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대묘량(戴妙良)의 장례식**
온천에서 돌아온 후 나는 약정처(藥政處) 처장으로 발령이 나서 정소괴의 보스가 되었다. 이 사실이 그를 매우 불편하게 했는데, 그의 웃는 얼굴도 그 불편함을 감춰주지는 못했다. 나는 내가 처장이 됨으로써 일이 순리대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정소괴 네가 약리학 논문 한 편이라도 써봤어? 지식화 시대에 업무도 똑 소리 나게 못하면서 누구한테 기어오르려고 해? 처장 자리에 앉고 나서 기분이 날아갈 듯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저 집에서 동류 앞에서나 폼을 잡을 뿐, 밖에 나와서는 절대로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처장이 뭐 별거냐? 만리장정(萬里長征)에 이제 겨우 삼리, 오리 왔다!
그날 서무실에서 황 주임이 전화를 걸어서 말했다.
“대묘량(戴妙良)이 세상을 떴습니다.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해서.”
대묘랑은 원래 약정처 처장이었는데 십년 전에 부청장 자리를 두고 마 청장과 한번 제대로 붙었다가 후에 시(施) 청장이 그를 차버렸다. 마 청장은 부임 후에 그를 한직으로 보내서, 한 번 가더니 삼년을 썩고 있었다.
1987년이었던가,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쉰 살의 나이에 퇴임하였다. 딸은 외국으로 나가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홀연히 만산홍(萬山紅) 농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문화혁명 중에 그가 육년 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이번에도 벌써 육년이 되었다. 그는 가끔 돌아오긴 했지만 며칠 안 지나 다시 돌아가곤 했다.
듣자하니 대묘랑은 그 농장에서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해서 농장에서 몇 번이나 그를 모범으로 삼고자 했으나 모두 위생청 때문에 좌절되었다고 했다. 그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내 인생은 퇴임 후에 겨우 제자리를 찾았어.”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진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실패자의 자기 관용이라고만 생각했다. 중의협회에 있을 때 그와 몇 번 말을 해봤으나 지난 이년간은 그저 경이원지(敬而遠之)했을 뿐이었는데, 방금 농장에서 전화가 와서 오늘 아침 그가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위생청에서는 차를 보내어 시체를 모셔 와서 화장하기로 했다. 나는 대묘량의 과거를 생각해서, 그 일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황 주임에게 말했다.
“그쪽 사무실에서 알아서 처리하라 하고 그만 치웁시다.”
황 주임이 말했다.
“그분은 약정처 사람 아닙니까? 아무래도 약정처에서 나서서 책임을 져야지요.”
“퇴직하신 분이잖습니까. 그쪽에서 이런 일도 처리 안 하면 그럼 그쪽에선 도대체 무슨 일을 한다는 겁니까?”
“농장에서는 위생청에서 높은 어른이 한 분 와 달라고 하는데요. 대묘량이 거기서는 인간관계를 아주 잘 꾸렸나 봅니다.”
황 주임이 “그쪽”이란 말을 강조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이쪽” 생각을 더 하게 했다.
내가 말했다.
“어떻게 하지요? 우리 집에도 마침 병자가 있어서….”
그가 말했다.
“그이가 그 동네에서 인기가 너무 좋아서요…. 너무 허술하게 대했다가는 민중들의 반감을 살까봐 걱정이 되는데요.”
나는 난처해져서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둘이 다녀옵시다.”
그러나 그가 말했다.
“저는 오후에 마 청장님과 함께 성 정부 회의에 가봐야 합니다. 제 집사람 몸도 별로 안 좋고…. 그게, 지 처장 정도 되면 이미 충분히 위생청의 간판급 아닙니까?”
약정처로 돌아와서 사정을 설명했다. 정소괴가 얼른 말꼬리를 달았다.
“평소 같으면 제가 갔을 텐데, 저희 집 강강(强强)이 하필이면 오늘 병이 나서요.”
내가 말했다.
“정말 우연의 일치로군. 황 주임 집사람도 아프다고 하던데.”
정소괴는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대묘랑 말입니다, 저와는 이전에 껄끄러운 일이 좀 있어서요. 작년에 농장 소개장을 갖고 약정처로 와서는 약을 도매가격에 좀 사가게 도와달라고 하는 걸, 제가 무슨 수로 그런 일을 도와줄 수 있습니까? 라고 했더니 책상을 내리치고는 가버린 적이 있어요.”
