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대면식(對面式)**
위생청 바닥에서 반년 간 일 하면서 나는 스스로 꽤나 눈치 빠른 인간이고,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다(如魚得水)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눈치 빠른 인간이 그처럼 오랫동안 찬밥신세로 지냈다니, 돌이켜 생각해보니 불가사의했다. 이 바닥에서 활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위 사람들, 특히 가장 윗사람의 마음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고 그들을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그 의미가 매우 중요한 일들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이런 중대한 일들은 술자리와 같은 사소한 곳에서 발생한다. 윗사람들이 무의식중에 내뱉는 듯한 한 마디 말에 대해, 때로는 그 뒤에 숨은 내용을 찾기 위해 나는 윗사람들이 그 말을 할 때의 감정과 사용된 단어의 길이 등을 장시간 분석하면서, 각종 인물들 간의 관계까지 생각해 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조금씩 진보해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나의 경우 이 조금씩이란 것의 의미는 실제로는 매우 큰 것이었다. 그것은 곧 축적을 의미했다. 축적이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곧 질(質)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니 어찌 무슨 일이든 함부로 할 수가 있겠는가. 때로는 나 역시 옛날 그리스 성인의 가르침처럼 조용히 나 자신을 알려고 노력했고, 나 자신에게도 비열한 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하루 종일 남의 말과 안색이나 분석하고 살피고, 온갖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높은 사람들의 마음이나 헤아리면서 목소리나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그들의 뜻에 영합하려는 것은, 비록 눈치 또는 이해력이란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더라도, 어쨌든 비열한 짓이고 노예근성이 내포되어 있는 행동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럴 때 나는 속으로 나 자신을 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러나 욕하는 것은 욕하는 것이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안 할 수 있어? 나 자신에게 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또 나를 매우 뿌듯하게 했고 정신적인 우월감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자기 자신을 욕할 수 있는 능력도 아무나 다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
삼월 말에 나는 박사학위 시험을 봤다. 시험 보기 전에 마 청장님은 내가 지도교수 녕(寧) 부원장을 만나보도록 주선해 주셨다. 면담 후 나는 시험에 대한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유월 말에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칠월에는 직무평가를 받아서 부 연구원이 되었다. 직무평가를 받음으로써 집 배정 점수가 과장일 때에 비해 다시 5점이 많아졌다. 연초에 비해서는 10점이나 더 많아짐으로써 거실 하나에 방 두 개인 집이 배정되었다. 이사하기 바로 전날 밤, 동류는 흥분해서 밤새도록 한 숨도 자지 않았다. 한밤중에 나를 깨워서는 방에 대해 토론하면서 말했다.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어떤 느낌일까요? 몸이 붕 뜨지는 않을까요?”
“붕 뜨면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겠네? 어째 눈이 그렇게 낮아? 서른 평도 넘는 집에 사는 사람들은 늙지도 않겠네?”
“어찌 감히 당신과 마 청장님을 비교해요?”
이어서 말했다.
“저는 정말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드디어 나의 주방을 갖게 되다니,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요. 어쨌든 날개가 붙어서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 정도로 좋다면, 됐어!”
반년 겨우 지났는데, 나는 벌써 무슨 과장 같은 것엔 성이 차지 않았다. 내 마음은 더 크고 더 먼 데 가 있었으나 그것을 동류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동류와 같이 행정과에 열쇄를 받으러 갔더니 신(申) 과장이 말했다.
“지 과장, 자네 이사할 집은 수리하거나 장식할 필요가 전혀 없어.”
동류가 말했다.
“어떻든 장식은 좀 해야겠어요. 어렵사리 집을 배정받았는데, 장식을 안 한다고 해서 우리야 억울할 게 없지만, 방이 억울하지 않겠어요? 방을 억울하게 해 놓고 우리 맘이 편하겠어요?”
신 과장이 말했다.
“동류 씨,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지만, 좋은 일이 들어오려고 할 땐 대문을 걸어 잠가도 그걸 못 막는다고 했어요. 나는 이십년이 넘게 위생청에 있으면서 그런 것을 봐왔어요. 잘 풀리는 사람은 어쨌든 잘 풀리고, 안 풀리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안 풀리더라고요.”
집은 아무런 수리도 장식도 하지 않고 입주했다. 동류는 그게 못내 아쉬워서 계속 한탄했다.
“집은 이렇게 좋은데, 우리의 감각이 이 집에 살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코딱지만한 집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이 집에서도 반평생은 살지 않겠어요?”
