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특수한 일은 특수하게 처리해야**
마 청장은 몇 번씩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전화를 걸어서 위생청의 상황을 묻고, 또 다른 소식이 없냐고 물었다. 그 “다른 소식”이란 다름 아니라 그의 거취 문제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종(鍾) 처장에게서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성 차원에서 그에게 무슨 다른 자리를 마련해주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마음 놓고 수족을 펴고 일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을 내가 전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는 나쁜 소식 전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별 수 없이 대답하며 말했다.
“아직은 별 소식 없습니다. 위생청에서 한 번 추진해 볼까요?”
그가 말했다.
“기회 있으면 자네가 알아서 해주게.”
만약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런 말이야 아예 마음에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가 당신을 위해 그런 일을 추진할 의무라도 있어? 그러나 상대는 마 청장님이다. 내게는 심리적인 부담이 컸다. 그가 또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나는 긴장도 되었고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듯했다. 아니, 실제로도 나는 그에게 진 빚이 있다. 그러나 전화 오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나도 점점 불편해졌다. 도대체 누가 청장이야? 자리를 떠나면 정치에서도 손을 떼야 한다는 게임의 규칙을 그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 이것은 그가 아직도 나를 자기의 아랫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전에야 모두들 그렇게 되고 싶어서 안달을 했지만, 지금까지 그가 그런 낡은 사고방식으로 사물을 본다면 그건 좀 꼴불견이지…. 나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소식만 들리면 얼른 비행기 타고 돌아오고 싶어서 그걸 못 참고 계속 전화를 거는 것이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신비하거나 그렇게 강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비감과 강건함은 권력이 그에게 부여한 것이었다.
마 청장에게는 위생청의 업무가 기본적으로 예전과 다름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이미 몇 가지 조치를 취해놓고 있는 상태였다. 우선적으로는 장부정리였다. 마 청장은 퇴직하기 열흘 정도 전에 전체 위생청 회의에서 위생청의 부채가 삼천만 위안 정도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내 계산에 따르면, 위생청의 부채는 일억 위안에 달했다. 마 청장이 가자마자 나는 성 회계청에 보고하여 위생청에 사람을 파견해서 재무조사를 해달라고 신청했다. 이런 멍청한 장부를 물려받을 수는 없는 일이고, 지금 바로잡아 놓지 않으면 나중에 이것이 다 내 이름으로 기록된다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조사 결과는 경악할 만했다. 위생청의 부채가 자그마치 일억 삼천만 위안에 달했던 것이다. 나는 기가 막혀서 현기증이 다 났다. 이렇게 엄청난 구멍을 뚫어놓고 나더러 메우라고? 나는 얼른 성 정부 사무청에 보고했다. 그런데 오히려 태연하게 대꾸하는 그들을 보고 나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마 청장 체면도 있고 해서 이 숫자를 내가 전 위생청 대회에서 언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위생청 업무회의 석상에서는 언급해버렸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퍼져나갈 것이고, 그것으로 족했다. 이 일로 나는 원하던 바를 하나 이루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 일로 마 청장님 얼굴에 먹칠한 셈이 되었다. 나는 마 청장님께 죄송한 말음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그는 나를 완전히 신임해서 다른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으려 하지도 않는 듯했다. 전화에서도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다음부터 마 청장님을 뵐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지만 정말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런 면목 없는 국면은 사실 일찌감치 객관적인 정세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전개된 것에 불과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이 자리에 앉은 이상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다른 점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조차 안 느낀다는 것 정도이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는 인사처의 가(賈) 처장이 청장실로 찾아와서 말했다.
“지 청장님! 말씀 여쭤볼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말해 보세요.”
그는 자리에 앉지 않고 여전히 선 채로 말했다.
“그게 이런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눈으로 뭔가를 살피는 모양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제야 그가 내가 앉으라고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내가 손짓을 하자 그제야 그는 조심스럽게 내 앞에 앉았다. 사실 그가 할 말이 있으면 자리에 앉아서 하는 것은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의 기다림 속에서 나는 신분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그가 나를 중의학회에서 불러 대화를 나누던 상황은 이미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나는 아마 계속 선 채로였을 것이다. 만약 그때 그가 나더러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면 그도 제법 괜찮은 인간이겠지만, 아쉽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두 사람이지만, 정세가 역전되었을 뿐이다. 이런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권력이다. 권력이 자원의 분배를 좌우한다. 누가 감히 자기는 그 분배에서 보살핌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보살핌을 받고 안 받고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가 처장이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몇 해 전에 서소화(舒少華)가 이끌었던 그 무리들 있잖습니까. 올해에는 상황이 변해서인지 모두들 벌떼처럼 일어나서 인사이동을 신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내가 말했다.
