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66>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66>

맹효민(孟曉敏)

***제3권**

***66. 맹효민(孟曉敏)**

위생청에서는 내가 온천 요양원으로 가서 반달 정도 쉬도록 주선해 주었다. 사무실의 황(黃) 주임이 내게 소개장을 써주면서 말했다.

“요 몇 달간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내가 허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뼈가 다 부은 것 같아요.”

나는 마 청장님의 세심한 배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렸다. 나를 요양원 가서 며칠 쉬게 하는 것도 그 어른에게야 말 한 마디로 끝나는 일이지만, 그 말 한 마디가 바로 내게 떨어졌다는 것,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휴가 가기 하루 전에 서 기사한테서 전화가 와서, 내일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이튿날 차를 몰고 곧장 도시를 벗어나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버스 터미널이 자리를 옮겼습니까?”

“온천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삼사백 리나 되는 길을 어떻게 데려다 주려고 그러십니까?”

“지 처장님, 아니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정말 너무 사치스럽게 여겨졌다. 돈이 있어도 이렇게 써서는 안 되지. 내가 말했다.

“버스 터미널까지만 데려다 주세요.”

“사람들을 다 이렇게 모셔다 드렸는데 지 처장님만 안 모셔다드리면,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돌아가서 황 주임한테 뭐라고 말씀드립니까?”

나는 갑자기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의 접대 대상이 된 것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적응이 안 됐다. 내가 말했다.

“위생청이 돈이 많다고는 해도 이럴 정도는 아닙니다. 한 사람을 데려다주려고 차로 몇 백 리 길을 왔다 갔다 한다니, 그 비용이 도대체…, 계산도 잘 안 되네.”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하늘 아래 무서운 게 하나도 없는데, 지 처장님 비용 계산하고 나오는 건 정말 무섭습디다.”

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가 말했다.

“비용이 버스의 수십 배가 된다고 해도, 어쨌든 아무나 다 모셔다 드리는 건 아니거든요. 이 김에 편히 쉬십시오.”

위생청 회의에서 재무를 관리하는 풍(馮) 부청장은 노상 재정이 쪼들린다고 하면서 모두들 사무용품 좀 아껴 쓰라고 잔소리를 해댔는데, 보아하니 쪼들리고 안 쪼들리고는 다 누가 쓰는 돈인가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어떤 인간들은 영원히 쪼들리고, 또 어떤 인간들은 영원히 풍족한 것이다.

생각을 바꿔보니 이게 바로 격(格)이고, 일종의 대우(待遇), 일종의 정신적 향유(享有)이다. 이 또한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버스를 타는 것도 뭐 힘들어 봤자지만 심리적인 느낌이 다르다. 그럼, 완전히 다르고말고! 향유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야말로 진정한 향유이다. 기껏해야 방 세 칸짜리 집에서 밥 두 그릇 먹고 침대 하나에 몸을 누이고 살겠지만, 정신적인 향유의 비용은 이런 집이나 밥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온천에 도착하자 서 기사는 모든 것을 준비해주었다. 이곳의 상황에 매우 익숙한 듯했다. 그는 나를 맡게 된 간호사에게 말했다.

“미스 맹(孟)! 지 처장님은 자네가 책임지게.”

그 맹효민(孟曉敏)이라는 간호사가 웃으니 양 볼에 두 개의 작은 보조개가 드러났다. 그녀는 침대 시트를 깔면서 말했다.

“이 분을 떨어뜨려 깨거나 분실하면 제가 변상해 드릴게요.”

서 기사가 말했다.

“너 이 어르신이 어떤 분인 줄 알기나 하냐? 변상해 준다고?”

서 기사가 떠날 때 말했다.

“지 처장님, 돌아오실 때 저한테 반드시 전화 주십시오. 모시러 오겠습니다.”

