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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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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85>

절망의 나무에 희망을 걸어 둘 수는 없다

***85. 절망의 나무에 희망을 걸어 둘 수는 없다**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드니 여자의 목소리였다. 내가 물었다.

“누구세요?”

그녀가 말했다.

“알아맞혀 봐요.”

나는 맹효민인 줄 금방 알았다. 알아맞혀 보라고? 지금이 어느 때라고 나더러 자기와 이런 장난이나 치면서 놀자는 거야. 내가 말했다.

“전화 거신 분, 용건 있으시면 빨리 말씀하세요. 곧 회의가 있어서 가봐야 합니다.”

그녀가 애교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청장이 되시더니 제 목소리도 못 알아들으세요?”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네 목소리를 잘게 부셔서 불에 태워 재로 만들어 봐라, 내가 못 알아듣나.”

그녀가 말했다.

“지 청장님, 시간 좀 내주세요.”

내가 그녀와 연락을 끊은 지도 삼년, 이미 다 끝났던 일인데 이제 와서 전화를 걸다니,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내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 시점에서 그녀를 만나다니 그게 될 말인가. 내가 말했다.

“무슨 일 있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나요?”

“내가 아주 바빠서 그래, 정말 너무 바빠.”

“예, 일이 있어서 만나야 해요. 오늘 바쁘시다면 내일 다시 전화 드릴게요.”

“무슨 일인지 지금 전화로 이야기하면 안 될까?”

그녀는 기분 상한 듯이 말했다.

“전화로는 할 수 없는 말이에요.”

나도 별 수 없었다.

“알았어. 삼십분 후, 아홉시 반에 내가 데리러 가지.”

“저녁에 만나면 안 될까요? 저녁이 분위기가 좀 낫잖아요.”

요즘 저녁에는 동류가 나를 엄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외출이라도 하려면 거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괜한 오해
받고 싶지 않았다.

“저녁에는 다른 일이 좀 있는데….”

그녀는 유풍차루(裕豊茶樓)에서 만나자고 제안했지만, 이제는 예전 같지 않아서 절대로 아는 사람과 마주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아주 외진 곳으로 장소를 정한 후 그녀더러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나만의 사무실이 있다는 것, 자신만의 독립된 공간이 있고 말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비서라도 한 쪽에 앉아 있다면 얼마나 흥이 깨지겠는가.

차를 몰아 중흥로(中興路) 입구로 가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미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요즘이야 사립탐정도 쓸 수 있는 세상이니, 만약 누군가가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런 수단을 쓴다면? 나는 쓸데없는 커브를 몇 번씩이나 돌아서 중흥로에 도착했다. 맹효민은 검은색 정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예전처럼 날씬하고 생기가 넘쳤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그녀 곁에 차를 세웠지만, 그녀는 나인 줄 알아차리지 못했다. 창문을 내려 그녀를 부르려는데 검은 치마 아래로 한 쌍의 희고 깨끗한 종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가늘고 균형잡힌 다리가 불과 일 미터 거리에 있었다. 그 질감은 아무런 티가 없는 옥을 연상시켰다. 몇 십 초 정도 그녀의 다리를 감상하고 나서야 나는 가볍게 불렀다.

“맹효민!”

그녀는 그제야 나를 발견하고 기뻐서 외쳤다.

“직접 차 몰고 오신 거예요? 난 또 어느 방향에서 불쑥 튀어 나오려나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그녀가 차에 타자 나는 교외로 차를 몰았다. 도심을 벗어나자 그녀가 말했다.

“절 데리고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내가 말했다.

“아무도 못 가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내 이마를 찍으면서 말했다.

“정말? 우리 둘만?”

좀 더 가자 그녀가 말했다.

“나 데리고 성남(城南)공원으로 가려는 거죠?”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내가 거길 감히 어떻게 가냐? 성남 공원을 지나자 그녀가 외쳤다.

“다 왔어요, 다 왔어요!”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계속 차를 몰아서 교외까지 나가 가라오케를 하나 찾아 이층의 룸으로 갔다.

서비스하는 아가씨가 차를 가지러 나간 후, 내가 물었다.

“무슨 일이 그렇게 급해?”

“별 일 없어요. 내일이나 모레 봐도 괜찮다고 그랬잖아요.”

“그래도 무슨 일이 있으니까 보자고 한 것 아냐?”

