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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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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72>

능약운(陵若雲)

***72. 능약운(陵若雲)**

호일병이 전화를 걸어서 유약진의 가정에 풍파가 일어났다면서, 시간을 내서 그의 마음도 풀어줄 겸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유약진은 지난 이년 동안 한편으로는 논문을 써서 전국적인 토론에 참가하고 또 한편으로는 대가의 말투를 흉내 내어 세계를 논하고 인생을 논하는 수필을 쓰는 등 제법 잘나갔는데, 그 인간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지? 대중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군림하는 그 인간이 우리 같은 속물한테 고민을 풀어달라고 부탁하다니…. 저녁을 먹고 금천(金天)호텔에 도착하니, 조금 있다가 호일병이 자기 차로 유약진을 데리고 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의 다방에 올라가서 호일병이 룸을 하나 달라고 주문했다. 유약진이 말했다.

“차야 아무데서나 마시면 되지 뭣 하러 이렇게 비싼 곳을 찾아?”

호일병이 말했다.

“이렇게 꾸며 놓은 건 다 사람들에게 이용하라는 것 아니겠어?”

예전 같으면 다른 사람이 이런 식으로 나를 접대하려고 하면 나도 너무 사치스럽다고 생각했겠지만, 요즘은 익숙해져서, 이런 장소가 아니면 아예 갈 수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가에 있는 아무 다방으로나 들어가자고 하면 접대를 받는 나는 뭐가 되느냐 말이다. 비록 허례(虛禮)일지라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고, 그것을 사양하는 것은 스스로의 품격을 낮추고 스스로 세상물정 모른다는 것을 알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보아하니 유약진은 아직 이런 이치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유약진의 물음에 호일병도 괜한 허풍은 떨지 않았다. 이놈은 아주 멋진 친구다. 사실 요 몇 년간, 떳떳치 못한 돈 몇 푼 벌었다고 옛 친구도 못 알아보는 인간들도 많이 보았다.

아가씨가 차를 따른 후에 주전자를 들고 문 옆에서 분부를 기다리고 서 있자 호일병이 아가씨를 내보냈다. 차를 마시면서 비로소 유약진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마음이 고결하고 자존심이 강한 놈인데, 이년 전에야 능약운(凌若雲)이라는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그보다 아홉 살이나 연하인 그녀는 도시로 시집온 후에 학교 도서관에서 자료정리나 하는 일에는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콩 자본인 금엽(金葉)부동산 회사에 지원했는데, 결국 채용이 되었고, 반년 후에는 홍보책임자로 승진해서 월급도 그의 여덟, 아홉 배나 받았다. 이러한 사실을 감정상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그녀에게 학교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여야지. 오히려 반대로 그녀가 유약진에게 권했다.

“매일같이 책상 위에 엎드려서 글이나 쓰는데, 그래 봐야 무슨 소용 있어요?”

“가는 길이 다르면 서로 상의조차 하지 말라”(道不同不相爲謀)고 했듯이, 부부 사이에 서로 상의조차 할 수 없게 되자 자연히 위기가 닥쳤다. 후에 가서는 그녀가 매일 토요타 차를 몰고 귀가하자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리고는 그녀와 그 홍콩의 여(余) 사장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좋은 일이 그녀에게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부터 가정 내의 불화가 끊임없이 계속되었지만, 그는 이런 사실을 친구들에게는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지도교수로서의 이미지에 행여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까봐 두려워서 그랬던 것 같았다. 자기 부인도 자기를 따르지 않는데 어떻게 천하의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겠는가?

며칠 전에 다툼이 있은 후 그녀는 집을 나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어제는 그가 금엽부동산 회사로 그녀를 찾아갔다가, 여(余) 사장이 모든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 뒤에 서서 허리를 굽히고 거의 몸을 붙이다시피 한 채 한 손으로 컴퓨터를 가리키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직원 몇 명이 유약진을 보더니 눈빛이 이상해지면서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창피해서 물러나왔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제서야 호일병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그의 고충을 듣고 나서 호일병이 말했다.

