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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화’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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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화’의 속사정

김연호의 '워싱턴 탐구' <1>

최근 이라크주둔 미군 사상자가 끊이지 않고 잇따라 발생하자 미국내에서는 이러다 베트남전의 전철을 되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전은 베트남전과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는 반박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그 논거는 이렇다.

우선 이라크전은 이미 군사적으로 승리한 상황에서 정치적인 ‘마무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라크의 경우 미군 사상자 수에 있어서 베트남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미미한 정도라는 것이다. 또 미군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게릴라들이 베트콩 게릴라들처럼 현지에서 주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과거 월맹이 소련의 지원을 받았던 것처럼 이라크 게릴라 세력이 강대국의 후원을 얻고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마무리하고 현지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만큼은 이라크전과 베트남전이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이라크 경찰에 대한 훈련스케쥴을 크게 단축해 이들에게 서둘러 이라크의 치안을 맡기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늦어도 18개월이내에 이라크 헌법제정과 총선실시를 통한 권력 이양을 마무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부시 행정부가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소위 ‘이라크화'(Iraqification)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베트남화’(Vietnamization)에 빗대면서 깊은 우려를 보이고 있다.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내 지지가 시들어가고 전황도 별 진전이 없자, 미국이 베트남 현지의 군인과 정치인들에게 서둘러 권력을 넘겨주고 쫓기듯 빠져나온 과거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이들이 우려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이라크 경찰 훈련스케쥴은 이미 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단축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훈련스케쥴을 단축시킨다면 과연 제대로 된 치안서비스를 이들로부터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 이들에게만 게릴라 소탕을 맡긴다면 이들이 적과 내통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군이 빠져나간 자리를 게릴라들이 마음껏 활보하면서 더욱 무서운 기세로 테러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화’는 이라크에서 손을 털고 빠져나가는 전략은 될 수 있어도, 승리한 전쟁을 깨끗하게 마무리짓는 전략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강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동맹국들이나 우방국들의 군대가 미군이 빠져나가는 자리를 메꿔준다면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켜 줄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그 성과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부시 미 행정부의 ‘이라크화' 전략은 그 속도를 늦추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의 시사월간지 워싱턴 먼쓸리 (Washington Monthly)는 11월호에서 그 속사정의 한 단면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세력으로 분류되는 미군과 그 가족들이 이라크주둔 미군의 피해가 늘어가면서 차츰 부시의 공화당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투표자수 비중은 별로 크지 않지만, 지난번처럼 박빙의 승부가 될 경우 그 파괴력은 예상외로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지한파, 그 가운데 특히 노무현 정부와 상당한 교감이 있는 인사들은 한국정부가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감안해 이라크 파병 규모와 성격에 있어 보다 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를 조언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대규모 전투병을 파병한다면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쪽에서는 상당한 ‘정치적인 빚’을 지게되는 셈이고, 이를 잘 활용해 앞으로 한반도 문제를 한국이 보다 유리하게 전개시켜 나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정부의 미온적인, 혹은 방관적인 대처로 한미 동맹관계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워싱턴측의 주장을 일시에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물론 이같은 조언은 한국의 국내정치적 상황을 무시하고 한국의 중단기적인 국가이익 차원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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