“아무 일도 없어요. 무슨 일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그냥 보고 싶어서…. 그게 용건이죠 뭐. 그게 전화로 되나요?”

이때 서비스하는 아가씨가 차를 들고 왔다. 그녀가 나갈 때 맹효민이 그 뒤를 따라 가더니 문을 걸어 잠갔다. 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의 다리를 힐끗 보면서 말했다.

“요즘 날씨에, 벌써 늦가을인데, 어째 아직 봄옷을 입고 있어?”

“안 추워요. 추우려면 추워라죠, 뭐!”

나는 그녀가 나를 염두에 두고 이 옷을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에 내가 그녀의 다리가 상아로 만든 것 같다고 종종 했던 칭찬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스타킹도 안 신고 있더라니…. 내가 말했다.

“보려면 봐! 지난 몇 년 하도 속을 썩였더니…. 아주 노인네가 됐지?”

그녀가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말했다.

“하나도 안 변했네. 별로 안 변했어요.”

한참을 보더니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지대위 씨, 당신….”

나는 깜짝 놀랐다. 지대위 씨? 내 이름이 이렇게 불린 적이 얼마 만인가? 내 이름 석자가 생소하게 들렸다. 속으로 한참 되풀이해본 후에야 알아차렸다. 지대위면 나잖아? 그녀의 목소리는 변해 있었다. 떨고 있었다.

“당신, 당신이 나를 망가뜨렸어요. 그거 아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저를 망가뜨려? 나는 그녀와 일년을 사귀었지만 책임질 일은 한 적도 없었고, 그녀의 청춘을 많이 뺏은 것도 아닌데 내가 그녀를 망가뜨렸다고? 내가 말했다.

“나 아무 짓도 안 했잖아! 아무 짓도 안 했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럼….”

그녀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들은 모두 이기적이에요. 무슨 책임질 일이라도 생길까봐 겁부터 먹고…. 여자를 어떻게 해야 꼭 여자가 망가지는 줄 알아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건 오히려 별것 아니에요. 요즘 사람들은 그런 거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 안 해요. 별것 아니죠. 그렇지만 여자가 한 남자를 끝끝내 잊지 못해서, 다른 남자들과 함께 있어도 아무런 느낌도 없고, 마음속으로 그 사람과 비교할 때마다 감정이 싸늘해진다면, 그거야말로 그 여자 인생을 망가뜨린 것 아닌가요?”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그렇게 심각해? 내가 뭐라고 나를 마음에 담고 있어? 내가 네보다 나이가 몇 살이나 많은데?”

갑자기 그녀의 두 눈이 섬뜩한 빛을 발했다. 나는 그 눈빛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한숨 속에 슬픔이 묻어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해 당신과 헤어졌을 때, 그 당시에는 별로 느낌이 없었어요. 천하가 이렇게 넓은데, 게다가 도시인데, 나 맹효민 정도면 분위기 있는 남자 하나 못 찾을까 싶었죠. 연애도 해봤어요. 하지만 나도 모르게 당신과 하나하나 비교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감정이 식어버려서 결국에는 헤어졌어요.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찾을 수 없었어요. 사태의 심각성은 더더욱 깨닫지 못했고요. 내가 아마 성숙한 남자를 더 좋아하나보다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 후로 두 번 더 사람을 만났어요. 두 번째 사람은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니까 신비감이 반감하고 결국에는 또 헤어졌죠. 그때서야 나는 내가 중독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당신에게 중독되었다고요!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했어요. 이미 설득했지요. 사람은 절망의 나무에 희망을 걸어둘 수는 없다(人不能把希望挂在絶望之樹上)는 것,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일단 나 자신에게 돌아오면, 도대체 나더러 어떻게 그걸 내려놓으라고 해요? 나 귀신한테 홀렸나 봐요. 전생에 나쁜 짓이라도 했나 봐요. 하느님이 나를 벌주려나 봐요.”

내가 황급히 말했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야! 봐, 노인네가 다 돼서 앉아 있는 폼하고…. 이게 나라고! 너는 지금 일종의 환각에 빠져 있어, 환각이라고!”

그녀가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환각이라도 좋아요. 그 환각도 진실이에요. 제게 있어서는 그 환각만큼 진실한 것이 없다고요.”