“우리 철(鐵) 형제 맞지? 그래! 철 형제가 모이면 팔 톤짜리 망치로 내려쳐도 떼어놓을 수가 없지. 우리 철 형제끼리 얘기하면서 말 빙빙 돌릴 필요 없잖아. 내 생각을 말하라면, 사람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사람이 대세를 보고 대세를 따르게 되면 물을 끓이다가도 자동차를 만들게 되지만, 대세를 따르지 못하면 물을 마셔도 이빨에 끼고, 물을 끓여도 냄비 바닥에 눌러 붙게 마련이야. 조만간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어.

내가 보아하니 네 마누라에게도 장점이 있어. 대세를 볼 줄 알고 조류를 따를 줄 알아. 그 대세나 조류라는 것은 개개인의 감정을 살펴주지는 않거든. 사람들을 개미마냥 휩쓸어 가버린다고. 역사의 조류는 항거할 수 없다고 한 모택동 주석의 말씀을 나는 체험을 통해 각골명심(刻骨銘心)하고 있어.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관(官)이면 올라가야 하고, 재물이면 벌어야 하는 거야(升官發財). 그럴듯한 인물 치고 이 노선을 따르지 않았던 사람 어디 있는지 한번 손가락으로 세어 봐라. 없잖아!”

이어서 호일병은 자신이 얼마 전에 겪었던 일 한 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省)에서는 지금 지난 번 홍수 때 홍수와 싸우고 수재민을 구제한 활동상황에 대한 대형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그 예산이 자그마치 사백만 위안이나 된다고 했다. 그도 입찰에 참여했고,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했으나 결국에는 문 부성장의 아들인 문좌량(文左良)에게 낙찰되었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어쩐지 네가 몹시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돈 벌 길이 막혔었구나.”

호일병이 말했다.

“문좌량 그 자식은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 자식의 회사는 무슨 일이든 다 한단 말이야. 게다가 언제나 큰 돈을 다 긁어모은다니까. 그 자식에겐 이런 전시회쯤이야 뭐 장아찌 한 종지 정도밖에 안 돼. 권력이 뒤에서 조종하지 않는 공공사업이 어디 있는 줄 알아? 그 인간들은 돈을 안 벌려고 해도 돈 안 벌기가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려울 거야. 여태껏은 제 아버지 말 한 마디면 모든 게 해결되었고, 이후부터는 그 인간의 말 한마디면 다 될 거야. 권력과 돈을 가진 자가 말해도 안 되는 일이 인문(人文) 정신을 중시하는 사람이 말한다고 될 줄 아냐?"

내가 말했다.

“문좌량 그 인간의 할아버지는 회해(淮海)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 증조부는 마일(馬日) 사변 때 피살당했어. 그러니 너 호일병과 그 인간이 어떻게 비교가 되겠어?”

유약진이 말했다.

“호일병, 너 지난 일이년간 속물로 변했구나.”

내가 말했다.

“그건 다 호일병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어. 고상한 사람을 만나면 그가 속물이 되는 거고, 속물을 만나면 저 인간이 고상한 사람이 되는 거야.”

호일병은 웃으면서 말했다.

“대위 형님과 마찬가지지. 관리를 만나면 학자가 되고, 학자를 만나면 관리가 되는 거지.”

이어서 말했다.

“유약진!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예 우리 회사로 와서 부사장 맡는 게 어때? 다른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 대위한테도 전에 권한 적 있었지만, 이제 저 친구는 궤도에 올랐으니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 요즘은 저 인간이 도리어 나를 무시한다니까…. 요즘은 권력과 돈만 힘을 쓰는 것 같아. 유약진 너는 이 둘 중에 아무 것도 없는데다, 자네 그 꽃 같고 옥 같은 안사람이 자네보다 돈을 열 배나 더 많이 버는데 문제가 안 생길 수 있겠니? 문제가 안 생긴다면 그건 내가 인성(人性)을 오해한 것이고, 인간이 사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좀 더 낫기 때문일 테지. 나 정말로 하는 말인데, 그냥 나한테 오지 그래? 우리가 회사만 좀 더 키우면 그땐 몇 천 위안, 몇 만 위안은 문제도 안 되고, 몇 백만 위안도 장아찌 종지 같은 것에 불과할 거야. 그때는 너도 능약운을 집안에 붙들어 놓을 수가 있어.”

유약진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별로인데….”

내가 말했다.

