진짜 이유를 속시원하게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양측 모두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의(戰意)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대리인을 내세워 자신은 철저히 옹호하고 상대는 가차없이 공격하는 전투행위(?) 자체를 멈추지는 않은 것이다.
<사진 주영하최옥자 + 사진 주명건>
***인터뷰 요청엔 거부, '비리공방'엔 대리인 내세워 팽팽한 대리전**
먼저 주명건씨 측에서는 세종대를 소유한 대양재단의 ㅊ 사무총장과 ㅂ 비서실장이, 주영하·최옥자씨 측에서는 개인 비서 ㅇ씨가 대리인으로 나섰다. ㅊ씨와 ㅂ씨는 주영하·최옥자씨가 폭로했던 주명건 이사장의 부정비리와 부도덕성 관련 부분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고, ㅇ씨 또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재반격에 나섰다.
다음은 지난 기사에서 문제가 됐던 주영하·최옥자씨의 폭로 내용(일련 번호가 매겨진 굵은 활자), 주명건씨 측의 해명 내용(이하 '장남 해명'이라 함), 주·최씨 측 재반론 내용(이하 '부모 재반론'이라 함)을 순서대로 서술한 것이다. 양측은 이밖에도 다른 많은 내용을 제기했지만, 여기선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 부분만 우선 소개하기로 한다.
***(1)주명건은 현재 불법으로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부모인 우리가 더 이상 이사장직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부모를 속이고 재단 이사진을 자신의 고교 동문인 서울고 출신들로 구성했다.**
(장남 해명)이사회는 대양재단 정관에 규정된 모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소집, 심의, 의결되었다. 여기 우체국 소인이 찍힌 참가 요청 통지서도 있지 않은가. 부모님이 탄원서까지 냈지만 교육부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합법적 이사회였음을 모두 인정했다. 그런데 부모와 친분이 깊은 고원증 이사만이 근거 없이 동조하여 이사회가 불법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사 7명 중 4명이 서울고 출신인 것은 사실이지만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부모 재반론)주명건이 결정적 증거라며 교육부에 제시한 우체국 소인이 찍힌 통지서와 회의록은 조작한 것이다. 실제로 주영하 이사의 경우 통지서를 받은 적이 전혀 없으며, 문제의 우체국이 주명건의 입김이 통하는 세종대 구내에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서울고 출신 이사 4명을 불러 증언을 듣고 우리의 탄원을 묵살한 교육부는 썩었다. 그들은 반드시 법률적, 도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더욱이 주명건은 고원증 이사(전 법무장관)에게 협조를 요청하면서 거마비 3백만원을 놓고 갔다. 떳떳하다면 왜 그랬겠는가.
***(2)주명건이 저서나 이력에서 소개한 '경제학 박사 학위'는 가짜다.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법인의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학력을 속이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남 해명)매사추세츠 주립대학 경영대학에서 ‘경영경제학(business economics)’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단언컨대 나는 경제학자이고 경제학에 관한 박사이다. 경제학에 관한 21편의 저서와 34편의 논문을 저술한 나는 실질적으로 경제학에 관한 박사이다. 국내 유수의 경제학회에서도 나를 경제학자로 인정하고 있으며, 세종대뿐만 아니라 서울대와 연세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생들이 내가 저술한 경제학 책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부모 재반론)주명건의 구구한 변명이 도리어 경제학박사 학위가 가짜임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언론 보도가 나간 뒤, 주명건과 같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이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제야 진실이 다 밝혀졌네요”라고 제보하기도 했다. 사실은 주명건의 경영학박사 학위도 정식으로 딴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은 나중에 자세히 밝히겠다. 인사청문회에서 학력을 속였다가 해임됐던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처럼 주명건도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3)주명건이 재단의 수익사업체인 (주)세종투자개발에서 수십억원 상당의 회계부정을 한 것은 물론이고 재단 운영과 관련된 여러 가지 유형의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적발되었다. 주명건의 불법행위는 상당히 오랜 시일을 두고 계획적으로 용의주도하게 이루어진 것으로써 단순한 비리 차원을 넘은 범죄적인 행위에 속한다.**
(장남 해명)사실 세종투자개발의 회계부정은 이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독점적 운영을 해온 동생 주장건과 그의 측근들이 저지른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주장건도 이미 인정했으며, 그래서 이사회에서 정식으로 대표이사 해임 결정이 난 것이다. 그런데도 감정에 치우친 부모는 근거도 없이 나를 끌어들여 흠집을 내려고 한다. 삼척동자의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기업체에서 회계부정이 있었다면 그것은 대표이사를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부모 재반론)세종투자개발은 대양재단의 계열사에 불과하며, 대양재단의 대주주는 어디까지나 주명건이다. 더욱이 주명건은 동생을 몰아내고 경영권을 장악한 뒤 자신의 회계부정 자료를 우리에게 제공했던 간부들을 해임시키거나 정직시키는 등 보복을 가했다. 그리고 부도덕하게도 동생에게 모든 누명을 덮어씌우고 있다. 우리는 주명건의 부정비리를 밝힐 수 있는 결정적 물증을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낱낱이 밝힐 것이다.