그녀의 상상력에도 역시 한계가 있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구월 초에 나는 합격통지서를 가지고 중의학원에 신고하러 갔다. 가서 사정을 알고 나서 나는 멍해졌다. 녕 부원장은 네 명의 박사학위 과정생을 지도하는데, 정식으로 중의를 공부한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나머지 세 사람은, 한 사람은 운양시(雲陽市) 시위원회 부 서기였고, 한 사람은 성(省) 계획출산(計生) 위원회 부주임이었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임지강이었다. 당초에 임지강도 박사학위 시험에 참가하겠다고 하기에 나는 매우 의외라고 생각하고 가소롭게 생각했었는데, 그가 합격할 줄이야! 중의를 배워본 적도 없는 전문대학 출신이 석사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박사학위 과정을 밟을 수 있다니, 세상은 정말로 완전히 개혁개방이 되었구나! 이런 괴상한 일은 권력과 돈을 떠나서는 근본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자명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무슨 수로? 무슨 일이든 모두 인간들이 하는 것이다. 규칙이란 단지 방법이 없는 인간들만 묶어놓을 수 있을 뿐이다. 방법이 있는 사람들에겐 규칙이란 단지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하다. 남들은 할 수 없는 것도 버젓이 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사정을 똑똑히 알고 있어도 달리 방법이 없다.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자일 뿐이라고 우기는 저자들에게 감히 누가 진실을 주장하고 맞설 수 있겠는가?
나만 빼고 세 사람은 자가용을 타고 왔다. 이런 장면을 보고나서 나는 나도 더 이상 이런 일에 흥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 같이 시험을 봤던 중의학원 약물학 계통의 두 부교수는 시험에 떨어졌다. 어떤 사람은 생선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모조리 다 먹어치우는데, 그것을 먹을 수 없는 다른 일부 사람들이 그 대가를 치루고 있다. 나는 그들이 상부로 가서 이 일당들을 찔러 바치고 억울함을 호소해 주기를 바랐으나, 결국 한 마디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사람들은 참으로 수양이 잘 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잖은가? 사정이 이러한데 주둥이를 놀려봐야 무슨 소용인가. 똑똑히 보려고 해야 한 눈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을 잘 수양하는 것이다. 잘 수양하지 않으면 달리 또 어쩔 수 있겠는가?
신 과장 말이 맞았다. 좋은 일이 찾아오려고 할 때는 대문을 걸어 잠가도 그것을 막지 못한다. 연 말에 위생청에서는 다시 나를 의정처 부처장으로 발령했다. 인사발령 문서가 내려온 그날 윤옥아는 얼굴 가득 의혹의 기색을 띠고 나를 곁눈질했다. 그녀의 남편 팽(彭) 부처장은 이미 그 자리에서 쫓겨났으므로, 그녀는 하루 종일 위축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하는 말마다 독을 품고 있는 것 같았고, 음습하지 않은 말이 없었다. 나는 그런 독이 들어 있는 말을 들어도 모르는 체하고 아무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이미 늙어빠진 호랑이를 때려죽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녀도 본능적으로 자기의 액운과 나의 행운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 거라고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러나 그 연결고리를 찾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분명히 내가 단순히 동류의 침놓는 실력 하나에 의지해서 승승장구한다고는 믿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원한을 품어 봐야 속으로 숨기고 참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가슴 아픈 일에 이렇게 냉담할 수 있다니…. 나의 마음도 이미 몹시 모질어져 있음을 스스로 느꼈다. 나는 그녀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 있거든 의정처로 나를 찾아와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오년간이나 서로 얼굴을 맞대고 지냈는데 헤어질 때 이렇게 냉담하다니, 그녀는 정말 제멋대로였다. 나 지대위가 어떤 인간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뱃속 가득한 불만을 얼굴에 다 드러내다니…. 저러니 일이 잘 풀릴 수가 있겠는가?
의정처로 가니 사무실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양(梁) 군이 농담을 던졌다.
“지 처장님, 올해는 대풍년입니다.”
“내가 무슨 귤나무라도 됩니까?”
그리고 원진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같은 가짜 처장을 처장이라고 부르다니, 진짜 처장님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나는 관례대로 의정처 사람들을 한 자리에 소집해서 대면식(對面式)을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진해가 그 일에 관해서는 말 한 마디 꺼내지 않는 것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나도 그깟 새털 같고 마늘 껍데기 같은 일 가지고 난리칠 일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이런 새털, 마늘 껍데기 같은 일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만큼, 이런 부분에서부터 따지고 들지 않으면 나중에는 정말로 냉대를 받아도 아무것도 못 느끼게 되고, 그 다음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랫사람들까지 나를 무시하겠지. 대면식 자체야 그렇고 그런 연극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연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바닥에서 형식은 내용보다 훨씬 내용이 풍부하기 마련. 이 바닥에 몸을 담은 이상 나도 이런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말했다.