네가 산 사람과 껄끄럽지 죽은 송장과 뭐가 또 그리 껄끄럽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겁에 질려 도망가는 것을 보고, 나는 마 청장님께 전화를 걸어 말씀드렸다.
“죽은 대묘랑 데려오는 일을 모두 서로 꺼려서요. 퇴직 반에서는 서무실로 떠밀고, 서무실에서는 또 약정처로 떠밀고…. 만약 요 며칠 위생청에 별일 없다면 제가 다녀오려고 합니다만….”
그가 말했다.
“자네가 가서 모셔 오게. 직접 장례식장(殯儀館)으로 옮기게. 길조심하고.”
나는 퇴직반의 채(蔡) 군과 승합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가서 쇠로 만든 관을 세 내어서 길을 떠났다.
오후 세 시경에 만산홍 농장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오(吳) 농장장이 말했다.
“대(戴) 의사님이야말로 정말 훌륭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말했다.
“우리 농장에 팔천 명이 넘게 있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분한테 치료를 받아봤지요. 역시 성(省)에서 오신 분이라 수준이 다르더라고요. 낮에 아프다 하면 낮에 달려오시고, 저녁에 아프다 하면 저녁에 달려오시고…. 정말 좋은 분이셨는데….”
나는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처리한다는 태도로 말했다.
“날이 이렇게 더워서 오래 두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 밤에라도 당장 모시고 돌아가야겠습니다.”
오 농장장이 말했다.
“저희가 고별의식을 준비했습니다. 대 선생님을 그냥 이렇게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저희 마음이 용납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방송담당자에게 고별의식이 잠시 후에 시작된다고 알리라고 지시했다. 오 농장장은 나를 대묘량이 살던 곳으로 안내했다. 마침 고향이 이 농장인 〈 광명일보(光明日報)〉의 엄(嚴) 기자가 휴가차 집에 왔다가 우리와 함께 갔다.
대묘량의 집 앞에는 이미 이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보더니 스스로 물러나 길을 만들어 주었다. 집안에 들어가 보니 실내는 예상외로 매우 간소했다. 책상 하나와 침대에다 책꽂이가 다였다. 대묘랑은 얼굴에 천을 덮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마음속이 쿵, 하고 흔들리며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지나갔다. 이런 곳에서 육년이나 살았다는 것만 봐도 그는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얼굴을 덮은 것은 질감이 거친 재래식 천이었다. 당시 아버님도 흙 속에 들어가시기 전에 저런 천을 얼굴에 덮고 계시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 천을 열어 내게 마지막으로 한 번 얼굴을 보여주셨다. 그때 진사모(秦四毛) 영감이 나의 무릎을 꿇리고는 아버지 위로 엎어지지 않도록 있는 힘을 다해 나를 부축했었지.“관례대로 합시다!”그때 진 영감의 그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흰 천의 결 무늬를 눈으로 쫓다가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이 마음속에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흰 천을 들고 보았다. 채 군이 뒤로 숨었다.
오 농장장이 말했다.
“아쉽습니다. 아쉬워요! 우리 농장으로서는 커다란 손실입니다. 그분에게 좋은 거처를 마련해드리려 했는데, 끝내 필요 없다고 하시더니….”
나는 농민 두 명에게 차에서 철 관을 들고 오라고 했다. 시신을 들 때에는 두 명이 더 거들어서 조심스럽게 옮겼다. 문 밖으로 나오자 밖에는 이미 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임시로 마련한 추모회장도 이미 준비가 끝났고, 농민 네 명이 철 관을 어깨에 메고 한 걸음 한 걸음 현수막 아래로 걸어왔다. 한 사람이 공산당 기(旗)를 가져와서 관 위에다 덮었다.
엄 기자가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정말 감동적입니다.”
먼저 한 마디 하던 오 농장장은 연설 도중 감정이 북받쳐서 몇 번이나 목이 메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원래는 한 마디 하려고 했으나 분위기를 보자 망설여졌다. 공적인 일을 공적으로 처리한다는 식으로 냉철하게 나가자니 여기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나가자니 만약 위생청에까지 소식이 전해지면 입장이 곤란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채 군더러 올라가서 연설을 하라고 했더니 올라가서 몇 분 떠드는데, 무미건조하기 그지없어 농장장의 연설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이어 몇 사람이 올라가서 발언을 했다. 모두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한 명은 울음을 터뜨려 말을 잇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 눈물만 닦았다.
