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마 청장의 귀국**
가(賈) 처장이 인사처에 몸담은 지가 어언 십여 년. 자기가 이전에 하던 일은 어떻게든 유지하려 했으므로 부리기가 영 쉽지 않았다.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지만, 그러나 이 바닥에 몸을 담은 이상 별 수 있는가? 나는 다른 몇몇 부청장과 상의해서 그를 적십자회로 보낼 준비를 했다. 내가 말했다.
“가역비(賈亦飛) 그 사람이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있다보니 생각하는 것이 매너리즘에 빠져서 개혁의 대세가 요구하는 게 뭔지를 영 파악하지 못해요.”
그들도 즉각 동의했다. 가 처장은 이 소식을 듣자 마치 자기 부모상이라도 당한 듯이 슬퍼하면서 나를 찾아와 말했다.
“지 청장님,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내가 말했다.
“조직에서의 정상적인 수평이동 인사 아닙니까?”
인사처에 오래 몸담았던 그인지라 ‘조직에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즉각 알아차렸다. 그가 말했다.
“사실 지 청장님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시면 저도 그냥 그쪽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지, 다른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내가 또 한 차례 설명을 했는데도 그는 끝내 물고 늘어졌다. 나도 단호하게 말했다.
“위생청 차원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간부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가 처장을 고소하겠다고 벼르는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십니까? 자리를 옮기면 화산 분화구에 앉아 있는 것은 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고통스러워 목이라도 맬 것처럼 이야기했다.
“저는 여태껏 그저 위생청의 지시만을 따라 집행했을 뿐입니다. 시키는 대로 집행 안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저 나사못 하나에 불과합니다. 조직에서 박아 놓은 자리에서 죽어라고 조이고 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지금은 적십자회에 박혀 있으면서 죽어라고 조이시면 됩니다. 열심히 해주십시오.”
말하면서 편 오른손을 한 번 옆으로 휘저으면서 다섯 손가락을 차례로 구부려 주먹을 쥔 체 공중에서 잠시 멈추었다. 이것은 내가 디자인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뜻을 나타내는 동작이었다. 그는 금방 알아듣고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청장이 되고나서 나는 점점 더 바디 랭귀지에 어떤 신비한 힘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생청의 크고 작은 회의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이런 손짓을 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 다른 사람들은 제 자리에 얌전히 손을 내려놓고 있어야 했다. 이것 또한 게임의 규칙으로 절대로 위반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자리에 없을 때만 다른 부 청장들도 그렇게 손짓을 해가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내가 몰래 몰래 관찰한 바로는 구립원이 제스처가 유난히 자연스럽고 세련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아무리 한참 말하던 중이라도 내가 나타나면 손짓을 즉각 멈추었다. 아랫사람들이 이러한 세세한 점까지 알아차렸는지는 알 수 없다.
마 청장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미국에 있으면 와서 보고 올리는 사람이 있나, 누가 신처럼 모셔주기를 하나, 그가 그걸 무슨 수로 견디겠어? 그래도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좀 아쉬웠다. 한 반년에서 팔 개월만 더 있다 오면 좋을 텐데…. 채 군에게 상해로 마 청장을 마중 나가라고 시키자, 그가 난처해하면서 말했다.
“위생청에서 가라고 하시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마 청장님께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사실 내심으론 여전히 그 어른이 어렵습니다.”
내가 말했다.
“자네는 마 청장 내외를 오시는 길 편안하도록 모시기만 하면 그만이야. 다른 일들이야 묻지 않으면 자네도 가만히 있고, 만약 물으면 그땐 사실대로 말씀드려. 특히 법정으로 갈 뻔했던 일을 수습한 것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말씀드리라고.”