“몇 명이나 됩니까?”
그가 말했다.
“퇴직한 사람들과 전근 간 사람들을 빼고 나면 한 서른 명 정도 됩니다. 그 중에서 다시 외국어 시험 본 지 이년의 유효기간이 지나서 금년에 신청할 자격이 없는 열 명까지 빼고 나면 대략 스무 명 정도 됩니다.”
내가 말했다.
“이번에 자리 난 것 다 해봐야 그 정도밖에 안 될 텐데?”
그가 얼른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저희도 혹시…. 어떻습니까?”
그의 뜻은 아주 명백했다. 계속해서 그들을 억눌러 두고 싶은 것이었다. 물론 가 처장이야 그들의 억울한 상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그러나 장시간 마 청장의 뜻에 따라 일을 처리해왔는데 이제 와서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다고 인정하기엔 내키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무서운 존재가 아닌가? 자기의 눈곱만한 이익, 혹은 심지어 체면 때문에 다른 사람이 막대한 희생을 치루는 것도, 몇 십 명이 희생당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양심에 따르라고? 세상이 양심에 따라 움직이기를 희망하겠지만, 사실 그것도 무서운 일이다. 양심 따위를 무시한들 또한 어떠랴! 양심대로? 양심대로 한다는 말 자체가 비양심적인 소리다. 내 경험에 따르면, 양심이란 소수 사람이 관련된 소수 상황에서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왕년에 그 흡혈충병 예방조사를 나갔을 때만 해도 그 많은 인간들이 양심에 따라 행동하던가? 이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마수장으로 인해 육칠년 간 눌려 있을 때, 누구 하나 양심에 따라 박차고 일어나서 바른 소리 한 마디 하던가? 양심이란 너무나도 미덥지 못한 미지수(未知數)다. 양심에 따른다고 말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유치할 뿐 아니라 심지어 사기(詐欺)에 가깝다. 그리고 사람이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때는 양심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개인의 욕망과 감정의 흐름은 양심을 저 깊은 곳에 층층이 덮어 감추어버린다.
나는 한 번 떠보기 위해 물어보았다.
“가 처장은 이 문제에 대해 무슨 다른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그 역시 나를 떠보려는 듯이 말한다.
“저야 물론 위생청의 결정에 따라야지요. 마 청장님께서 분부하시기를,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방침에 따르라고 하셨는데, 지 청장님도 그런 말씀이십니까?”
보아하니 그는 퇴임 전에 마 청장을 찾아가서 나의 내막까지 살펴놓은 듯했다. 내가 말했다.
“정책대로 합시다!”
그가 말했다.
“맞습니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그는 분명 나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제 편한대로 정책을 기존 방침이라고 이해한 듯했다. 그래서 나는 말투를 바꾸어 이야기했다.
“무조건 정책대로 합시다!”
그가 그제야 알아차리고 말했다.
“그러니까 지 청장님의 말씀은… 무슨 정책을 두고 하신 말씀이신지….”
내가 말했다.
“가 처장의 생각은요?”
그는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듯이 웃으면서 나를 보았다. 내가 말했다.
“당의 정책과 국가의 정책을 빼고 또 무슨 정책이 있습니까?”
그는 그제야 완전히 이해했다는 듯, 머리로 마늘이라도 빻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당, 국가, 당….”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몇 번에 나누어서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양심에 손을 대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몇 년을 눌려 있었는지…. 그 동안 사는 게 사는 것 같았겠습니까? 다들 먹물 든 사람들이라 어디 가서 농사를 지을 수가 있나, 대장장이 일을 할 수가 있나, 백정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얼굴에 철판 깔고 도둑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들한테 직급은 목숨과도 같습니다. 직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거처도 없고, 월급도 없고, 심지어 찾아오는 환자마저 없을 판인데, 집에서나 사회에서나 무슨 낯으로 사람노릇 하겠습니까?”
