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오르는 산이 다르면 부르는 노래도 달라진다**
만약 몇 년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동류가 지금 같은 집에 살면서 “이런 집에선 하루도 더 못 살겠다”는 말을 할 줄이야…. 옛날에는 정소괴네의 방 두 개에 거실 하나짜리 집을 보고서도 천당 같다고 하더니…. 사람은 어느 산에 오르느냐에 따라 부르는 노래도 달라진다(人到什麽山上, 唱什麽歌)고 했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지금 짓고 있는 청장 관사 이야기를 들먹였다. 위생청 차원에서는 한 번도 그 집을 청장에게 배정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지만, 모두들 그 집을‘청장 관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후에는 그 건물을‘참깨 아파트’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참깨만한 자리라도 차지하고 있는 자들은 다 자기 몫들을 제대로 챙긴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지도자들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서늘해졌다. 나만이라도 모범을 보이고 그 집으로 들어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에게 보란 듯이, 나 지대위를 그런 인간으로 봤다면 잘못이라고,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그런 세속적인 시선으로 나를 보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동류가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이렇게 사리가 어두워서야….”
그녀가 말했다.
“어두운 게 아니라 사리에 너무 밝아서 이러는 거예요. 진실은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진실이고, 승자는 먼저 손에 넣는 사람이 승자에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좋네, 나쁘네, 떠들어댄들 아플 것도, 가려울 것도 없잖아요. 하지만 집은 틀려요. 매일 매일 사는 곳이라고요.”
위생청의 다른 사람들도 반대했다. 구립원이 말했다.
“지 청장님, 그런 식으로 저희를 난처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지 청장님이야 인기가 올라가겠지만 저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처해집니다.”
내가 말했다.
“재직 연수가 오래된 여러분들께 우선권을 드리는 것이 당연하지요. 하지만 저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올지는 의문입니다.”
구립원이 말했다.
“지 청장님에게 차례가 안 돌아온다면, 설령 저희한테 차례가 돌아온다고 해도 어떻게 감히 들어가 살겠습니까?”
풍기락과 구립원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런 사안에 있어서는 둘이 뜻이 딱 맞는구먼!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제는 싫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랫사람들이 반대하는 걸! 아랫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렸다가는, 내가 아무리 잘해도, 사람들은 내 인격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위선으로 인심을 얻으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사사로운 이익을 버림으로써 힘을 좀 얻고 바깥 사람들의 분분한 의론도 깨뜨리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힘이 안 실렸다.
나는 당초에 구립원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했다. 화공청의 선례를 따라 집을 너무 크게 짓다 보니 일반 간부들과의 간극이 너무 크게 벌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배후에서 뭐라고 하겠어? 욕을 안 하면 이상하지! 구립원과 풍기락을 비롯한 몇몇이야 어찌되었건 부 청장급인데다가 재직 연수도 나보다 몇 년 씩 많으니 욕먹을 일 별로 없겠지만, 나는 그 욕들을 다 듣게 될 터였다.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손을 길게도 뻗는다고, 그동안 성실한 척 한 말과 맹세가 다 헛소리였다고 욕들을 하겠지….
나는 동류에게 말했다.
“나는 청장 자리에 오를 때 남들과는 각오가 달랐어. 어느 정도 경지까지 올라가서 사람들로 하여금 말뿐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나를 따르게 하고 싶었다고. 사람들이 앞에서는 헤헤거리면서 뒤에서는 구역질을 한다면, 그런 청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동류가 말했다.
“당신 생각은 시대에 뒤떨어졌어요. 요즘이 어떤 시대에요? 먼저 손에 넣는 사람이 승자이듯이, 못 가진 사람은 패자인 거예요. 사람들이 당신 사람 좋다고 칭찬한다고 칩시다.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어쨌든 당신 손에는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내가 말했다.
“시장경제가 당신의 사상을 망쳐버렸군! 어떻게 꼭 손에 들어온 물건만이 진짜인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그런 공허한 것들은 하늘가의 뜬구름 같은 거라고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 가치도 없어요. 바보 같이….”
