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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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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71>

홍수와의 전쟁 : 절정(絶頂) 체험

***71. 홍수와의 전쟁 : 절정(絶頂) 체험**

기상청에서 홍수가 올 거라고 예보하더니 정말로 왔다. 성 내의 몇 줄기 강의 수위가 전체적으로 경계수준을 넘어설 때쯤, 마 청장은 퇴원했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긴급속보에 수만 명의 군인들이 이미 홍수 방어전선으로 투입되었다. 마 청장은 집에도 안 들어가고 밤에도 사무실에서 주무셨다. 마 청장이 소파 위에서 하루 저녁 주무시고 그 다음날 정소괴가 집에서 일인용 침대를 날라 왔다. 나도 마 청장의 건강이 매우 걱정되어서 사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사모님도 아예 여기서 마 청장님을 돌보시라고 했다. 기존의 방식대로 네 명으로 구성된 열여덟 조의 의료 소분대가 호수 지역으로 보내졌다.

마 청장의 사무실엔 임시로 핫라인 전화가 세 대 놓여졌고, 텔레비전도 옮겨와서 매 시간 방송되는 홍수 뉴스에 모두가 가슴을 졸였다. 양자강 물이 밀어닥치는 바람에 화원현의 행복 댐에 구멍이 뚫렸다. 순간 가련한 농민들 생각이 나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마 청장께 당장 위생대를 데리고 행복 댐으로 출동할 것을 요청했고, 마 청장도 동의했다.

“만약 올해 전염병이 유행한다면 분명히 그 지역에서 시작될 걸세. 물에 몇 명 빠져죽는 걸로는 부족해서 병으로 사람들이 다 죽어가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되지. 만약 그렇게 되면 성(省)이며 부(部)에는 또 뭐라고 보고한단 말인가!”

나는 맹세하듯 말했다.

“마 청장님, 마음 놓으십시오!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나는 소분대 셋을 이끌고 성 홍수방지 본부의 창고에서 생수를 한 트럭 싣고 호수 지역으로 향했다.

저녁 일곱 시에 행복 댐에 도착하자 제방의 무너진 부분을 아직 막지 못하고 수백 명의 전사(戰士)들이 부근에 몰려 있었다. 이미 모래 운반선을 네 척이나 가라앉혀 댐의 구멍을 막으려 했지만 모두 물에 휩쓸려서 댐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제방 위에는 이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간이 텐트도 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물에다 똥을 누고 오줌을 싸는데, 또 어떤 사람은 호수 물을 손으로 퍼마시고 있었다.

내가 갖고 간 한 트럭의 생수가 처음으로 도착하여 나는 당장 현장의 지휘본부로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호수 물을 마시는 행위를 즉시 중지하라는 긴급방송을 하고는 얼른 생수를 배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감히 이런 행위들이 바로 흡혈충 병의 발병원인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저 물 속에 있는 전사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들이 예방주사를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지휘본부를 향해 제방을 따라 일백 개의 임시 화장실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지휘본부장은 당면과제는 위급상황을 벗어나는 것이니 화장실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나는 그와 이야기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얼른 촛불 아래에서 보고서를 작성해서 그에게 서명하도록 했다. 그는 보더니, 감히 책임질 일이 생길까봐 서명을 하고 동의했다. 내가 그에게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기도록 요구하자, 그가 말했다.

“사람들 머리에 덮을 천 조각도 하나 없는데 화장실부터 지으라니….”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각 마을의 책임자들에게 통지하여 일에 착수했다. 나는 그제야 한숨 돌리고 핸드폰으로 마 청장님께 전화 보고를 올렸다.

의료대원들은 봉고차 안에서 잠을 잤다. 고생스러운 것은 말할 수도 없었지만, 어쨌든 수재민이나 홍수와 싸우는 전사들보다는 훨씬 편한 셈이었다. 이튿날 오후에 사람들이 속속 더위를 먹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우리 열 몇 명은 십 리 길이의 제방 위로 흩어져서 두 명씩이 하나의 의료센터를 꾸리기 시작했다. 오후에 문 부성장이 와서 즉석에서 보고회가 열렸고, 나도 참가했다. 보고회에서 나는 식수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문 부성장께 건의했고, 그는 즉시 측근에 있던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이미 서른 시간도 넘게 잠을 못 잤지만 정력은 도리어 왕성했다. 나는 나 자신이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느낌과, 정말로 무슨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도취되었다. 그것은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그 느낌 속에 들어 있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체험을 위해서라면 나는 고생하는 것도, 지치는 것도, 어떠한 희생도 두렵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고 이런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반드시 내가, 내가 맡아서 해야 한다.