엄 기자가 내게 말했다.
“지 처장님도 올라가서 한 마디 하시죠.”
나는 대묘량이 위생청에서 몇 십 년 동안 쌓은 공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아는 사실은 또 말할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오늘 느낀 점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정소괴가 아침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가 농장을 위해 약을 싸게 사기 위해 시내까지 와서 도매로 약을 사간 이야기를 했다. 이어서 엄 기자가 한마디 하고, 모두들 애도를 하고 허리 숙여 절하고는 추모회를 마쳤다. 채 군이 농민 몇 명을 지휘해서 철 관을 차로 옮기는데, 몇 명이 둘러싸면서 말했다.
“대 의사님께서 이렇게 가시다니, 밤 새워 곡을 해드리려 했는데….”
내가 말했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여기는 식힐 얼음도 하나 없고 해서…. 내일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리일 듯싶습니다.”
오 농장장은 사람들을 도시로 따라 보내려고 했다.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농장에서 사람들이 와서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겠다는 생각인데,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린가? 위생청은 또 얼마나 난처해지겠는가? 나는 온 힘을 다해 오 농장장을 설득하면서 장례를 반드시 제대로 치를 것을 재차 약속했다. 그러나 오 농장장은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서 말했다.
“사람들도 이미 정해 두었는걸요. 민(閔) 부 농장장이 갈 겁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승낙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위생청에다가는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물론 원칙대로라면 대묘량은 좋은 사람이고, 성대하게 장례를 치른다고 해도 하나도 지나칠 것은 없겠지만, 그러나 이 바닥의 원칙은 또 완전히 다른 논리를 갖고 있는데다가, 또 그게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날이 덥다, 길이 험하다, 농장 일을 그르친다, 등등 댈 수 있는 근거는 전부 다 대 보았지만, 오 농장장은 끝까지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정말 별 수가 없어서 나는 엄 기자가 자리를 뜬 틈을 이용해서 태도를 바꾸어 강하고 뻣뻣한 말투로 그를 거절했고, 그도 그제서야 할 수 없이 물러섰다.
차에 시동이 걸리자 폭죽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폭죽 연기 속에서 나는 길가에 몇 명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등(鄧) 기사에게 말했다.
“차 좀 천천히 몰게.”
차가 천천히 사람들 무리 속을 뚫고 나오는 동안 사람들이 하나 둘 무릎을 꿇고 통곡을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 채 군은 전혀 동요하는 기색 없이 자기와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욕을 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무섭다, 무서워!”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난 길을 지나 기사가 막 속도를 내려고 할 때, 엄 기자가 뒤에서 쫓아오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일군의 사람들도 함께 뛰어왔다.
엄 기자가 말했다.
“지 처장님! 오늘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신문에 특집 기사를 써서 발표하고 싶은데, 여기서 며칠 더 취재하고 시내에 가서 지 처장님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휴가차 왔던 건데 도저히 쉬고 있을 수가 없네요.”
만산홍 농장을 벗어나자 내 마음은 다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저놈의 엄 기자는 자기 취재 소재를 찾는 데만 급급해서 남이야 불 위에서 구워지건 말건…. 나만 위생청에 골칫거리를 갖고 돌아가는 셈이 되고 말았다. 만약 저 인간이 내가 한 말들을 글로 적으면 그땐 또 어떻게 한다? 대묘량이야 워낙 좋은 사람이니까 선전 한 번 해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원칙대로라면 또 다른 논리를 따라야 한단 말이다! 오늘 저놈의 기자를 만나다니, 정말 재수 더럽게 없군!
도시로 돌아오니 이미 새벽 한시였다. 차를 장례식장으로 몰아서 문을 한참 두드리자 당직하는 노인이 머리를 내밀고는 말했다.
“내일 오시오, 날이 밝거든. 출근하거든 오시라고요!”
내가 듣기 좋은 말을 수십 번 하자 그가 말했다.
“이 시간에 나더러 어디다 두라는 거요? 내 침대 아래에라도 놓을까? 냉동고도 이미 다 잠갔단 말이요.”