말을 하다보니 나도 흥분해서 한 마디 말할 때마다 오른 손이 칼이라도 되는 마냥 책상을 베듯 내리쳤다. 한 번 내리칠 때마다 그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말했다.
“그 사람들의 자료를 모두 인사평가대상에 포함시키세요. 자리 숫자는 제가 방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안 그래도 옛날부터 이 문제를 매듭짓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 제 말이 먹혀야지요. 별수 없더군요. 양심대로라면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계속 변명하려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떴다.
그가 자리를 뜨자마자 퇴휴직자 관리반의 채(蔡) 군이 들어왔다. 멀찍이 자리에 선 채로 내게 말했다.
“지 청장님께 보고드릴 상황이 있습니다.”
나는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기 위해 일부러 그에게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몇몇이 지하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올해 인사이동 결과를 봐서, 마 청장님이 돌아오시면 마 청장님을 고소하겠답니다. 무슨 근거로 자기네를 그렇게 오랫동안 눌러 두었는지 근거를 대보라고 하겠다는 말이지요.”
그에게 어떤 사람들이 관여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가 말했다.
“서소화가 배후에서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그렇지만 본인은 해당 사항이 없어서 곽진화(郭振華)를 공격수로 내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이어서 이름들을 줄줄이 대기 시작했다.
채 군, 이 녀석이 나는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어느 해였든가, 함께 만산홍 농장에 갔을 때 내게 남긴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여기까지 와서 상황보고를 해주었다는 점에 대해서 나는 그를 격려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이 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앉아서 말하게.”
그가 말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었더니 지겹습니다. 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내가 말했다.
“자네가 제공해준 정보는 매우 중요한 걸세. 앞으로도 무슨 상황이 있으면 즉시 전화로 보고해 주게.”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를 떴다.
내가 자리에 오르자마자 파란이 일어난다면 상부에는 무슨 면목으로 대한단 말인가? 나 개인과 관련된 일은 아니지만 그 책임은 내게 있다. 오후에 다른 세 명의 부청장을 소집해서 회합을 갖고 상황을 보고했다.
구립원(丘立原)이 말했다.
“그 인간들이 무슨 동작을 취할 것이라고는 일찌감치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맘먹고 덤빌 줄이야.”
일찌감치 들어서 알고 있었다면서 나한테는 귀띔도 안 했다고? 아주 날 잡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나 보군. 이렇게 생각하면 채 군과 같은 인간이야말로 없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불이 눈썹에 붙고 나서야 불이 난 것을 알았을 것이다. 풍기락(馮其樂)이 말했다.
“성에다 알려야 할까요?”
내가 말했다.
“이런 일로 북 치고 장구 치고 할 것까지야…. 만약 인사청에서 자리만 몇 개 더 늘려주면 마땅히 앉혀야 할 사람 앉히고, 그리고 개별적으로 작업 좀 하고. 그러고 나서 위생청이 잠잠해질 수 있을지 어디 두고 보십시다. 일만 크게 시끄럽지 않으면 성에서 간여할 리도 없고. 서소화가 여러 해 동안 참고 참았던 것도 기다렸다가 일을 크게 터뜨리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방침은 안정과 단결을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풍기락이 말했다.
“제가 인사청의 고(顧) 청장과는 관계가 괜찮으니, 제가 가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두 명 정도는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풍기락은 나보다 예닐곱 살 위였는데, 내가 청장 자리에 앉은 것에 대해 딱히 원망하는 빛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동적으로 종군하겠다고 나서는 것만 보아도 그러했다. 내가 말했다.
“누가 또 몇 자리를 따오겠습니까?”
나는 구립원을 바라보았다. 그도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그럼 저도 두 명을 책임지겠습니다.”
나는 성 위원회 조직부의 장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이야기했다. 도와주는 셈 치고 인사청에 말 좀 해달라는 부탁에 그도 승낙했다. 이어서 경(耿)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곽진화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가 말했다.
“벌써 퇴직 수속 끝냈습니다. 얘기도 다 끝냈습니다.”
“언제요?”
“지난 달로 만 육십 세였습니다. 정책에 따라 자동퇴직입니다.”