먼저 손에 넣는 사람만이 승자이며, 못 가진 사람은 패배자, 영원한 패배자란 말이지? 사람 좋다는 말의 뜻이 애매해진 지는 벌써 오래 되었다. 군자(君子)는 농담의 소재가 되었으며, 권력을 이용해서 사욕을 채우는 행위는 이제 명분도 서고 그야말로 “말이 된다.” 낚을 수 있는데 안 낚는 사람은 거만한 사람이고, 온갖 수단을 다해 명예만 추구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한다. 신앙은 사라졌으며, 내세도 더불어 사라졌고, 희생의 이유도 사라졌다.
시장은 현세주의의 강단이 되어 수시로 사람들을 교육시킨다. 공자는 말했다. “의롭지 못하면서 부귀한 것은 내게는 뜬구름과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고. 그러나 요즘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공자는 분명히 죽었다. 나마저도 동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귀가 뜬구름 같다고? 그것은 귀신을 어를 때나 할 수 있는 말이지 사람한테는 씨도 안 먹힌다(只能哄鬼, 哄人是不行了). 결국 인생 자체가 뜬구름 같은 것이다. 한 번 떠내려가면 그만인 뜬구름. 뜬구름은 떠내려가는 과정 자체에 의의가 있을 뿐, 아무도 떠내려간 구름을 추념(追念)하지는 않는다. 자기가 아무리 숭고하고 맑고 고귀하다 한들 그를 추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지금은 바야흐로 형이하학(形而下學)의 시대이다. 사람 노릇 하기 정말 힘들군! 그러나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나 지대위는 여전히 청장이며, 때가 되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이방인(異族) 취급할 것이고, 나를 배척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 새집만 해도 사실 나도 아까워서 떨치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 나 지대위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원래가 다 그렇고 그런 것이었다. 이윤 최대화의 원칙은 이 바닥에까지 파고들었다. 수많은 협잡의 대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그들은 없는 게 없다. 학위면 학위, 학식이면 학식, 성과, 경력, 인격, 직함, 말재주, 온갖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신념 빼고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설계하지 말라고 한들 그게 가능할까?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감히 생각할 수가 없다.
모두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는 기초건설처에 분부하여 건설 방안을 수정하도록, 원래 스물다섯 평으로 계획했던 다른 두 동도 서른 평으로 늘리도록 했다. 이미 사층까지 올린 건물을 기초공사부터 다시 새로 해서 각 층마다 한 호씩 더 끼워 넣도록 했다. 청장이 되었으면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관직에 오른 이상 사람들의 칭송을 듣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것 아닌가!
수술실에서 마취사로 일하던 동류는 이미 주치의로 승급했다. 원칙대로라면 경력이 아직 부족하지만, 그러나 나와의 관계 때문에 경(耿) 원장이 아내가 간호사로 있을 때의 경력까지 쳐주어 특별히 승급시켜 준 것이다. 나한테 별다른 문제만 생기지 않으면 자기가 부주임 의사, 주임 의사의 직급까지 올라가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것을 아내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아내는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업무 관련 서적도 거의 읽지 않았다. 내가 몇 번이나 지적을 했지만 듣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도 그만두었다. 그녀의 모든 신경은 어떻게 하면 부족한 것 없이 제일 좋은 것들로만 갖추고 살 수 있을까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들에 관해서는 더욱 그랬다. 그녀는 언제나 아들에게“사람 위에 사람 있다”(人上人)는 의식을 주입시키려고 했다.
“일파는 크면 아빠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녀는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일파도 대단한 어린이쯤 되는 줄 알고 살다보니, 이런 우월감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의 굽실굽실하는 태도며 갖출 것 다 갖춰진 생활환경은 이미 일파에게도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 나는 걱정이 되어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일파를 무슨 정신적 귀족으로 키우는데, 그건 일파한테 좋지 않아. 그것도 일종의 아편이야. 지금부터 귀족적인 마음 자세를 갖게 되면 나중에 바꿀 수도 없다고. 잘 풀리면 문제 없지만, 혹시 능력이 안 따라주면 좌절만 겪을 텐데, 그렇게 되면 평생 고생만 할 거라고….”
아내는 화를 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우리 일파가 능력이 안 된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리 능력이 안 돼도 제 아비보단 낫다고요. 앞으로 칠팔년 후에는 미국 대학으로 유학 보낼 거니까, 아비 노릇 하려면 돈이나 준비해 둬요.”"
