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시장(市場)이 공자(孔子)를 죽였다**
유약진이 전화를 걸어서 홍콩 지도를 한 장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정소괴가 재작년에 홍콩에 다녀왔던 것이 기억나서 물어보았더니 역시 한 장 갖고 있었다.
그에게 연락해서 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저녁에 그가 우리 집으로 왔다.
동류가 말했다.
“유 교수님, 홍콩 가실 준비하시는 거예요?”
그가 말했다.
“홍콩 갈 일이 저한테까지 돌아오겠습니까?”
나는 지도를 건네주었다. 그는 힐끗 보더니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안 그래도 동류가 눈치 없는 질문으로 그를 자극할까봐 걱정하고 있던 참에 동류가 물었다.
“능약운이 하고는 어떻게 되셨나요?”
“빠이빠이 했어요.”
아주 가볍게 손을 털면서 말했다.
동류가 놀라서 물었다.
“정말요?”
“그런 여자한테 뭣 하러 신경을 씁니까?”
몇 달 못 만난 사이 그는 변해 있었다. 사실 언젠가는 헤어질 줄 알았다. 그저 친구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할까봐 걱정했던 것인데, 보아하니 그도 모든 것을 떨쳐버린 것 같아 나도 마음이 놓였다. 내가 말했다.
“자네가 이렇게 털어버릴 줄은 생각 못했네. 호일병과 나는 사실 자네 걱정을 하고 있었어.”
나는 갑자기, 그날 저녁 사실은 능약운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말이 혀끝까지 나왔으나 결국 입을 다물었다. 신경 안 쓴다는데, 이 친구가 우리 앞에서 이 허무한 신화라도 유지하도록 해 주어야지.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어떤 말이든 주절주절 다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유약진이 말했다.
“털어냈지.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을 줄은 나도 생각 못했네. 그리고 또 안 털어내면 어떻게 하겠나?”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안 떨쳐버리면 어떻게 하겠나? 하늘 아래 일들이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능약운만 떨쳐버린 게 아니라 이 세계를 모두 떨쳐버렸네! 세계를 떨쳐버리는 것이 여자 하나 떨쳐버리는 것보다 아무래도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떨쳐버렸네. 안 떨쳐버리면 어떻게 하겠나?”
내가 말했다.
“모두들 하나같이 그 길로 들어서지. 좋게 말하면 꿈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는 것이고, 모든 것을 분명하게 바라보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게 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타락이고, 포기이고, 자기만 남는 것이지.”
그가 말했다.
“마음은 사실 여전히 아파. 그렇지만 아파해 봤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파해 봤자 어디에 쓰겠어? 나는 여태껏 학자에게 하늘이 부여해준 사명은 천하를 떠맡는 것, 즉 이 세상에서‘천하 사람들이 염려하기에 앞서서 염려하는 것’(先天下之憂而憂)이라고 생각했네. 자네가 학자들에게 책임지려 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고 말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살아가는 의미조차 느끼지 말고 텅텅 빈 듯이 살라는 것이야. 그런 삶의 가벼움은 사실은 아주 무겁고 아주 무서운 것이지. 그러나 번뇌해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역시 헛되기 짝이 없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글을 썼고 무슨 일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사실 한 말도 없고, 쓴 글도 없고, 한 일도 없더군. 세계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데, 절대로 누구 하나 때문에 다른 길로 갈 리가 없는데 말이야.
시간 속에는 어떤 인간의 의지보다도 강한 어떤 힘이 있어. 그게 바로 천수(天數)라는 것이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모든 것을 제약하고 있는 힘…. 천수는 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바로 이 점을 깨달은 거지. 호일병의 말이 맞아. 권력과 금전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한들 누가 그 말을 듣겠나? 그게 바로 천수라고! 나는 텔레비전 사회자들이 하늘을 보고 말을 하는 것 같아서 우스울 뿐이야.”
이어서 그는 검지 두 개로 위를 콕콕 찌르면서 말했다.
“최근에 나는 나 역시 하늘을 보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천하를 논하고 국가를 논하는 내 말을 학생
들도 진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그들이 나보다 더 똑똑해. 시장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라서 이젠 내가 교실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많이 하고 그래. 현실과 무관한 속빈강정 같은 이야기들을 하는 내 마음도 불안해. 마치 구름 끝에 서 있는 것 같아. 시장은 일종의 경제구조물이자 또 일종의 의식형태이지. 시장은 궁극을 소멸시키고 지식인을 사멸시켜. 시장은 모든 것을 평면화시키고 현세화시켜. 우리의 생명은 상상의 공간을 잃어버렸어. 모두들 자기 자신만 바라보면서 현재를 움켜잡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
큰 개념들이 변하자 모든 것들이 다 변해버렸어. 천박한 게 곧 심각한 것으로 되었어. 인격이 고상해서 금전을 하찮게 본다고? 나는 갑자기 나 자신의 그간의 노력과 공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쓰레기가 되어버린 것을 발견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잉여인간이 되어버린 거야. 나도 모르게!
