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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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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59>

홍곡지지(鴻鵠之志)

***59. 홍곡지지(鴻鵠之志)**

밤 열시가 조금 넘어서 나는 살금살금 안 선생님 댁으로 가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그에게 알렸다. 그러나 마 청장이 말한 홍곡지지(鴻鵠之志) 대목은 빼놓았다. 그가 말했다.

“어쨌든 이제 길에 들어섰네.”

“어제 선생님께서 뭔가 돌아오는 게 있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그리고 또 이렇게 후할 줄은 몰랐어요.”

“좋은 일은 이제 시작이야.”

“너무 빠른 것 같아서…. 무슨 물물교환마냥, 내가 뭘 얻으려고 그랬던 것 마냥, 좀 부끄럽네요.”

그가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그럼, 뭘 얻으려고 했던 게 아니란 말이야? 아니면 마음속으로는 뭘 좀 얻어먹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한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단 말인가?”

“부끄러워서 그럽니다. 마 청장님한테 저의 속을 훤히 다 들킨 것 같아서요.”

“마수장, 그 인간이 자네 하나 못 꿰뚫어본다면 어찌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겠어? 들킨 거야 뭐 별거 아닐세. 일단 생존부터 해야 하니까. 생존 다음에는 발전해야 하는 거고. 누구라도 마찬가지지 뭐. 자네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아나? 큰 인물들은 일찌감치 인간을 다 꿰뚫고 있어. 뭐 다 그렇고 그런 일인데 그걸 갖고 따지면 뭐 하나. 실질만, 맹우(盟友)인가 아닌가만 보면 되는 거지. 그런 것까지 다 따졌으면 임표(林彪)가 그 자리까지 올라갔겠나? 그 바닥에서는 재깍재깍 돌려주는 것도 일종의 룰이거든. 그런 룰이 없으면 게임이 성립하지 않아. 자네한테는 자네한테 돌아오는 몫이 있고, 서소화한테는 서소화의 몫이 있고…. 그게 다 룰이지.”

이제야 나는 한 사람의 행운이라는 것이 결국은 다른 누군가의 불운을 대가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인간의 불운이 없다면, 내 행운은 또 어디서 온단 말인가.

안 선생님이 말했다.

“이상한 점이 없진 않아. 이치대로라면 그런 보상은 똑같은 수준에서 오고가는 건데 말이야. 어떻게 자네한테만 특별대우냔 말이야. 혹시 그이가 자네를 찍은 거 아냐? 혹시 모르지. 자네가 마 청장이 점 찍어놓은 다크호스(黑馬)일지.”

나는 흥분해서 그 홍곡지지(鴻鵠之志)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역시 참기로 했다. 한편 안 선생님의 그 놀라운 민감함에 감탄했다. 이렇게 도가 트인 사람이 평생을 그냥 평사무원으로 썩고 있다니, 그 고상하면서도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에 망해버렸구나!

그가 말했다.

“자네 당분간은 행정과에 가지 말게. 일단 한 숨 돌리고 잠잠해질 즈음 가보지 않으면 적을 무더기로 만들게 될 테니 말이야. 사람들이 얼마나 민감한지 몰라. 뭐, 몇 년을 기다렸는데 한두 주일을 못 참아?”

결국 사건은 매우 희극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날 오후부터 편지에 서명을 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마 청장을 찾아와서 참회를 표시하면서, 하나같이 본인들은 사기를 당했다고, 자기들은 서소화의 술수를 밝히기 위해 잠복해 있었던 거라고 이야기했다. 서소화가 구축했던 진(陣)은 단번에 완전히 붕괴되어버렸다.

며칠 후 성 위원회 조직부에서 조사단이 내려왔을 때, 바로 이 인간들이 가장 단호한 태도로 마수장이 얼마나 훌륭한지, 서소화는 또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자 음모꾼인지를 이야기했다. 조사단이 나와 단독으로 이야기할 때, 나는 매우 평온하고 냉정한 태도로,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사실만 이야기해서, 조사단 사람들마저도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 청장이 있어야 나 지대위의 살 길이 보장받는다. 이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견고하게 합의된 결맹이었다. 이 바닥은 다 이렇다. 이럴 수밖에 없다.

조사단이 돌아간 지 얼마 안 되어 성위원회 조직부에서 문건이 내려왔다. 마청장이 지난 일년간 비어 있던 위생청 당 조직의 서기직을 겸임하게 되었다. 서소화는 앞당겨 퇴임하겠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자기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문가이며, 영향력이 있고, 전문 박사육성 기관의 간판 인사라는 점을 생각해서 분명히 누군가는 말려줄 것이라는 계산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잘못 계산했다. 그 보고서는 다음날로 결재되었고, 그는 며칠 동안 열이 받쳐서 울더니만 결국은 병에 걸려서 자리에 눕고 말았다. 서소화의 결말은 내 예상 밖이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자기가 누구라고, 지식분자다운 성깔을 부리더니만…. 그는 자신의 의존성(依存性)과 부수성(附隨性)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의 학문이 높다고 해도 무슨 대가(大家) 정도 수준도 아니면서, 하리하량상(何利何梁償) 정도는 마땅히 자기 몫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처럼, 아니면 뛰어내릴 것처럼 굴더니만, 결국은 이 꼴이 나고 말았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말을 하는 사람과 말을 듣는 사람이 있다. 말하는 사람은 다른 이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지만, 말을 듣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 그 운명이 조종된다. 들여다보면, 서소화 역시 그저 말을 듣는 사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말을 듣는 사람이지만,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전환이라는 것은 우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만약 묘묘(渺渺)가 그때 아프지만 않았더라도, 또 윤옥아가 서소화에게 나를 추천하지만 않았더라도, 나의 이 한평생은 역시 고개를 들고 살날이 없었을지 모른다.