한밤중에 마 청장님이 열여섯 명의 의사들을 데리고 왔는데, 원진해도 같이 왔다. 내가 속으로 약간 유감스럽게 생각한 것은, 이제부터는 무슨 말이나 지시든지 마 청장님의 이름으로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또 강원구(江源口) 농장에서 긴급상황을 알리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 청장은 즉석에서 일을 나누어 배분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도 세 분대를 이끌고 달려가시기로 했다. 이튿날 정오 무렵 마 청장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지금도 아슬아슬한 제방에 구멍이라도 뚫리면 차도 못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진해 처장과 새로 온 네 분대를 남기고 나와 마 청장님은 차를 타고 강원구 농장으로 향했다.

강원구 농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매(梅) 서기가 탄 헬리콥터가 방금 안순완(安順垸)으로 떠났는데, 그쪽 상황이 더 위급하다는 것을 알았다. 마 청장님은 가볍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는 몇 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둑의 여러 관에서 물이 솟아나왔지만 제방이 무너지진 않았다. 저녁이 되자 제방 위에 설치된 등에 불이 들어왔고, 제방 아래에선 손전등으로 관들을 검사하고 있었다. 한밤중이 되어서 우리는 제방 위에서 돌아왔다. 교(喬) 농장장은 나더러 임시 초대소에서 묵으라고 했다. 임시 초대소는 농장 본부 이층을 비워서 마련한 방 몇 개로 새 침대, 새 탁자에 에어컨까지 달려 있었다.

우리를 마중 나온 농장 본부의 타이피스트가 말했다.

“이 침대 아직 아무도 사용한 적 없습니다.”

원래는 어제 매 서기가 온다는 통보를 받고 농장에서 혹시라도 여기서 매 서기가 묵게 될까봐 도시로 차를 보내서 몇 만 위안을 들여 에어컨, 침대, 탁자를 사오도록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매 서기의 헬리콥터가 농장 초등학교 운동장에 내려앉자마자 농장 본부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교실 하나를 열어서 현장 사무회의를 열더니 그대로 제방으로 향했고, 제방에서 돌아와서도 곧장 안순완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이쪽에서는 에어컨까지 다 준비해 놓았는데 막상 그 사람은 그냥 가버렸던 것이다.

마 청장님은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그곳에서 자지 않겠다고 했다. 기자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행여나 그들한테 걸려서 기사라도 나가면 뭐라고 이야기한단 말인가? 타이피스트는 마 청장이 거기서 묵지 않겠다고 하자 울상이 되어 말했다.

“안 묵으시면 헛돈 쓴 게 되잖아요, 헛돈 쓴 게….”

이런 이야기까지 듣게 되자 마 청장님은 더더욱 묵을 수가 없었다. 밖에 평평한 곳에다가 임시 침대를 설치하고 모기향을 하나 피우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소분대 하나만 제방 위에 남고 모두들 잠이 든 늦은 시각이었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마 청장님은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마 청장님이 무슨 생각을 하나 머리를 마구 굴려 댔다. 어르신 옆에는 상황 파악 잘하는 사람이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건너가 말했다.

“마 청장님, 아직 안 주무십니까? 아직 본인이 환자라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모기가 물어 대서….”

나는 모기향을 그쪽으로 밀어드리면서 말했다.

“저희 위생부문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쏟아 붓는데도 충분한 보답을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불공평합니다.”

“카메라의 초점이 제방 위의 사람들에게 맞춰지는 거야 뭐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사실 자네들 행복 댐에서의 상황은 텔레비전에도 다 나왔더군.”