역사에 의해 행동의 제약을 받는 인간들은 역사를 초월할 수 없어. 인간은 숙명에 항거하지 못하므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가장 위대한 논리도 인간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듯이, 어떤 개인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야. 학자가 현실 밖에서 논리에만 의지해서 온전한 가치체계를 세울 수는 없어. 세운다고 해도 그저 책 위에만 머무는 것일 뿐 현실과 유효한 관련을 맺을 수는 없는 거야.
나는 나 스스로의 무기력한 상황에 대해 더 이상 모르는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내가 보기에 실력에 따라 이익을 분배하는 사회에서 이상을 주창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야. 기득권자들이 이상을 외친다는 것은 더욱 희극적인 일이고. 그자들의 이상은 외치는 그 순간에 이미 실현되어 있어. 나는 이렇게 형편없이 사는데 그들은 너무 잘 살고 있어. 그런데 내가 그 인간들이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소리까지 들어줘야 하나? 대학은 여전히 정신문명의 보루라고 하지. 교단에 오르면 정말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모든 추상적 화제는 이미 그 화제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어. 내가 계속해서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그따위 공허한 이야기만 해대다가는 나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기꾼이 되어버리고 말아.”
내가 말했다.
“그럼 자네 이제 책은 안 쓸 거야?”
그가 자조적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책은 계속 써야지. 그건 일종의 도구야. 세계와는 무관한. 관련이 있을 수도 없지. 오늘 무엇을 쓰건 그것은 모두 거품이 되어버리지. 거품도 거품이고, 주옥같은 작품도 거품이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용히 드러났다가 곧 사라져 버리는 거품. 내가 몇 년간의 시간을 들여 쓴 한 권의 책 역시 그 거품들에 잠겨버렸어.”
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책 쓰는 사람이라면 다 그렇게 이야기 하겠지 뭐.”
그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시대가 변했어. 고대의 학자들이 마주한 것은 전 세계였지만, 오늘날의 학자들이 마주한 것은 각자의 왜소하고 가련한 한 귀퉁이에 불과해. 그들과 세계와의 관계는 이미 일종의 설명하기 힘든 힘에 의해 단절되어버렸어. 그들은 아직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신성함은 이미 사라졌어. 그리고 그 가련한 한 귀퉁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진흙으로 만든 소를 바다에 던져 넣듯이(如泥牛入海) 자신을 희생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고 있다고. 세계를 내려놓고 나니 이렇게 가뿐한 것을. 나도 나 자신을 위한 복리를 좀 꾀해야겠어. 현대인들은 하나하나가 다 똑똑하고 유능하고 바빠서 모두들 어떻게 하면 자기의 파이를 불릴 수 있을까 그 궁리만 하고 있잖아. 누가 천하를 자기 마음속에 담고 있어? 시장(市場)은 그저 눈앞의 이익만을 인정하고 만고(萬古)며 천추(千秋) 같은 것은 들여다보지도 않아. 이렇게 모든 신성함이 무너져버린 거야. 내 마음 속에서 공자(孔子)는 이미 사망했어. 이 시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이미 사망했고. 그래서 내가 지식분자들도 이미 사망했다고 하는 거야.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내가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고 만약 너무 감상적이 되지만 않는다면, 천하란 아득히 먼 존재이고, 자신 역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만 해.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곧 세계가 되는 거야. 이 점을 은폐하려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점을 가장 깊이 느끼는 사람들이지.”
그는 망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아주 먼 곳에 있기라도 한 듯이. 나는 그가 말은 가볍게 하지만 마음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눈빛이 먼 곳에서 돌아오더니 그가 말했다.
