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판의 극적인 정치 드라마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 경선은 우선 의미 있었다. 정치가 활력을 얻자면 이렇게 기대치를 높여 그걸 채워나가는 의지와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못하면 민심은 흥미를 잃고 자신의 요구를 담아낼 정치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것보다는 정치적 무관심이나 냉소주의에 빠지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만연했던 정치적 좌절감을 딛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시동을 걸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의 미래는 밝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대안 경쟁과 새로운 지도력의 출현을 이루어내고 현실적 과제를 해결해나가는 정치적 역량을 결집시키고 조직화하는 역사적 경험을 축적해나갈 수 있다. 민주 통합당의 당 대표 경선은 그러한 점에서 구 민주당의 지체현상을 타파했다는데서 중요한 고비를 넘었다고 할 것이다.
▲ 15일 민주통합당 신임 대표가 된 한명숙 전 총리 ⓒ프레시안(최형락) |
특히 이학영의 경우, 그가 지명직 최고 위원이 될 경우 민주통합당의 지도부는 문성근-이인영-이학영이라는 진보 라인을 일정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전선 구축은 민주 통합당의 전체적인 성격 변화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한명숙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달려 있겠으나, 지도부에 시민운동 진영의 추가는 정치적 결정력을 강하게 가지게 된 시민사회의 요구를 담아내는 데에도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피하기 어렵다고 보여 진다.
민주통합당 내부의 진보라인 형성
서울시장 후보 선거에서 당찬 모습을 과시한 바 있던 박영선의 경우도 진보 라인에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 지며, 김부겸의 경우 영남 지역 구도를 깨겠다고 선언한 이상, 이후의 움직임이 주시되는 바이다. 박영선은 통합진보당을 포함하여 야권의 여성 정치 지도자 군에 속하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며, 김부겸은 민주통합당의 영남권 벨트 확대의 책임을 일정하게 지게 된 상태라고 하겠다.
민주통합당으로 변화가 일지 않았다면 구 민주당의 차기 대표를 겨냥했을 박지원의 경우 역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가 구 민주당의 호남 지역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여겨져 구시대적 유산의 상속자처럼 평가절하 되기도 하지만, 구 민주당이 간난의 세월을 헤쳐 오는데 이들 호남권 지지 세력의 역사적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지도부 입성은 민주당 전통의 일정한 지속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요소가 민주당의 진화에 기여할 것인지 아니면 장애로 작용할 것인지는 앞으로 박지원 자신과 민주통합당의 운영에 달려 있다.
이번 당 대표 경선의 과정과 결과를 전체적으로 보자면, 기존의 민주당이 가지고 있던 역량과 성격이 일정하게 보존되거나 지속성을 갖게 된 한편 진보정치의 영역이 확대되었다고 하겠다. 한국 노총의 발언권이 정치화된 대목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이는 향후 통합진보당에게 있어서 진보정당의 정치는 어떤 차별성을 가져야 하는지 입증해야 하는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지점과 함께, 야권 연대의 축이 강화될 수 있는 이중적 의미를 갖게 된다.
박정희 체제 유산 상속자 vs 진보적 민주주의 세력
한편, 무엇보다도 민주 통합당의 시민운동적 진보성 강화를 기대했던 문성근 지지 세력은 이번 결과가 좀 아쉬울 것이다. 그가 당 대표로 당선 되었을 경우, 민주 통합당의 변화가 보다 분명했으리라는 예상들을 하지만 당 대표란 당 내 제 세력의 갈등을 조정해내면서 정치적 일치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보자면 꼭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도리어 수석 최고 위원의 위상을 갖게 된 문성근이 당내 정치를 통해 정치적 경력을 쌓고 그걸 기반으로 해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실력을 닦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경선은 문성근 자신이나 그를 지지하는 세력 모두에게 최선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한명숙 대표는 이번 당대표 경선 후보 모두와 고밀도의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통합당의 진보정치 확산에 울타리가 되어줄 것으로 보여 진다.
이제 한국 정치는 박정희 체제 유산 상속자와, 이에 맞서 민주주의의 역량을 구축해온 세력과의 최종적인 역사적 대회전이라는 의미로 압축되고 있다. 그에 더하여 한반도의 평화적 미래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진보적 대안 경쟁을 해야 하는 세력들 간의 경쟁적 협력, 또는 협력적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이 되었다.
정치 신인들 대거 등장할 듯
결국 이제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의 구도를 어떻게 짜들어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야권 각 정당의 진용은 기본적으로 짜여 진 상태가 되었다. 한나라당의 경우는 정치적 파산 직전의 상황이 되고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야권 승리가 무조건적으로 보장된 상황은 아니다. 이 점을 착각할 경우, 야권 연대는 흔들릴 것이며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식의 정치적 오만이 발동될 수도 있다.
총선의 경우에는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야권 연대가 쉽진 않다. 게다가 지지율 급등으로 위상이 변한 민주통합당이, 진보정치의 겹침 부분과 지지세 쏠림 현상으로 해서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아진 통합진보당을 동등한 위상을 지닌 우당으로 대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발상과 접근이 압도하게 된다면 주어진 기회가 낭비되고 말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민주통합당과 통합 진보당이 서로 가치연대를 기초로 후보들에 대한 교통정리를 하는 기구를 신속하게 가동시키고 최대한 후보 단일화를 목표로 하면서 그 방식과 구조에 합의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총선은 정치 신인 예비 후보들이 엄청나게 늘어날 전망이다. 정권 교체의 열망이 높고 야권연대에 기초한 단일 후보가 되기만 한다면 당선은 상당한 수준에서 가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보 교통정리는 과거보다 더 어렵다고 할 만 하다.
더군다나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이나 모두 당이 하나로 되는 과정에서 여러 세력들이 모였기 때문에 정치에 투입해야 할 인물들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이는 정말 간단치 않은 과제가 되었다.
▲ 민주통합당 당대표 선출 및 최고위원 경선 ⓒ연합 |
야권 연대의 틀, 신속하게 만들라
그래도 이를 풀어야 하는 것이 정치의 숙명이고 정권 교체를 위해 책임져야 할 두 당의 임무이다. 대표 경선 이후 차분하게 숨을 돌리기도 전에 다음 단계로 들어가야 하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너무 무리한 요구가 될 수 있으나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그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니 만큼 미적 거릴 수 없다.
이걸 잘해야만 대선 후보 문제도 잘 풀어나갈 수 있으며, 국민적 신뢰를 축적해서 정치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또다시 정치적 혐오감을 자초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당 대표 경선으로 일단 그 출범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제 정말 시작이다. 몸집이 커지고, 구성이 다양해진 만큼 정치적 실력 발휘를 상당히 잘 해야 한다.
그 첫 실험대는 야권 연대의 틀을 하루라도 빨리 구체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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