“언제 한번 모두 모여서 인사라도 합시다. 제가 의정처분들 얼굴은 익숙하지만 아직 이름들은 부르기가 어색합니다.”
원진해는 무뚝뚝한 얼굴로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어떻게 자리를 마련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오. 내일 오후 위생청에서 법률상식 시험이 있으니, 시험 후에 모두들 모이기로 하지요.”
“그럼, 그렇게 하죠.”
그 정도 성의표시만 있으면 충분했다. 나도 유난떨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퇴근 후에 나는 위생청의 공지사항을 보게 되었다. 내일 오후 세시 반에서 다섯 시 반까지 법률상식 시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시험을 마치고 다시 위생처로 돌아오면 이미 퇴근 시간일 텐데 대면식은 무슨 대면식을 갖는다는 것인가! 묽은 설사 같이 할 거라면 아예 안 하고 말지. 나는 마음이 싸늘해졌다.
퇴근 때까지 나는 이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이 답답하다 못해 황망해졌다.
저녁에 동류가 말했다.
“여보,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어요? 일련의 문제들이 이렇게 후다닥 해결되고 나니까 난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평생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말이에요.”
“여자는 천생 여자로군.”
그녀가 계속 묻는 바람에 나는 그녀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녀가 말했다.
“마 청장님을 찾아뵈면 되잖아요.”
“쥐똥만한 일까지 마 청장님을 찾으라고? 그 어르신이 우리 집 머슴도 아니고 말이야.”
“싫으면 관두고.”
“오늘 이대로 관두면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을 관두어야 할지…. 이 바닥에선 소사(小事)가 대사(大事)를 끌고 가게 마련이야.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런 사소한 일을 따지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따지지 않으면 앞으로 모든 일을 그 인간 페이스대로 끌려가야 할 거란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 청장님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 어르신한테야 작은 일이지만 나한테는 내 포지션을 결정하는 중대한 일인 것이다. 나는 동류와 일파를 데리고 택시를 탔다.
도착해보니 온 가족이 식사하는 중이었다. 동류가 문을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일파가 묘묘 본 지 오래되었다고, 묘묘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 뭐예요. 마침 저도 사모님 뵈러 오고 싶던 참이라 아예 일파 아빠까지 마 청장님 방해될까봐 못 오겠다는 걸 끌고 왔어요.”
사모님이 말했다.
“그냥 오면 된다니까. 이 양반이야 할 일 있으면 서재에 있으면 되요.”
먹던 밥도 내려놓고 일파의 손을 끌고 놀러 나가려는 묘묘를 보모가 다시 안아서 밥 상 앞에 앉혀 놓았다. 마 청장님이 말씀하셨다.
“대위, 오늘 새로 부임한 건가?”
“예.”
동류가 말했다.
“새로 부임했으면 조직에서 나를 믿고 일을 맡겨주신 것에 대해 기뻐해야 정상인데, 이 사람은 어찌 된 게 별로 기쁘지 않은가 봐요. 방금 전에도 여기 오자고 하는데 안 오려고 하더라고요.”
마 청장이 말했다.
“별로 기쁘지 않다고? 그럴 리가….”
“말씀드리기엔 사소한 일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내게 이야기해봐. 얼마나 사소한 일인지 내가 한 번 들어보게.”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업무를 전개하는 데 있어서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겨버리면 나중에는 무슨 말을 해도 잘 안 먹히게 되거든요.”
마 청장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일은 큰일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작은 일이라고 할 수도 없지. 내가 전화해주지.”
그러더니 밥그릇을 내려놓고 서재로 들어갔다. 나도 딱히 말리지 않았다. 잠시 후에 마 청장님께서 서재에서 나오면서 말씀하셨다.
“내일 평상시처럼 출근하게.”
동류가 말했다.
“마 청장님, 이 사람 투덜대는 것 들어주지 마세요. 귀찮지도 않으세요? 이런 작은 일까지 부탁하면 마 청장님 식사는 언제 하시고 잠은 언제 주무세요?”
사모님이 말했다.
“그거야, 누구 일인지 봐가면서 결정하는 거지.”
식사 후에 마 청장님은 뉴스를 보시고 우리는 아이들과 장난을 쳤다. 동류는 사모님과 끝도 없이 수다를 떨었다. 한참 놀다가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 문을 나서는데 묘묘가 외쳤다.