그리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는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고 약간 생소했다. 내 한 쪽 손이 그녀의 턱 근처를 가볍게 어루만지다가 다시 움츠러들고, 또 손을 뻗어 그녀 옷의 칼라 근처에서 안타까운 듯 머물다가 갑자기 마치 중력의 작용처럼 힘이 빠지면서 손이 그녀 몸 위에 얹혔다. 그녀가 말했다.

“왜 손을 내 몸에 얹으셨어요?”

내가 말했다.

“왜 나더러 손을 몸 위에 두라고 하는 거야?”

키스할 때에 그녀는 힘껏 내 혀를 물고 놓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내 혀를 안으로 빨아들이던 그녀의 한 손이 내 옷 속으로 들어와 천천히 내 등을 어루만졌다. 나는 정신이 혼미해져서 손으로 그녀 몸을 정신없이 마구 더듬다가, 마지막엔 어느 부위에 가서 멈췄다.

“여기가 내 책임의 땅이지?”

그녀가 말했다.

“여태껏 한 번도 책임져본 적 없잖아요.”

“나야 책임지고 싶어도 네가 금지(禁地)로 정해 놓았잖아!”

“당신만 원한다면, 당신을 위해서 해금(解禁)할게요.”

나는 침묵했다. 그녀의 말에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내 육체의 자그마한 암시조차도 그녀는 곧장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그에 부응하고 있었다. 이렇게 오고 가는 느낌에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엉켜 있다가 떨어져서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몹시 숨가빠하면서 말했다.

“당신을 빨아들일래요. 빨아들일래요. 빨아들여서 도망가지 못하게 할래요. 그럼 내 것이 되겠죠.”

그러면서 나의 몸 위로 쓰러졌다. 잠시 후 그녀가 차분해지면서 내게 말했다.

“당신은 아내와 자식이 있는 사람이죠. 나 다른 생각 하지 않을게요. 당신 애인으로만 남게 해줘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그럴 듯한 이름도 필요 없고, 매일 나와 함께 할 필요도 없어요. 옷 한 벌 안 사줘도 괜찮아요. 나 그냥 한 쪽에 조용히 물러나 있을게요.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난 그걸로 만족해요. 평소의 적막함에 대해 그 정도 보상만 있으면 난 만족한다고요.”

여자의 감정이란 일단 한 번 불붙기 시작하면 이렇게 광적인 데가 있다.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이 마치 나방이가 불을 향해 날아드는 식이다. 내가 말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그녀는 금세 기분이 상해서 말했다.

“뭐가 안 돼요?”

“너한테 너무 불공평하잖아. 너도 몇 년 전의 맹효민이 아니잖아. 네가 그런 절망을 품고 살아가게 한다면, 그거야말로 내가 너무 이기적이지.”

“그게 당신 본마음이에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럼 그만둬요!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다면 그건 위선이에요. 이기적인 사람…. 당신 동류가 알아차리고 소란이라도 피울까봐, 그래서 당신 앞길에 방해가 될까봐 걱정하는 거죠?”

그녀는 단번에 문제의 핵심을 파악했다. 물론 동류가 알게 되면 그녀는 슬퍼 죽으려 들겠지. 하지만 절대로 시끄럽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맹효민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나한테서 조그만 틈이라도 발견하면 그 틈으로 대못이라도 들이밀어 크게 벌리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인간들이 있다는 점도 맹효민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차마 네 시간을 뺏을 수는 없어. 여자의 젊음은 무한한 게 아니잖아. 여자와 남자는 달라. 우리는 내가 지금 너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도 사귀지만, 만약 그 반대라면 그게 가능하겠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녀가 필사적으로 내 허리를 감아 안으면서 말했다.

“나중 일은 내가 알아서 해요. 당신이랑 상관없어요.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할래요.”

나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맹효민이 언제부터 이렇게 신세대가 되었지? 나중 일은 나중에 다시 생각하겠다고? 한 여자에게 나중이라는 게 몇 번이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머리를 내 가슴에 바짝 붙이고 말했다.

“다른 것은 전부 상관없어요. 당신에게 한 마디만 물어볼게요, 날 사랑해요?”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좋아해.”

그녀는 고개를 약간 숙이더니, 내 스웨터와 셔츠를 위로 들어올리고 귀를 내 가슴에 갖다 붙이면서 말했다.

“들려줘요!”

잠시 후에 그녀가 말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뛰는 소리가 들려요.”