***(4)세종대 교수 연봉이 1백20여 개의 사립대 중 최하위인 반면 주명건의 연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너무 많다. 예컨대 전 이사장의 연봉은 3천만원 정도였는데, 주명건은 기밀비나 각종 판공비를 제외하고도 6억5천만원이나 된다.**
(장남 해명)연봉이 6억5천만인 것은 맞지만 그것은 재단에서 받는 급여와 세종투자개발 등 다른 사업체의 이사로서 받는 급여를 구별하지 않고 합산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기밀비, 판공비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는 내가 이사장이 된 후 용처가 불분명한 기밀비와 판공비를 급여에 모두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 하에 급여체계를 단일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부모 재반론)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세종투자개발 등 다른 사업체도 모두 세종대 소유 재단인 대양재단 하부에 소속돼 있다. 그리고 주명건은 그 재단의 이사장이다. 말장난으로 대충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되거니와, 어느 학교법인 재단 이사장도 이렇게 고액의 연봉은 받지 않는다. 설득력 없는 변명을 늘어놓기보다는 차라리 사실을 깨끗이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5)우리의 폭로는 ‘가족싸움’이 아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족벌경영을 끝내고, 새로운 이사장은 재단 산하 전 구성원이 인정하는 인물로 공개 초빙하겠다.**
(장남 해명)세종대 안에는 주명건 이사장만 혼자 있으므로 ‘족벌재단’이 아니다. 공적인 기구를 무시하고 당신들의 말 한 마디로 재단 이사장을 교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이야말로 아직도 족벌경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리어 부모는 장녀(세종대 교육학과 교수, 주명건 이사장의 누나)를 총장으로 앉히려고 시도했다.
(부모 재반론)주명건이 주영하․최옥자의 장남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사장이 될 수 있었겠는가. 현상유지를 바라는 주명건은 자꾸만 이 싸움을 이전투구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결코 가족싸움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설립자가 관리능력 부족과 부도덕성을 보여준 장남을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도록 주장한 것일 뿐이다. 장녀를 총장에 앉히겠다는 말도 결코 한 적이 없다. 새 이사장 공개 초빙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다.
세종대 족벌재단 내부의 권력암투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그들이 벌이고 있는 평행선의 진실게임을 지켜보면서 세종대 족벌재단의 골육상쟁은 당분간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한편 '엽기가족 폭로사건'과 함께, 주명건 이사장이 그 동안 보여준 족벌재단 제왕(帝王)으로서의 진면목(?)과 관련된 각종 해프닝들도 이번 기획에 다시 한번 재조명을 받고 있다. 다음은 그 중에서 몇 가지 사례만 뽑아본 것이다.
***'8등신 예술론'과 '싱크대 사건'**
"김동우 교수의 작품은 여인의 인체 비례가 5등신 정도로밖에 안 보여. 그리고 머리가 너무 크잖아. 옛날에는 여자가 머리가 크면 시집도 못 갔다구. 그러니까 머리를 작게 바꾸고, 밑 부분 좌대(座臺)도 없애 버려요. 그 대신에 다리를 좀 길게 늘려서 8등신 정도의 늘씬한 여인으로 고치라구"
한국의 대표적 조각가 중 한 명인 김동우 교수에게 이렇게 예술지도(?)를 했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세종대 현 이사장 주명건씨. 물론 김 교수는 고민 끝에 주 이사장의 이 무식하고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족벌사학의 제왕인 재단 이사장의 전횡과 횡포에 맞서 예술가의 양심과 소신을 지킨 대가는 너무나 썼다. 몇 년 후 갖은 트집을 잡아 재임용에서 부당하게 탈락시킨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세종대 이사장 8등신 예술론 사건'의 전말이다.
그런데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 사건 이외에도 주명건 이사장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해프닝은 수없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일명 ‘싱크대 사건’이다. 세종대는 1998년부터 매년 10월에 세종미술대전을 주최했는데, 이 '싱크대 사건'은 그 첫 해에 발생했다.
세종미술대전의 시상 부문은 서양화·동양화·조각 등 총 3개 분야였고, 각 부문별로 최우수상(1)·우수상(2)·특선(5)을 뽑는 방식으로 심사가 진행됐다. 상의 공정성과 권위를 높이기 위해 심사위원에는 서울시립대·이화여대 교수 등 외부인사가 위촉되었고, 최우수상 수상자에겐 5백만원의 부상이 책정돼 있었다고 한다.