“이 일은 특수한 상황이니 특수하게 처리합시다(特事特辦). 곽진화의 퇴직을 일년 미룹시다. 급여 문제도, 퇴휴
직 처리를 취소합시다. 위생청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내 쪽에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일은 마 청장이 보고 뒤는 내가 닦는 격이었다.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다. 이틀 후에 내가 차를 운전해서 곽진화네 집으로 갔다. 그의 아내가 철문을 사이에 둔 채로 물었다.
“누굴 찾으세요?”
“곽 선생님 계십니까?”
“누구신데요?”
“저의 성(姓)은 지(池) 입니다.”
그녀가 안쪽을 향해 외쳤다.
“여보, 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당신을 찾아요!”
곽진화는 문으로 뛰어나오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 씨라면, 지 청장?”
얼른 문을 열고는 고개를 힘껏 흔들어가면서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저희 집 사람이 청장님을 몰라보고, 몰라보고…”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모님께서 경각심이 대단하십니다. 경찰국에서 일하신 것 아닙니까?”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사람 찾는다면서 쳐들어가서 사람 죽이고 물건 빼앗아 가는 걸 보았거든요. 그걸 보고 간이 콩알만해져서는….”
나는 소파 위에 앉으면서 말했다.
“경 원장님과 의논할 일이 좀 있어서 찾아왔다가, 가는 길에 한번 뵈러 왔습니다.”
그의 부인이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지 청장님! 지 청장님께서 저희를 보러 오셨다고요?”
나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조금 나누다가 말을 꺼냈다.
“방금 경 원장님한테 들었습니다. 곧 정년퇴임 하신다면서요?”
그가 말했다.
“벌써 이야기 끝냈습니다. 규정대로 하기로 했으니 얘기 끝난 거나 마찬가지지요.”
내가 말했다.
“방금 경 원장과도 이야기했습니다만, 피부과 업무 인수인계에 문제가 있어서, 경 위원장님은 곽 선생님이 일년 더 머물러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곽 선생님한테 거절당할까봐 걱정하기에, 제가 곽 선생님과 잘 아는 사이라고 자청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 어느 해인지 우리 집 일파가 데어서 다쳤을 때 선생님이 봐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반신반의하듯이 말했다.
“경 원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요?”
“그분 말씀이나 제 말이나 그게 그거지요. 곽 선생님, 제 체면 좀 봐주십시오. 일년만 더 머물러 계시면서 아랫사람들 좀 키워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는 계속 못 믿겠다는 듯이 말했다.
“지 청장님, 청장님께서, 청장님께서 그렇게까지 저를 좋게 평가해주시다니….”
“제 집사람도 집에서 하고한 날 곽 선생님, 곽 선생님 노래를 부르는 걸요. 곽 선생님, 사람도 좋고 솜씨도 뛰어나고, 우리 아들 몸에 상처 하나 안 남았다면서요…. 사실 어느 정도 후유증에 대해서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는 감동한 듯이 말했다.
“지 청장님께서 남으라고 하시는데, 저도 그럼 일년 더 힘쓰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말 바꾸기 없습니다.”
그의 아내가 말했다.
“지 청장님께서 우리 집 양반을 너무 봐주시는 건 아니신지….”
“경 원장님이 방금 말씀하시기를, 특수한 상황이 생겨서 이번 인사평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금년에 신청하셨습니까? 아직 신청 안 하셨으면 얼른 신청 자료들을 준비하시지요. 며칠 후면 늦습니다.”
곽 선생 내외는 모두 놀라 할 말을 잊었다. 한참 후에야 말했다.
“아직도 신청할 수 있습니까?”
“그럼요. 제가 신청할 수 있다는데 누가 안 된답니까?”
곽진화가 허벅지를 내리치면서 말했다.
“이렇게 구름 걷히고 해 뜰 날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91년부터 95년까지 외국어 시험을 세 번 내리 통과하고 주임 의사 되어보려고 신청한 것이 벌써 육년입니다! 이 일로 내 머리가 다 세고, 그나마 반이나 빠져서 지금 이렇게 가발 쓰고 다닙니다, 지 청장님.”
그가 한 손으로 가발을 밀치자 정말로 백발만 둥그렇게 한 줌 남은 머리가 드러났다. 그가 대머리를 치면서 말했다.