마 청장이 도착하던 그날, 나는 공항으로 차 두 대로 마중을 나갔다. 내가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지 달리 방법이 없었다. 속으로야 나도 마 청장님께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다. 마 청장 일행이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내가 달려가 마 청장 손에 들려 있던 가방을 받아들었다. 정소괴가 얼른 달려와 그 가방을 내 손에서 채어갔다. 내가 또 사모님의 가방을 받아들자 이번에는 서 기사가 그것을 채어갔다. 마 청장의 얼굴이 어두운 것으로 보아 채 군이 벌써 회계 문제와 인사이동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린 듯했다. 나는 마 청장님께 여행이 어떠하셨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들은 체 만 체했다. 만약 일년 전이었다면, 나는 날카로운 칼끝이 정수리를 겨누고 있는 것과 같은 공포를 느꼈겠지만, 뭐 지금이야 마음이 가뿐하고 심지어 그가 내 앞에서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생각됐다. “진정한 사나이는 왕년의 용맹을 자랑하지 않는다”(好漢不提當年勇)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뼛속 깊이 느껴졌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 왕년의 일만 생각하다니…. 오늘의 적막함과 오늘의 분함을 참고 삭힐 줄 알아야 그것이 진정한 사나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사나이 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이튿날 나는 재정처 사람을 시켜서 마 청장님 댁으로 가서 재무상황을 보고드리도록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 정도였다. 마 청장과 이런 식으로 대면하고 나니, 그의 어두운 안색을 바라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의 부담이 덜어지는 듯했다. 사람이 자리에 오른 이상 일을 좀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인데, 사사로운 인정에 얽매여서야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이 바닥에 몸을 담은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산골 출신이고,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수많은 해 동안 온갖 고생 다 해온,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지영창(池永昶)의 아들인 것이다!
나는 좋은 관리가 되고 싶고,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이 자리에 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일단 올라온 이상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스스로에게 증명이 필요했다. 물론 이런 딱하기 짝이 없는 증명이 세상에 대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마는,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뭔가를 하고 싶고,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나는 나 자신과 다른 관리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조금이나마 평민의식이 있다는 것, 서민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곽진화의 무리들을 풀어주자 오랜 세월 묵었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고, 위생청 내의 윗사람 아랫사람들의 칭송도 자자했다.
이어서 해야 할 일은 화원현 등 몇 개 현의 흡혈충 발병률의 정확한 조사였다. 우선은 내 손에서 이루어졌던 일도 아닌데 나중에 언젠가 제대로 조사하게 될 경우 내가 그 책임을 덮어쓸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무력한 농민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도움을 받게 하고 싶었다. 이것 또한 오랜 세월 가슴에 맺혀 있던 소망으로, 이 일을 해결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마 청장의 가슴에 칼을 꽂아야 했다.
곧바로 이 일에 착수하려고 결정했지만, 그러나 이래저래 생각해야 할 일이 많았다. 위생부 차원이나 성(省) 차원에서 별다른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내가 개별 행동으로 현실 수치를 얻어낼 경우, 성(省)에서도 좋아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마도 내가 지나치게 정치 업적을 추구한다거나, 전임자를 깔아뭉갬으로써 스스로를 높이려 한다는 인상을 남길 수도 있었다. 세심하게 생각해 본 결과, 나는 아래로부터 착수하기로 했다.
나의 계획은 화원현 장항향의 농민들로 하여금 독자투고 형식으로 상황을 이슈화시킨다는 것이었다. 먼저 그걸 위생청의 〈 군중위생보(群衆衛生報)〉에 싣고, 그것을 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경의 〈 중국건강보(中國健康報)〉에 싣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가서, 그 보도를 근거로 중앙부서에 보고를 올린 다음 허소만에게 부탁해서 무슨 특별 프로젝트라도 하나 따내면, 그렇게 되면 성(省)에서도 딱히 할 말이 없을 테고, 마 청장도 나를 원망할 수 없을 터였다.
이 일을 위해서 먼저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 화원현으로 보내 농민들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해야 했다.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채 군은 아무래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고, 위생청의 명단을 들척이다 보니 서무실의 공(龔) 군이 쓸 만할 것 같았다. 공 군은 채 군보다 이년 늦게 들어왔지만 사람이 아주 착실했다.
며칠 전에 그가 수박을 두 개 안고 밖에서 들어오다가 쩔쩔 매는 것을 보고 내가 건너가 하나를 받아서 땅에 내려놓으며 그에게 잠시 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어째서 비닐봉지에 넣어서 하나씩 들고 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비닐봉지야 덜 쓸 수 있으면 한 장이라도 덜 쓰는 것이 좋지요. 모두들 환경보호, 환경보호, 하지 않습니까.”
요즘 세상에 아직도 이렇게 진지한 사람이 있다니, 이상할 정도였다. 환경보호, 환경보호…, 나 역시 하고한 날 입에 달고 살지만 한 번도 이런 소소한 부분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공 군에게 전화를 걸어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지 청장님, 하면서 건너편 의자에 털썩 앉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은근히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인간은 비교적 정상적인 인격을 갖추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지만 그래도 불쾌함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정상적 인격을 가진 사람은 지위의 고하에 별로 신경을 쓰지도, 그에 상응하는 자세를 취하지도 않아서 늘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 공 군이 나를 건드렸으니 망정이지, 만약 다른 사람이었으면 아마 자기가 게임에서 쫓겨난 줄도 모르고 게임은 끝났을 것이다. 울려고 해도 울 이유조차 모를 것이다.