“유약진은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니 교편 잡도록 가만 놓아두게. 벼슬하고 돈 버는 일은 이 친구에겐 고통스런 일이야. 이 친구는 그런 세속적인 것은 하찮게 보잖아. 이 친구가 오히려 자네한테 물을 걸? 그런 많은 돈이 무슨 소용 있냐고….”

호일병이 말했다.

“그런 많은 돈이 무슨 소용 있냐고? 그게 바로 선생들이 하는 소리지. 선생들의 말씀은 책을 열고 보면 구구절절 훌륭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모를 소리들뿐이지. 일에 닥쳐서 다시 책을 펴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해보려고 하면 그게 절대 안 들어맞는다는 것만 발견하게 돼. 세상은 권력과 금전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두 가지 원칙만 따지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안 따지거든. 세상이 그렇게 속되다네. 많은 돈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 문제라면 빌 게이츠한테 가서 물어봐…. 나는 아직 대답할 수 없으니까.”

유약진이 말했다.

“나는 돈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아. 정말이야. 그 많은 돈이 다 무슨 소용 있나?”

내가 말했다.

“호일병이야 상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말도 장사꾼처럼 하고, 현실의 시장(市場)만 중시하지. 나는 관에 몸을 담고 있으니 말도 관의 말을 하고, 현실의 그 바닥(江山)만 중시하지. 유약진 너는 교수로 있으니 천하(天下)와 천추(千秋)를 말하고 천당에도 자기 자리를 마련해 두고 있는 거야. 우리는 각자 자기 자리에 있는 거지. 유사 이래 총명한 사람들은 모두 천당을 백성들에게 양보했다네.”

유약진이 말했다.

“호일병은 일찌감치 경제동물이 되어버렸고, 대위 자네도 금방 정치 동물이 되어버릴 거고…. 나는 그래도 역시 사람으로 살고 싶네.”

호일병이 웃으면서 말했다.

“유약진 네가 우리보다 한 급(級) 위군!”

유약진이 말했다.

“급의 차이가 아니라 질(質)의 차이이지.”

내가 말했다.

“유약진! 네가 우리의 말에 찬성하지 못 하더라도 그래도 최소한 우리를 이해해 줄 수는 있잖아?”

그가 얼른 말했다.

“너희들을 이해하고말고. 내가 좀도둑들을 이해할 수 있듯이….”

호일병이 말했다.

“난해한 이야기 하지 말고 까놓고 얘기해 보자. 말로 하니까 현실이 비현실적인 것보다 더 난해해지는군. 머리 위에 닥친 사건은 누가 뭐래도 현실이고, 현실은 아무래도 속물들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 많은 돈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귀 참 못 알아듣는군! 최소한 자네 마누라는 붙들어 앉힐 수 있을 것 아냐! 이렇게 현실적인 세계를 마주 대하고서 그 누구도 혼자서 감상적이 될 수는 없는 거야. 세속에 반항한다는 것은 조류에 반항한다는 것이고, 역사의 합리적인 추세에 반항한다는 것이야. 이것은 역사의 비극이 아니라 반항자의 비극일세. 시대의 조류를 관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뭔지 아나? 미인이 누구의 품안에 가서 안기는지 보면 돼(看美人們倒進誰的懷里去).”

유약진의 안색이 변했다. 호일병은 못 본 체하고 잔인하게 말을 계속했다.

“미인은 행복을 추구하려는 자기의 본능에 따라 예민하게 방향을 선택하는 뛰어난 재주를 지녔지. 그녀들을 어리석다고 생각지 말게. 사실 전혀 어리석지 않아. 자네가 문좌량의 그 자리에 앉게 되면 한 떼의 미인들이 자네를 둘러싸고 앙탈하고 질투를 해댈 텐데, 그게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겠나? 어떤 경지일 것 같은가? 생각을 좀 해보게!”

유약진은 고개를 마구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면 뭐하나, 그녀들을 받아줄 정력도 없네. 이 세계가 사람들을 향해 드러내 보이는 행복은 모두 가짜야. 장사꾼들이 모든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어. 진정한 행복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고, 진정한 가치는 성찰하며 살아가는 인생이야.”

호일병이 말했다.

“유약진 자네가 하는 말은 역시 선생님 말씀 같아. 그렇지만 왜 모두들 장사꾼을 따르고 선생님은 따르지 않는 걸까?”