내가 됐다고 말하는데도 그는 재차 분부하듯이 말했다.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아무 문제 없다니까요. 바람 쐬는 셈 치고 나오면 됩니다. 못 오게 하시는 게 오히려 저를 난처하게 하시는 겁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가 간 후 나는 갑자기, 그가 오는 동안 줄곧 나를 지 처장, 지 처장, 하고 부른 것을 깨달았다. 나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이전에는 지 형, 지 형, 하고 잘도 부르더니, 갑자기 호칭을 바꾼 것이다. 다음에 만나면 그냥 지 형으로 부르라 해야지, 지 처장이라니, 너무 어색하지 않은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안 될 것이, 그에게야 아무 상관없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떻게 되지? 신분과 존엄은 또 어떻게 되고? 게임의 규칙은 친구 사이라고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이미 나를 고려해서 한 겹 거리를 두기로 한 것이다.

온천에서 이틀 정도는 느낌이 좋았다. 온천물에 몸도 담그고, 책도 보고, 낚시도 하고, 미스 맹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도 몇 마디 나누고…. 신선이 따로 없다 싶었다. 사흘째가 되자 느낌이 약간 이상해지면서 뭔가를 잃어버린 듯했다. 아들이 보고 싶어서 그런가 싶어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들과 통화한 후에도 역시 그런 무료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신선 같이 산다는 것도 알고 보니 별로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군. 신선은 무엇으로 이 무료함을 벗어날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잘 먹고 잘 입더라도 행복하진 못할 것 같았다.

나흘째 오전에 나는 연못가에 파라솔을 펴고 앉아서 낚시를 했다. 마음은 휑하니 공허했다. 눈은 부표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것은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물건인 듯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는 정말로 안절부절못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가 없었다. 아무도 보고하러 오는 사람도 없고, 일과 관련해서 의논하러 오는 인간도 없고, 회의에 참가해서 결정할 것도 없고…, 사람이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이전에는 전화가 와도 짜증이 났었는데, 전화가 안 오는 것이 더 짜증스런 일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황야에 버려진 것 같은 게, 만약 지금 갑자기 위생청 긴급회의에 참가하라는 전화라도 한 통 걸려오면, 그 전화야말로 심연에서 나를 구해주는 전화일 텐데….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내가 무슨 마약에 중독 되듯 일에라도 중독 됐나? 중독이 돼서 끊을 수 없게 된 건가?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마약중독보다 더 심각한 일 중독, 관(官) 중독에 걸린 것을 보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에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시(施) 청장이 퇴직하면서 건강이 그렇게 빨리 무너져 내린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마음이 이럴게 공허한데, 낚시를 하고 바둑을 둬도 그 무료함을 메울 수가 없는데, 몸이 안 무너지고 배겨? 무료함은 배부른 인간들이나 걸리는 병이지만, 그게 또 생명도 위협할 수 있을 뿐더러 마땅히 치료할 약도 없다. 약리학 박사인 나도 뾰족한 처방 한 장 끊지 못하고 있다. 만약 치료할 수 있으면 나부터 치료해야겠다. 이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나의 정신상태가 이렇게 급격하게 바뀌었군, 어떡하지?

이때서야 나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이 길로 들어선 이상 어떤 새로운 본능이 생겨서 절대로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된다는 것을. 화살이 일단 활을 떠난 다음인 것이다. 나는 절대로 그런 지위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들에 연연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혜택들도 중요하긴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중요하다는 느낌, 의미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천하 우주를 내려놓고 조작(操作)의 인간으로 들어섰을 때는 원래는 그저 그 콩고물을 노린 것이었는데, 일단 들어서자 예상 밖으로 이런 ‘의미 있는' 느낌을 찾게 된 것이다. 이 느낌은 입안에 든 달콤한 것도 아니고, 몸에 입혀진 따뜻한 것도, 손바닥에 놓인 부드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물질적인 감각을 넘어선 체험이었다. 사실 한 발자국 물러나서 생각해 보면 그 정도의 ‘의미 있다'는 느낌도 몹시 가련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러나 내게 있어서 그런 느낌은 매우 중요하다.