동류가 신경 쓰는 또 다른 대상은 나였다. 우리 집의 모든 것이 내 머리 위의 이 모자에서 나온 것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내 발목을 잡을라치면 그녀가 나보다 더 흥분하고 더 격렬한 반응을 보였으며, 결국에는 치명적인 살상력을 지닌 그런 아이디어들을 생각해내곤 했다. 그녀는 구립원이 딴 마음을 품고 있다고, 언젠가는 화를 자초할 거라면서, 어떻게든 그를 밀어내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도 여러 번 듣다보니 나마저도 그런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녀의 또 다른 근심거리는 내가 혹시 바람이라도 피우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지금 따끈따끈한 고기만두 같아서 내가 이렇게 지키고 있지 않으면 누가 가지고 도망갈 거야. 나 말고 다른 어떤 여자가 당신과 그런 통자루(筒子樓) 집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도망 안 가고 살 수 있었겠어? 그런 여자 있으면 내가 양보할 게요. 다들 이미 만들어진 것만 먹고 싶어하는데, 내가 그렇게 너그러운 줄 알아요? 이게 다 누가 구운 만두인데….”
이어서 말했다.
“당신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괜히 사생활 문제로 어렵게 손에 넣은 관모 잃어버리지나 말아요.”
내가 말했다.
“사생활에 문제 있는 사람이 뭐 한둘인가? 그런 일로 물러난 사람 봤어?”
그러자 그녀가 곧바로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지금 당신 바람 피우겠다는 거예요 뭐예요? 관심 있던 차에 이론적 근거라도 찾았나 보네! 정말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일파 안고 강물로 뛰어들어도 당신 나 양심 없다고 욕하지 말아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된 게 중국 여자들은 몇 백 년 동안 변한 게 하나도 없지?”
그녀는 엄숙하게 말했다.
“당신 앞으로는 막서근(莫瑞芹)이랑 왕래도 줄여요! 혹시 그 여자 승진이라도 시키는 날엔 사람들이 그 소문 진짜였나 보다고 생각할 거요, 나도 그렇게 말하고 다닐 거고….”
내가 말했다.
“당신 나 무시하는 거야? 내가 머리 한 쪽이 터져봐라 그런 여자를 찾나…. 그 여자 아들이 열 살도 넘었다!”
동류가 팔짝 뛰면서 말했다.
“아니, 그럼 아들이 열 살 넘은 여자한테는 흥미가 없단 말이잖아. 그럼 나는? 우리 일파도 열 살 넘었잖아. 좋아요, 당신은 내가 싫다 이거지? 이제야 본심을 털어놓는구먼. 젊고 예쁜 여자 찾고 싶다, 그거지? 하긴 중년 남자를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 일이 승진하고, 돈 벌고, 마누라 죽는 거라던데, 당신은 그 중에 딱 하나만 빠지는 거잖아…. 어쩌지? 나는 당분간 죽을 생각 없는데….”
그날 이후 동류는 유난히 미용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무더기로 사들이는 화장품들은 모두 최고급품들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울 보면서 각종 데이 크림, 나이트 크림을 얼굴에 갖다 바르고, 맨날 눈가만 쓰다듬고 있었다. 매일 얼굴에 대고 두 번씩 작업에 들어갔는데, 한 번에 최소한 삼십분은 들였다. 내가 말했다.
“그러다가 거울 뚫어지겠다. 그런다고 열여덟 살 처녀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녀가 말했다.
“누가 모를 줄 알고…. 남자들은 자나 깨나 열여덟 살 처녀만 찾는다니까, 흥!”
또 말했다.
“내가 화장하는 건 나 보기 좋으라고 하는 거지 다른 사람 보이려고 하는 것 아니니까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아요.”
일주일에 세 번씩 그녀는 오이 껍데기를 얼굴 가득 붙이고는 침대에 한 시간이 넘도록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또 무슨 무슨 크림을 사서 하루에 두 번씩 젖가슴 위에 바르더니, 나중에는 아예 무슨 한약을 브래지어 안에 넣고 다니는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도대체 이게 뭣 하는 짓이야? 내가 당신 어디가 어떻다고 말한 적 있어?”
그녀가 말했다.
“난 당신 못 믿어요. 당신네 남자들을 누가 모를 줄 알고? 텔레비전 광고에서 탄력 있는 여자, 젖가슴이 바로 솟은 여자가 예쁘다 어쩌다 하는 것도 사실은 다 당신 같은 남자들 때문이라고.”
