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1999년 12월 30일. 나와 호일병, 그리고 유약진은 차를 몰고 고향을 방문했다. 나는 호일병의 차에 타고 서 기사가 내 차를 몰고 뒤에서 쫓아왔다. 구산현(丘山縣)에 거의 다 왔을 때 호일병이 말했다.
“방(龐) 현장한테 연락해서 마중 나오라고 할까?”
내가 말했다.
“됐어! 뭣 하러 허세를 부리나? 그 사람들 상대할 기운도 없네.”
현으로 들어서면서 유약진이 말했다.
“저 앞이 하원촌(下元村)이지? 옛날 우리 저리로 농촌조사 갔었잖아! 한번 내려서 보는 게 어때?”
그리고 차를 돌려서 시골도로로 들어섰다. 한참 달리다가 유약진이 말했다.
“차 세워봐!”
호일병이 차를 세웠다. 유약진이 먼 곳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 해에 우리가 저 소태나무 아래에서 산토끼를 구워 먹었지.”
우리는 그곳으로 갔다. 유약진이 잡초를 발로 걷어차면서 말했다.
“바로 여기야!”
우리는 풀들을 뒤집어 보았다.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호일병은 소태나무를 둘러싸고 한 바퀴 돌면서 말했다.
“그때 내가 나무껍질을 벗겨서 이름을 새겨 놓았는데, 못 찾겠어. 유약진, 너 장소 제대로 찾은 것 맞아?”
내가 도와서 찾기 시작했다. 손이 닿을락 말락 하는 곳에 나무껍질이 벗겨져 빤질빤질 했다. 내가 자세히 살펴보니 흐릿하나마 ‘호일병’이라는 세 글자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이거 아냐? 이십 년도 더 되었는데 너는 고개 숙이고 찾고 있냐?”
호일병은 발돋움을 하고 그 나무껍질 주위를 만지면서 말했다.
“나무가 이러하니 인간이 어찌 당해내겠어! 언젠가 내가 죽어도 내 이름은 이 나무 위에서 살아 있겠군. 길이길이 썩지 않고.”
하원촌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사는 집은 옛날보다 조금 좋아졌지만 다른 것은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아이들이 둘러싸고 구경했지만 우리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한 바퀴 돌고 그냥 떠났다.
저녁에 우리는 담임 선생님이셨던 악(岳)선생님을 찾아갔다. 벌써 오래 전에 퇴직하셔서 집에 계셨다. 늙고 병든 악 선생님은 침상에서 일어나 앉으시면서 우리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셨다.
호일병이 말했다.
“학교에서 어떻게 선생님을 이런 낡은 집에 살게 할 수 있습니까? 제가 내일 방 현장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방 현장더러 후(候) 교장한테 말 좀 하라고요.”
악 선생님이 말했다.
“곧 옥황상제 보러 갈 사람인데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죽을 때가 다가오면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게 돼. 내 나이가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지. 내 한평생 딱히 이야기할 만한 일 하나 없지만, 그나마 자랑할 만한 거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자네들처럼 훌륭한 제자들이야. 천하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이고 국가의 대들보들(天下支柱, 國家棟梁)! 교수가 되고, 청장이 되고, 유명한 기업가가 되었다니…. 자네들 같은 제자들만으로 내 청빈(淸貧)했던 인생이 가치 있게 느껴지네. 천하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 국가의 대들보들!”
악 선생님이 흥분하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부끄러워졌다. 선생님은 우리가 진실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신다!
선생님, 진실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진실하게 살았다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려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고 평생을 초라한, 처참한 패배자로 살아야 하는데…. 저희도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배웅하시는 악 선생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도 울고 싶었다.
호텔로 돌아오자, 성(省) 위성방송 채널에서 ‘혜리(惠利)의 밤’이라는 문화의 밤 행사가 방영되고 있었다. 마침 이지(李智) 사장이 혜리 그룹의 밝은 미래를 설명하고 있었다. 사회는 위성 방송국의 간판스타인 등두운(藤杜芸)이 보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스타들이 하나하나 무대에 올랐고, 제법 그럴듯했다. 이지도 그럴듯하고, 등두운도 그럴듯한데, 악 선생님만 이렇게 초라하게 되셨구나! 내 가슴에 뭔가가 걸려 있는 듯 괴로웠다. 문 부성장도 참석한 것을 보자 마음이 더 불편했다. 호일병이 말했다.
“내년, 늦어도 내후년에는 나도 저런 프로그램 하나 마련할 테니 두고 봐! 까짓 거 돈 얼마나 든다고….”