끌고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차는 시내를 가로질러 가끔 택시만이 출몰하는 고요한 거리를 달렸다. 나는 발 아래 있는 철 관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한 사람과 세계와의 관계로군. 한 생명이 끝나도 세계는 돌아가던 대로 계속 돌아가는군. 흥하건 망하건 인간한테는 이 한평생이 전부지. 훗날에 거는 기대는 모두 공허한 거야. 시간 속의 어떤 거부할 수 없는 요소들은 눈 하나 깜빡 않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지. 대묘량은 분명히 좋은 사람이다. 그래,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
아침 일곱 시가 좀 안 되어 나는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기사가 장례식장으로 함께 가자는 전화인 줄 알고,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 혼자 옮기라고 얘기하고 치워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엄 기자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그가 말했다.
“어제 밤새도록 초보적인 취재를 마쳤습니다. 대 의사는 정말 영웅입니다. 소재도 현실적이고…. 저는 이분을 대대적으로 알리려고 합니다. 아마 전국적인 영웅까지도 될 수 있을 겁니다. 어제 오후의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기자가 몇 년을 밖에서 뛰어다녀도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한 장면을 제가 우연히 포착했으니, 한 번 깊게 파보렵니다.”
나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이 말했다.
“그렇게 가치가 있습니까?”
그가 말했다.
“그럼요!”
그는 위생청에서 추도회를 열 때 그 영웅적인 소재들도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마음이 썰렁해졌다. 운도 지지리도 없군! 화를 자초한 게 아닌가? 그의 업적이 신문에 떡, 하니 실리면 위생청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지겠는가? 대묘량이 앞당겨 퇴임하고 노여워하며 만산홍으로 갔던 것인데, 위생청으로 와서 뭘 취재하겠다는 건지…. 상황을 취재하면 우리는 또 어떻게 하란 말인가? 대묘량이 전국적인 영웅으로 밀어도 충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 치더라도, 그래도 그렇지, 우리한테 그렇게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순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어제 너무 약하게 나갔던 것을 후회했다. 끝까지 우겨서 정소괴를 보냈더라면 그 인간이 안 가고 배겼겠어? 이렇게 문제 있는 인간들은 근처에도 얼씬하지 말아야지, 얼씬하는 날엔 그냥 문제들이 덤벼든단 말이다. 이 바닥에선 마음이 너무 약해선 버틸 수가 없단 말이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조급해져서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라도 하시라고 마 청장님께 전화를 드리기로 했다. 안 그랬다가 만약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터지면 분명히 화를 내실 것이다. 전화기를 들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피하려 해도 피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버튼을 눌러 상황을 보고 드리고 변명도 몇 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그는 전혀 화를 내는 기색 없이 말했다.
“아무도 출근하기 전에 사무실 건물 앞에 붙인 부고와 장례준비위원회의 명단을 뜯어버리고 출근하자마자 내 사무실로 오게.”
나는 얼른 달려가서 그 두 장의 종이를 뜯어 둘둘 말아서 집으로 들고 돌아왔다. 오던 중에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장례준비위원회의 명단을 한번 훑어보았다. 어떤 일들은 이런 데서 또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펼쳐보니 손지화가 주임, 내가 부주임, 정소괴는 위원이었다. 이전에는 누가 장례준비위원회의 서열이 중요하다고 하면 우습게 생각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걸 우습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우스운 일이다. 무슨 일이든 다 위아래가 있고, 그 위아래는 어디서든 드러나게 마련이니, 결코 농담으로 치부할 일이 아닌 것이다.
출근하자마자 나는 마 청장을 찾아갔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그는 책상을 치면서 말했다.
“지군, 자네 이번 일 참 잘 했네!”
나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아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끝이다! 그러나 마 청장의 표정에는 화난 기색은 전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희색이 도는 듯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마 청장의 진의를 파악한 다음에 입을 열어야지…. 그가 말했다.
“자네 이번에 잘 다녀왔네! 업적을 갖고 돌아왔어. 이제부터 우리는 전력을 다해서 이번 일을 추진해 보세! 우리 위생청에서 영웅이 나오다니, 게다가 전국적인 영웅이…. 이야말로 엄청난 정신적 자원 아닌가! 〈광명일보〉, 그거 아무나 실어 주는 게 아니거든. 아무나 쟁취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기자가 이번 사건을 만난 것도 인연이지만, 우리가 그 기자를 만난 것 역시 인연일세. 정신문명, 인도주의, 이런 것은 추상적이어선 안 되고 반드시 인격화되어야 해. 대묘량 동지야말로 우리 성 위생계통의 정신문명이 인격화된 것이지. 위생청에서 그로 하여금 만산홍 농장에 가게 한 것, 그것은 인도주의의 구체적인 체현(體現)이며, 우리 성 위생계통의 정신문명 건설의 구체적인 성과인 게야.”
