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차 기름(茶油) 두 주전자**
어느 날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누군가가 사무실 문 밖에서 자꾸 고개를 들이밀고 안을 살폈다. 두 번째로 그 사람을 발견했을 때 내가 물었다.
“누구를 찾으십니까?”
그는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오더니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혹시 원진해 처장님이십니까?”
“누구십니까?”
그는 나를 살피면서 말했다.
“원 처장님을 찾는데요.”
“무슨 일이십니까?”
그가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원 처장님이십니까?”
“무슨 일인지 일단 말을 하고, 별 일 없으면 퇴근하겠습니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서더니 의자 가장자리를 어루만지면서 자리에 앉았다.
“원 처장님, 저는 운양시(雲陽市)에서 온 사람입니다. 원 처장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듣고 나는 얼른 그의 말을 자르면서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내일 원 처장님께 직접 말씀드리시죠.”
원래는 그의 표정이 수상하기에 무슨 일인지 한번 떠보려고 했었지만, 그가 이런 식으로 입을 열자 나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 나중에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는 내 말을 듣더니 자리에서 벌떡 뛰어올라 연신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물러서 나가버렸다.
저녁에 원진해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말했다.
“운양시에서 의사 몇 명이 피부병, 성병 방지 연구소 개소(開所) 허가를 신청하려는데, 지 부처장이 처리하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처장님께서 보고 결정하시면 되지요.”
“업무 파악도 할 겸 한 번 맡아보시지요.”
전화를 끊고 얼마 되지 않아 운양시 사람들이 찾아왔다. 오후에 왔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죄송했습니다. 죄송했습니다. 지 처장님께 말씀드려도 되는 줄 몰랐습니다.”
동류가 그에게 차를 대접하자, 그가 말했다.
“저는 성이‘구(苟)’가입니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부모님께서 별로 좋은 성을 주시지 않았어요.”(狗(구:개)와 발음이 같다는 점에서--역자)
오른손으로 왼손바닥 위에 한 획 한 획 써 보이면서 말했다.
“듣자 하니 제가 지 처장님과 학번이 같은 것 같던데, 77학번 맞으십니까?”
내가 말했다.
“무슨 일인지 일 이야기나 하시지요.”
“저는 운양시 제1병원 피부과에서 십년 동안 일했습니다. 운양시에서는 나름대로 이름이 난 편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어찌된 건지 아무리 일을 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병원 앞에서 과일 팔고 음료수 파는 사람들도 십만 이십만씩 벌어대는데 저는 여전히 빈손이니 말입니다. 마누라가 얼마나 집에서 볶아대는지 저도 이젠 아주 지긋지긋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무래도 병원에서 나와서 제 사업을 해보는 것이 낫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영업 허가증을 신청하고 싶다는 겁니까?”
그가 손바닥을 치면서 말했다.
“지 처장님이야말로 저희 같은 사람들 입장을 자상하게 마음 써주시는 것 같습니다.”
“관련 자료들을 준비해서 내일 의정처로 오세요. 아무래도 원 처장님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 처장님, 지 처장님!”
그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가 또 얼른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창을 열고 어둠을 향해 기침을 세 번 했다. 그러자 잠시 후에 한 사람이 더 올라왔다. 손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주전자를 들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구 의사가 말했다.
“이쪽은 모(毛) 의사입니다.”
사투리가 아주 심해서‘모’(毛)라는 말이‘묘’(猫:고양이)처럼 들렸다. 나는 속으로“오늘은 아주 개(狗)와 고양이(猫)가 다 모였군.”하고 생각했다. 내가 말했다.
“일 이야기 하는데 이런 물건은 왜 가져옵니까? 굳이 주시겠다면 내일 사무실로 가져다주십시오.”
구 의사가 말했다.
“이건 저희 동네 특산물인 차 기름(茶油)입니다. 성(省)에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첫 단계로 성의만 표시한다 생각하시고, 첫 단계로…. 저희의 수속 절차는 절대로 합법적입니다. 연구소에서 일할 일곱 명 중 다섯 명은 학부 출신이고 두 명은 전문대 출신이지요.”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자료를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시 위생국의 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나는 자료를 살펴보면서 말했다.