저녁에 우리는 한 방에 모여 불을 끄고 드러누웠다. 마치 이십 여 년 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같은 반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 중에 몇몇은 아직도 깊은 산 속에서 고달픈 농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시절 한밤중에 목은 말라 죽겠는데 물이 떨어져 몇몇이 우물가로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마셨던 이야기, 그해 농촌조사를 갔던 이야기, 젊은 시절의 신념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 당시 신념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굳건했었건만…. 갑자기 우리 셋 다 입을 다물었다.
오늘 우리는 당시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성공했지만, 그러나 우리의 성실함과 신념은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시선을 현실로 돌리는 순간, 사고는 곧바로 본능적으로 다른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그곳에만 성공이 있고, 성공이 전부다. 그 외의 것들은 무슨 말인지 그 뜻이 애매하기 짝이 없는 군더더기가 되고 만다. 세기 말의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경지에 이르렀다. 이는 그야말로 역사의 안배(按排)에 따른 것이며, 개인은 그저 생존의 본능에 의해 떠밀려갈 뿐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의 뿌리를 잃고 부유(浮游)하는 족속이 되어버렸다.
물결을 따라 정처 없이 흘러가던 우리는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이 되었다. 우리에겐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사명의식도 없고, 천하와 역사에 대한 책임감도 없으며,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길이 전하겠다는 허망한 환상도 없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현실 세계의 진상을 꿰뚫어보기에 충분한 지혜를 주었고, 그 덕에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에게 신성(神聖)함을 꾸며대거나 궁극(窮極)을 설계하지도 않고, 그런 불가능한 가능성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승리한 실패자이자 실패한 승리자, 고결한 속물이자 세속적인 군자가 되었다.
우리는 선배들의 방식으로 말하지만, 본질적으로 생존자의 경계를 뛰어넘을 능력이 없다.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자기’에 대해서는 전부이다. 우리는 이런 잔혹한 진실에 격파당했고, 내부에서부터 격파당했다. 우리는 신분에 관한, 혹은 영혼에 관한 것과 같은 준엄한 화제를 마주할 힘이 없다. 그 대신 우리는 비겁하게도 그런 문제가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생존이야말로 유일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찍이 궁극을 가지고 있었건만, 그 궁극은 오늘날 자기 자신으로 바뀌어버렸다. 생명의 의의가 솟아나오던 샘은 돌연 말라버리고, 꿈은 그야말로 몽상(夢想)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근원 없는 물(無源之水), 뿌리 없는 나무(無本之木)가 되어 영원한 정신적 방랑자가 되어버렸다. 천하(天下)와 천추(千秋)는 이미 까마득히 멀어지고, 오직 자신의 한 평생만을 이렇게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내 한 몸의 순간이 천하의 영원을 대체함으로써 우리는 낙관주의와의 최후의 결별을 고했다. 결국 인간은 자신 밖에서 자신을 목표로 삼아 숭고하거나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세계를 구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극은 시간이란 거대한 손바닥 안에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우리는 자세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미 준비된 궤도로 들어서버렸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이러쿵저러쿵 얘기할 필요도 없으며, 거스를 수도 없다.
이튿날 정오에 우리는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를 한 후 호일병과 유약진은 각각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차를 몰고 산으로 들어갔다. 현 위생국의 상(常) 국장이 동행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그에게 집에 가서 가족들과 새천년을 맞으라고 권했지만, 아무리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차를 향(鄕) 정부 청사 마당에 세워 놓고, 상 국장은 나를 따라 산을 올랐다. 웅(熊) 향장도 그 뒤를 따랐다.
내가 삼산요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진사모(秦四毛)네 집 입구에 몰려 있었다. 나는 이 마을이 배출한 유일한 인물, 그들의 자랑이었던 것이다. 나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산은 여전히 산이고, 나무는 여전히 나무고, 집도 여전히 그 모양 그 꼴이었다. 사람들의 성쇠(盛衰)만 아니면 시간이 마치 이곳을 비껴 지나간 것 같았다. 진삼다(秦三爹) 영감과 마칠다(馬七爹) 영감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88년에 동류와 함께 왔을 때까지는 살아계셨는데…. 내가 살던 그 작은 토담집은 없어진 지 오래고, 그 자리엔 배추가 가득 자라고 있었다. 진사모네 집 앞으로 돌아와서 나는 준비해 둔 편지봉투를 꺼냈다. 마흔 일곱 개. 한 집에 하나씩. 안에는 이백 위안씩 들어 있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 정도였다. 마이호(馬二虎)에게는 사천 위안을 전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의 부친께서는 생전에 마련해 놓은 관을 우리가 쓰도록 해주셨다. 이 정도로는 마음이 여전히 편치 않았다. 다들 너무나 못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마을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아홉 명의 아이들에게 매년 일인당 칠백 위안씩 보조해주기로 약속했다.