유약진이 말했다.

“그들은 자신의 물질적 욕망에 굴복하고 만 거야.”

호일병이 말했다.

“아무도 따르는 사람이 없는 교사를 교사라고 할 수 있겠나? 안타깝지만 지금은 교사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아닐세.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이미 다 잘 알고 있어. 산다는 것은 곧 생존을 의미하고, 생존을 위해서는 각종 문제가 해결되어야지. 그러면 문제는 무엇으로 해결하지? 권력과 돈이라는 두 개자식일세! 아무리 높이 떠다녀도 언젠가는 평범하고 속된 현실의 지표면에 내려와야 해. 공중에 떠다니는 언어는 공허하고 또 점점 말도 계속 이어가지 못하게 될 걸세. 이게 교사의 비애이지. 어쩌면 이 시대는 순교자를 필요로 하는지도 몰라. 그러나 그 순교자는 또 어디에 있지? 선생들은 모두 너무 똑똑해서 원칙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실천하도록 요구하지만, 자기 자신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결석을 해버려. 그리고는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 행세를 하지. 행세 안 할 수가 있어?"

나는 그가 몇 년 전 내가 화원현(華源縣)에 흡혈충병 예방조사를 나갔던 일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다. 아니면, 혹시 내가 작년에 인사평가위원을 맡았던 일을 암시하고 있는 것인가? 그 일들은 모두 뒤돌아보면 부끄럽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나설 수 있는가? 나는 순교자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호일병의 표정을 살펴보았으나 특별히 나를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보다….

호일병이 말했다.

“매 왕조의 지식인들은 그 사회 최후의 도덕의 제방(堤防)이었지. 그러나 오늘날 그 제방은 이미 무너져버렸어. 그들조차도 이윤 극대화의 방식에 따라 인생을 조작하는 조작주의자들이 되어버렸어. 날은 추운데 무명 저고리 한 벌만 입고 있다가 눈앞에 얼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격이지. 그래서 보리수 아래로 뛰어가서는 두 눈을 감고 우주의 문제를 조용히 생각하는 거야. 중생을 구제할 방법은 고민하면서도 그에게 자기 저고리 벗어줄 생각은 안 한단 말일세. 자신이 얼어 죽을 생각은 안 한다고! 그게 선생이야. 다른 사람더러 그를 따르라고? 나를 위해 변호하지는 않겠네. 난 타락했어. 희생이든 책임감이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대위, 자네는, 자네도 여기서 가식적으로 굴지 말라고. 우리 철 형제끼리는….”

내가 말했다.

“그럼 나도 자네 진영에 들어가지.”

유약진이 말했다.

“자네들은 시대의 조류를 바짝 따르려고 하는데, 그러고도 타락 하지 않고 배기겠어?”

호일병이 말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야! 인격 수양을 전공한다는 그런 인간들도 다 내가 보니까 뭐 그만그만한 인격들이던데…. 그 사람들 욕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역사에 반항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거야. 역사는 항거할 수 없는 거야.”

유약진이 말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야! 연약하고 무기력한 사람만이 책임을 역사에게 떠넘기지.”

호일병이 말했다.

“선생님과 변론할 생각은 없네. 우리 현실로 돌아와서, 정말로 우리 회사에 올 텐가, 안 올 텐가?”
유약진이 고집스레 말했다.

“안 가!”

호일병이 말했다.

“그럼 관둬! 싫다는 너를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없는 거니까.”

이어서 말했다.

“안 오는 것도 괜찮아. 사실 나처럼 이 배에 타게 되면, 가끔은 앞에 앉아 있는 놈이 개새끼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놈과 식사도 같이 하고 그래야 하거든. 사람과 개가 한 상에서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어? 나야 계속 참다 보니 이젠 익숙해졌어. 돈이 걸린 문제에선 절대로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거든! 유약진은 온다고 해도 아마 못 참아낼 거야.”

유약진은 눈앞의 찻잔을, 그 안에 무슨 신비한 물건이라도 있는 것처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 이제 지면으로 내려가서, 어떻게 하면 능약운을 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대화가 아무리 붕 떠다니다가도 언젠가는 지면으로 내려와야지.”

유약진이 말했다.