이 바닥에서 등급은 사람들의 경계를 분명하게 그어주며, 모든 사소한 곳에서도 그 고하(高下)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나는 이런 게 다 한심한 일인 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한심한 이런 일에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천하의 일은 대부분 다 그렇지 않을까? 생활의 변증법은 일찍이 사람들에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이유들을 장치해 놓았다. 한 개인이 이 변증법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는 것은 손오공이 석가여래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나는 공 군에게 칠년 전 화원현에 흡혈충 방역 조사를 나갔던 일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나의 계획까지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왜 이렇게 일을 빙빙 돌려서 처리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오른손바닥을 휘저으며 다섯 개 손가락을 차례로 구부려 주먹을 쥐어보였을 때도 그는 이 신호를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더러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건의하기까지 했다.
내가 말했다.
“전임 지도자들의 기분을 고려해서일세.”
그제야 그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짧은 편지를 들고 흡혈충 방역반의 소 주임을 만나러 화원현으로 갔다.
한 달 후에 독자 투고란에 기사가 실렸다. 공 군의 보고에 따르면, 그 투고 편지는 공 군 자신이 초를 잡은 것이지만, 말한 내용은 모두가 사실이고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다고 했다. 인구가 백 명 남짓한 상만촌(上灣村)에만 마흔 명이 넘는 환자가 있고, 그 중 아홉 명은 배가 부풀어 올랐다고 했다. 이는 소 주임이 나를 위해서 찾아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나는 흡혈충 방역반의 강 주임을 불렀다. 그가 들어오다 말고 움츠러든 채 문가에 서 있었다. 내가 말했다.
“강 주임, 이 신문 봤어요?”
“보았습니다.”
“이 투고를 보고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안 좋던지, 서민들 생활이 이게 뭡니까!”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말했다.
“지 청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말했다.
“나도 장항향에 가봤지요.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소? 실제 상황은 이보다 더 비참하지요. 위생부에 보고해서 특별기금을 받도록 해야겠어요. 그럼 가서 초안을 작성하세요.”
그도 계속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갔다.
사실은 이 독자투고 편지를 받고 편집장이 우선 강 주임에게 보여주었었다. 그도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결과가 나올까봐 걱정이 되어서 어떻게든 빼돌려보려고 했지만, 그러나 내가 화원현의 소 주임이 전화를 해서 이러이러한 편지를 보냈다고 하던데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어쩔 수 없이 편집장에게 되돌려주었던 것이다. 윗사람들이 모두 그와 같이 냉담하면 서민들의 고충은 끝도 없어질 것이다. 세계가 양심대로 움직이기를 바라더라도 그게 어디 뜻대로 되겠는가? 또 반달이 지나자 투고는 북경의 신문에까지 전재(轉載)되었고, 나는 강 주임이 쓴 보고서와 두 종류의 신문을 속달로 위생부에 부쳤다.
두 달 후 샘플조사 결과가 나왔다. 화원현과 풍원현을 비롯한 몇 개 현의 발병률은 삼 퍼센트 대가 아니라 육 퍼센트 대로 나타났다. 나는 조사결과를 성(省)과 위생부에 보고했고, 위생부에서는 즉시 이백만 위안의 기금을 지원해주었다. 성에서도 이백만 위안을 몇 개 현에 지정용도로 쓰도록 보조해주었다. 그렇지만 그 돈이 백 퍼센트 환자들에게만 쓰인다고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나는 여덟 개의 의료대를 조직해서 그 몇 개 현으로 내려갔다. 내가 직접 의료대를 이끌고 반달 가까이 현장에서 뛰어다녔고, 네 개의 현을 돌아다녔다. 다시 장항향에 갔을 때는 그곳에서 사흘간 머물면서 수십 명을 진료해 주었다. 완전히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조금이나마 좋아졌겠지. 이렇게 해서 수년 간 마음에 묵혀 있던 체증이 좀 내려않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마 청장은 다시는 위생청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어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있었다. 사람 잘못 봤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세상살이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 법! 그때서야 나는 마 청장이 왜 직원 단지에 살지 않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선견지명이 있었다니까. 사실 그는 일찌감치 세태의 염량(炎凉)에 대해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이다. 시(施) 청장처럼 본인의 연약하고 무력한 모습을 매일같이 자기 부하들 앞에 보이는 것은 결코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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