“그깟 방송 한 번…. 제 생각엔 저희도 저희 업무를 매 서기에게 보고 드리고 건의라도 드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최소한 약품, 기계라도 좀 더 지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우리 내일 아침 일찍 안순완으로 갈까? 좀 그렇지 않을까?”

내가 아예 까놓고 말했다.

“매 서기의 다음 행보를 알면 좋으련만…. 저희가 먼저 그곳으로 가 있으면 뭐 그럴 것도 없지요.”

마 청장님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이야말로 암묵적인 인가(認可)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말했다.

“지금 몇 백 명이 제방 위에서 뛰어다니고 있는데, 모두들 고생하는 만큼 마땅히 드러낼 기회를 얻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야말로 모두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자네가 내일 아침 조직부의 종천우(鐘天佑)에게 연락해 보게. 내가 시켜서 전화 거는 거라고 하고, 그에게 주(朱) 비서에게 연락 좀 해보라고 하게.”

주(朱) 비서는 매 서기의 비서로 종 처장의 친구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내가 종 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십분 후에, 매 서기가 오늘 오후에 만산홍 농장으로 향한다고 알려주었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강원구 농장에 네 명을 남겨두고, 여덟 명을 데리고 만산홍 농장으로 향했다.

만산홍 농장에 도착하니 오 농장장은 이미 제방 위에 올라가 있었다. 마 청장은 내게 몇 마디 하더니 그도 또한 사람들을 데리고 제방 위로 올라갔다. 나는 농장 본부의 당직 반원에게 종이와 먹을 달라고 해서 표어를 몇 개 적기 시작했다.

“대규모 재난의 해에는 대규모 방역을(大災之年防大疫)!”

“대묘량 동지의 정신을 발휘하여 죽음과 병에서 사람을 구해내고 혁명의 인도주의를 실천하자!”

“병은 입으로 들어온다. 식생활 위생에 주의하자!"

등의 표어들을 막 붙이자마자 성 위성방송국의 기자들이 들이닥쳐서 오후에 매 서기를 취재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취재했고, 나는 전반적 상황을 소개했다. 소개가 끝나고 나서 그들은 또 그 표어들을 찍기 시작하더니 제방으로 자리를 옮길 준비를 했다. 내가 말했다.

“저희 마 청장님, 마수장 동지가 지금 제방 위에 있습니다. 마 청장님은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시자마자 제 일선으로 직접 뛰어드신 겁니다. 가서 한 번 만나보세요.”

기자 두 명이 역시 흥미를 느끼기에 내가 아예 그들을 따라나섰다. 제방 위에서 오 농장장을 취재하고, 또 마 청장을 취재하고, 의료대원들이 일하는 상황을 찍더니 또 총총걸음으로 헬리콥터가 내리는 장면을 찍으러 농장본부로 돌아왔다.

오후에 매 서기는 농장본부의 이층에서 현장회의를 열었다. 마 청장도 참석해서 위생부문의 수해방지 참여 상황에 대해 소개했다. 마 청장이 내놓은 세 개의 건의가 즉석에서 매 서기의 인가를 받았다. 회의 후에 모두들 매 서기를 둘러싸고 제방 위로 올라갔다. 매 서기는 마이크를 잡고 강개하여 격앙된 어조로 연설을 시작했다. 흰 와이셔츠와 흰 바지, 흰 구두를 신은 매 서기가 온 몸에 진흙투성이인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자 사람들이 감동해서 눈물까지 흘리려 했다.

초저녁에 나는 제방 위에서 헬리콥터가 이륙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회전하면서 위로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갑자기, 예상치도 못했는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석양 속으로 헬리콥터가 점점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작고 검은 점으로 변할 때까지 보면서, 그 헬리콥터는 하늘 위에서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이전부터 이미 내 대뇌의 어떤 고랑 가운데 머물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옛날에 그것을 잊어버렸는데 이 순간에 그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일종의 질식할 것 같은 충동이 나를 덮치더니 순간적으로 숨도 쉴 수 없고 마치 죽음이 바로 근처까지 온 듯했다. 이것은 일종의 새로운 체험이었다. 절정에 처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신비한 체험이었다. 이 체험과 비교하면, 다른 모든 행복은 낡은 걸레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농장 본부의 텔레비전으로 오후의 회의상황을 보았다. 마 청장남의 발언이 무려 이십초 간이나 방영되었다. 이어서 표어들, 의료대원들이 일하는 모습, 그리고 마 청장님의 인터뷰…. 모두 매우 흥분된 상태에서 마 청장님이 말했다.