결국 인간의 한평생이란 것도 하나의 과정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나는 전진, 전진, 전진해야 한다! 인생의 목표가 이것 말고 다른 뭐가 있겠는가? 현재의 나에겐 전진만이 인간사의 제일가는 기쁨이다. 이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결국 인간이 목표를 필요로 하고 우상숭배를 필요로 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없다면 마땅히 설명하기가 힘들고, 의미 있게 존재한다는 느낌 또한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옥황상제가 인간을 위해 무료함을 만드시고, 또한 그로부터 피할 방식도 만드셨으니, 그것이 바로 돈과 권력이다. 인생의 가장 큰 사명은 그 중에서 목표를 선택하여 그것을 신성시하고, 그것으로써 공허함을 벗어나는 것, 무료함을 벗어나는 것, 의미의 진공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니, 그 의미의 진공상태야말로 인생의 최대 비극이라 할 것이다.

나는 평소에 마음속으로 돈과 권력이라는 속물을 욕했지만, 이제 비로소 그 두 속물의 오묘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사물로도 대체될 수 없는 무한한 목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목표란 것은 허구이지만, 그것을 성취했을 때 느끼게 되는 충실함은 진실이다. 따라서 허구의 진실이 진실한 진실보다 더 진실한 것이다. 이전에는 나는 억만장자들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돈이 많아서 쓸 수도 없을 정도이면서도, 그렇게 하루 종일 돈 벌려고 뛰어다니는 인간들. 인간이 억만 년을 사냐?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인간들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야말로 바보들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홍색 낭자군 연가>(紅色娘子軍連歌)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앞으로, 전사의 책임이 무겁다…."

나는 이미 온천에서는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고, 마음속에는 점점 더 강렬한 근심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이 근심을 해결할 유일한 방식은 앞으로 전진, 또 전진, 영원히 끝도 없이 전진하는 것뿐이다. 인간은 충족될수록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근심만 늘어나니, 이것이야말로 돈과 권력이 지닌 매력인 것이다. 비록 나는 이미 매 번의 성공과 매 번의 해방이 그런 근심의 출발점이 되며, 그 과정은 끝없이 계속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귀신에 씌고 말았다. 내겐 평생 이 한 뿌리 구명초(救命草)를 단단히 붙잡는 수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믿었다. 이제야 나는 일부 거물급 인사들이 왜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높은 자리에 올라서도 다시 한 번 더 오르기 위해 몸을 던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바보였기 때문은 아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나는 가능한 한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런 상황에서 돌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앞당겨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은 또 뭐라고 말할 것인가? 핑계를 찾아야 했다. 나는 저녁에 동류에게 전화를 걸어, 의정처에 가서 온천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면서, 장모님이 편찮으셔서 빨리 돌아와야 한다고 말하도록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정하고 나자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휘파람이 저절로 나왔다.

저녁을 먹고 대문에서 미스 맹을 만났다.

내가 말했다.

“내일이나 모레쯤 돌아갑니다.”

그녀는 놀란 듯 말했다.

“어머, 대화가 좀 재미있어지나 했더니…. 아직 할 얘기가 많은데.”

나의 준비된 핑계가 그녀의 표정을 대하는 순간 사라지고 멋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낚시를 해도 물고기도 안 잡히고, 책을 보려고 해도 재미있는 책도 없고 말입니다. 그리고 온천욕도 한 두 번이지.”

그녀가 말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시는 거예요. 저녁에 춤추러 가는데 같이 안 가실래요?”

내가 말했다.

“그럼 저 좀 가르쳐주겠어요?”

잠시 후에 맹효민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화장한 모습이 나를 놀라게 했다. 같은 사람인데 그새 어떻게 이렇게 예뻐졌는지! 평소에는 묶고 있던 머리를 풀고, 옅은 남색 비로도 천에 구슬을 박은 작은 가방이 그녀의 배를 가릴 듯 말 듯하고, 망사 외투를 통해 어깨의 윤곽이 드러났다. 옅은 노란색의 긴 치마는 발목까지 내려와 있었다. 나는 두 눈을 창밖으로 돌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오늘 패션은 특별하네요.”

