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인수합병**
임지강이 동훼를 데리고 새해인사를 와서는 내게 안태제약의 상황을 물었다. 나한테 와서 내막을 탐지하고 내부 정보라도 좀 얻어 주식을 사볼까 하는 생각 같았다.
내가 말했다.
“상장한 지 벌써 두 해가 넘었는데도 오를 기색이 안 보이네. 구체적인 일은 정철군이 관리하고 있는데 주주들은 나한테 불평을 해. 중약(中藥)이 경쟁이 워낙 심해서 회인신보(匯仁腎寶) 같은 약은 억 위안 대의 광고비를 썼다는데, 우리는 그렇게는 못하거든….”
임지강은 작년에 주식투자로 십만 위안이 넘는 돈을 까먹었다면서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동훼가 말했다.
“형부, 무슨 소식이라도 있으면 이이한테 귀띔이라도 좀 해주세요. 이이는 주식투자할 때마다 무슨 재수 없는 귀신이라도 따라다니는지, 이이가 팔면 오르고 사면 떨어지고 그런답니다.”
내가 말했다.
“다른 것은 내가 모르지만, 안태제약 주식은 당분간 사지 마! 살 만한 가치가 없어.”
임지강이 말했다.
“이사장(蕫事長)께서 사지 말라고 하시니까 그럼 저도 생각 접지요. 언제 구조조정 같은 소식 있으면 저한테 귀띔 좀 해주세요. 저도 한밑천 잡게요. 절대 밖으로 말 안 새게 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놈의 이사장 노릇도 쉬운 게 아니야. 매년 주주총회 때마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온갖 비난이 다 내게 쏟아지는데, 문화혁명 때 소 귀신 뱀 귀신 해가면서 비판받는 맛이 어떤 건지 나도 알겠더라고.”
정오가 다 되어 임지강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더니 그가 말했다.
“친구가 밥 사겠다는데, 형님께서도 같이 가시죠?”
내가 얼른 말했다.
“식사 대접하겠다는 사람들 하나하나 다 만나 주려면 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예전에는 누가 나한테 밥 사겠다고 하면 과분한 총애라도 받은 양 기쁘고 즐거웠다. 나를 높이 사주다니! 그러나 이제는 나도 먹는 것에도 지쳤고 대접 받을 기력도 없다. 내가 말했다.
“난 호텔에서 온갖 해산물 먹는 것보다 집에서 애 엄마가 절인 배추 볶아주는 게 더 좋아.”
그가 말했다.
“그냥 시시한 사람이면 제가 언감생심 형님더러 같이 가자고 하겠어요? 형님이 누굽니까? 방금은 이지(李智)한테서 온 전화입니다.”
이지(李智)라면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 시 전체에서 유명한 기업가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종사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이지는 또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 그 사람과 같이 다니면서 돈 좀 벌었겠네?”
그가 말했다.
“형님 제발 제 체면 봐서 한 번만 가주십시오. 제가 벌써 약속해 두었단 말입니다.”
거지처럼 애걸복걸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정신적 우월감이 느껴졌다. 인간관계에서는 이런 우월감이 사실 얼마나 소중한 건지 모른다. 아무리 친척지간이라 하더라도 무턱대고 이런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 같았으면 누구든 밥만 사주면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나도 상대가 대단한 인물이 아니면 그런 자리엔 나가주지도 않는다. 이런 거리가 또한 인생의 재미 아니겠는가. 만약 내가 한 층 더 올라가게 되면 사람들은 나와 밥 한 끼 먹어 봤다, 얘기 한 번 나눠봤다, 알고 지냈다, 뭐 이런 사실을 가지고 자랑스러워하고, 얘깃거리로 삼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하고 그러겠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출세의 매력은 정말로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임지강은 내가 태도를 밝히지 않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형님, 제 체면 좀 살려주세요. 벌써 가슴을 쳐가면서 장담했는데 어떻게 취소합니까? 제가 변기에 머리를 박고 죽기를 바라세요?”
나는 이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속으로는 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입으로는 말했다.
“이지가 뭐 대단한 인물이라고 이렇게 갑자기 나를 부르는 거야?”
그가 얼른 말했다.
“그게 아니라 제가 모시고 가겠다고 한 겁니다. 제가 이전에 저희가 친척간이라고 잘난 척을 좀 했거든요. 그랬더니 오늘 또 이야기하기에 제가 단번에 승낙했던 겁니다. 형님께서 안 가시면 그이가 저를 비웃을 겁니다. 형님, 제가 남의 비웃음거리가 되도록 내버려두진 않겠죠?”