“얼마 전에 북경과 상해를 갔다가 내 동료 문인들의 잘 사는, 아주 고상하게, 뼛속까지 고상하게 사는 모습들을 보게 됐어. 간단한 반찬 하나도 무슨 기교를 부렸는지 예닐곱 가지 모양으로 만들어서 먹고 살더군. 누구는 자가용에 별장까지…. 그자들의 금전에 대한 감각은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고,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심지어 보통 사람들보다 더하더군. 그들은 말하기를, 자신들의 행위에 거리낄 것도 하나 없고,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할 말을 못하는 경우도 또한 없다더군. 양극 사이에서 자유롭게 미끄러져 다니더군.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다 쓸데없다는 것을, 내가 응석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네. 더 이상 고상한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는 것도…. 나는 지식인에 대해 실망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실망했네. 몇 천 년을 공자의 감화를 받아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물러나서 매우 작은 공간만을 지키는 것이 지식인들의 선택의 주류를 이루어 왔지만, 그러나 일순간에 상황이 변했어. 모두의 눈 안에 자기 자신만 남았고 세계는 내던져 버렸어.”
내가 말했다.
“이렇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네. 이것이 바로 역사야.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세기가 엇갈리는 시기에 우리가 상대주의와 마주쳤기 때문에, 모든 신념과 숭고함이 그저 하나의 설(說), 모호하고 이도 저도 아닌 설(說)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걸세. 그 설(說)은 희생의 이유가 되지 못하지. 살아가는 것만이 하나의 진실이고 유일한 가치이지. 역사는 우리를 필연적 용인(庸人)으로 점지했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인간들은 그 진상을 분명하게 보고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한편 양심을 던져 버렸고 세계도 포기한 거야. 그런 진상을 분명하게 본 사람들은 사실 한층 더 높은 진실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야. 그들이야말로 이 시대 최대의 승자이자 동시에 최대의 패자이지. 나를 봐. 내가 승자인지, 패자인지?”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공자가 죽었다고 말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공자는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을 논했지. 그러나 시장과 권력의 영역에서는 강자(强者)와 약자(弱者)만을 논할 뿐이야. 공자는 죽었어. 고귀함과 비천함의 구별은 이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지워져버렸고, 강자와 약자의 차이는 한편 이렇게 분명하게 되었지.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고귀한 정신을 내려놓아 버렸고 사회는 건달들로 득실거리지. 왕삭(王朔)은 건달이긴 하지만 그래도 진솔하기라도 했어. 입으로는 도덕경(道德經)을 읊조리는 위선적인 건달들, 그런 인간들이야말로 세상을 우롱하는 자들이야. 옛 사람들은 인격적 역량에 의지하여 포의(布衣)의 군자노릇을 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은 누가 스스로를 포의의 군자라고 부르겠나? 강자들에게 웃음거리만 제공하는 셈이 될 텐데? 일단 관념이 바뀌면 우리는 심지어 소인도 소인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군자도 군자라고 부르지 못하게 되는 거야. 내가 금엽부동산 회사의 여(余) 사장은 소인배고 나는 군자라고 말할 수 있겠나? 소인과 군자의 구별이 없어졌는데 공자가 안 죽고 배기겠나? 책임과 희생의 정신, 인격과 도덕의 역량, 전통문화의 양대 기둥이 이미 붕괴됐는데, 그리고 다시 세워질 가능성이 없는데?
나는 공자가 죽었다고 말했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애석하다네. 그러나 이것이 역사의 필연임을, 농업문명의 토지에서 자라난 관념으로는 오늘날의 현실세계를 직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만약 공자에게 그나마 숨이 붙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음식남녀는 인간의 본성이다”(食色, 性也)는 말 덕분일 거야. 나마저도 이 무기를 들고 대담하게 타락을 향해 걸어가려 하지만, 나 자신이 타락할 수 없을까봐 염려스러울 따름이라네.”
내가 말했다.
“자네와 같은 지식인이 과거의 자기를 죽인다는 게, 그게 어디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겠나? 사람이라면 모두 자신을 사랑하는데, 누가 과연 자기 자신에게 킬러를 붙일 수 있겠나? 나는 자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타락하는 데도 역시 잔인한 용기가 필요한 법이야.”
유약진이 말했다.
“내가 지식인이라서 부끄럽다고 말한 것은, 이 무리의 인간들은 오늘날 그 고유의 신분을 상실하고 저마다 생존자, 조작자, 혹은 세상을 우롱하는 인간들로 변했다는 점이야. 세계를 대하는 나의 마음은 이미 회색이 되었고 의지 또한 싸늘해졌지만, 그러나 일종의 타락할 용기는 생겼어. 어떤 때 생각해 보면, 절망의 반대는 희망이고 물극필반(物極必反:사물이 극점에 도달하면 반드시 그 반대쪽으로 향한다는 뜻--역자)이라고 했듯이, 나는 공리주의가 인간을 정복했다고는 하나 이것이 영원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내가 말했다.