그녀가 말했다.

“춤추러 가는 거잖아요.”

그녀가 몸을 돌리자 나는 U자 형으로 패인 그녀의 등 윗부분을 볼 수 있었다. 날씬한 허리는 뼈의 형태까지 느껴졌다.

내가 말했다.

“이렇게 외진 동네에 이렇게 앞서가는 패션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녀가 말했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내가 허둥지둥 말했다.

“아니, 좋아요. 잘못되었다고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요. 그런 인간은 무시해버려야지 뭐. 개혁개방이 된 지 벌써 십년도 넘었는데, 안 그래요?”

춤을 출 때 그녀의 눈과 얼굴이 반짝반짝 투명하게 빛이 났다. 나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건너와서 그녀에게 춤을 청했을 때, 그녀가 말했다.

“좀 쉬었다가요.”

그녀의 이런 행동은 나를 은근히 우쭐하게 만들었다.

“온천에서 제일 예쁜 아가씨를 오늘 내가 전세 냈군.”

“제가 그렇게 예뻐요?”

“나는 실사구시(實事求是) 밖에 못하는 사람이오. 꿀 같이 단 소리는 하라고 해도 못하니까. 어느 노래에선가 아가씨가 꽃과 같다고 하더니, 당신을 두고 한 말 같아.”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꽃처럼 깊은 산 속에 피어 있지요. 이야기할 사람 하나 없는….”

“말이 통하는 대상은 많을 필요도 없이 한 명이면 족하지. 남자 친구가 있어서 낮에 마치지 못한 말들을 저녁에라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고….”

그녀는 애교 부리듯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지 처장님, 이곳에 무슨 남자가 있다고 그러세요? 가끔은 아예 눈을 뽑아버리고 싶다니까요. 이럴 바에야 그냥 혼자 살고 말지.”

이때 디스코 음악이 끝나서 다시 느린 사박자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러 나갔다. 무대에 들어서자마자 조명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손을 뻗쳐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녀 얼굴의 펄 가루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짝여서 꿈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하고,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 같기도 했다. 곡이 저 먼 하늘가에서 날아오는 듯 유유히 울려 퍼졌다. 몸을 돌릴 때마다 내 팔이 그녀의 팔에 닿았고, 매번 그 닿는 부위에 불이 타오르는 듯했다. 오랫동안 이런 느낌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동류로부터는 얻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어둠 속에서 내가 말했다.

“오늘 춤은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드는군. 이미 아주 낯설어진 느낌이 다시 깨어난 것 같아.”

“무슨 느낌인데요?”

“느낌은 그냥 느낌이지.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뭐 다 상상이 가네요.”

그녀의 말에 그녀가 나를 꿰뚫어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그 동네에도 간호사들 많잖아요. 모두들 지 처장님과 춤 한 곡 추고 싶어할 텐데 낯설 리가 있어요?”

“그런 일 없어요.”

그리고는 어지러운 마음을 얼른 수습했다. 침묵 속에서 한 곡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서 그녀가 말했다.

“지 처장님, 왜 갑자기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 화나셨어요?”

"누가 감히 맹효민 앞에서 화를 내? 화내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내가 가서 한 방에 눕혀버리게.”

그녀가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지 처장님은 말을 참 재미있게 하세요. 저는 유머감각 있는 남자랑 얘기하는 게 좋더라.”

