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행정공개(行政公開)**
예상했던 대로, 이번 사건은 풍기락을 통해 전 위생청에 알려졌다. 성 방송국에선 또 어디서 들었는지 두 명의 기자를 파견해서 나를 취재하도록 했다.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정소괴가 소문을 흘렸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느 정도 자리에 오르면 본인도 생각 못하는 문제를 다른 사람이 대신 헤아려주기도 한다. 나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육십만 위안이 대단한 숫자도 아니고, 그리고 금엽부동산에서 온 사람도 나와 아주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 난처하지 않게 보도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기자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금엽’이라는 이름 대신 ‘모 회사’라고 익명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 효과가 좀 덜하겠지만 내가 고집하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마이크에 대고 나는 부패를 척결하고 청렴을 제창하는 것이 나라와 당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원리며, 지도자와 간부들이 금전의 시험을 이겨내야 한다는 점, 자기가 무슨 특수한 권력이라도 갖고 있는 양 생각하지 말고 수중의 권력이란 나라를 위해 공헌할 기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지도자와 간부는 당과 인민의 신임을 저버려서는 안 되며, “지도자는 봉사정신으로, 간부는 공복의식으로”라는 태도로 수중의 권력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가 부탁하기에 나는 사건의 정황을 한 번 더 묘사해 주었다. 이야기가 “금연” 부분에 이르렀을 때는 기자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이튿날 기자 두 명이 또 와서 하는 말이, 윗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면서, 나더러 사건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묘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한 번 생생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장면이 며칠 후에 방송되자 호일병이 내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자네 이제는 반(反)부패 스타가 되었더군, 축하하네!”
이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올 때야 무슨 좋은 뜻일 리가 없었다.
“나야 뭐 간이 작은 거지. 방송국 사람들이 자꾸 귀찮게 해서 찍었던 거야.”
“자네한테 배워야겠어. 자네한테 한 수 배워야겠다고….”
전화를 끊고 나니 나와 친구 사이가 소원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호일병마저 소원하게 느껴지다니….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사실 매우 고독한 일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도덕적 용기가 솟아났고, 나 자신이 마치 도덕의 화신이라도 된 것 같았으며, 위생청 안에서도 일을 벌여보고 싶었다. 또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한 줄기 따스한 기운이 전신에 흐르는 것 같아서, 이를 꽉 물고 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여 금방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아야 했다.
나는 일종의 숭고하고 신성한, 한때는 매우 익숙했지만 지금은 이미 매우 낯설어진 감정이 다시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속에 숭고함과 신성함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업에 착수하기로 결심했다. 이제야 기회가 왔다. 드디어 기회가 왔어. 지금 진지하게 몇 가지 일을 해놓지 않으면 안 돼! 이왕 부정 축재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바에야 늠름하고 정의롭게, 따끔한 소리 몇 마디 하더라도, 그럴 듯한 일을 몇 건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솟았다. 내가 나를 못 믿어서야 되나? 나마저 나를 못 믿는다면 어떻게 조직과 대중더러 나를 믿으라고 하겠어?
위생청의 행정공개(行政公開)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이 구호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외쳐대 왔던 것이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여태 여기저기 끼고 감추고 있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각 부처가 관리하고 있는 소 금고만 보더라도, 도대체 그 안에 있는 돈이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나 들어 있는지, 어떻게 분배되는지 나조차도 전혀 감이 안 잡혔다. 수십 개의 부처를 내가 하나하나 돌아다니면서 물어볼 수도 없고, 각 처장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단속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그 속내를 들춰낸다면 아마 놀라자빠질 일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내가 한두 개 부처를 정해서 중점적으로 관리한다면, 그 부처의 장들은 나한테 반감을 가지고 분하고 억울하다면서, 다른 부처는 어쩌고저쩌고 하며 도리어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는, 모든 부처를 공평하게 대우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올 것이다.
내 생각은 전체 직원들이 그것의 관리감독에 참여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 짐은 결코 나 혼자 질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구립원과 풍기락 부청장을 포함한 몇 명에게 말했다.