“일파 오빠 내일 또 와! 나랑 놀자.”
현관에서 사모님이 말했다.
“류, 대위 씨 옷차림 정장으로 입혀드려.”
동류가 말했다.
“이 사람은 이렇게 편하게 입는 데 익숙해져서요. 일년 내내 재킷 한 벌로 버티는걸요.”
마 청장님이 고개를 돌리면서 말씀하셨다.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전화로 얘기해도 괜찮아.”
버스를 타면서 내가 말했다.
“앞으로 마 청장님께는 무슨 일이 있으면 솔직히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어. 이런 식으로 둘이 이중주를 할 게 아니라. 그 분이 어떤 분인데 우리 속을 모르시겠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다 아실 텐데!”
동류가 말했다.
“나올 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니까 나도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마 청장님은 우리한테는 은인이신데, 우리도 진심으로 보답해야지.”
그리고 덧붙였다.
“사모님도 당신을 좀 꾸며주라고 했죠? 내가 내일 가서 좋은 옷을 몇 벌 사와야겠어.”
나는 사모님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정장으로 입으라는 말은 양복에 구두까지 신으라는 소리인데, 이 말은 결코 무심코 한 말이 아니었다. 그 안에 어떤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내가 말했다.
“좋은 옷은 한 벌에 몇 백 위안, 천 위안까지 하는데, 당신 속이 좀 쓰리겠어.”
웬걸, 동류가 말했다.
“내일 동훼한테 삼천 위안 빌려다가 당신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무장시켜 줘야지.”
보아하니 투입이 있어야 수확이 있다는 도리를 그녀도 모르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원진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어제 저녁에 생각을 해보았는데, 오늘 오후 일과 끝나고 나서 열기로 했던 대면식을 오후 일과 시작하자마자 엽시다. 세시 반까지 제대로 대면식을 갖고 나서 시험을 보러 가도록 합시다. 모두에게 할 말이나 준비하시죠.”
“그냥 인사나 하고 서로 이름이나 익히면 될 텐데 뭘 그리 진지하게 하십니까?”
“저녁에는 모두들 수원호텔로 가서 한두 테이블 벌려놓고 맥주나 시켜서 모두들 먹고 마시고 기분도 내구요. 아, 볼링 하세요?”
“대면식을 갖든 안 갖든 사실 저야 별 상관없지만, 이미 결정하셨다니 모두들 이번 기회를 통해 인사를 나누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기분까지 낼 필요가 있습니까? 그만한 돈은 의정처에서도 쉽지 않을 텐데요.”
나는 이 기회를 틈타 의정처의 금고 사정을 슬쩍 떠볼 생각이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 의정처가 넉넉하진 않지만, 밥 한 끼 먹는다고 가난해지진 않아요.”
결국 그렇게 결정되었다.
한참 지나서야 나는 두 해 전에 원진해가 처장으로 승진했을 때는 전 의정처 사람들이 차를 렌트해서 교외의 백로(白鷺) 리조트에서 이틀간 놀면서 수천 위안에 달하는 돈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인간은 뻔히 알고 있었다. 바로 그렇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모르는 척 얼렁뚱땅 넘겨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 넌 똑똑하다. 그럼 나 지대위는 바보냐? 이 일이 있고나서 나는 마 청장님 댁에 한번 다녀오는 것이 실제로 매우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바닥에 들어선 이상 너는 온 신경을 다 기울여 예의를 챙겨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어떤 사람의 포지션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아니라면 황제는 뭣 하러 즉위식을 치루고, 신하들은 또 뭣 하러 무릎 꿇고 예를 갖추겠는가! 형식이 곧 실질이다. 이야말로 정말이지 매우 커다란 문제이다!
직함이 생기고 자리가 생기자 이런 저런 좋은 일들이 코 바로 앞으로 닥치기 시작하는 것이 내가 거부해도 소용없는 듯했다. 내 월급은 일 년 사이에 두 번이나 올랐고, 위생청에서 집에 전화를 설치해주고 매달 백 위안씩 전화비까지 계산해주었다. 한 해 동안 발생한 이러한 변화를 생각하면 정말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집사람은 직장을 가까운 곳으로 옮겼고, 우리 집도 마련했고, 직함에 자리까지 생겼다. 박사 과정을 밟게 되었고, 월급도 오르면서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내 말에도 힘이 실렸다. 권력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다는 말은 틀림이 없었다. 일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하늘에 오른 듯, 다시 반 발자국만 앞으로 나아가면 정말이지 바람아 불어라 하면 바람이 불고, 비야 내려라 하면 비가 내리는 수준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반 발자국이 지닌 의미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큰,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바로 그 반 발자국을 내밀기 위해 사람들이 머리를 짜내고 하늘에 이를 듯 원성을 높이고 눈물을 짜는 것을 보면서 정말 우습다고 생각했었다. 다 큰 사내가 말이야, 저럴 가치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나의 일이 되자 그제야 그 반 발자국의 무게와 함금량(含金量)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란, 딱히 야심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진보를 꿈꾸게 마련이다. 누구누구가 야심가라고 비판하는 것은 정말이지 우스운 일이다. 이전에 내가 야심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을 때, 누구 하나 나를 그 손톱만큼, 그 반만큼이라도 보살펴주려고 한 사람이 있었는가?