“이걸 보세요. 지난 몇 년간, 산다는 게 정말이지 사람으로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또 힘껏 머리를 쳐댔다.
“아, 하하하, 아, 아아아!”
그가 돌연 웃기 시작했다. 웃다가 웃다가 목소리가 변하더니 입이 한 쪽으로 일그러지고 얼굴도 주름이 잡힐 정도로 찌그러지며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의 부인도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저희의 고충을 털어놓으려면 삼일 밤낮을 이야기해도 끝이 안 날겁니다. 지 청장님! 막 부임한 젊은이들까지 이 양반을 업신여기더랍니다. 이 나이에 숙직, 당직 다 시키고요. 숙직이야 뭐 어렵겠습니까만, 그 말투 하며…. 우리 이 양반 인사문제로 억울한 일 당하고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저도 이이를 따라 얼마나 울었는지…. 마수장 그 인간, 독불장군에 되지 못한 수작이나 부리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그 기가 막힌 고집에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방자함이라니….”
그때 곽진화가 그녀를 힘껏 찔러 입을 다물게 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마 청장이 끌어준 사람인데 그분을 너무 욕되게 하는 것은 나를 욕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곽진화가 머리를 들어 말했다.
“지 청장님께서 제게 기회를 주신다지만, 제가 오늘이 올 줄, 구름 걷히고 해 뜰 날 올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위에서 저를 기억해주실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사실은 외국어 시험 보아둔 것이 없습니다. 이년 전에 본 것은 벌써 유효기간이 지나 못쓰게 되었고요.”
나는 차 테이블을 내리치면서 말했다.
“특수 상황은 특수하게 처리합니다. 제가 어떻게든 돕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는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면서 두 무릎을 굽히면서 말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내가 말했다.
“갚기는요. 저 지대위가 하는 것도 아닌데요. 정 갚으시려면 제 업무를 지지해주시는 것, 그게 바로 보답 아니겠습니까?”
그가 얼른 말했다.
“물론 지지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지하고 말고요. 워낙은 말입니다. 물러날 때도 되었고, 승진도 물 건너가고 해서 말입니다. 한 번 너 죽고 나 죽기로 덤벼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 청장님께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면 전 지 청장님 말만 듣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곽 선생님도 연세가 있으신데 너무 열 내시는 것도 건강에 안 좋습니다. 먼저 평온하게 몸부터 보양하시는 것이 최우선의 도리 아닙니까? 큰 도리부터 따지고 나서 작은 도리를 따지셔야죠.”
문을 나서면서 나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대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원칙 없는 인간들…. 자기 자신이 원칙인 인간들….
그 외의 몇몇 사람들에게도 전화를 걸어서 사무실로 오게 했다. 나는 까놓고 이야기했다.
“여러분, 여러 해 동안 묶여 계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위생청에서 여러분의 상황은 특수한 상황으로 간주하고 특별 처리하겠습니다. 즉, 위에서 티오(T.O)가 내려오는 대로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부터 하나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무슨 시끄러운 일이 발생하면 성에서도 불쾌하게 생각하고 티오를 안 내려 보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위생청으로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말했다.
“벌써 몇 년을 눌려 있었는데 그건 그냥 덮어두자는 말씀입니까? 무슨 해명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말했다.
“올해 여러분이 인사평가 대상으로 포함된 것 자체가 바로 해명입니다. 문화혁명 당시 우파들이 당한 설움은 여러분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어요. 훗날 그 우파 딱지를 떼어준 것, 그것이 바로 해명입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를 고소라도 했던가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마 청장님처럼 이미 일선에서 물러나신 어른을 조사하고 재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승소하기도 절대 쉽지 않고, 여러분도 피를 좀 봐야 할 겁니다.”
나는 한바탕 언쟁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웬걸, 말 몇 마디에 그들은 평정되었다. 나는 또 한번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역량을 느낄 수 있었다. 옛 어른들은 “머리 좋은 인간들은 반기를 들어 봐야 삼년 가도 성공 못한다”(秀才造反,三年不成)고 했지만, 정말이지 먹물들을 너무 높이 평가한 말이다. 삼년이라니…, 칠팔년 가도 성공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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