내가 말했다.
“나는 밖에 나가서 해산물 먹는 것보다 집에서 고추 장아찌에 밥 먹는 게 더 좋다니까.”
그는 내 말을 듣고는 얼른 말했다.
“동훼, 당신은 집에서 장모님이랑 형님이랑 함께 있어. 나는 형님 모시고 사람들 좀 만나고 올게.”
임지강이 차를 운전하고 단지를 벗어나면서 말했다.
“아폴로 호텔로 가시죠.”
또 말했다.
“오늘은 절대 해산물 드실 일 없을 겁니다! 그건 흔해빠진 거죠. 산에서 나는 음식으로 모시지요.”
나는 잠시 생각해보고 말했다.
“차 세우게, 차 세워!”
“몇 분이면 도착합니다.”
“자네가 안 세우면 내가 내려서 택시 타고 집에 가겠네.”
그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찾아 차를 세우자, 내가 말했다.
“이지 그 인간이 도대체 나를 왜 보자는 건가?”
“별일 아닙니다. 우연히 이야기가 나와서 그래서 제가 응낙한 겁니다.”
나는 오른손가락으로 공중에 원을 그리면서 말했다.
“내가 그래도 배울 만큼은 배운 사람인데, 무슨 일인지 몰라도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하게. 말 좀 그만 돌리고….”
오늘 이 인간들이 함정을 파놓고 나를 기다리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 나를 술자리에 앉히는 것이 첫 번째 단계였다. 통화 중에 임지강은 아폴로 호텔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문을 나서자마자 아폴로 호텔로 가자는 걸 보면 벌써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나는 그의 헛점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겠네.”
그가 급하게 말했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닙니다. 우연히 말이 나온 것이라니까요.”
“그럼 내가 몸이 불편하다거나 성(省) 관리들에게 새해인사 드리러 갔다고 하게.”
말하면서 차 문을 열었다. 그가 나를 덥석 잡으면서 말했다.
“형님, 그게, 이지가 형님한테 일이 좀 있답니다. 저한테 벌써 몇 번이나 부탁을 했는지 모릅니다. 저도 큰소리는 쳤는데 이런 일로 망신당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승낙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말해 보게.”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무슨 일인지는 아무 말 없었습니다.”
“그래? 나는 아무래도 내려야겠네.”
문을 열면서 차에서 내렸다. 그가 반대편에서 뛰어내려 나를 따라와서 잡아끌며 말했다.
“일이 있긴 있지요. 아마도 안태제약에 관한 일 같습니다. 그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저는 더 이상 정말 모릅니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그냥 성(省) 사람들한테 새해인사 갔다고 하게. 정말로 다녀와야겠어. 며칠 더 지나서 가면 사람들이 다른 생각들 할 거야. 저 사람이 나를 몇 번째로 생각하느냐? 이게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데,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그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말했다.
“이러시면 제가 뭐가 됩니까? 그쪽에선 요리까지 다 시켜놓았다는데요.”
이어서 말했다.
“이지는 그저 이지일 뿐입니다. 그가 형님을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무서워하십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서 이야기했다.
“그런 식으로 나를 자극하려는 모양인데, 내가 무서울 게 뭐가 있어? 혹시 그 인간 내 손 빌릴 생각을 하거나 나를 이상한 일에 끌어들이려는 건 아니겠지? 만약 내가 딴 마음 먹었으면 진작 그 길로 들어섰지 오늘까지 이러고 있었겠어? 어림도 없는 소리….”
나는 차 옆으로 걸어갔다. 임지강이 내게 문을 열어주면서 두 손으로 내 등을 슬쩍 밀어 받히면서 내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문을 닫고 운전대를 잡았다.
아폴로 호텔에 거의 다 왔을 때 임지강은 이지에게 전화를 걸어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차에서 내리자 이지가 계단에서 뛰어내려왔다. 여비서도 그 뒤를 따랐다. 이지는 내게 악수를 청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바닥만 살짝 붙였다가 손의 힘을 풀어 놓아버렸다. 이지는 원래 손에 상당히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별수 없이 자기도 손을 놓았다. 그는 얼굴 표정 하나 안 바꾸면서 말했다.
“오늘 지 청장님을 모시게 되다니, 정말 제 체면을 살려주시는군요.”