나는 그녀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진심인지를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듣기 좋았고, 듣기 좋은 말은 굳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따질 필요가 없다. 이 바닥에서 이렇게 오래 있다 보니 사람을 볼 때 본능적으로 의심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듣기 좋은 소리를 할 때, 그 끝에 물음표를 붙이는 것은 아무래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몇 번이나 모르는 새 다른 사람이 이미 설계해 놓은 올가미 안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 들어가다가 최후의 순간에야 상대방의 진짜 의도를 발견하곤 했다. 다행히 나와 그녀의 관계는 돈이나 권력과는 상관없는 것이니, 그녀도 다른 방면에서 나를 이용할 수는 없겠지. 남자라서 좋은 게 다른 게 아니라니까. 이런 식으로 나는 마음을 놓고 그녀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도회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서, 나는 내 마음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을 발견했다. 내가 무슨 유혹에라도 빠진 걸까? 말도 안 돼! 내가 그녀보다 열여섯 살이나 많다는 것은 차치하고, 강산이 이렇게 가로막고 있고, 내가 다음에는 어느 해 어느 달에 오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그거야 어찌되었건, 맹효민은 분명히 상상의 여지가 있는 아가씨였다. 나는 오늘에야 이 점을 알게 되었다. 상상의 여지가 있는 여자만이 매력을 갖고, 남자의 탐색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한 번 훑어보기만 해도 뻔한 그런 여자는 며칠이면 그만 지겨워지는 것이다. 이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맹효민이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낮에 보니까 무슨 소설책을 읽고 계시던데, 저 좀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저녁에는 책이나 보면서 세월을 보내거든요.”

나는 「닥터 지바고」를 주면서 말했다.

“나이는 어린데, 간은 크군.”

“지 처장님이 절 삼킬까봐 겁이라도 낼 줄 아세요?”

“내가 그쪽을 삼키면 어디 가서 보상받으려고?”

“동물도 아니면서….”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반갑지 않으신가 봐요.”

“누가 맹효민 동지를 환영 안 한대? 그런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우리 그놈의 손발을 잘라버리자고.”

“사실 책 빌리러 왔다는 건 핑계구요, 이야기를 다 나누지 못한 것 같아서 여기까지 쫓아온 거예요. 몇 달을 기다려도 말 통하는 사람 한 명 오기 힘들거든요.”

그녀의 옷차림에서는 약간의 사기(邪氣)마저 느껴졌지만, 그녀의 태도에는 전혀 야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막 얼굴의 화장을 씻어내고 발랄한 청춘을 드러냈다. 나는 갑자기 그녀의 몸에서 풍부한 여성적인 면들을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의 피부는 매끄럽고 탱탱했으며, 곡선은 부드럽고, 입가는 약간 위로 올라간 것이 장난기가 느껴졌다.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은 불빛 아래에서 까마귀 날개 같은 빛을 발했으며, 신체의 곡선은 나오고 들어감이 분명했다. 특히나 허리가 약간 교묘하게 들어간 것이, 움직일 때마다 일종의 리듬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살피는 것을 보고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왜요?”

고개를 돌려 자기 몸에 뭐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돌려 아주 자연스럽게 춤의 한 동작을 해보였다. 나는 전신이 마비되는 듯, 감전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이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착한 애기군, 착한 애기.”

나는 이 몇 마디를 반복해서 몇 번 말하고는, 다시 나이 차이를 깨닫고는 이미 느껴지는 그녀의 여성적인 매력을 스스로에게 덮어버리기로 했다.

“착한 애기요?”

그녀가 하하 웃었다.

“착한 아이? 우리 아버지 친구분들이 저를 볼 때는 저보고 착한 애기라고 하시지요. 말 잘 듣는 딸애. 그럴 때 저는 마음속으로 웃어요. 아직도 제가 일곱 여덟도 구분 못하는 아이인 줄 아시나 보다고.”

“그럼, 뭘 아는데?”

“뭐든지 다 알아요.”

“뭐든지 다 안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녀가 곧장 반박했다.

“뭘 아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무엇’의 뜻이랑 제가 뭐든 다 안다고 했을 때의 그‘무엇’은 같은 뜻이에요."

“교묘하네, 교묘해! 맹효민이 나를 꼼짝 못하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난 또 맹효민이 일곱 여덟도 구분할 줄 모르는 줄 알았더니, 생각 잘못했군!”

우리는 얘기를 나누었다. 영화배우에서부터 시작해서 세상사는 이야기까지. 예상 밖에 그녀는 무엇에 관해서든 안정된 나름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며칠 안 되어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가 사라졌다. 하루는 내가 말했다.

“남자와 여자 아이가 함께 있을 때는 어떤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알아?”