아버지의 산소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모두들 따라오겠다는 것을 물리치고 혼자 나섰다. 칠 리 길. 큰 산의 품을 거닐면서 여러 해 느껴보지 못한 정적을 즐길 수 있었다. 큰 산은 사람들에게 산의 품 안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느끼게 해준다. 그것이 얼마나 큰 환각인지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 환각에 깊이 취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아버지의 산소가 눈에 들어왔다. 송곳처럼 볼록했던 무덤이 납작해져서 마른 풀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겁이 났다. 감히 다가가지 못할 것 같았다. 마치 아버지께서 살아서 저곳에서 여러 해 동안 나를 기다리고 계신 것 같았다. 산소를 찾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할 줄이야….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나는 마른 풀을 밟으면서 천천히 나아가 무덤 앞에 멈춰 섰다. 이곳에 지영창(池永昶)이란 사람, 나의 아버지께서 이미 이십여 년 간 깊은 잠에 빠져 계신다. 그는 일찍이 불가사의한 태도로 세계를 거쳐 가셨으며, 생각도 못할 방식으로 사라지셨다.
오늘 나는 이곳에 서서 바람 속에, 석양 아래, 아버지의 영혼과 대화하고 있다. 이 순간 나는 그 냉엄한 유물론을 믿을 수 없다. 아니, 나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 생(生)과 사(死)가 서로 통한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내 어깨에 머무는 바람에 마른 풀 냄새, 마르고 떨떠름하지만 엷은 향내가 포함된 익숙한 냄새가 섞여 있다. 그 시절에도 이런 냄새 속에서 아버지는 당신을 관찰하는 나를 여러 차례 피하곤 하셨다. 나는 마음으로 그의 눈빛을 느끼는 수밖에 없었지만,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척 했었다. 그러다가 일단 네 개의 눈이 마주치면 당신께선 얼른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셨지.
이십 년도 더 지났으나 기억은 여전히 맑고 또렷했다. 그것은 남에게 한 번도 털어놔본 적이 없었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기억이었다.
석양의 진홍색 빛이 마치 그 뒤편에서 흘러나오는 듯 투명하고 입체적인 의미가 느껴졌다. 태양은 무리지은 산들의 정상에서 움직이지 않고 인간의 세계를 고요히 주목하고 있었다. 저쪽에는 태양, 이쪽에는 나,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여 바라보며 마치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그곳에 서서 나는 세상에는 어떤 묘사할 수 없는 소리가, 불가사의한 힘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경험을 초월하는 가치의 원천이다.
석양 아래에는 한 줄기 붉은 구름이 아주 편편하게 펼쳐져 있어서, 마치 거대한 쟁반이 금으로 된 공을 받치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거대한 손바닥이 아래에서 힘껏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석양은 한 차례 진동하더니 구름 속으로 절반 가라앉았다. 남아 있던 반원은 그 빛이 더욱 강렬해지면서 한 줄기 한 줄기 뿜어내는 빛으로 산봉우리를 음(陰)과 양(陽) 두 부분으로 갈라놓았다. 무리지은 산의 봉우리들이 온통 금색으로 물들었다. 마침내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금 공은 전체가 붉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구름이 금색으로 변하고 중간의 한 부분은 밝다 못해 투명해졌다.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았다. 투명하게 빛나던 점이 격렬하게 끓어오르며 양쪽으로 뻗어나갔다.
그 찰나 한 줄기 구름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더니 마치 저 산들과 나까지 빨아들일 것 같았다. 구름 속에서 버둥거리던 석양은 금색의 구름을 찢어 몇 개의 작은 구멍을 내어 지난 천년 최후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구름 아래로 한 줄기 호(弧)를 그리던 윤곽이 점점 반원으로 변하며 무리지은 산들 사이로 떨어지더니, 최후에는 산봉우리들 사이에 작은 금색 조각만 남겼다. 한 다발의 광선이 나에게 정면으로 쏟아질 때, 나는 이 빛줄기가 나를 끌어주고 있을 때 발을 구르면 하늘로 날아올라 석양으로 녹아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숲 속에서 지지배배 거리며 솟구쳐 오른 무수히 많은 작은 새들이 앞을 다투어 그 광선 다발을 향해 날아가 삽시간에 그 빛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어서 그 한 줄기 빛마저 사라지고 산봉우리 위에 펼쳐진 저녁노을을 보면서 나는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에 이미 저녁의 어둠이 사방을 둘러쌌고, 아득하게 큰 산은 검푸른 빛을 감추며 적막한 그 윤곽만을 남겼다. 한없이 넓은 적막 속에 어떤 소리가 싹을 틔우며 모여들고 있었다. 그 소리는 몽롱하면서도 또렷하게, 느리면서도 단단하게 떠올랐다.