“오늘에야 성 차원에서 방역 업무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군! 우리가 오길 아주 잘했어!”

홍수가 물러가고 방역 업무도 일주일 정도 계속되다가 대강 마무리되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거의 아프리카 사람처럼 되어 있었다. 며칠 후에 마 청장이 나에게, 재정부에서 일천 위안을 받아 시간을 내서 종(鐘) 처장과 주(朱) 비서에게 식사 대접을 하라고 했다. 그가 말했다.

“어떻게든 사례를 해야지. 난 안 갈 테니 자네가 해야 할 말 적절하게 잘해 주게.”

나는 종 처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렵게 시간을 잡아 주 비서와 함께 수원호텔로 모셨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사람 모두 악산현(岳山縣)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셋이서 표준말을 버리고 고향말로 얘기하다 보니 감정적인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그냥 일반 서민일 때에는 못 느끼지만 일단 높은 자리에 오르면 고향 사람이 얼마나 큰 자원인지! 이 바닥에서 사람들이 무슨 기준으로 모여서 서로를 돌보겠는가? 어느 지역 출신이냐 하는 문제야말로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이 바닥의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말이 같은 처장이지, 그들이 노는 바닥은 내가 노는 바닥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꺼내봤자 나만 촌놈이 되고 말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고향 이야기를 화제로 삼았다. 나는 또 고전적인 야한 농담 몇 개로 그들을 웃겼다.
헤어질 때 주 비서가 말했다.

“연초에 우리 고향사람들끼리의 모임이 있는데, 지 처장도 오시오.”

“귀엽게 봐주시고 전화만 걸어주십시오. 제가 물주 노릇 하겠습니다.”

“물주는 그쪽까지 차례도 안 돌아갈 거요.”

“그럼 뭐 얻어먹지요. 얻어먹는데 나중에 가서 저 때문에 파산했다거나 뭐 그런 원망 하시면 안 됩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늘 이런 의외의 소득이 있을 줄이야!

한 달 후에 성 차원에서 홍수, 재난과의 싸움에서 전면적으로 승리한 것을 경축하기 위한 문예의 밤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했다. 북경에서 팽려원(彭麗媛), 송조영(宋祖英), 유환(劉歡) 등 연예인들이 초청되었고, 성의 몇몇 위성방송국에서 연합 방영까지 했다. 위생청에도 표가 몇 장 돌아와서 나도 갈 수 있었다. 몇 명 성악가는 감정을 실어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까지 흘렸고,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 아래로 내려와 열사(烈士)의 부모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공연이 끝나자 매 서기와 문 부성장 등이 무대로 올라가 출연자들과 인사를 나누자 모두 기립하여 큰 소리로 〈조국을 노래하세(歌唱祖國)!〉를 불렀다.

매 서기와 문 부성장 및 유명 성악가들이 그렇게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의 심장이 또 다시 쿵쿵 뛰기 시작하면서 질식할 것 같은 충동이 나를 덮쳐 왔다. 바로 그 순간 숨도 쉴 수가 없었고 마치 죽음이 바로 근처까지 온 듯했다. 나의 눈빛은 계속 무대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예술가들이 정오에 뜬 태양마냥 잘 나가도 저들의 운명 역시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군! 어쨌든 지금 전 성(省)에 최소한 이천만 명이 저 무대를 보고 있겠지? 이천만 명이나! 나는 스스로가 중요 인물이 된 듯한 느낌, 모든 것을 주선하고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체험했다.

이런 절정의 체험을 통해 나는 더욱 잘 인간을 이해하고 인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런 충동을 통해 역사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는 전혀 황당한 게 아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뭣 때문에 마케도니아에서 인도까지 쳐 나갔고, 칭기즈칸은 또 뭣 때문에 몽고에서 유럽까지 쳐 나갔겠는가? 그들이 정신병 환자였기 때문에 그랬을까? 천만에! 그 사람들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신병 환자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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