“정말 그날이 올 때까지 자네 유약진과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을까? 자네의 기다림과 희생은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고증될 수밖에 없겠지. 미래의 역사학자들이 그것을 고증하려고 할 정도로 그렇게 한가할지는 의문이지만….”
그가 자기 머리를 치면서 말했다.
“글쎄, 그렇군. 개인의 관점에서만 세계를 바라보는 이 시대에 세계는 자기에게 의미가 있을 때에만 진정한 의미를 갖지. 출발점이 변했어. 세상도 뒤집혀졌고. 세계적인 관점에서 개인을 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버렸어. 진흙으로 만든 소 한 마리로 바다를 메울 수 없듯이, 자네가 세계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를 세계는 느끼지 못한다네. 대위, 나도 자네를 배워야겠어.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세상에 살 수 있을 날도 일만 날 남짓밖에 되지 않는데, 사는 재미 좀 느끼면서 살려면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어디 있겠어? 그렇다고 방관자로 살자니 그 짧은 세월에 영 면목이 없고, 그리고 또 그래서야 무슨 사는 재미가 있겠어? 사람이 사는 것도 다 그 재미 때문에 사는 건데….”
그는 말하면서 입술을 몇 번 힘껏 빨았다.
“사는 재미!”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나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지만, 그러나 지금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것도 유약진의 입을 통해 듣고 나니 충격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마음으로 세계를 느낀다. 이것이 나로 하여금 더욱, 시간에는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저항하는 것이 무의미한, 그런 어떤 힘이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역사는 역사다. 총명한 인간이든 고집스러운 인간이든, 누구도 역사를 꺾을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내가 한 발자국 앞서가면서 현재의 주도권을 갖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밤이 늦어 그를 배웅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가 갑자기 온몸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지도, 지도. 내가 지도 갖고 왔나? 아, 여기 있군.”
이어서 말했다.
“자네 내가 이 지도 갖고 뭘 하려는지 맞춰 봐. 어떤 출판사에서 나더러 얘기가 홍콩에서 전개되는 소설을 한 권 써달라는 거야. 조건은 첫 페이지에 베드 신이, 그것도 상세한 묘사가 있어야 한다는 거야. 생각해 보니 돈도 빨리 받을 수 있고 해서 그냥 승낙했어. 잘하면 텔레비전 드라마까지 찍을 수 있다는데, 그렇게 되면 삼만 위안에서 그치지 않아."
나는 그가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대학 교수가 돈 구경을 못 해서 삼만 위안에 그냥 고개를 숙이고 말다니….
내가 말했다.
“책 나오면 나한테도 한 권 줘.”
그가 말했다.
“필명을 쓰려고 해. 진짜 이름을 썼다가는 내 이름에 먹칠을 하는 꼴이 될까봐…. 그냥 임시로 눈먼 돈 좀 벌어보겠다는 거야. 돈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유일한 단점이랄까, 그게 돈에는 코가 안 달려서 냄새를 구별하지 못하잖아. 그저 주인을 위해 서비스할 줄만 알고 주인이 바보 등신인지 어쩐지는 모르거든. 내가 보니까 그 출판사도 바보 등신과 별로 다를 게 없더군. 돈 좀 생기면 이런 저런 사람 앞에서 폼 잡고 으스댈 줄이나 알고 말이야. 당분간은 한 숨 돌리겠지. 우선 돈부터 벌고 보자고. 내가 이렇게 될 줄 자네도 몰랐지? 공자가 죽고 세계를 내려놓으니까 마음을 제약하던 것들도 사라지고, 사람까지 가뿐해지고 자유로워졌어.”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유약진의 입을 통해 줄줄 쏟아져 나왔다. 몇 달 전만 해도 나와 호일병을 나무라던 그가 아니었던가.
유약진이 가고난 후 나는 가로등 아래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정신적으로 험난한 도전과 맞닥치고 있다는 점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도전에 맞설 만큼 강한 정신력이 없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패하고 말았다. 무장해제당하고 투항하고 말았다. 우리는 신분을 상실했다. 마치 시간이 주선해 놓은 것처럼, 저항할 수가 없었다. 중국의 지식인은 그 뿌리를 상실했다. 그들은 자신을 해방시켰지만 그러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정신적 심연에 빠져버렸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도 모르는 새 일어난 삼천 년 만의 일대 국면전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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