“돌아오게 하면 뭐하나! 가고 싶은 데로 가라고 해! 아예 날 찾아와서 괴롭히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마음이나 안정되게.”

호일병이 말했다.

“자네 화나서 하는 소린가 아니면 진심인가? 진심이라면 우리도 그만두겠네.”

유약진은 아무 말도 않고 눈에 힘을 주고 찻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호일병 자네가 경험이 있으니까 여자를 가장 잘 이해할 게 아닌가? 자네가 가서 한번 설득해 봐.”

호일병이 말했다.

“입 하나만 달랑 들고 어떻게 설득을 하나? 입 하나만 달랑 들고 히틀러에게 사람 죽이지 말라고 권할 수 있어?”

그러면서도 유약진에게 능약운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더니, 자기 휴대폰을 꺼내어 번호를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자 내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나는 휴대폰을 받아서 말했다

“제수씨, 저 지대위입니다. 우리 호 사장이 제수씨를 찾아뵙고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는데요….”

능약운이 말했다

“어떤 호 사장 말인가요?”

호일병을 팔아도 별로 신통한 반응이 없으므로 나는 얼른 일어나서 문 밖으로 나가서 전화로 말했다.

“호일병이 제수씨를 만나서 드릴 이야기가 있다고….”

그녀가 말했다.

“만약 저를 대상으로 무슨 사상이나 정치교육 같은 걸 시키려는 거라면 먼저 그 인간부터 교육 좀 시키세요. 그렇게 예민해서야 어떤 사람인들 견뎌 내겠어요? 그 사람 사상교육이나 제대로 해주시면, 저는 아무 문제없어요.”

내가 한참 동안 설득하고 나서야 결국 그녀도 만나보겠다고 승낙했다. 내가 말했다.

“저와 호일병이 차를 갖고 가겠습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그녀가 말했다.

“제가 갈게요.”

이십분 후에 금천호텔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내가 자리에 돌아와 앉자 호일병이 말했다.

“그 여자 앞에선 나를 호 사장이라고 부르지 마. 제수씨네 사장이 나보다는 더 잘 나가잖아. 그렇게 불러도 아무 의미 없어.”

내가 말했다.

“호일병 자네 허영심이 왜 이렇게 강해졌어? 그런 얘기를 다 하다니…. 사실 따지고 보면 그쪽도 미장이 출신 아닌가. 무서울 게 또 뭐 있나.”

그가 허겁지겁 말했다.

“아, 따져야지, 따지지 않을 수 있어? 먹혀들지 않는 카드는 흔들지도 말아야지! 자네 바닥에서 서열 분명하게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야. 누가 처장 카드 갖고 청장 앞에서 흔들겠어? 재산이 많아야 숨도 맘껏 쉰다고, 그게 우리 쪽의 게임 규칙이야. 안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그렇게 끝도 없이 돈을 벌려 하겠나?”

유약진이 말했다.

“능약운이 뭐 별거라고….”

내가 말했다.

“별거인지 아닌지는 우리와 상관없지만, 어쨌든 자네 마누라이니 우리도 인정해야지.”

나와 호일병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기다렸다. 토요타 차가 나타날 때마다 살펴봤다. 약속한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 링컨콘티넨털 한 대가 우리 옆을 지나치는 것을 보고 호일병이 말했다.

“저 차 정말 좋은 차야!”

내가 고개를 들고 차를 바라보는데, 능약운이 바로 그 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내가 막 그녀를 부르려는데 호일병이 갑자기 나를 확 끌어당겼다. 능약운은 계단 위에 잠시 서 있더니 문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색 바바리코트에 머리를 어깨까지 드리운 모습 하며 몸을 돌려 걸어갈 때의 그 유유한 모습에서 특별한 기품이 느껴졌다.
호일병이 말했다.

“몇 달 못 본 새에 능약운도 정말 많이 변했네. 아주 전형적인 귀부인 분위기가 느껴져.”

내가 말했다.

“원래 배우였잖아! 저렇게 포장까지 해놨으니 오늘의 그녀와 어제의 그녀가 달라 보이는 것도 당연하지.”

그가 말했다.

“그만 두자! 난 오늘 능약운과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거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옷을 너무 캐주얼하게 입고 왔어. 이렇게 입고 다른 사람한테 무슨 말을 꺼내겠나?”