역시 마 청장이었다. 순식간에 사건의 본질을 포착하고 조작의 틀을 이미 정했던 것이다. 이때 정소괴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 기자한테서 방금 약정처로 나를 찾는 전화가 왔었는데, 전화번호를 남기면서 가능한 한 빨리 전화를 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마 청장은 전화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장에 전화를 걸어 그 기자 동지를 데리고 오게. 추도회는 내일로 하루 미루고…. 내가 직접 진행하겠네.”
내가 전화를 하자 엄 기자가 말했다.
“이미 신문사 쪽에 보고 드렸습니다. 신문사의 윗분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오후 북경에서 사람을 몇 명 보내려고 하는데, 공항으로 누가 마중 좀 나가줄 수 있습니까?”
내가 말했다.
“저희 위생청의 어르신들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마 청장님도 직접 장례준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추도회를 본인이 진행하실 예정입니다. 일단은 내일 오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마중 나가는 거야 뭐 아무 문제도 안 되고요. 저희 쪽에서 엄 기자님도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저는 오전에 자료 정리를 다시 좀 하고 개요를 정한 다음 농장 차를 타고 내일 올라가겠습니다. 우 농장장님과 어제 말 잘 하던 사람으로 두 명 더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내가 말했다.
“위생청에선 엄 기자님이 추도회 시간에 맞춰서 오셨으면 합니다만…, 내일이면 늦지 않겠습니까?”
나는 마 청장께 추도회를 오후에 거행하자고 말씀드렸다. 마 청장이 말했다.
“요 며칠간 다른 일은 일단 제쳐두고 이 핵심적인 사무에만 전념해 주게.”
그리고는 손 부청장과 노조의 육(陸) 주석 등을 부르더니, 장례준비위원회의 명단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육 주석은 사람을 모아 만련(挽聯)을 쓰고, 황 주임은 추도사(追悼辭)를 쓰는 책임을 맡았다. 원래 준비했던 추도사는 폐기하고 고인에 대해 새로 자리매김하기로 했다. 나는 영정으로 쓸 사진을 현상해 오도록 시키는 등 각 분야의 사무를 조율하는 일을 맡았다. 오후까지 정신없이 일들을 처리하고 만산홍 농장으로 사람들을 데리러 다시 가려고 했다. 등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가 말했다.
“관이 아직도 차 안에 있는데, 상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깜짝 놀랐다.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느라 정작 그 일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했다.
“우리 당장 출발하세. 먼저 장례식장으로 갔다가 만산홍으로 가는 거야.”
“방금 만산홍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누구는 방금 돌아오지 않았나? 마 청장님이 가라고 하시면 가야지, 마 청장님께 못가겠다고 말씀드릴 텐가?”
“갑니다.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위로 올라가야 해.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하니 말에 힘도 안 실리고, 아직도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야 하다니!
위생청 사람들이 거의 다 추도회에 참석했다. 반년 전 시(施) 청장의 추도회보다 훨씬 성대했다. 원래 예약했던 작은 홀을 취소하고 큰 홀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은 큰 홀도 이미 예약되어 있었는데, 마 청장님이 몸소 장례식장의 서기에게 전화를 걸고, 서기가 또 그쪽의 가족 친지들에게 정부 부분에서 임시로 중요한 의식이 있어서 큰 홀을 사용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도 달려가서 듣기 좋은 소리로 한참 떠들었지만 그쪽에서는 절대 양보 못하겠다고 했다.
상주가 말했다.
“이미 모두에게 알렸는데, 이런 망신살이 어디 있단 말이요!”
나는 즉석에서 위생청이 이천 위안을 배상해 주겠다고 결정을 내렸고, 그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추도회장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내가 직접 배치했다. 양 옆에는 노끈을 두 줄 걸고, 스무 개 남짓한 리본을 매달았다. 양 옆의 조화(弔花)들은 모두 기성품으로, 보증금을 내고 빌려와서 앞에 썼던 사람의 리본만 떼어 우리 것으로 바꾸었다. 영정 양 옆에는 마 청장이 손수 쓴 만련(挽聯)을 걸었다.