“자료가 부족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만, 현재 한두 군데서 신청 들어온 게 아니어서요. 사실 시 하나에 연구소를 몇 개나 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만약 그냥 진료소라면 시 위생국에 가서 허가만 받으면 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지 처장님께 도와달라고 찾아온 것입니다. 정말 그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날 이 분야가 워낙 이문(利錢)이 많은 장사여서요, 이쪽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지 처장님께 도움을 청하러 온 것입니다.”
말하면서 팔꿈치로 모 의사를 쿡 찌르자 모 의사가 말했다.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그럼 이만….”
구 의사가 동류에게 말했다.
“형수님, 제가 잠시 지 처장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장소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는 동류가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그 뒤를 따르면서 말했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거실에서 하시죠.”
그가 문을 잠그고는 말했다.
“모든 일에는 관행이라는 게 있게 마련이지요. 저희도 그 관행대로 일을 처리합시다. 지 처장님께선 자리가 자리이니 만큼 돈 쓰실 일이 많으시겠지요. 그깟 월급 몇 푼으로는 부족하실 겁니다.”
말하면서 그는 품속에서 봉투에 든 물건을 꺼냈다.
“작은 성의입니다. 사실 무슨 성의라고 말씀드리기도 우스울 정도로 작은 것입니다만, 아드님 사탕 값이라도 해주십시오.”
내가 말했다.
“이런 것은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저더러 법을 어기란 말씀이십니까?”
“이건 제가 원해서 드리는 겁니다. 저흰 친구잖습니까, 그렇지요? 누가 친구한테 선물하는 것이 위법이랍니까? 법도 인정머리가 있어야지요(法律也要講人情吧). 지 처장님이 뭘 받으셨습니까? 아무 것도 안 받으셨습니다! 만약 언제든 나 구(苟) 가가 지 처장님이 뭘 받으셨다고 말한다면, 그건 입에 피를 머금고 남에게 뿜는 것으로 오욕(汚辱)이고 음해일 겁니다. 증거를 대라고 하십시오.”
내가 말했다.
“저는 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절 끌어내리려는 겁니까? 글쎄, 내일 의정처로 오십시오.”
그가 말했다.
“이것이 관행입니다. 다른 시에서도 다 이렇게 합니다. 우리 운양시만 다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한 손으로 다른 손 주먹을 감싸고 굽실거리며 말했다.
“이번 일만 도와주시면 저희 몇 명, 집에 있는 노인 아이 다 포함해서 모두 지 처장님께 큰 은혜를 입는 셈입니다. 지 처장님의 은혜를 가슴에 새기고 살겠습니다.”
그러더니 말하던 도중에 돌연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내가 거실까지 쫓아나갔을 때에는 그가 이미 문을 닫고 나가버린 후였다. 토끼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와 봉투를 들어올리면서 물었다.
“얼마야?”
동류가 돈을 세어보더니 말했다.
“이만 위안 같아요.”
“감옥살이 하기에 충분하군.”
그녀가 말했다.
“위생청에서 감옥살이가 당신 차례까지 올 것 같아요? 당신은 아직 자격도 없어요. 이렇게 많은 온갖 종류의 허가가 나갔어도 누구 하나 감옥 가는 거 본 적 있어요? 이 정도 챙기면서 무서워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만약 정말로 당신이 감옥살이 하게 되더라도 까짓 내가 사식(私食) 해다 나르지 뭐!”
“이 자리에 앉고 나서 아직 엉덩이도 덥혀지지 않았어. 이깟 몇 만 위안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나는 자세히 따져보았다. 첫째, 구 의사는 원진해가 보낸 것이다. 내가 돈을 받는다면 원진해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사정을 내게 미룬 것은 나로 하여금 이 일을 하게 함으로써 자기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둘째, 구 의사가 몸에 녹음기라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방금 전의 대화를 녹음했다가 나중에 내 약점으로 사용한다면 나는 평생 그 사람에게 끌려 다니게 될 것이다. 바지가랑이에 진흙이라도 묻어 있으면 똥이 아니어도 똥처럼 보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 돈을 절대 받을 수 없다고 결정했다.
