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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김근태'가 지상에 남긴 '비밀병기', 인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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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김근태'가 지상에 남긴 '비밀병기', 인재근

[기고]'김근태'를 계승하고 부활시키기 위하여

민주주의자 김근태는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정신과 헌신성은 오히려 이 땅에 강력하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조문 행렬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1월 1일 새벽 남산에서 일출을 보고 장례식장을 찾아 새해를 가신 님에 대한 고마움과 다짐으로 시작하겠다며 아들과 딸을 데리고 함께 온 부부, 눈물을 연신 훔치며 차마 빈소를 떠나지 못했던 젊은 여성, 멀리 강릉이나 여수에서 올라와 눈물을 흘린 분,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조문을 마치고 충성의 거수 경례를 하던 노군인, 참회를 하기 위하여 왔다는 경찰 출신의 노인...... 이렇게 서울대병원 영안실로 향했던 4만여 국민들의 행렬은 닷새의 조문 기간 내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이 땅의 참담한 정치 현실에서 끝내 비주류로 힘들게 삶을 마감해야 했던 김근태는 그렇게 국민들의 힘으로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비단 김근태만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 정신이 부활한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간 이 땅의 민주주의를 결정적인 시기에 결정적으로 살려주었습니다. 1987년 6월의 직선제쟁취 투쟁 때 국민들이 전선에 나서 전두환 군사독재를 무너뜨렸고, 그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선시켜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다시 한번 유감없이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국민들은 또다시 세 번째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뉴시스
죽음조차도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김근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죽음조차도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죽음으로써 오히려 부활했습니다.
국민들은 고인이 몸을 바쳐 보여주었던 그 헌신성에 머리 숙여 감사의 뜻과 함께 그를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습니다.

김근태 추모 열기를 지켜보면서 척박했던 어둠의 시대에 이 땅의 민주주의를 살리고자 기꺼이 몸을 던졌던, 투철했지만 소박했던 그 초심을 다시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실패의 무덤 위에서 성취가 자라납니다.


이제 '김근태'는 민주주의의 정신이고 희생이며 용기입니다. 그것은 이미 이 땅의 민주화 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 자산은 단순히 추모의 대상이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겨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임무 방기입니다.


김근태가 남긴 민주주의의 자산을 헛되이 하지 않고 오늘 반드시 부활시켜 큰 불꽃으로 키워내는 것은 살아남은 이제 우리들의 임무입니다.

김근태를 계승, 발전시키는 유력한 방안

그런데 시대정신이라든가 대중들의 열망은 대부분의 경우 어느 특정의 구체적인 인물로 집중되어 표현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정치권에 대한 혐오와 그로 인한 광범위한 무당파의 존재가 안철수라는 인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김근태 정신을 이어받고 그 상징성을 대표할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김근태의 정신과 자산을 계승, 발전시키는 유력하고도 적극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근태의 부인 인재근은 김근태와 노동현장에서 처음 만나 동지로 결합하고 함께 민주주의와 평등 사회의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김근태에게 가해진 무자비한 고문 사실을 널리 세계에 알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남편 김근태를 북돋고 함께 민주주의를 위한 전선에 굳세게 임해 노력해왔습니다. 민가협과 서울민통련에서 인재근이 보여주었던 헌신적인 활동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삶의 마지막까지 혹독하게 고문의 후유증을 앓아야 했던 김근태를 지키기 위하여 그의 곁에서 그의 분신이 되어 묵묵히 희생하고 헌신했습니다.


이 땅의 국민들은 김근태에게 빚을 졌지만, 김근태는 그의 부인 인재근에게 빚을 졌습니다. 김근태는 운동가가 갖춰야 할 모든 품성을 갖춘 운동가의 전형이었지만, 다만 한 가지 너무 진지한 성격 때문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 김근태 선배도 생전에 "인재근은 김근태의 바깥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인재근은 통이 크고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천시(天時)와 적절한 인화(人和)가 어우러진다면 의외의 큰 그릇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재근이 '하늘의 김근태'와 함께 손을 잡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그야말로 '지상의 강력한 비밀병기'로 역할 해내는 그 날을 기대해봅니다.

민주주의 정치학교

다음으로 민주주의 정치학교를 세워 수많은 김근태를 만들어나가는 일은 민주주의자 김근태를 기리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를테면 독일에서 정치재단은 정당과 연계하여 각종 현안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하면서 정치 과정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제고시키고 있습니다. 사민당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과 녹색당의 하인리히 뵐 재단은 각각 노사 문제와 환경 문제에 대단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지요. 일본의 민주당은 마쓰시타 정경숙(政經塾)을 통하여 집권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정당 정치의 발전을 거창하게 추상적으로 논하기 전에 이러한 토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전진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할 '다섯 명의 재상'

김근태는 말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당 10년의 민심이반으로 탄생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외환위기 등의 여러 이유로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음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러한 반성과 성찰 속에 집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정권 교체만이 능사는 아니며, 그것은 변화의 시작일 뿐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라는 점만을 주목합니다. 하지만 필자는 대통령보다 오히려 그와 함께 책임정치를 구현할 내각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명군 뒤에는 명재상과 명참모가 반드시 존재했습니다. 아니 명재상과 명참모가 존재했기 때문에 비로소 명군이 탄생할 수 있었지요. 얼마 전에 막을 내린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바에서 드러나듯, 최근 들어 세종 임금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세종은 훌륭한 임금이었지만, 세종과 함께 황희, 맹사성, 허조, 정인지, 김종서 등의 명재상이 있었기에 명군으로서의 세종의 치세가 빛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최소한 다섯 명의 명재상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함께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할 그런 내각이 준비되고 그런 인물이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여 대통령과 함께 5년 임기 동안 정부를 공동으로 운영할 능력과 덕망을 겸비한 다섯 명의 장관후보가 반드시 공개되고 공동으로 선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새도우 내각이지요.

이 방안은 진보 진영의 통합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도 동시에 수행할 것입니다. 이것은 김근태가 평생 주창했던 민주대연합론과도 정확하게 부합합니다.

우리의 분신 김근태가 떠난 지금,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위하여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순수에 이제까지 살아온 지혜를 더하여 다시 한번 꿈을 가지고 희망으로 살아갑시다.

꿈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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