음력설이 다가왔다. 나는 마 청장께 새해인사 가는 문제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동류와 둘이 가자니 마 청장이 불쾌한 내색이라도 하면 나도 참 난처할 노릇이었다. 내가 아직도 그 인간 안색을 살펴야 하나? 위생청 사람들 몇몇이랑 가자니 또 너무 형식적이고 뻔한 자리가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마 청장께도 미안했다. 어찌 되었든 마 청장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동류에게 말했다.
“당신 올해 사모님 보러 갈 거야?”
그녀가 말했다.
“가야죠. 안 가면 사모님이 늑대 심보라고 욕하지 않겠어요?”
내가 말했다.
“사람이 자리에 있을 때나 인정도 받는 거지.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까지 진심으로 자기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안 가도 나는 갈 거예요. 당신이 그렇게 미안한 짓을 많이 했는데 원망 몇 마디 듣는 것도 뭐 당연하죠. 나는 그 정도 수모는 각오하고 있어요.”
그녀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니 나도 용기가 솟았다. 그 정도 수모는 각오해야지…. 어쨌든 그런다고 내 모자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무서울 게 뭐 있어?
음력설 날 나는 동류와 일파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아내는 고한양생정(古漢養生精)과 홍도(紅桃) K 같은 보양품(補陽品)을 샀다.
내가 말했다.
“그 어른은 중의학 공부하시는 분인데, 차라리 과일이라도 사가는 게 실속 있지 않겠어?”
그래서 수입 사과 한 상자도 사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온 술도 두 병 들고 갔다. 가기 전에 나는 변상(卞翔)에게 전화를 걸어, 마 청장님의 최근 근황을 물었다. 최근 거의 두문불출한다는 사실을 알고 심적인 부담이 더해졌다. 내가 바로 마 청장을 그렇게 의기소침하게 만든 장본인 아닌가!
사모님은 문을 열더니 놀란 얼굴로 말했다.
“지, 지 청장 오셨어요?”
나는 한 주먹을 다른 손으로 감싸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전처럼 그냥 대위라고 불러 주십시오. 오늘 첫 번째로 새해인사 드리러…, 하긴 마 청장님 댁이 제가 새해인사 다니는 유일한 곳입니다.”
마 청장은 자리에 앉은 채로 냉담하게 말했다.
“우리한테까지 무슨 인사를 다 오고 그러나?”
동류가 얼른 말했다.
“오늘은 저희 전 가족이 새해인사 온 거고요, 며칠 후에 위생청 사람들과 다시 한 번 올 거예요.”
일파는 새해인사를 마치고 묘묘와 다음 학기 중학교 입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마 청장이 말했다.
“듣자 하니 지 청장이 업무를 제대로 하고 있다던데…, 하하하!”
그 말은 정말로 듣기가 거북했지만 그러나 듣고 있어야만 했다. 동류가 말했다.
“이 사람이 그나마 이 정도 하는 것도 다 마 청장님께서 가르쳐 주신 덕분이지요.”
마 청장이 말했다.
“내가 누구를 그렇게 가르쳤어?”
사모님이 마 청장을 쿡 찌르면서 말했다.
“이이가 집에만 틀어박혀 있더니 성격까지 나빠졌어….”
마 청장이 말했다.
“내가 변했어? 난 매일 글을 쓰면서 지낸다네. 지난 반년 남짓 한가하고 쓸데없이 신경 쓸 일 없다 보니 벌써 한 권 거의 다 썼는걸. 만약 지난 몇 년 이 정도만 마음이 한가했으면 아마 열 권도 더 썼을 거야.”
내가 말했다.
“마 청장님께서 여러 분야에 두루 재능 있으신 거야 누가 모릅니까? 활도 양 손으로 쏘실 분이시죠. 행정업무면 행정업무, 연구면 연구, 모두 최고시죠!”
마 청장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부끄럽구먼, 하하하!”
그의 말을 들으니 마치 낯가죽이라도 벗겨진 것처럼 부끄러웠고, 정말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마 청장이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역사에서 도태되었지. 장강(長江)의 물은 뒤에서 치는 파도가 앞 물결을 밀어내지(長江後浪推前浪). 큰 강은 그렇게 동쪽으로 흘러가지!”
이런 의뭉 떠는 소리나 줄줄 읊어대는 걸 듣자고 오늘 이 자리에 온 건 아닌데…, 낭패스러웠다. 마 청장이 말했다.