내가 말했다.
“이 돈은 받을 수 없어. 이건 폭탄보다 더 위험한 거야.”
동류가 말했다.
“그야 당신 마음이에요. 우리야 지금보다 더한 고생도 다 겪었는걸. 요즘이야 숨도 좀 돌리게 되었고. 설마 밥 굶기야 하겠어요?”
나는 그 돈 봉투 주위를 몇 바퀴 돌았다. 보고 또 보고, 손으로 만지고 또 만져보았다. 손바닥을 불에 데인 듯한 느낌이 들면서 손이 울긋불긋해지는 것 같았다. 얼른 주방으로 가서 차가운 물에 씻었지만 손바닥이 여전히 얼얼했다. 그런 얼얼한 느낌이 내 마음 속의 어떤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이 자리에 오를 당시 내렸던 가장 큰 결심은 수중의 권력을 최대한 이용하되 결코 선을 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또 생각해 보면, 이만 위안, 궤짝 안에 넣어버리면 그대로 내 것이 되어버리는데, 게다가 이 돈 때문에 무슨 위험한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깟 영업허가증 누가 내줘도 내줄 것인데 말이다.
누가 뭐래도 돈은 돈이다. 작년엔 일파 병원에 입원시킬 돈 이천 위안을 꾸기 위해 도처로 뛰어다녔었는데, 이제는 수만 위안을 쑤셔 넣어주면서도 내게 두 손 모아 굽실거리는 사람이 생겼다. 같은 동네에 살고 여전히 매일 같은 직장에 출퇴근하는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돈, 꿀꺽하고. 일, 해결해주고. 윈-윈! 그렇다고 누구 하나 나서서 나를 물어댈 것도 아니고. 이런 생각을 하자 머뭇거리게 되었다. 등불 아래에서 잠시 책을 보다가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막 잠이 들려던 차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침에 일어났을 때 돈이 안 보이면? 혹시라도 오늘 마침 도둑이 들어서, 혹은 어떤 신기한 힘이 돈을 사라지게 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돈을 가지고 와서 베개 아래에 쑤셔 넣었다. 그제야 좀 든든해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눕히자 딱딱한 돈 봉투가 느껴졌다. 오른쪽 왼쪽 딱히 배기지는 않았지만, 그렇지만 어떻게 해도 돈과 닿는 부분의 머리가죽에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원자력 에너지라도 방사하는 듯, 아니면 금세 폭발할 시한폭탄이라도 장착해 놓은 것 같았다. 나는 동류에게 말했다.
“이 돈을 챙긴다면 그게 즐거울까? 아니면 고생을 사서 하는 게 될까?”
그리고 안 선생님께 전화를 걸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아무래도 이런 일은 전화를 통해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 구석에 제 3의 귀가 듣고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그래서 안 선생님 댁으로 찾아갔다.
안 선생님의 딸인 아아(阿雅)가 문을 열어주었다.
내가 말했다.
“돌아왔어?”
그리고는 그녀에게 다른 방으로 자리를 피해달라고 하고 안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다. 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네가 챙기는 게 제일 좋겠네. 아무 일 없을 거야.”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받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익숙해져서 아무 일 없다지만 전 이 돈을 챙기게 되면 마음속에 뭐라도 돋은 것 마냥 계속 신경이 쓰일 것 같습니다. 평소에 말할 때에도 힘이 안 실릴 것 같고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군.”
“내일 아침 일찍 기율검사회로 찾아가서 그쪽 사람들한테 처리해달라고 하겠습니다.”
“내게 말해보게. 자네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나는 그의 뜻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위쪽을 찌르는 것을 보고 그제야 알아차렸다.
“일단 이 길에 들어선 이상 계속 가야지요. 애초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모를까 일단 들어선 다음에야 끝이 있겠습니까.”