풍기락이 말했다.
“아마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일단 시작되면 사람들의 불만이 퍼져나가기 시작할 겁니다.”
구립원이 말했다.
“요즘 농촌에서도 다 촌의 행정을 공개한다고 하는데, 우리 같이 지식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청의 행정을 공개하지 못할 게 뭐 있겠습니까? 지 청장님, 이번 일은 정말 제대로 짚으신 겁니다.”
풍기락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청의 행정공개를 다음 달 위생청 노동자 대표회의의 주요 안건으로 정하고 다 함께 관련 세칙을 제정하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나도 차를 몰고 자유롭게 아무데로나 바람 쐬러 다니진 못하겠군. 군중들의 감시를 받게 될 테니…. 그러나 이 일만 성사된다면 나도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지.
나는 이 생각을 노동조합의 육검비(陸劍飛) 주석에게 말했다. 그가 말했다.
“지 청장님께서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신다면 저희 노조야 당연히 지지하지요. 말이 나온 김에 드리는 말씀이지만, 어떤 인간들은 아주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거든요. 거지 불 쬐듯이 제 사타구니에만 끼고 있는데, 팔 긴 놈이나 어떻게 좀 끼어들 수 있을까….”
나는 그가 이런 저속한 비유를 한 것에 대해 반감을 느꼈다. 나와 이야기하면서 조금 고상하게 할 수는 없나? 나는 이미 옛날의 지대위가 아닌데 말이다. 그가 말했다.
“지 청장님, 조사 한번 해보십시오. 우리 위생청에서 구입하는 사무용품 도매가격이 어떻게 소매가격보다 더 비쌉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기초건설처에서 갖다 쓰는 건축자재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의정처에서 돈을 어떻게 나눠먹는지, 정소괴 처장은 세상에 자기가 자기한테 작업량 초과달성상까지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이 한 번에 몇 천, 몇 만 위안이니 다른 사람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인간은 시치미 뚝 떼고 있습니다.”
작년에 의약관리국이 생기면서 약정처를 없애고 마 청장이 정소괴를 의정처 처장으로 앉혔다.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다 문제라는 것 아닌가? 노동자 대표회의에서 조례를 만들어서 각 소조(小組)별로 토론하게 하세. 위생청 차원에서 이런저런 법규들을 만드는 것보다 그런 정확한 의견들을 조례로 만들어 노동자 대표회의에서 표결로 통과시키고, 그 다음엔 그냥 그 규정대로만 하면 나도 마음을 놓을 수 있지.”
육검비가 말했다.
“이 사안에 대한 위생청의 결심은 어떻습니까? 제가 걱정하는 것은 노동조합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해서 반쯤 올라갔는데 위생청이 아래에서 사다리를 치워 버린다거나….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저희는 내려오지도 못하고 난처해집니다.”
나는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위생청 지도자들 사이에서 이미 의견일치를 봤는데 누가 감히 사다리를 치워? 어떤 놈인지 사다리 치우는 놈이야말로 햇볕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공개될 것이 두려워서 남의 입을 막으려는 사람들 아니겠나?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지.”
그는 여전히 주저주저하면서 말했다.
“저항세력이 있을 겁니다.”
나는 통쾌하게 말했다.
“저항세력 하나 없는 일이 어디 있겠나? ‘사람들과 싸우니, 그 즐거움 무궁하다. 물 가운데 들어가 물을 치니, 물결이 날아가는 듯한 배를 막네’(與人奮斗, 其樂無窮, 到中流擊水, 浪遏飛舟)라고 했어. 이야말로 개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 아니겠나? 저항세력을 무서워한다면 강에 뛰어들지도 못하지.”
그가 물었다.
“노동자 대표회의까지 한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위생청에서는 어떻게 준비하실 겁니까?”
내가 말했다.