그녀는 나를 놓고 외투를 벗더니 가슴을 곧게 세웠다. 가슴의 윤곽이 더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리, 해요!”

차분한 그녀의 말투에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말했다.

“무얼 그리 보세요, 겁나요? 오늘 해금(解禁)이에요!”

그제서야 나는 알아들었다.

“괜찮겠어?”

나는 문 쪽을 보았다.

“여기서?”

문에는 작은 유리창이 나 있었다. 그녀는 일어나 핸드백으로 유리창을 가리려고 했지만 걸 데가 없자 문을 약간 열고 핸드백의 끈 부분을 위쪽 문틈에 끼워 핸드백이 정확히 유리창을 가리도록 했다. 내가 말했다.

“여기서?”

소파 위에서 일을 치른다고 생각하니 물론 특별한 자극, 특별한 유혹의 느낌은 있었다. 평소의 변화 없는 방식에 익숙해진 내게는 이러한 규칙을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도전이었다. 머리 속에서 윙윙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뜨거운 피가 어느 공간을 지나는 듯, 한 줄기 한 줄기가 나를 앞으로 쏠리게 했다.

그러나 내 의식 깊은 곳에서 경고음이 들려왔다. 백만 분의 일의 가능성이라도 내가 그런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다. 자칫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수년 간의 분투가 한 순간에 사라진다.

종종 유흥업소를 기습 단속했다는 신문에 나오는 뉴스처럼, 만약에 내가 걸린다면? 게다가 핸드백으로 유리창을 가렸다는 것 자체가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표시 아닌가? 여인네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내게도 중요하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나도 그녀를 납득시킬 수 없었다. 내가 입만 열면 그녀는 내가 권력에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내 생각을 읽어내지 못하고 맹효민이 말했다.

“내가 함부로 놀던 여자처럼 생각되세요? 내 말 들어봐요. 내가 함부로 놀던 여자인지 아닌지는 금방 알게 될 거예요. 오늘 당신에게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지켜왔는지 알려드리죠. 난 신세대도, 신신 세대도 아니에요. 그 사람들이라면 이런 것 신경도 안 쓰겠죠.”

그녀의 암시를 알아차리고 나는 더욱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고귀한 것을 받을 자격도 또 받을 용기도 없어.”

그녀가 가볍게 말했다.

“제가 원해서 하는 거예요.”

내가 말했다.

“정말 오래 지켜왔군! 팔로군 항일 전쟁도 그렇게 오래는 못 버텼을 거야. 그걸 이렇게 쉽게 잃어서는 안 되
지.”

그녀가 말했다.

“제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지켜왔는지 당신이 알아주길 바라서예요.”

이어서 말했다.

“무엇보다 당신 얼굴 한 번 보기가 너무 어려워요. 전화 한 번 걸려고 몇 주를 망설였는지 몰라요. 믿어져요?”
내가 문틈에 끼웠던 핸드백 끈을 꺼내기 위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차를 든 웨이트리스가 마침 핸드백으로 잘 가리지 못했던 틈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말했다.

“뭘 보는 거야! 여긴 규율도 없어? 당장 매니저 데리고 와!”

그녀는 얼굴이 붉어져서 두 손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충동적으로 사고를 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실수가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때에도 문제가 심심찮게 발생하는데, 하물며 내 눈에도 빈틈이 보인다면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자꾸 그녀의 종아리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녀가 말했다.

“뭘 봐요?”

내가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래. 중학교 다닐 때 시내 영화관에서 〈10월의 레닌그라드〉라는 영화를 보는데, 극중에 “백조의 호수”를 추는 장면이 나오는 거야. 배우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춤을 추는데, 그런데 갑자기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머리가 전부 다 안 보이는 거야! 왜인 줄 알아? 인간들이 머리를 아래로 숙여 화면을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고 있더라고. 너도 짧은 치마 입을 때 조심해! 자기도 모르는 새 봄빛 흘리지 말고….”

그녀가 웃으면서 내 몸 위로 엎드렸다. 그 틈을 타서 나도 그녀의 뺨에 가볍게 키스하려는 바로 그 순간, 핸들이 꺾여져 차가 길가의 나무에 부딪치면서 밭으로 곤두박질했다. 나는 맹효민의 몸 위에 쓰러졌다. 그녀가 큰 소리로 외쳤다.

“대위 씨! 다친 데 없어요?”