그는 말하면서 두 손을 활짝 펴 보였다. 내가 말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이 회장이야 오죽이나 많은 사람들을 접하시겠습니까? 전에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문 부성장님도 이 사장네 혜리(惠利) 소프트웨어 시찰 다녀가셨던데….”
아폴로 호텔에 들어가 보니 실내가 매우 웅장했다. 삼사 층 되는 높이의 로비에 사면의 벽에는 부조(浮彫)가 새겨져 있었다. 마주보는 면에는 공자, 굴원, 이백과 같은 옛 어른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왼쪽에는 이집트 피라미드며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오른쪽에는 물 뿌리기 축제를 즐기는 태족(傣族 : 중국 남방의 소수민족---역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거꾸로 매달린 원뿔 모양의 샹들리에는 십 미터도 넘어 보였다. 이지가 소개했다.
“이게 아시아에서 가장 큰 샹들리에랍니다. 이백만 위안짜리입니다.”
내가 말했다.
“식사하러 이런 곳으로 올 것까지 있습니까? 엉덩이 한 번 붙였다 떼면 몇 백 위안씩 날아갈 텐데.”
임지강이 말했다.
“다른 곳은 지 청장님께서 불편해 하실까봐 그랬지요.”
여비서도 끼어들었다.
“저희 이 회장님께서 여러 곳 중에서 특별히 고르신 장소입니다.”
내가 말했다.
“품위 따지고 스케일 따지는 것도 옛날에나 재미있었지, 요즘엔 다 그게 그건데….”
정말로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었다. 길가의 작은 음식점도 상관없었다. 물론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경우에 한해서지만. 상대방이 먼저 제안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어느 정도는 격이 맞아야 한다.
이지가 말했다.
“지 청장님이야 좋은 곳 많이 다니셨을 텐데, 웬만한 데는 다 가보셨겠지요?”
내가 말했다.
“그러니 그냥 아무데나 좀 서민적인 데로 자리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임지강이 말했다.
“형님, 이런 데서 밥 좀 산다고 이 회장님 가난해질까봐 그러세요? 이분이 노동자들의 돈을 얼마나 많이 착취했는데요. 이 정도 출혈은 당연한 겁니다.”
식당에 도착하자 손님을 맞는 아가씨들이 다리를 굽히면서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맑게 부셔졌다. 룸에 들어가 앉으며 내가 말했다.
“이 회장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저는 그냥 듣고 따르겠습니다.”
이지가 말했다.
“지 청장님을 누가 감히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겁니까? 가르친다는 그런 단어는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습니다.”
임지강이 말했다.
“술부터 한 잔 하시죠, 술부터.”
손뼉을 치자 웨이트리스가 메뉴를 가지고 왔다. 이지가 말했다.
“우리는 메뉴에 없는 것들로 하고 싶은데….”
임지강이 말했다.
“산에서 나는 것으로 하죠.”
그리고는 원숭이며 천산갑(穿山甲:천산갑과의 포유동물. 몸은 암갈색 비늘로 덮여있는데 긴 혀로 개미 등을 잡아먹음--역자)은 없냐고 물었다. 내가 얼른 끼어들어 말했다.
“그런 음식은 다음번에 저 없을 때 와서 드십시오. 저는 아무 상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여기서는 좀 피해주시죠.”
임지강이 말했다.
“역시 우리 형님께선 마음 쓰시는 것이 다르다니까. 그럼요, 야생동물은 보호해야지 건드리면 안 되죠. 역시 신
중하십니다.”
이지가 말했다.
“지 청장님은 자애가 깊으시고 살생을 피하려 하시는군요.”
이지가 하는 말들은 임지강의 말보다 듣기 좋았다. 나는 시금치 탕, 절인 배추와 볶은 다진 고기, 그리고 세 가지 토속 훈제 고기요리를 시키면서 말했다.
“다른 것은 저는 생각 없습니다. 위가 상해서, 위를 좀 쉬게 해야 하거든요.”
그러나 속으로는 생각했다. 내가 정말 안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럴듯한 요리로 주문해서 테이블 위에 놓고 모양이라도 내야겠지?
역시 사리에 밝은 이지는 불도장(佛跳墻)을 비롯한 몇 가지 고급 요리들을 주문했다. 마오타이주(茅台酒)까지 시키려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이 회장님, 조금 있다 이야기할 것도 있으니 백주는 그만두시죠.”