“내가 먼저 위생청의 결심을 공표하겠네. 그래서 모두에게 청의 결심을 알려서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거야. 그런 다음 각자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게 하는 거지. 그 다음에는 노동조합의 소조 토론을 거쳐 의견을 수렴하고, 그것을 노동조합에서 정리하여 조례로 만드는 걸세.”
그가 말했다.
“그게 좋겠습니다. 그게 좋겠어요. 지 청장님, 어떻게 이렇게 빨리 청장님 스타일을 만들어 내셨어요? 틀림없이 모두들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마음속으로 기억해둘 겁니다.”
그가 자리를 뜬 지 일분 후에 다시 돌아와 말했다.
“노동조합 소조 토론보다는 부처별 토론이 낫지 않겠습니까? 노조에서는 모두들 속에 있는 생각들을 시원하게 말하기를 어려워하거든요.”
내가 말했다.
“사무동 건물과 수위실, 그리고 아파트 근처에도 의견함을 몇 개 두어서 모두들 의견을 써서 넣도록 한다면 토론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을 거야. 이 점도 내가 보고할 때 함께 공표하겠네.”
내가 행정공개 계획을 발표하고 나자 연단 아래서는 한 바탕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이번 집행부는 개혁과 존망을 같이하겠습니다(與改革共存亡)!”
이 말이 발표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마디였고, 모두들 얘기할 때 입에 가장 많이 담게 된 것도 이 부분이었다. 모두들 흥분한 모습을 보며, 나는 이번 일이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불안이 해소되었다. 이 자리까지 올라와서 어떻게 전임자가 하던 일만 답습할 수 있겠는가! 수년간 마음에 품고 희망하던 일을 이제야 이룰 때가 왔다. 이번 일만 잘 되면 탐욕스럽고 부패한 무리, 권력을 이용해서 사욕을 채우던 무리들을 뿌리 뽑고, 또 이 경험을 전 성(省) 차원으로까지 확산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퇴근 후에 입구에서 공 군을 만났다. 그는 나를 우연히 마주친 척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지 청장님 오늘 원자폭탄을 터뜨리셨습니다. 모두들 아주 흥분했습니다. 모두의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셨습니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정도였나, 원자폭탄?”
“지 청장님처럼 개혁정신이 투철하신 지도자 아래에서 일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야 일 좀 덜어볼까 해서 그런 거지 뭐. 그 많은 부처들을 나 혼자 어떻게 관리하겠어. 우리 몇 명으로는 그렇게 많은 부처를 다 관리 못 하니까.”
이어서 말했다.
“내가 육 주석에게 한 번 추천해 보지. 자네 같은 젊은 사람들 몇 명에게 모두의 의견을 정리하는 일을 맡기도록 말이야.”
그가 말했다.
“그것은… 사실은 조금 겁이 납니다. 원래는 모두의 의견이었지만 누가 나서서 제가 날조한 것이라고 말하면
제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요.”
내가 말했다.
“조직에서 자네를 지지하겠다는데 뭐가 무섭다는 건가? 군중의 감독을 무서워하는 사람이야말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지. 그런 인간들을 내가 조사하겠다는 걸세.”
“조직에서 정말로 그런 결심이 선 겁니까?”
“자네 보기엔 어떤가?”
“그러면 마음을 놓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이것은 첫 발자국에 불과해. 성공하면 두 번째 발자국도 내딛어야지. 민(民)에 의한 정치를 해야지(還政於民). 내가 만들어낸 소리가 아니라 헌법 제 1조가 바로 그런 소리일세. 모두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그 말이 지켜지게 한다면, 권력을 이용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무리들도 흔들릴 것 아닌가? 지도자들이 사심도 없고 특수한 이해관계도 없다면 민중을 말 못하게 억압할 필요가 뭐 있나? 21세기가 다가오는데 아직도 공자가 말한 윗사람은 지혜롭고 아랫사람은 어리석다(上智下愚)는 타령이나 하고 있을 건가? 그 타령으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뾰족한 수가 안 생겨. 철저한 부패 척결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는 나를 낯설게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내가 농담하는 것 같나? 개혁, 개혁, 하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그 개혁도 얼마 멀리 가지 못해!”