“그 정도 포부가 있다면 자네 혼자 꼿꼿하게 나서서 밝은 미래가 열릴 거란 생각은 절대 해선 안 되네. 자네가 돈을 기율검사회 사람들한테 보내게 되면 자네는 수많은 사람들을 난처하게 하는 걸세.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었어도 아무 이야기 없었던 자리인데 지대위가 오자마자 그런 일이 터졌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물론 처음에는 자네를 칭송하겠지. 성 신문에까지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지만 그 다음엔 인민의 공공의 적이 되는 걸세. 자네의 앞길도 막히는 거지.”
“제 생각에도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아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물건을 거부하자니 내가 공공의 적이 되겠고, 이 물건을 받자니 또 언제 터질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화장실에 버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가 신음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조용히 그 사람들에게 돌려주게. 원진해 그쪽 태도도 영 애매하니까.”
“그 인간은 뭣 하는 사람인지….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 분명히 알 텐데 말입니다. 내가 받으면 나에 대해 마음 놓겠다, 친구 하겠다는 묵계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내가 거절하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내게는 거리를 두고 사사건건 나를 배척하려 들겠지요. 내가 자기 영역을 침범하도록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그럼 이렇게 하게. 그 사람들한테 돈을 돌려주면서 주주로 참여하겠다고 하게. 그리고 나서 이윤을 배당받지 않으면 주도권은 여전히 자네 수중에 있게 되고….”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차 기름(茶油)도 두 주전자나 받았는데….”
“누가 차 기름 두 주전자 가지고 딴지를 걸겠나?”
“정말이지 이 바닥에 몸담는 것도 정말 재미없는 일입니다. 하나같이 다른 사람 약점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서, 또 다른 사람한테 약점 잡힐까봐 두려워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셔도 무슨 특수공작원보다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하니까요. 친구가 적이 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남의 약점 잡고 싶은 생각 없으면서도 그런 척하고 있어야 한다니까요.”
“세상에 공짜 점심이 어디 있어(天下哪有免費的午餐)!”
“누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편하다고 했습니까! 눈앞에 놓인 돈 뭉치를 보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그 시험을 견뎌낸다는 게, 결코 간단하지 않네요.”
이튿날 출근하자 원진해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묵계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려 보였다. 정오가 다 될 무렵 동류가 전화를 걸어 말했다.
“그 돈, 당신이 갖기 싫으면 그만 두더라도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윗사람한테 갖다 바치진 말아요. 방금 우리 수간호사와 이야기하다 들은 이야기인데, 여기 3호 병실에 운양시 전(前)시장 반필직(潘畢直)이란 환자가 입원해 있데요. 원래 성(省) 정부 사람이었는데 일을 한번 해보겠다고 운양시로 갔었나 봐요. 그런데 거절하기 힘든 돈 봉투를 받는 대로 위에 상납했다가 모두의 분노를 사서 하는 일마다 안 풀리고 선거에서도 현지 사람한테 지는 바람에 다시 성으로 돌아갔다가 그대로 퇴직했다지 뭐예요. 화병으로 입원해 있대요.”
전화를 끊고 나는 불룩하게 튀어나온 지갑을 만져 보았다. 돈이 제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이틀 후에 구 의사가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내가 말했다.
“저녁에 집으로 오시지요.”
그는 아주 흥분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지 청장님.”
날이 어두워진 후에 그가 왔다. 내가 말했다.
“이번 일은 성급하게 추진해선 안 됩니다. 여기에 자료가 몇 부씩이나 있는데, 이게 유일한 자료는 아니겠지요?”
그가 다급해 하면서 말했다.
“그게, 그게…?”
그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재빠른 동작으로 양복 칼라 쪽에서부터 가슴 속으로 집어넣더니 곧 다시 꺼냈다. 내가 말했다.
“이 자료들은 내일 의정처의 양 군에게 갖다 주시고, 절차대로 하세요. 내가 전해주면 보기 안 좋지요.”
그가 다시 한번 손을 가슴 속으로 집어넣더니 다시 꺼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지 처장님 말씀은 가망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제가 언제 그렇게 말했습니까?”
나는 말하면서 그 돈 봉투를 꺼냈다.