“내가 심심해서 떠오르는 대로 시 한 구절 적어 봤지, 하하하!”
말하면서 벽을 가리켰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늙었구나 늙었어 이제는 쉬어야겠네
연기구름 맑게 개어 천하가 작게 뵈니
이 즐거움 또한 한이 없네.
유유자적하니 이 아니 통쾌한가
쓴맛 단맛 알고 나니 세월 이미 가버렸네
또다시 허둥지둥 할 일 어디 있단 말인가.”
(老矣老矣, 可以休矣, 烟雲淡矣, 天下小矣, 其樂也融融矣.
優哉游哉, 豈不快哉, 冷暖知哉, 歲月逝哉, 又豈有惶惶哉)
나는 머리를 흔들면서 소래 내어 읽고 또다시 소리 내어 읽으면서 속으론 생각했다. 거 참 불만 되게 많네, 허 참!
내가 말했다.
“아주 정교하게 맞습니다, 정교해요. 필체도 딱 잡혀 있고…. 마 청장님께 이런 재능까지 있으신 줄 정말 몰랐습니다.”
속으로는 생각했다. 이 양반이 한 번만 더 의뭉 떠는 소리 꺼내기만 해봐라, 나도 의뭉으로 맞받아 쳐야지. 정신 차리시오, 지금이 어느 때라고….
마 청장이 말했다.
“지 군, 듣자 하니 자네가 최근에 불을 아주 제대로 질렀더군.”
내가 말했다.
“제가 감히 어떻게 불을 지릅니까. 제가 먼저 그 불에 데고 말텐데요. 상황이 저절로 그렇게 됐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면서 별의 별 이론을 다 갖다 부치는 통에, 저야 뭐 사실 소방대원에 불과한걸요, 허허.”
그가 웃더니 말했다.
“잘했어, 잘했어. 그럴 만하지. 당연히 불을 한 번 질러봐야지. 하늘에 닿게 불 지르지 않으면 새 사람이 온 걸 어떻게 알겠어, 하하하!”
내가 말했다.
“몇 가지 일을 처리하긴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다 끝난 일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려는 인간들을 평정했지요. 어차피 수갑 채워서 잡아들일 수 없는 바에야 콩고물이라도 줘서 달래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 바닥에 몸을 담은 이상 제 몸이 제 몸이 아니지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헤헤, 헤헤.”
사모님께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면서 말했다.
“새해 첫날부터 업무 이야기는 그만두시죠. 일파도 금년에 중학교 들어가지요, 대위씨?”
나는 고마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 청장이 뭉근한 불로 나를 바짝 바짝 구워대는 바람에, 물론 무서울 것 까지는 없었지만, 어쨌든 매우 불편하던 터였다. 그때 묘묘가 방에서 뛰어나와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일파 오빠가 방금 이상한 노래를 불렀어요. 큰 강은 동쪽으로 흘러가고, 하늘의 별은 곤두박질친다고 했어요.”
동류가 말했다.
“저 녀석은 어릴 때부터 입방정을 떨더라고요.”
이어서 말했다.
“묘묘 좀 봐! 해가 다르게 자라더니 이젠 아가씨가 다 되었네?”
묘묘는 얼굴이 붉어져서 다시 도망갔다. 내가 말했다.
“사모님, 위생청에서 워낙은 청장급 간부 퇴직시에 이휴직 대우를 하기로 규정하고 있었는데요, 이번에 사람들
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별도 조항을 마련해서 마 청장님에 한해서는 이전 정책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의료비 일백 퍼센트 지급하는 것으로 제가 재정처와 이야기 맞추어 놓았으니까 다른 데 가서는 말씀 마세요, 사모님.”
마 청장이 말했다.
“왜 나 한 사람 때문에 그런 예외 조항을 두나? 싫네, 나는 싫어!”
그때 사모님께서 힘껏 그를 한 번 찌르자, 그제야 그도 잠자코 있었다. 내가 말했다.
“오늘은 먼저 이런저런 말씀드리려고 온 것이고요, 며칠 후에 사람들과 같이 다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구립원이 정식으로 연락을 드릴 겁니다.”
사모님이 말했다.
“고마워요, 고마워.”
역시 그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오늘 고집 부리고 거절하면 나중에 번복할 길이 없다는 것을. 지금 손에 넣는 사람이 승자라는 진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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