“사상자를 구해주신 어진 마음 뛰어난 의술
베푸신 은덕 밝은 달처럼 오래도록 이 세상 비추네
온몸 바쳐 벗들 위하신 이 시대의 양의(良醫)시여
저희는 산천과 더불어 영령 앞에 곡(哭) 하나이다”
(救死扶傷, 仁心妙手, 德如浩月, 長懸塵世
鞠躬盡瘁, 諍友良醫, 我與萬山, 同哭英靈)
내가 적은 만련은 이러했다.
“명리(名利)야 연기구름 같고 물처럼 묽어도
역사에 남을 사업은 태산보다 무겁다네.”
(名利烟雲淡如水, 事業千秋重於山)
만련을 걸고 나니 모두들 만련을 평가하고 나섰다. 선전부의 곽(郭) 부장이 말했다.
“지 처장! 그 만련은 누구한테 부탁해서 만든 거요? 명리가 연기구름 같다고 한 뒤에 어떻게 다시 묽은 물로 이었지요?"
내가 말했다.
“거 너무 꼬치꼬치 캐묻지 마십시오! 저도 차 안에서 몇 시간 동안 머리 짜내서 겨우 생각해 낸 겁니다.”
그가 얼른 말했다.
“지 처장의 대련 짓는 실력이 이렇게 높은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몇몇 청장과 두 명의 기자, 그리고 오 농장장이 버스를 타고 도착하자 마 청장의 얼굴이 침통한 표정으로 바뀌었고, 모두들 따라서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제대로 잡혀오기 시작했다. 조문 인사가 끝난 후, 마 청장이 추도사를 읽기 시작했다.
“침통한 심정으로 친애하는 대묘랑 동지를 추도하며.”
첫 구절을 읽는데 벌써 마 청장의 목소리가 메여왔다.
“이렇게 갑자기 맞이한 당신의 죽음을 우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나는 마 청장을 보면서 마음속에 의혹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이전에 마 청장이 추도사를 읽을 때는 늘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처리한다는 식의 태도였는데, 오늘은 어째서 저리도 감정적이 되시는지…. 분위기가 극에 다다르자 몇몇 여성 동지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북경에서 온 기자들은 이런 장면을 모두 촬영했고, 이어서 엄 기자가 그저께 송별 당시의 상황을 소개했다. 시신과의 고별을 마친 후 장례식장의 직원들이 시신을 화장터로 옮겨 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마 청장은 그 뒤를 끝까지 따르다가 최후에 사람들에 의해 저지당하고서야 발을 멈추었다.
위생청으로 돌아와서 엄 기자는 좌담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고, 마 청장은 즉시 승낙했다. 엄 기자는 내일 다시 만산홍 농장으로 가서 다시 취재를 하려고 저녁에 좌담회를 열고 싶어했지만, 마 청장이 말했다.
“내일 합시다. 내일 아침에 엽시다. 만산홍까지 차를 준비해 드릴 테니.”
그리고는 곧장 좌담회 개최 준비회의가 소집되어 나도 참가하게 되었다. 손 부청장이 말했다.
“내일 좌담회는 매우 중요한 회의이니 모두들 모여서 누가 참가하는 것이 적합할지, 누구누구가 핵심적인 발언을 할지 등을 얘기해 봅시다.”
토론을 통해 발언자 명단을 작성했는데, 누군가가 나서서, 길사림(吉士林)은 대묘량과 여러 해 함께 일을 하기는 했지만 말을 너무 멋대로 지껄이는 경향이 있는데다가 성미가 불같으니 발언자 명단에서 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나는 뭔가를 바라는 눈빛으로 마 청장을 바라보았지만, 마 청장은 좋다거나 싫다는 어떤 의견도 표명하지 않았다. 내가 나섰다.
“그 사람은 건드리지 맙시다.”
저녁에 이튿날 회의에 참가시킬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마 청장이 말했다.