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몰라요.”

“모르면 그만 두고…. 알면, 뭐 알아도 그만 둬야지.”

“말해줘요.”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못해, 못해. 자라나는 청소년한테 무슨….”

그녀가 흥,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내가 당신 남자들을 모를까봐? 이래 뵈도 간호학교 졸업생입니다!”

나는 마음속에서 뜨끔해서 말했다.

“맹효민은 예상 외로 참 성숙하군. 전에는 간호학교 갓 졸업한 간호사 아가씨들을 바보로만 알았는데, 잘못 생
각했는걸.”

“시대가 바뀌었답니다. 환경 탓이든 어쨌든 사회가 강요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천진하게만 살아요?”

“나도 원래는 무슨 탈선 한 번 해보려고 했었지. 그쪽 손해 보게 하더라도 뭐 어디 가서 보상받을 데도 없잖아. 게다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제 발로 나한테 찾아온 것이니….”

그녀는 나를 가늠하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내가 며칠 관찰했는데,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던데….”

“이번엔 사람 잘못 봤어.”

내가 일어나서 두 손을 벌리고는 잡아먹으려는 포즈를 취했다.

그녀가 하나도 놀라지 않고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꼭 동물 같아요.”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는 물러갔다. 그녀가 가고 나서야 나는 동류에게 전화를 안 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전화를 걸기 위해 프런트 앞까지 간 나는, 그러나, 다시 돌아왔다. 전화야 뭐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닌 것 같고….

며칠 계속해서 맹효민은 이야기를 하러 내 방에 왔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늦는 날에는 마음이 영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날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사람 모두 약간 흥분이 되자 그녀가 고개를 치켜들고는 기분이 좋아 날아갈 듯한 모양을 취했다. 기분이 상당히 고조되어 그녀가 말했다.

“다음부터는 호칭을, 그러니까 지 처장이라고 부르지 않을래요. 처장, 처장, 여기가 무슨 사무실도 아니고, 분위기만 나빠지게.”

“무슨 분위기?”

“분위기가 분위기지, 무슨 분위기인지는 묻지 마세요.”

“물으면 왜 안 되는데?”

“뭔지는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못 알아듣겠는데?”

이어서 말했다.

“내가 자네 아버지와 몇 살 차이가 안 나거든, 그러니까 알아서 불러.”

그녀가 가볍게 말했다.

“나 우습게 보지 말아요!”

“우리 이런 이야기 그만하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지요. 어이, 오빠! 와! 정말로 불렀다!”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했다.

“그래도 대위 씨라고 부르는 게 더 부드럽겠네요.”

이어서 말했다.

“대위 씨, 부탁 하나 하고 싶은데, 난처하게 하는 거라면 그만두고요. 도와주기 싫으면 그만둬도 괜찮아요. 나를 좀 시내로 전근시켜 줄 수 있어요? 이 동네 좀 보세요, 어디 계속 있겠어요?”

“산 좋고 물 맑고, 도시에 어디 이렇게 좋은 공기가 있어?”

“도와주기 싫으면 말구요.”

이어서 말했다.

“난처하게 했지요? 쉬운 일도 아닌데.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녀가 나를 난처하게 했다. 나는 내가 또 올가미에 걸려들었구나 싶었다. 내가 그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우의 꼬리가 드러났지?”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다시는 말 안 할래요. 나도 아무한테나 이런 부탁하는 거 아니에요. 부탁한다고 해도

내가 얼마나 또 고르는 줄 아세요?”

“여우 꼬리도 좋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데, 그러나 너무 돌려 이야기하면 마음이 별로 안 내키지.”

“나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내가 무슨 말 했어요?”

왠지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고, 그녀는 금방 자리를 떴다.

밤새도록 내 마음은 마치 공중을 떠다니는 듯했다.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남자가 밖의 풍경에 대해 마비되어 있다가, 어쨌든 저 풍경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창문을 열자 풍경이 바로 지척간의 거리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그제야 그 풍경에 대한 자신의 갈망이 원래는 이렇게 강렬한 것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것과 같았다. 맹효민은 내 마음속에 있던 어떤 정서, 어떤 필요, 나 자신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수요(需要)를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상상의 여지를 갖춘 여자였던 것이다.