이어서 말했다.

“나는 토요타를 몰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링컨 콘티넨털을 몰고 다니다니! 나까지 기가 다 죽네.”

사실 나도 기가 죽기는 했지만 말했다.

“호 사장, 자네 허영심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내가 가서 이야기해 보겠네. 안 돼도 그만이지.”

그가 말했다.

“사실 딱히 할 말도 없어. 저 여자의 저 기세 좀 봐. 어디 유약진이 누릴 수 있는 여자야? 저 정도 클래스의 여자는 백만장자는 돼야 소화할 수 있는 거야. 유약진? 쳇! 나도 볼 만큼은 봤는데, 세상에는 기적이란 없는 거야. 자기 마누라까지 장사꾼과 눈이 맞아 도망을 치는 판에 그래도 이 악물고 뭐, 지혜를 사랑한다고? 그놈의 지혜가 얼마나 지혜로운지는 모르지만, 유약진 그 녀석 지난 이삼년 여자 복 그만큼 누렸으면 됐어. 만족할 줄을 알아야지.”

내가 한사코 말했다.

“그래도 한 번 가보자고. 안 그러면 친구한테 미안하잖아.”

그가 말했다.

“너는 이런 말 못 들어봤나? 하늘 아래엔 가난한 사람들이 떳떳해 할 일은 하나도 없다는 말? 갈 테면 네 혼자 가봐!"

그때 능약운이 로비에서 나오더니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호일병은 몸을 돌려서 걷기 시작했다. 나를 끌고 거리까지 나와서 말했다.

“왜 사서 망신을 당하려고 해?”

그러더니 능약운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급한 일이 갑자기 생겨 못 가게 되었다고, 나중에 다시 날을 잡아 이야기하자고 했다. 나는 나무숲 사이로 능약운이 전화를 끊고 가뿐하게 차 옆으로 다가가 차를 몰고 사라지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호일병이 말했다.

“유약진 녀석도 앞으로 살기 힘들겠다. 큰 바다를 구경해본 사람에겐 웬만한 물은 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曾經滄海難爲水)고 했어. 저런 미인하고 살아봤으니 앞으로 어떤 여자가 눈에 차겠어?”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내가 말했다.

“호일병, 자네 허영심이 너무 심한 것 아냐?”

호일병이 말했다.

“돈 가진 사람은 자기보다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무서워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기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을 무서워하지. 그녀가 링컨콘티넨털을 몰고 와서 내 앞에 딱 서는데, 따귀 한 대 맞은 것보다 더 참을 수가 없더라고.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이 왜 끝도 없이 돈을 벌려고 하겠나? 돈은 하찮은 것이라는 말은 억만 장자는 되어야 감히 할 수 있는 말이지 백만장자 정도로는 그런 말할 자격도 없는 거야.”

다방에 들어서니 유약진이 묻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호일병이 말했다.

“이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안 오네. 십 분이나 지났는데도 안 오고, 왜 안 올까?”

내가 말했다.

“전화를 다시 한 번 걸어볼까?”

유약진이 말했다.

“그만 두게, 그만 둬.”

호일병이 말했다.

“다음에 다시 불러서 잘 말해 볼게.”

유약진은 기가 약간 죽은 듯이 보였다. 호일병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세상 모든 일엔 다 연분이란 게 있어서 억지 부린다고 되는 건 아니야. 만약 대위 자네한테 관운이 안 따라줬으면 목숨 걸고 덤볐어도 감투 하나 안 떨어지는 거야! 다 인연이야. 자네 앞에 떨어지지 않는 것, 자네 앞에 떨어졌다가 떠나는 것, 그게 다 연분이 안 닿아서 그래. 연분이 안 닿는 것은 자네 것이 아닌데 뭘 어떻게 하겠어?”

내가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유약진이 말했다.

“자네 능약운 만나 보았지?”

내가 얼른 대답했다.

“못 봤다니까. 얼굴도 못 봤고, 말도 한 마디 못 해봤고….”

유약진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그가 조금은 가여웠지만,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호일병이 말했다.

“사내대장부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 위에 우뚝 서 있는데 무슨 비바람이 무섭겠어? 무서울 것 하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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