“대묘량 동지는 우리 위생청의 자랑이고 영예입니다. 내일 좌담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곧 대묘량 동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본 성의 전 위생 시스템과 나아가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대묘량 동지의 출현은 곧 저희 성 위생 시스템의 다년간에 걸친 정신문명 건설 노력이 가져온 중대한 성적의 표지입니다. 의사의 책임은 죽은 자를 살리고 다친 이의 어깨를 부축하는 것, 혁명의 인도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위생청이 그를 만산홍 농장으로 보낸 것 역시 이런 목적에서였습니다. 힘들고 고된 환경에서만 그 사람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고상한 사람, 순수한 사람, 도덕적인 사람, 저급한 취미를 벗어버린 사람, 인민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모두들 발언을 했는데, 각자가 발표하려는 내용의 대강을 말하고, 손 부청장과 곽 부장이 그 중에서 부적절한 부분을 지적해준 후에 회의를 마쳤다.
한달이 조금 더 지난 후에 <광명일보>에 장편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 제목은 바로 내가 쓴 만련,“명리연운담여수, 사업천추중어태산”(名利烟雲淡如水, 事業千秋重於山)이었다. 이 기사가 나가자 곧바로 성(省)과 시(市)의 각종 신문 잡지 및 방송국 기자들이 위생청으로 취재하러 몰려들었다. 위생청에서 이런 인물을 길러냈다는 사실에 대해서 문(文) 부성장조차 놀라면서 전화로 상황을 물어오셨다. 시(市) 위원회 선전부가 주관해서 대형 좌담회를 열었고, 문 부성장님까지 참석하셨다. 위성방송에서는 카메라를 세 대나 돌려가면서 녹화하는 가운데, 마 청장에 이어서 문 부성장도 발언하셨다.
“시장경제의 조건하에서 어떻게 정신문명을 일상적인 업무에 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야말로 우리가 오랫동안 쉬지 않고 붙들고 있던 문제입니다. 구체적으로 의료부문 종사자들에게 있어서는 직업적 도덕심과 인도주의가 현실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대묘량 동지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구체화시킨 것이라 하겠습니다.”
정소괴가 말했다.
“저는 홍콩에서 방금 돌아왔는데요, 홍콩 사회의 하나같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개인주의와 대묘량 동지가 추구한 것은 정말로 강렬한 대조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그는 감정이 격해져서 얼굴이 다 붉어지고 몸까지 흔들어대면서 계속 말했다.
“우리 위생 시스템의 지도자들께서 정신문명의 건설을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한 결과 결국은 한 무리의 선진적인 인간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묘량 동지는 바로 그 대표격이라 하겠습니다. 그의 업적은 시장경제의 흐름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의 영혼에 세례를 베풀고 정화작용을 했습니다.”
나는 만산홍 농장에서 본 상황을 다시 한 번 설명하였다. 비록 이미 열 번도 더 얘기했지만, 그러나 문 부성장님께 조금이라도 인상을 남기려다보니 말하는 데 아무래도 좀 감정적이 되었다. 말을 하면 할수록 감정이 격해져서 나중에는 나 자신도 이 격한 감정이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틀 후에 위생청에서는 전 성 위생 시스템 산하 각 단위와 조직에 전화를 걸어 모두 위성방송의 좌담회 프로그램을 시청하도록 하라는 전화를 걸었다. 저녁에 나도 동류를 불러 같이 텔레비전을 보며 말했다.
“자, 나의 빛나는 모습을 한번 보시지.”
이어서 말했다.
“정소괴가 연기하는 것도 좀 보고. 그 인간 나한테 바로 얼마 전까진 홍콩에는 마실 물 부족한 것 빼고는 없는 게 없더라고 떠들어 놓고는, 좌담회에선 또 그런 식으로 홍콩을 까다니. 남한테 방향을 잃지 말라는 충고까지 하고 말이야. 하긴 그 인간이야 언제고 방향을 잃어 본 적 있었겠어?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워낙 잘 알고 있는 인간이니.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텔레비전으로 보면,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영원히 알 길이 없지. 무슨 고상한 인물쯤으로 착각할지도 모르지. 정소괴야말로 아주 일찍이 음양의 도를 깨쳤으니, 태극권의 고수(高手)라고 불러도 되지 않겠어?”
동류가 말했다.
“그러면 그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요?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요? 어쩔 수 없는 거지. 정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 아녜요? 너무 핀잔주지 말아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그 인간 탓만 할 수도 없군. 그 인간도 뭐 별 수 없으니까 그저 그런 역할을 맡아 연기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렇지 않다면 인생은 연극이다(人生如戱)란 말이 괜히 나왔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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