내가 썬 루프를 통해 먼저 빠져나오고 그녀를 밖으로 끌어냈다. 그녀가 무사한 것을 보고 말했다.

“천만다행이야, 천만다행이야! 먼저 돌아가, 택시 타고 돌아가!”

그녀는 영웅을 구하는 미인처럼 말했다.

“당신을 두고 갈 수는 없어요.”

내가 말했다.

“난 괜찮아. 휴대폰으로 견인차 불러서 끌어내면 된다고.”

그녀는 가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벌써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잠시 후면 사람들이 몰려들 거야. 제발 부탁이니….”

택시를 잡아서 그녀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잠시 후에 견인차가 와서 내 차를 끌어올렸다. 수리도 할 겸 아예 끌고 갔다.

그때 마흔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사내가 나를 막아서더니 자기 벼를 망가뜨렸으니 물어내라고 했다. 내가 그에게 오십 위안을 주자 그가 물리쳤다. 내가 말했다.

“내가 망친 게 몇 그루나 된다고 그러십니까? 한 번 세어 보세요! 오십 위안이면 벼를 한 섬은 살 거요.”

그가 말했다.

“내 벼는 보통 벼가 아니란 말이요. 최상급이요, 최상급! 벼 한 알이 내년에는 벼 한 그루가 되고, 거기에 또 수백 알이 맺히고, 그 수백 알이 내후년엔….”

내가 그의 주머니에 오십 위안을 더 쑤셔 넣자 그가 말했다.

“그만 둡시다. 그러게 누가 나 같은 놈 건드리랬소?”

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 형씨 닭이라도 치었더라면 황금 알 낳는 닭이라고 우겼겠소. 황금 알에서 황금 닭이 나오고, 그 황금 닭이 또 황금 알을 낳고…."

그도 입을 헤 벌리면서 웃었다.

“매일 한 대씩만 내 밭에 메다 꽂혀 줬으면 좋겠네.”

차 수리비로 육천 위안도 넘게 들었다. 서 기사더러 가서 몰고 오라고 했다. 모두들 놀란 표정으로 내 안전에 대해 물으면서 천만다행이라고 손뼉을 쳐댔지만, 자동차나 수리비에 관해서는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또 아무도 내가 왜 거기까지 갔었는지 묻지 않았다. 허소만이 일찍이 말했었지. 자리에 오르면 자유가 생긴다고…. 자유가 별것인가? 이게 바로 자유지!

나는 나와 맹효민의 관계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그리고 결국 사사로운 정으로 대사를 그르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한,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일이 밝혀진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자리에서 물러나야 되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그러나 좋지 않은 무수한 말들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맹효민 쪽에서 일이 터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일단 깊은 관계를 맺었다가 그녀가 나한테 가정이라도 요구한다면? 자기도 본인이 벌 받을 짓을 한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나도 만의 하나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녀도 벌써 스물 넷. 그녀더러 몇 년을 더 기다리라고 하는 것도 차마 못할 짓이다.

마음을 정리하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더 이상 그녀를 잡아둘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수화기를 들고 몇 분간 그녀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너를 돕고 싶어. 의학원에 가서 연수라도 받도록 내가 어떻게 해볼게. 구(瞿) 사장한테 너를 연수 보내달라고 이야기할게.”

나는 당장 구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나와 맹효민의 관계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즉각 승낙했다. 내가 말했다.

“출혈이 크겠어요. 삼만 위안 쯤 들던가요?”

그가 말했다.

“별것 아닙니다. 누구나 다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요 뭐….”

이어서 말했다.

“저도 마침 지 청장님께 도움을 청할 일이 있는데….”

올해 전문대를 졸업한 그의 아들이 안태제약에 취직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안태제약 사람들은 우리 사주로 다들 제법 돈을 벌어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정철군에게 얘기해서 그 정도 일 처리하는 거야 별로 어렵지 않다. 그래서 곧바로 대답했다.

“그 정도야, 그 정도야 아무 일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다 해결해야 할 일이 있는 것 아닙니까?”

나는 이 일을 얼른 해결해버리려 했다. 그리고 또 안 선생님의 딸 아아(阿雅)의 인사문제도 있는데, 이미 너무 오래 끌어왔다. 다음 달에 노동자 대표회의가 열리고 조례가 정해지고 난 후에는, 만약 누가 그렇게 하는 이유라도 묻는다면, 그때는 나로서도 할 말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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