이튿날 그녀는 시간에 맞춰 오지 않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댄스홀로 갔다. 역시 그곳에 있었다.

“오실 줄 알았어요.”

그녀는 스스로의 매력에 대해 매우 자신 있어 했다.

“여기 있을 줄 알았어.”

분위기 있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서 나는 순간 그녀를 꼭 껴안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지만, 그래도 참기로 했다. 이곳에 짧은 감정을 남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둠 속에서 그녀가 말했다.

“대위 씨, 저 어떤 것 같아요?”

나는 피하듯 말했다.

“어디가?”

“내가 뭘 묻는지 아시잖아요.”

“좋아.”

“그 말 한 마디로 나를 쫓아버리려고요?”

“그 말 한 마디가 지니는 무게를 생각해봐. 던져서 지나가던 개가 맞으면 즉사할걸? 아무한테나 쉽게 할 수 있
는 말이 아니라고."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한참을 기다려서 말 한 마디 들었으니. 그럼 어디가 좋아요? 말해 보세요.”

“어디가 좋으냐고? 음, 일하는 태도도 좋고, 사람도 친절하게 대하고, 내가 보스였으면 우수상이라도 줄 텐데….”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런 말은 여기 보고서에 써놓고 가시든가.”

“해야 할 말을 나는 감히 못하겠어. 정말로 말하면 들을 용기는 있어?”

“제가 겁쟁인 줄 아세요?”

“너는 아니지. 내가 그래, 내가.”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맹효민 때문에 나는 온천에서 반달을 꼬박 머물렀다. 그녀도 다시는 전근 같은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가기 전날 밤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문을 몸으로 가리고 문고리를 잠갔다. 그때 그녀는 기침 소리를 내서 그“찰칵”하는 소리를 감추려고 했지만, 그러나 나는 분명하게 그 소리를 들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정말 내일 가시는 거예요?”

탁자 근처까지 오더니 소설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책 돌려 드릴게요.”

아무렇게나 커튼을 열어젖혔다. 내가 미소를 지었고, 그녀도 웃었다. 방안에는 아주 특별한 분위기가 돌았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한 체하고 말했다.

“송별해 주러 온 건가?”

그녀는 의자에 앉아서 턱을 의자 등에 기대고는 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몇 마디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해댔지만 매우 부적절했고 분위기와도 맞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누가 맹효민한테 벙어리 되는 약이라도 먹였나?”

그녀는 나를 바라보면서 웃었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웃음은 방금 내가 한 그 말들이 얼마나 어색한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나도 아예 직접적으로 나갔다.

“오늘 왜 아무 말도 없지?”

“제가 무슨 말을 해요? 무슨 말을 더하면 다 군더더기가 될 거예요.”

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응대도 하지 못하고 알겠다는 의미로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웃음이 마음속의 최후의 얇은 막을 벗겨내어, 나도 용기가 생겨 살며시 보일 듯 말 듯한 손짓을 했다. 그녀가 내 신호를 이해하고 내게 손을 줄지 궁금했다. 과연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내가 생각도 못한 틈에 한 달음에 튀어 올라 내 품으로 고개를 파묻고는 말했다.

“전 귀신한테 홀린 것 같아요.”

우리는 키스를 했다. 한 번의 긴 키스가 반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입술과 혀 사이로 이렇게 풍부하고 섬세하며 다양한 수위의 감정들이 전달될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몸을 떼고서 그녀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말했다.

“나를 빨아 삼키는 줄 알았어요.”

“이것으로 기네스북에 오를지도 모르겠네.”

“이게 제 첫 키스예요, 정말로. 내가 어쩌자고 첫 키스를 당신이랑 했는지, 정말이지 귀신한테 홀렸나 봐요.”

“내가 잘못했군, 작은 잘못을. 그런데 이 작은 잘못을 한번 크게 만들어보고 싶은데….”