아버지, 지금의 저, 당신의 아들이 여기 서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당신을 이해한 사람일 겁니다. 결코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하진 않았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인간의 본성이 선(善)함을 믿으셨고, 시간의 공정(公正)함을 믿으셨으며, 신념과 원칙을 생명보다 귀중하게 여기셨습니다. 당신은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낭만적인 숭고함을 가지셨으므로, 당신에겐 현실 세계의 범인(凡人)들의 냄새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그것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던”(知其不可而爲之) 공자의 자세로 태연히 희생의 길을 걸으셨고, 심지어 그 희생의 의미조차 따지려 들지 않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보시기엔 원칙이란 이것저것 계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당신은 너무나 지혜로우셔서 마치 어리석은 사람 같으셨습니다(大智若愚). 하늘이 준 잣대가 없는 세계에서 신념이야말로 당신에게는 최후의 잣대였으므로, 당신은 원망도 후회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 당신의 아들은, 대세의 흐름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 흐름에 영합하여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곳에는 꽃도 있었고, 박수 소리도 있었고, 거짓 존엄과 진실한 이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념을 잃어버리고 절개 지키기를 포기함으로써 결국 강요된 허무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제 마음도 쓰리고 아픕니다. 모든 것에서 초탈한 척 하면서 숨기려고 했던 아픔, 다른 사람과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아픔,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고민입니다.
제게 저항할 능력이 없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당신의 아들은 시간에 의해 불가능하다고 규정된 그런 가치들을 지옥으로 떨어질 각오로써 추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아버지께선 진실하셨습니다. 그 진실함이 제겐 이미 낯설지만, 지금 다시 한 번 그 진실함의 존재를 강렬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도 또 다른 종류의 진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아버지, 지금 제가, 당신의 아들이, 여기에 서 있습니다.
나는 눈가가 얼얼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을 깜박거리고 나서야 내가 방금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미 바람에 마른 후였다. 가슴이 아프고 콧날이 시큰거리면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고 했다. 나는 두 눈을 힘껏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참을 수 있었다.
나는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가죽 가방에서 딱딱한 가죽 표지로 된 〈중국 역대 문화명인 소묘〉를 꺼내어 천천히 열어서 가볍게 흙 위에 내려놓았다. 지난 십년 동안 나는 이 책을 딱 두 번밖에 읽지 않았다. 이 책을 열고 그에 비친 내 영혼을 들여다볼 만한 심리적 수용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망설이면서 그 불빛으로 책의 표지를 비추어보았다. 흔들거리는 불꽃이 손가락을 스쳐서 뜨거웠다. 엄지손가락에 힘을 빼자 불이 꺼졌다. 아래에서 사람들이 내 이름을 외쳤다.
“지 청장님… 지 청장님……”
목소리가 암흑 속에서 날리어 왔다. 갈수록 점점 더 가까워졌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아버지의 초상을 책에서 꺼내 불을 가까이 갖다 대고 용기를 내어 들여다보니, 마치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계신 것 같았다. 나는 그 눈빛에 찔린 듯 몸이 옆으로 휘청 하면서, 전신이 학질에라도 걸린 듯 떨리기 시작했다.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치고 있었다.
나는 왼손으로 책을 들어올렸다. 종이가 이미 낡아서 손에 닿자마자 부스러졌다. 불을 가까이 대자 책이 타기 시작했다. 불꽃이 튀면서 뜨거운 기운이 내 얼굴로 솟아올랐다. 책은 어둠에 포위된 채 최후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대뇌 가장 깊은 곳의 주름 사이에 새기기라도 할 것처럼 그 빛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곳은 끝도 없는 어둠이었는데, 빛은 그 어둠 속에서 튀어 올라오고 있었다.
“지 청장님… 지 청장님……”
목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나는 두 손으로 흙을 짚고 일어섰다. 몸을 펴는 순간 검푸른 하늘 장막에 가득 퍼져 있는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빨강, 노랑, 보라색의 작은 별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데 일종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뭐라고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는 따스함이 가슴속을 흐르며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두 팔을 뻗어 올렸다. 최대한 위로 팔을 뻗은 채 가만히 있었다. 바람이 윙 소리를 내며 내 어깨 위로 불었다. 나를 스쳐서 과거에서 미래로 불었다. 바람 위에선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끝)
# 중국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필독의 소설로 알려진 ‘<창랑지수>의 연재를 94회로 마칩니다. 연재를 허락해주신 비봉출판사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창랑지수>는 현재 비봉출판사에서 전3권으로 출간,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애독하신 분들은 주변의 아끼는 분들께 많이 권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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