이튿날 풍기락과 구립원이 사무실로 왔다.
풍기락이 말했다.
“지 청장님의 어제 발표에 대한 반응이 대단합니다.”
내가 말했다.
“이미 예측한 대로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날마다 말로만 민중을 믿는다, 민중에 의지한다고 떠들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믿고 어떻게 의지한다는 말입니까? 공포탄만 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무슨 방법을 찾아야지요. 적어도 대화의 통로라도 하나 있어야지요. 지도자는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봉사를 한다면, 봉사하는 사람이 감독을 무서워할 게 뭐 있습니까? 간부들도 공복(公僕) 노릇 제대로 해야지, 종이 주인을 누르고 있어서야 쓰겠습니까? 간부는 공복입니다. 민중이 간부들에게 준 권력은 민중들에게 봉사하라고 준 겁니다. 이런 도리를 입으로만 말하고 책에만 적어 놓아서야 되겠습니까? 실제생활에 적용해야지요. 실제생활에 적용하려면 저희 같은 사람들의 자각에만 맡겨서는 모자랍니다.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정말로 감독권을 민중에게 넘겨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공허한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겉으로는 좋아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무서워하는 ‘섭공호룡’(葉公好龍) 식으로는 안 됩니다!”
풍기락은 아무 말도 않고 구립원을 바라보았다. 구립원이 말했다.
“저도 그런 종류의 개혁을 지지합니다. 저야 개인적으로 감시당할까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저야 집과 직장 사이만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한 달에 차도 몇 번 안 쓰는 걸요. 민중의 감시가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말했다.
“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결정하는 겁니다. 우리 집행부는 개혁과 공생공사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싸움에 임해서 무기를 반대방향으로 향하는(臨戰倒戈) 그런 행동은 하지 않겠지요?”
구립원이 말했다.
“저희의 입장은 한결같습니다. 한결같이 지 청장님을 도와 개혁에 힘쓰겠습니다.”
풍기락이 말했다.
“사실 저는 걱정이 좀 됩니다. 이 일로 법이 어지러워져 위생청 지도자의 입지가 약화되지나 않을는지….”
내가 말했다.
“우리 민중을 믿고 한번 해봅시다. 민중인들 원칙 없이 함부로 나오겠습니까? 위생청에서 조종키를 잡고 있는 이상, 법이 정도 이상 어지러워질 수는 없을 겁니다.”
풍기락이 말했다.
“지 청장님, 정말 자신 있으십니까?”
나는 구립원을 보면서 말했다.
“구 부청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가 말했다.
“저는 자신 있습니다. 저는 자신 있어요.”
풍 부청장은 법이 어지러워질까봐 겁난다고 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법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관(官) 본위의 법일 뿐이다. 일단 권력을 손에 넣으면 사람은 특수한 권위를 요구하게 되고, 자존심도 극도로 민감해져서, 윗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른 누구도 그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서소화(舒少華)와 곽진화(郭辰華)가 건드렸던 사람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 동시에 특수한 이해관계를 필요로 하게 된다. 손에 자원을 쥐고 있을 때 누군들 자기한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배분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다 사람 아닌가!
특수한 권위와 특수한 이해관계가 생기면 이어서 특수한 기준이 생긴다. 이제 자기(自我)가 모든 것의 기준이자 가치의 척도가 된다. 이 기준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해 다른 사람들의 입을 막아야 한다. 사상 해방이 오늘에 이르렀지만, 그것이 진짜 해방인지 가짜 해방인지는 이 문제를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뀌지만, 이것이 바뀌지 않으면 모든 것이 바뀐다고 해도 그 의미는 제한적이다.