그리고는 다이내스티 포도주를 한 병 시켰다. 술잔을 들자 비서 아가씨와 임지강이 갖은 노력을 다해 가며 마치 십년 만에 오랜 친구끼리 만난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는 여전히 뜨뜻미지근하게 굴면서 그런 분위기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술이란 정말 신기한 물건이야! 이놈만 들어가면 일종의 환상의 경지로 빠져드는 것이…. 이러니까 사람들이 음주문화, 음주문화, 하는 거겠지?
술이 돌자 내가 말했다.
“이 회장님 무슨 하실 말씀 있으신 것 아닙니까?”
임지강이 여비서에게 말했다.
“어르신들 중요한 이야기 시작하시니, 우리는 먼저 일어납시다.”
두 사람이 자리를 뜨고 내가 이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했다.
“듣자하니 지 청장님 아드님께서 그렇게 똑똑하다면서요. 이번에 중학교 들어갑니까?”
그가 본격적인 화제를 꺼내기 위해 무슨 말이든 할 줄은 알았으나, 왜 이런 이야기를 앞에 끌어들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죠. 어떻습니까, 우리 정도 되는 사람들끼리.”
내가 직접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말 돌리는 건 아랫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뜻으로 한 이야기였고, 그도 그런 뜻을 알아차리고 부끄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 심리적인 우세만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도 웃는 표정을 지어 그를 안심시켰다. 그가 말했다.
“지 청장님은 사람도 시원시원하시고 말도 시원시원하게 하십니다. 좋습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지 청장님,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목돈이 들어온다면 마다하시겠습니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지만, 겉으로는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수입으로 따지자면, 물론 이 회장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저도 밥 먹고 살 만큼은 됩니다.”
그가 말했다.
“요즘은 아이들 미국이나 영국으로 보내 공부 제대로 시키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들의 바램 아니겠습니까? 가장이라면 그러기 위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어느 정도의 목돈을 마련해 둘 책임이 있지요.”
내가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다면 얼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가 손가락 세 개를 들어올렸다. 나는 그가 얼마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삼 만 위안? 아니면 삼십만 위안? 설마 그가 삼 만 위안 가지고 나한테 목돈 운운하는 것은 아닐 테고…. 내가 물었다.
“삼십만 위안? 저도 마음만 먹으면 삼십만 위안의 몇 배까지도 벌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지 청장님 앞에서 제가 삼십만 위안을 목돈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삼백만 위안입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요즘은 몇 십만 위안만 걸려 있어도 사형선고 받습니다. 제 목숨 좀 살려주시죠.”
그가 말했다.
“지 청장님처럼 조심스러운 분에게 제가 손톱만한 위험이라도 감히 무릅쓰라고 하겠습니까? 그런 위험이 있는
사안이라면 입도 못 열지요.”
내가 말했다.
“아무런 리스크 없이 삼백만 위안을 챙긴다고요? 이 회장님이 자선가라도 되십니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못 믿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푼돈 버는 사람들이나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지 목돈 버는 사람들한테는 위험 무릅쓸 일도 없습니다. 목숨 걸고 도박하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그는 그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의 생각은 혜리 소프트웨어가 안태제약의 대주주가 되고, 안태제약은 구조조정을 거쳐 첨단기술 상장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최후에는 혜리 소프트웨어로 이름을 바꾼다는 것이다. 안태제약의 주식은 현재 시장에서 육 위안 정도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 사실을 터뜨리기 전에 조용히 안태제약의 주식을 사 모은 다음, 충분히 모이면 천천히 소식을 발표해서 주가를 대폭 끌어올린다는 내용이었다. 최종목표는 사십 위안 이상으로, 탁보(托普) 소프트웨어 등 몇 개 소프트웨어 개발 상장기업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윤은 바로 이 거대한 주가 차이에서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자 가슴이 쿵덕쿵덕 뛰었다. 수억 위안 대의 도박 아닌가!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태제약은 제가 제 손으로 키워온, 제 아들과도 같은 기업입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겁니다. 그런데 제가 차마 제 아들과도 같은 기업을 팔 수 있겠습니까?”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지금 한방 제약회사 중에 어디 하나 적자 안 내는 데 있는 줄 아십니까? 만약 그렇게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거라면 다른 회사들도 일찌감치 일어났겠죠. 방금 아들 같다고 하셨나요? 저도 너무 너무 잘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셨는지요? 오늘이야 이사장 자리에 앉아 계시지만 몇 달 후면, 7월 1일부터 증권법이 시행될 텐데, 청장이면 국가공무원이지요? 증권법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이사장직을 겸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때 가서 소액주주 누구 한 사람이 편지 한 통만 쓰면, 지 청장님 난처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는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은 모두 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말했다.