그녀가 내 품안에서 말했다.

“당신 뜻대로 하세요. 그 마지막 선만 넘지 말아 주세요. 다 귀신 한테 홀린 내 잘못이니까. 괜찮겠어요?”

“그 선을 넘지 않으면 상상의 여지도 남게 되니, 그것도 좋지.”

이렇게 해서 나는 그녀의 피부가 얼마나 부드럽고 매끈한지를 알게 되었다. 아주 낯선 느낌이었다.

“내가 맹효민이면 좋겠다. 매일같이 자기를 만질 수도 있고, 안을 수도 있고….”

그녀는 고개를 내 가슴속에 묻고 가만히 있었다.

“고개를 돌려봐. 술 한 잔 해야지.”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나는 그녀의 볼우물에 깊게 깊게 몇 번 입을 맞췄다.

그녀가 말했다.

“대위 씨, 정말로 나를 어떻게 생각해요?”

“예쁘고, 아름답고, 상상의 여지가 있고….”

그녀가 애교 부리듯이 말했다.

“듣기 좋은 소리로 날 속이려고… 나를 애 취급해. 진심으로 말이에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예쁘다는 말도 진심이고, 네가 애라는 것도 진심이고….”

나는 원래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그러나 맹효민 앞에서 폼 한 번 재어보고 싶은 마음에 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와 맹효민은 헤어지며 앞으로 어떻게 하자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로 돌아온 지 며칠 지나 나는 초조한 마음에 그녀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전화를 걸어서, 그녀에게 도시로 나오라고 했다. 그녀를 만나자 초조한 마음이 사라지고 느긋해졌다. 그 후로 그녀는 이 주일에 한 번씩 도시로 나왔고, 우리는 유풍차루(裕豊茶樓)의 룸을 잡아서 거기서 만남을 가졌다. 그녀는 전근 이야기를 다시는 꺼내지 않았지만, 몇 달 후에 나는 제약회사의 구(瞿) 사장에게 전화해서 그녀를 그 회사의 의무실로 전근시켰다. 구 사장은 별로 묻지도 않고 그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나도 별달리 설명을 하지 않았다. 맹효민이 나를 이용할 생각이었다면 그녀는 이미 목표를 달성했으니 손 털고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그 후로 더욱 깊게 내게 빠져서, 걸핏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를 꺼내곤 했다.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해요?”

나는 우리에게 “앞으로”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주 신경을 써서 그녀를 내 생활 안으로 끌어들였다. 동시에 나의 발전은 더 많은 가능성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느꼈다. 이전에 성의 어떤 높은 어른이 방송국 생활채널의 어떤 엠시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로 믿을 만한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성공한 남자라면 그런 갈망을 가질 것이고, 또 매우 쉽게 그것을 해소할 방식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한번은 그녀가 나더러 아내와 이혼할 수 없겠느냐고 묻기에, 내가 말했다.

“농담하지 마! 내가 너보다 몇 살이나 많은데….”

“누가 농담을 한다고 그래요? 나이가 무슨 문제가 된다고….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랑 같이 있는 게 좋더라. 당신이라면 지금보다 몇 살 더 많다고 해도 문제가 안 된다고요.”

그녀는 자기 일생을 나에게 배팅하려는 것 같았다. 이런 의외의 행동에 나는 한편으로는 감동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말했다.

“너한텐 문제가 아닐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문제야. 난 그렇게 낭만적으로 될 순 없어.”

그녀는 앙탈부리듯 말했다.

“나를 못 믿는 거죠? 당신 말 한 마디면 나는 나의 전부를 당신한테 드릴 수 있는데…. 나를 사랑하겠다고, 가정을 주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승낙하고, 너를 다 갖고, 그리고 난 후 일이 안 되면 어떻게 할 텐데?”

“그럼 내가 나 자신을 처벌해야지요. 죽어서 당신에게 보여드릴 게요.”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너를 갖지 못해도 좋아. 키스나 해 줘. 그걸로 대 만족이야.”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