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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 합당 전야의 ‘진실의 순간’ 이라 할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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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 합당 전야의 ‘진실의 순간’ 이라 할 술

남재희 회고 文酒 40年-그래도 잘 마셨다 <45>

***3당 합당 전야의 ‘진실의 순간’ 이라 할 술**

민정당(노태우), 민주당(김영삼), 공화당(김종필)의 3당이 통합하기로 기습적으로 발표된 날 밤 인사동 골목의 한정식집 <향정>에서 의미가 클 뻔한 술자리가 열렸다. 김상현(金相賢), 이기택(李基澤), 이종찬(李鍾贊), 김정례(金正禮), 남재희(南載熙) 등 여야의 중진의원들이 모였으니 얼핏보면 무슨 중대한 정치협상모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3당 합당 이야기는 전혀 짐작도 못한 채 <통 큰 아줌마>로 통하는 김정례 의원이 미리부터 주선했던 여야의 친목모임이었다.

대부분이 3당 통합이 놀랍다는 반응이였고, 주로 나온 이야기가 통합이 나쁠 것은 없지만 왜 하필이면 호남당만 고립시키고(호남당을 포위하여서) 다른 3당이 통합했느냐는 것이다. 가뜩이나 지역감정이 우려되고 지역간의 대립이 심한데 3당 통합으로 그 골이 더 깊어지게 되었다고 모두 걱정이 태산같았다. 술좌석은 그런 걱정으로 시종하였다.

참고로 참석했던 사람들을 간략히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상현씨는 전남 출신으로 소년시절 서울에 올라와 자기말로는 구두닦이 등 안해본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고생 끝에 대학의 정규교육을 받음이 없이 젊은 나이에 서대문에서 국회에 진출하고, 파란 많은 과정을 거쳐 6선을 기록하고 있다. 김대중씨를 필마단기로 처음부터 따라 다닌, 춘향전에 나오는 이도령에 방자 같은 심복으로, 그리고 DJ 망명 중에는 민추(民推)에서 대리인으로 줄곧 일관되게 활약했으나, 인생무상이 아닌 정치무상, 후에는 둘 사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다재다능, 붙임성 있고, 언변 좋고, 지모도 많아, 한마디로 말하여 정치력이 뛰어나다 하겠다.

이기택씨는 고려대학 4.19사자의 대표격으로 일찍 정계에 진출하여 7선을 기록하며 작은 당의 당수도 하면서 정치의 풍랑을 겪어왔다. 부산이 정치기반인데 그때까지 만해도 김영삼씨의 원내총무를 하고 있었다. 기린아라는 구식표현이 있는데 가히 정계의 기린아라 할 수 있으나 운은 그렇게 따르지 않았다.

이종찬씨는 한국 제일 가는 독립운동집안출신이다. 할아버지부터 독립운동을 하던 중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경기고ㆍ육군사관학교의 엘리트 코스를 거쳐 중앙정보부에서 경력을 쌓고 5.18후 민정당에서 장기간의 원내총무를 지내 실세 중의 한 사람이 되었는데 영국에서 오래 근무한 영향도 있는 듯 대단히 합리적이고 국제감각도 갖고 있다. 집안은 서울 토박이.

김정례여사는 전남 출신으로 대학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대단한, 정말 대단한 여걸이다. 해방 후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철기(鐵騏) 이범석 장군이 이끌던 민족청년단의 간부가 되어 철기의 귀여움을 받았다. 여성유권자연맹 위원장을 오래 맡아 여성운동, 재야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윤보선ㆍ김대중씨 내외 모두와도 각별한 사이. 전두환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보사부장관을 오래했다. 정계에 사통팔달하는 가히 마당발이었다. <통 큰 아줌마>에 손색없게 씀씀이도 인색하지 않다. 참고로 나는 충청북도 출신이다.

그런 사람들이 공교롭게 중대한 시기에 모였으니 무언가 일이 벌어질 만도 했다. 정치를 오래하면서 느끼는 것은 정치를 하는 데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중요하고, 그 대의명분을 포착할 기회는 그렇게 자주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당을 선택할 때가 물론 가장 중요할 것이다. 대개 처음으로 정당에 입당할 때는 그런대로 명분을 세우는데, 그 후 정당을 옮겨 다니는 것을 보면 명분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철새라고 폄하여 말한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나는 아주 드믈게 대의명분을 포착할 기회임을 느꼈다. 호남당을 고립시키거나 포위하는 3당 합당에 어찌 지역대립을 우려하는 정치인으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술자리는 이 호남당 포위 걱정이 계속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는 큰 걱정이다.

이기택씨는 술자리가 끝나기 전에 4.19의 동지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서 상의하겠다고 자리를 떴다. (4.19 동지들과 만나고 나서 이기택씨는 김영삼씨와 갈라서게 되었고 3당 합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서 여하간 그때가 결단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나머지 사람인 김상현, 이종찬 그리고 나는 가까이 있는 <이화>라는 맥주집으로 옮겼다. 이 집은 장을병(張乙炳), 임재경(任在慶)씨 등 당시의 이른 바 재야패들이 단골이고, 젊은 여주인이 센스가 있어 관람했던 영화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그 당시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화제였다. 거기서 우리는 또 밤 12시를 넘겨가며 3당 합당, 호남당 고립, 우리 정치의 앞날 등등을 골똘하게 논의했다. 참 드물게 진지했다. 영어 표현에 ‘진실의 순간’ 이라는 게 있는데 그때가 ‘진실의 순간’ 이었다.

그때 어떤 결론을 내렸더라면 하고 되돌아본다. 호남당 고립을 방지할 어떤 노력 같은 것 말이다. 그때는 대의명분을 손에 잡을 수 있었다. 우리 국민도 공감하여 이해하고 정치사에도 그런 노력으로 기록될 것이었다. 성공여부는 모르겠다. 실패확률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모였던 의기가 통했던 5명이 결속해서 일을 벌였더라면 하고 자꾸 생각이 떠오른다. 이종찬, 김정례 그리고 나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던가. 우선 성명을 낼 수 있다. 각각 소속당에서 이탈하여 비록 작더라도 독자모임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김대중당이나 3당 통합당에 영향을 주어 우리 정치의 코스를 조금이라도 옳게 잡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백일몽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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