세계는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이 바닥은 특히나 그렇다. 이러한 현실주의 세계 속에서 나 혼자 이상주의자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코앞에 놓인 그만큼의 물질, 비록 내가 가끔은 뛰쳐나와 큰 소리로 그 모든 것이“한 무더기의 쇠똥”에 불과하다고 외치더라도, 나는 분명 그 물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인생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바로 자기 발바닥 아래 몇 뼘의 땅을 밟고 사고(思考)한다는 것,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게 되면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하고, 코앞의 그나마 물질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고 만다.
세계에게 나는 먼지만큼 미세한, 있으나마나 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내가 오늘 죽는다고 해도 세상은 어김없이 돌아갈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슬프고 가련하며 한탄스러운 존재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바로 의미의 전부이며, 나의 존재야말로 가장 중대한 사건이다. 세계와 나 사이에는 실제로 너무나 커다란 입장의 차이가 존재한다.
닭은 매일 무엇을 쪼아대는가(鷄每天琢磨什麽)? 닭이 쪼는 것은 결코 의미가 아니다. 닭은 그 몇 개의 좁쌀을 쪼아댄다. 나는 매일같이 무엇을 쪼아대는가? 고양이의 경계심으로 모든 정보, 말 한 마디, 동작 하나, 눈빛, 한줄기 웃음까지 포착하여 자세히 분석하여 그런 정보를 통해 상대방의 잠재의식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안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처세의 도리는 백 가지, 천 가지가 필요 없다. 그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의 태도를 이해하라.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무슨 입장의 공정성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관리가 백성들을 속여 먹을 때나 쓰는 원칙이다.
음력 설 전에 원진해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모두들 지난 한 해 고생하셨습니다. 올해에는 상여금을 평년보다 좀 더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정처에 온 지 두 달이 되었는데도 아직 의정처의 재정상황을 도저히 파악할 수 없던 터라,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올해 의정처 예산이 어느 정도 남았습니까?”
“잔고 말입니까? 위생청에서 지급하는 것 외에 한 사람당 만 위안에서 이만 위안씩 지급하면 어떻겠습니까? 돈은 남기는 것도 화가 되지요.”
그 수치를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이“윙!”하고 울렸다. 도대체 그 돈이면 월급의 몇 배지?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재주로 그렇게들 윤택하게 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나는 성(省)에서 매년 실시하는 자격고사의 교재 편집 문제를 의정처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이윤이 남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내가 말했다.
“저는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조금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왔으면 저희 의정처 사람인데 그럴 수야 없지요. 원래는 양력 설 전에 지급하려고 했었는데, 부 처장님이 저희 의정처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눌러두었던 겁니다.”
내가 얼른 말했다.
“원 처장님께서 그렇게까지 세심하게 배려를 해주시다니 저는 정말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제가 가장 낮은 등급의 상여금을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관행대로 합시다. 오후에 양 군더러 돈을 갖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이미 계산도 다 끝냈고요.”
생각해보니 내가 적은 액수의 돈을 받아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상여금을 지급하는 데 있어서 사람마다 분명히 차등이 있을 텐데, 내가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원진해 혼자 너무 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저녁에 돈이 든 봉투를 들고 와서 동류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신문지에 쌓인 삼만 위안을 보더니 테이블 옆에 서서 입을 딱 벌렸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아무 말도 않고 멍하니 앞만 쳐다보았다. 나중에 나는 조용히 의정처 사람들에게 얼마씩 받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만 위안을 받은 사람도 있었고 이만 위안을 받은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도 원진해가 얼마 받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혹시 누군가 불만을 품지나 않을까 나는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러나 누구 하나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내 생각에 그들도 분명 불만스러웠겠지만 그러나 한결같이 꾹 뱃속으로 눌러 참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 참으면 어쩌겠어! 나도 물론 내가 얼마 받았는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