“이 물건 전 못 봤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르고요. 아마 담배겠지요. 전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일단 다시 가지고 가십시오.”
그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있는 힘을 다해 돈을 밀어내면서 말했다.
“지 처장님, 저더러 돌아가서 사람들을 어떻게 보라고 이러십니까. 모두들 저 하나만 쳐다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벌써 좋은 일 있을 거라고 소식을 전했는데, 어르신, 저희 같은 서민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리고는 가슴에서 또 봉투를 하나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그 정도 성의로는 부족할 줄 알았습니다. 그게 저와 모 의사가 상의하던 중 개업할 때 돈 드는 일이 워낙 많아서 비상금을 좀 남겨두려고 했던 것이, 정말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저희가 관행을 위반했습니다. 지 처장님 저희에게 오류를 수정할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
“집어넣으라면 집어넣으세요. 안 그러면 제가 기율검사회의 노(盧) 서기를 부르겠습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한참 입을 벌리고 있더니 말을 꺼냈다.
“정말이십니까?”
그는 돈을 거둬들이면서 말했다.
“전 정말로 집에 돌아갈 면목이 없습니다. 모두들 목을 뽑고 절 기다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꼿꼿이 세웠다. 내가 말했다.
“일단 물건부터 거두고 그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그가 자리에 앉았다. 내가 말했다.
“그쪽 자료는 제가 검토해봤습니다. 시 위생국에 가서 두 가지 증명을 보충해서 내일 양 군에게 제출하십시오. 만약 자료에 거짓이 없다고 판명되면…, 비교적 건실한 것 같더군요.”
그가 말했다.
“자료에 거짓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 처장님이 저를 때려죽이십시오.”
말하면서 돈 봉투를 들어 머리를 힘껏 쳐 보이면서 말했다.
“이 물건은?”
하면서 봉투 두 개를 다시 들이밀었다. 내가 말했다.
“저더러 오류를 범하라고 하시는데, 제가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이게 오류랍니까? 돈을 들여 일을 해결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고생한 사람에게 다리 품 판 삯이라도 주자는 건데요. 그런 뜻이 아니었다면 제가 여기서 제 아들의 이름을 걸고, 목숨을 걸고, 맹세를 하겠습니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제가 당신 부자를 저주하는 셈이 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이렇게 합시다. 내가 당신네 사업에 주주로 참여하는 겁니다. 사업이 안 되면 그만두고, 사업이 잘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 합시다.”
그는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이게 지 처장님 자본금입니다. 영수증이라도 끊어드릴까요? 일을 하려면 진지하게 해야지요. 다른 사람 돈을 받고 고개만 한번 끄덕하면 되겠습니까?”
“그 돈은 제 돈이 아닙니다. 제가 따로 또 지불해야지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백 위안만 주십시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백 위안이면 밥 한 끼 먹기도 모자라는 돈인데, 일 년에 얼마나 배당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내가 말했다.
“백 위안요?”
“지 처장님 농담하지 마십시오.”
그가 손가락을 굽혔다가 다시 꼿꼿이 세워 보였다. 내가 말했다.
“그럼 천 위안인가이요?”
“천 위안이면 지 처장님께서 귀찮아 손이나 뻗으시겠습니까?”
“그럼 만 위안이란 말입니까?”
“지 처장님 생각에 만 오천 위안이면 어떻겠습니까?”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그리고는 백 위안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그가 돈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지 처장님께서 저희를 크게 도와주시는 겁니다. 이 돈은 저희 일곱 명의 가족 친지들이 모은 돈입니다. 사실 아직 임대료며 의료기계 살 돈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일단 간판부터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간판이 걸리면 돈이야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겠다 싶어서 말입니다.”
“그쪽 형편도 쉽지 않겠지요.”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떠나며 말했다.
“내년에 새해인사 드리러 오겠습니다.”
그가 떠나자 동류가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냥 저렇게 보내는 거예요?”
“우리도 양심이 좀 있어야지. 그 차 기름 두 주전자면 백 위안쯤 하지 않을까?”
나는 차 기름 주전자 하나를 안 선생님께 갖다 드리려고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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