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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단지가 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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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단지가 꾸는 '꿈'

<파주출판단지 협동조합 이기웅 이사장 인터뷰>

“아직 미흡한 게 많은데 너무 거창하게 알려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정직하게, 본만큼만 써 주십시오.”

앞서 기대하며 출판단지를 찾았던 손님들의 질책이 컸던 탓일까. 출판단지 사업협동조합 이기웅 이사장의 첫 당부는 의외로 부풀리지 말고 정직하게 써 달라는 것이었다.

*** 어린이 행사로 시작하는 출판단지 **

출판단지 공식 첫 행사는 지난 10일부터 열흘간 열린 ‘어린이 책 한마당’이다.

“어린이 시절이 있어야 청소년도 있고, 어른도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책이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고, 출판단지도 어린이가 크듯이 무럭무럭 자라자는 의미에서 첫 행사를 어린이 행사로 기획 했습니다”

책 행사라면 언뜻 도서전이 떠오른다. 하지만 ‘어린이 책 한마당’은 흙을 만지고, 옥수수 밭에서 책을 읽고, 샛강 체험을 하는 등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행사가 많다. 주제도 ‘자연과 함께 놀아요’, 책이 아니라 자연과 노는 게 행사의 목적이다.

“자연을 아끼고, 사람을 아낀다는 것이 출판단지의 정신입니다. 아끼려면 우선 즐길 줄 알아야죠.”

평일이지만 50여명의 어린이들이 흙장난을 하고 옥수수 밭 사이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도심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 생산비 30% 절감 효과 기대 **

출판사, 인쇄공장뿐 아니라 유통업체와 제지사 등 출판에 관련된 모든 산업들이 출판단지로 모이고 있다.

9월말 현재 창비사, 한길사 등 7개 출판사, 보진재 등 8개 인쇄공장 등 18개 업체가 입주를 완료했고 올해 말까지 40여개 업체 입주가 예정돼 있다. 2005년 입주를 신청한 업체들이 모두 들어오면 1백50여개 출판업체가 모여 유례없는 출판도시가 완성된다. 조합측은 업체들이 흩어져 있을 때의 손실과 물류비용을 아껴 생산비 30%를 절감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출판은 시대를 읽고, 문화를 읽는 일. 책을 만드는 사람이 책을 읽는 사람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다.

“모여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덩치가 큰 공장들입니다. 소프트웨어 역할을 할 출판사가 파주로 오느냐 여부는 회사 사정에 맞춰 회사가 결정할 문제죠.”

실제로 민음사의 경우 서고는 파주로 옮겼지만 편집국도 함께 옮길지 결정은 아직 내리지 못한 상태다.

*** “출판은 정신적 엔진” **

그간 언론보도를 통해 이기웅 이사장은 ‘출판이 문화정보산업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신념을 밝혀왔다. 출판도시에도 도서전뿐 아니라 독립영화제나 거리 연극제 등을 열어 복합문화도시로 키워나가고 싶다고도 했다.‘출판이 문화의 중심’이라는 말은 언뜻 열화당 대표인 이사장의 욕심처럼 들리기도 한다.

“문화예술의 모든 분야 책이 학술적으로 활발히 출판돼야 그 분야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출판이 모든 분야와 연계돼야 하고 중심이 돼야 하는 이유는 출판은 정신적 엔진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공사 중인 건물 곳곳에는 전시,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 출판계가 지식 생산소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들린다. 문학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가 외국 서적 번역에 주력하는 게 한국출판계의 실정이다.

“빛나는 예술, 문화 활동의 결과물을 가지고 출판을 하는데, 그게 없으니...”

이 이사장도 말끝을 흐린다.

*** 출판단지, 갈 길이 멀다 **

올 일년 동안 출판단지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우선은 모든 업체를 잘 입주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균형 있고 안정되게 도시를 구성 해야죠.”

2005년까지는 그저 도시를 완성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희망은 소박하게도 들린다.

그러나 도시를 계획대로 완성하기까지 출판단지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많다.

우선 입주업체가 늘어날수록 주변 환경 보전이 힘들어 질 것이다. 조합 측에서는 환경보전이 출판도시 성패를 좌우하는 최대 관건이라는 인식하에 환경보전에 힘을 쓴다지만 공장이 들어선 산업 시설의 특성상 조금만 소홀해도 환경을 심하게 훼손할 수 있다.

9월에는 출판단지와 인근 통일동산, 교하단지 등의 하수처리를 위해 건설 중이던 파주하수종말처리장이 철새 도래지를 훼손하여 문화재청으로부터 공사중지 명령을 받았다. 직접적인출판단지 시설은 아니지만 도시의 덩치가 커질수록 직간접적으로 주변 생태계를 해칠 가능성은 산재해 있다. 생태 친화적 출판도시는 환경보전에 대한 입주업체 모두의 의지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상태로선 출판단지의 생산성도 아직 미심쩍다.

출판단지에 입주한 대형 인쇄소가 실제로는 단행본을 인쇄하지 않아 고양이나 일산의 소형인쇄소에 하청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문제집류의 대량 출판물만 인쇄하는 인쇄소와 단행본을 위주의 출판사가 모여 과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실제적인 생산비 절감효과를 내기 위해 입주 업체들 간의 협의와 조정이 요원한 실정이다.

내실을 갖추기 전에 업적부터 세우려는 욕심도 경계해야 한다. 시설들이 다 들어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출판단지가 유네스코 책의 도시 유력후보라는 소문부터 퍼졌다. 일회성에 그치기 십상인 국제 도서전을 유치하자는 의견도 무성했다. 자기 이름을 내고 싶은 욕심을 넘어 내실을 갖춘 산업단지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반성 또한 필요하다.

"출판도시에서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나 투명하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책이 깨끗한 환경에서 정직하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정신적인 감동을 주는 도시가 됐으면 합니다.”

생태친화적인 사업단지, 지식생산소가 되는 출판사, 정신적 감동을 주는 도시 등 이 이사장의 포부는 현실보다 크다. 아직은 건물 공사로 어수선하기만 한 출판단지가 그 큰 포부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을런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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