심사결과가 발표되던 날, 세종대 정문 앞에는 작품을 출품한 젊은 작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 중의 한 명인 표○○씨(46. 울산대 강사)도 그 날 거기에 있었다. 교문 앞에서 심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표씨는 심사를 마치고 나가는 교수들에게 "자네 작품이 조각 부문 최우수상에 선정됐네"라는 통보를 직접 받았다. "실험정신을 높이 평가해 선정했다"라는 칭찬도 들었다.
한편 심사장 현장에서 전 과정을 지켜봤던 조교도 교문 앞까지 나와서 그에게 같은 내용의 '기쁜 소식'을 알려줬다. 표씨는 "상금 받으면 한턱 쏘라"는 주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귀가했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 세종대 안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끝내고 막 돌아간 직후, 주명건 세종대 이사장이 수상작품을 둘러보기 위해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침 심사위원들이 조각 부문 최우수상으로 뽑은 표씨 작품의 재질은 알루미늄 계통의 스테인레스였다.
당시 세종대 회화과 학과장이 그 작품을 가리키며 조각 부문 최우수상이라고 보고하자 주 이사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한마디 툭 던졌다.
"웬 싱크대가 1등이야?"
물론 그것은 '싱크대'가 아닌 '예술작품'이었지만, 이사장의 그 말 한마디로 표씨의 최우수상 수상과 5백만원 상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되고 말았다. 세종대 족벌왕국의 절대권력자인 주 이사장의 불편한 심기를 간파했는지 학과장이 재빨리 "최우수상이 선정된 것은 아직 아닙니다"라고 말을 바꾸고 만 것이다.
결국 최우수상·우수상 선정은 없었던 일이 되었고, 수상작을 모두 특선으로 처리하는 선에서 해프닝은 끝났다.
***"'이사장 딸 특선 사건'은 한 마디로 '블랙코미디'였다"**
일명 '이사장 딸 특선 사건'은 2001년 세종미술대전 당시에 발생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세종대 당국은 이 사건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심사방식을 바꾸는 조치를 취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세종미술대전이 시작된 1998년에는 외부인사가 심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이듬해인 1999년에도 그대로 유지됐다.
그런데 갑자기 2000년부터 내부인사, 즉 세종대 회화과 교수가 심사를 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그렇게 심사방식을 바꾼 지 1년이 지난 2001년. 세종미술대전에 주명건 이사장의 딸인 주○○씨(서양화 전공)가 작품을 출품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김동우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교수들 사이에선 내부적으로 이사장 딸이 출품했으니 웬만큼 수준이 되면 최우수상이나 우수상을 주자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그러나 심사를 끝낸 결과 도저히 최우수상이나 우수상을 줄 만한 수준은 안 된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주 씨의 작품은 5개의 특선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나마 이사장의 딸이 아니면 그마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증언이다.
여기까지는 그리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심사결과가 발표되자마자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학교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우선 평소처럼 심사결과를 세종대 회화과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렸으나, 당장 내리라는 학교 당국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전시회 장소인 백상기념관에 전시된 수상작에 붙어있던 최우수상·우수상·특선 등의 딱지를 떼라는 지시와 전시회 카탈로그 인쇄도 당장 중지하라는 명령이 득달같이 내려왔다. "도대체 누가 심사를 했냐?"는 소리까지 공공연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김동우 교수의 증언을 직접 들어보자.
"당시 그 난리를 겪으며 세종대 이사장 가족들과 학교 당국 간부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에서 주최한 미술대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딸은 무엇이며, 이사장 딸에게 최우수상이나 우수상을 안 줬다고 생난리를 치며 '알아서 충성하는' 보직 교수와 간부들은 또 무엇인가"
그러면서 김동우 교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 마디로 그것은 '블랙 코미디'였다"
***'세종관 난방기' 사건'**
그런데 '블랙 코미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명 '세종관 난방기 사건'도 또 한 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이 해프닝은 세종대 총학생회 간부가 증언한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총학생회실이 있는 건물인 세종관은 난방시설이 열악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난방이 들어왔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사장 딸의 작업실이 3층에 잠시 들어선 것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갑자기 난방이 끊겼다고 한다. 이번에는 이사장 딸이 이화여대에 합격하면서 작업실이 폐쇄됐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이사장 딸은 이화여대와 세종대 두 곳에 응시를 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실기 작업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학생들 사이에선 '이사장 딸이 이화여대에서 떨어져 세종대에 왔으면 난방시설이 계속 가동돼서 우리도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아쉽다'는 우스개 소리가 돌기도 했다"
우리는 세종대 학생의 이 자조적 증언에서 족벌재단이 세종대에 드리운 그림자가 얼마나 길고도 짙은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세종대는 더 이상 침묵만 하지 않았다.
지난 12월 12일.
학생, 동문, 해직교수 등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본관을 거쳐 학생들이 제일 많이 모여있는 건물 앞에 이르자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뜨거운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오랜 침묵에 빠져 있던 세종대가 차가운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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