“그때 가서 이 회장님이 안태제약 주식 몇 주를 산 다음, 주주 명의로 증권감독위원회에 저를 고발이라도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가 얼른 한 주먹을 다른 손으로 감싸 두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저 이지는 그런 일 할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렇게 하겠지요. 투서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증권법 역시 법 아닙니까?”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누가 문제 삼지 않더라도 내가 물러나야지….
내가 말했다.
“그렇다고 제가 청장 자리 내팽개치고 안태제약에만 매달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건 불가능하지요. 불가능해요. 청장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청장님이시죠!”
이 인간이 아주 준비를 철저히 하고 왔군! 나를 꿰뚫고 있어! 내가 아들 생각하는 것부터 위법을 꺼린다는 점, 안태제약의 이사장을 계속 겸임할 수 없다는 것까지 그는 모두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가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고 말했다.
“저희가 지 청장님 대신 증권사에 백만 위안 넣어두겠습니다. 누구 명의로 할지는 지 청장님이 정해 주시죠. 나중에 그 백만 위안이 사백만, 오백만 위안이 되면 주식 팔아치운 다음에 저의 백만 위안이나 돌려주십시오. 여기까지 뭐 법에 저촉되는 일 있습니까? 청장급 간부의 주식투자를 금지하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청장의 장모까지 주식 투자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지 않습니까?”
내가 말했다.
“이 회장님, 주판 한 번 제대로 튕기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몇 백만 위안 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동안 이 회장님은 도대체 얼마를 버시는 겁니까? 나중에 혜리 소프트웨어가 상장기업이 되고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되면, 그 광고효과는 또 값으로 따지면 얼마나 됩니까? 제가 백만장자 되면 이 회장님은 억만장자가 되겠군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중에 가격을 그 정도까지 끌어올리는 일을 제가 맡지 않습니까. 그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쨌든 제가 지 청장님께 돈을 벌어드리는 것도 아니고, 지 청장님께서 제게 돈을 벌어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협력해서 다른 사람의 돈을 벌어오는 것 아닙니까? 이야말로 윈-윈 게임이지요. 그리고….”
그가 하던 말을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했다.
“제가 기다리는 것도 길어야 한두 달입니다. 저희야 나중에 새 사람이 부임해온 다음에 그때 그 사람과 이야기해도 되는 일이니까요.”
그는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내가 이사장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기껏해야 반 년 정도였다. 그의 제안에 정말이지 나도 딱 잘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말했다.
“며칠 후에 다시 전화 주십시오.”
집에 와서 나는 이러한 사실을 동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일파를 미국 대학으로 유학 보내는 것이 그녀의 숙원이기 때문에, 목돈을 장만할 기회가 생겼다고 하면 그녀는 절대 놓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민했다. 그러나 또 특별히 고민할 이유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돈이 필요하고, 법을 어기는 위험부담도 없고, 내가 이사장 자리에 앉아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회색지대가 이 정도로 넓고 광활할 줄이야!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로군!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정말 너무 잔혹한 시험에 빠지게 마련이다. 마음만 먹으면 백만 위안, 수백만 위안에 이르는 돈을 얻을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마음을 고요한 물과 같이 다스리라고 요구하다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가? 사람은 사람이지 신이 아닌 것을! 만약 내가 마음을 정하고 이 일을 한다고 해도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나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이 자리는 범인(凡人)이 앉을 자리가 아닌, 성인(聖人)을 위해 마련된 자리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범인더러 성인의 잣대에 맞추어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절대 불가능하다.
내가 지난 몇 년 간 몇 번에 걸쳐 뇌물을 거절했던 것도 사실 스스로 일종의 ‘인성(人性)의 신화’를 창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총칼도 나를 뚫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회색지대에서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데, 그것도 엄청나게 큰 수확을, 내가 그걸 왜 거부하겠는가? 회색지대에서 넘어지는 사람 봤어? 못 봤다. 나는 나 자신을 알고 있다. 돈, 나 역시 돈을 사랑한다. 다만 위법의 리스크까지 무릅쓰고 싶지 않을 따름이다. 나도 사람이다. 신이 아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특징을 나 역시 모두 가지고 있다. 내가 그깟 신화 때문에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었지만, 내 몸의 어떤 부위에서 에너지가 계속해서 솟아나오고 있는 것을, 그리고 그 힘이 나를 앞으로 떠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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