나는 비록 관직에 있지만, 그래도 이 터부를 건드리고 싶었다. 개혁을 하겠다면서 자기 자신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염불이 된다. 무엇을 근거로 사람들을 이끌 것인가? 행정의 권위가 아니라 인간적 매력에 의존해야 한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비행정성 권위(非行政性 權威)!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흥분했다. 훗날 경험을 정리할 때 이것이 하나의 핵심 개념이 될 것이다. 직위에 의지해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능력이라고 할 수 없다. 심지어 지도자라고 할 수조차 없다. 이때 내 머리 속에 일련의 단어들이 솟아나서, 나는 행여나 잊어버릴까봐 펜을 들고 열심히 써 내려갔다. 이것들은 다 나중에 경험을 총정리하는 데 쓰일 것이다.
며칠 후에 노동조합의 소조(小組) 토론이 있었다. 나는 토론 기록을 가져오라고 해서 훑어보았지만, 뭔가 특별히 격렬한 제안 같은 것은 없었다. 모두들 아직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구나 싶어서 실망스러웠다. 며칠 후에
육검비가 비닐봉지를 들고 찾아와서 말했다.
“여기 있는 건 모두 서면의견들입니다. 모두 백 여 장입니다.”
내가 말했다.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군…. 기명으로 한 것도 있나?”
그는 비닐봉지를 책상 위에 놓고 의견서를 한 줌 쥐고 살펴보았다. 대부분 프린트한 것으로, 이름을 밝힌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말했다.
“모두들 역시 망설이고 있군. 지난 몇 십 년간 전임 지도자들이 하나 같이 쓰던 수법이 있으니, 이런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야. 극중에 나오는 가계(賈桂)처럼, 그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니, ‘서 있는 것에 익숙하다’고 대답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가 말했다.
“이 의견서들을 위생청에 넘길까요?”
내가 말했다.
“노조의 이름을 걸고 수집한 의견들이니 노조에서 처리하게! 위생청에서는 간섭하지 않겠네. 육 주석이 사람들을 모아서 정리하고 분류해서 조례를 제정하는 기초로 삼도록 해주게.”
내가 그에게 공 군을 의견정리 작업에 참가시키도록 하라고 하자, 그가 말했다.
“그 친구가 이번 일에 아주 적극성을 띄더군요.”
서면 의견을 정리하는 며칠 동안 몇몇 날카로운 의견들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육 주석은 적잖이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민중들의 진실한 생각 아니겠나? 평소에는 드러내놓고 대화할 통로도 없이 눌려만 있었지. 우리는 겉으로는 환영하는 척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겁을 내는 섭공호룡(葉公好龍) 식으로 해서는 안 돼. 민중을 믿고, 민중에 의지하고, 민중을 위해서 실질적인 일을 도모하고, 사사로운 특수한 이해관계를 떠나야 한다는, 그런 중요한 원칙이 구호로만 그쳐서는 안 돼. 다른 사람의 입을 막아야 한다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그 이유들은 모두 거짓말이야. 자신의 특수한 이익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만이 진정한 이유이지. 고매하고 현명한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억누르지 않아. 다른 사람이 의견을 몇 가지 제안했다고 해서 칠팔년 동안 인사이동도 안 시켜줘? 그게 무슨 능력이야! 그러면 무엇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가야 할까? 바로 인격적 매력, 비행정성 권위에 의지해서 사람들을 이끌어 가야 하는 거야. 멀리 내다보는 지도자는 자기 자신을 과신하지 않아. 자신도 인간이고, 인간은 약점도 있고 편견도 있고 자기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지키려는 충동도 있기 때문이지. 지도자는 반드시 감독자를 키우는 용기가 있어야 해. 반대파를 기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장기간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방법이지. 영웅이 무엇인가? 오늘날의 영웅은 항우(項羽)나 관우(關羽)가 아니야. 모두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버릴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영웅인 거야!"
육검비가 말했다.
“지 청장님 말씀을 들으니 꽉 막혔던 것이 확 뚫려지는 것 같습니다. 박사님이시니 역시 다르군요. 현대적인 의식도 있고…. 고명(高明)하신 지도자는 바로 이런 점에서 고명하신 것 같습니다. 지 청장님께서 결심하셨으니, 그럼 저희도 마음을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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