설 며칠 전에 동류는 성 인민병원으로 전근되었다. 윤옥아는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듯했지만, 말하기가 껄끄러운지 그저 탐색하는 눈빛으로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척했다. 그날 오전에 전화가 울리자 윤옥아가 낚아채듯이 전화를 받더니 말했다.

“가(賈) 처장 전화야.”

수화기를 내게 건네주는 그녀의 눈은 여전히 의심의 기색이 가득했다.

“어느 가 처장 말인가요?”

나는 언뜻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가 못 믿겠다는 듯 노골적으로 흥, 하며 콧방귀를 뀌는 바람에 그제야 나도 인사처의 가 처장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내가 말했다.

“나더러 한 번 오라는데….”

그녀의 표정이 금방 긴장되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 있대?”

“하늘만이 알겠지요.”

“뭔가 신나는 일이 있는가보지?”

“우리 같은 찬밥신세(蝦兵蟹將)들에게 무슨 신날 일이 있겠어요? 별 일 없을 거요.”

“그야 모르는 일이지.”

나는 감정을 누르고 밖으로 나오면서 생각했다.:

“내게 신나는 일 생긴다고 네가 왜 긴장하냐? 너야 뻔한 건데.”

인사처에 들어가자 사무원 고(顧) 군은 아무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가 처장이 말했다.

“지 군! 자네가 우리 위생청에 온 지 벌써 몇 년 됐지?”

“내년이면 팔년이니 항일전쟁 한 차례 치룬 셈 되네요.”

“자네 정말로 시련을 잘 견뎌냈어. 많은 사람들은 그 시련을 견뎌내지 못하고 개인주의의 꼬리를 드러내고 마는데 말이야.”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 같은 사람이야 뭐 별다른 목표도 없으니까요.”

“그 말엔 난 동의할 수 없어. 올라가야 할 때는 어떻게 해서라도 올라가야지, 너무 늘어지면 자기한테도 안 좋아.”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예, 예”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촉망받는 인간은 시련을 못 견디고, 버려진 인간은 너무 늘어져 있고. 인간이 무슨 진흙 인형인 줄 아냐, 네들 멋대로 주무르게?”

그가 말했다.

“위생청 업무회의에서 중의학회의 업무를 강화하여 중의의 지위를 높이기로 결정했네. 그래서 조직에선 그 부담을 자네에게 지우려고 하는데, 자네 생각엔 어떤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부담? 무슨 부담? 하지만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제 능력에 한계가 있고 경험도 부족하지만, 조직에서 이미 결정했다면 한 번 해보겠습니다.”

“업무상의 편의를 위해 조직 차원에서 문서로 분명히 해놓을 걸세.”

“조직에서 결정한 일이라면 저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문을 나오니 햇볕이 매우 따뜻했다. 겨울인데 햇볕이 이렇게 따스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겨울인데 어떻게 햇볕이 이렇게 따스하지? 나는 온몸이 상쾌해지면서 마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곧 나 자신을 다잡았다. 절대로 가볍게 날뛰어선 안 된다. 나이 서른 넘어서 겨우 과장 모자 하나 쓴 걸 갖고 날아갈 듯 좋아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아?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과장, 처장은 말할 것도 없고 청장인들 뭐 별건가? 다 고만고만한 크고 작은 거품들 아니겠어? 언젠가는 다 터지고 말 것들인데. 하지만 그런 것을 다 알고 있다고 해서 또 어쩌겠나? 이 몇 년간 눈만 잔뜩 높아서는 크고 작은 거품들을 모두 무시해 봤지만 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앉지 못하면 내 손에 아무 것도 떨어지는 게 없는데…. 멀찍이 떨어져서 생각하면 성장(省長) 자리 역시 하나의 거품, 한 마리의 개미 새끼에 불과하지만, 막상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면 과장 자리 하나가 또 얼마나 큰 감투냔 말이다! 세상일이란 다 그런 것이다. 마음은 아무리 높은 경지에서 놀아도 결국은 이 먼지 펄펄 나는 땅바닥으로 내려와야 한다. 결국 인간은 멀리 떨어져서 생각할 수는 없다. 멀찍이 떨어져서 생각한다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먼지만도 못하다. 인간은 그렇게 가련하고 별볼일 없는 존재인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윤옥아가 노골적인 눈빛으로 나에게 무슨 일인지 묻고 있었다. 나는 모른 체하고 신문을 들어 보면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잠시 후에 그녀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물었다.

“무슨 좋은 소식 있나봐?”

듣는 순간 속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녀가 알아차렸단 말인가? 나는 아직 수양이 멀었군. 신문을 내려놓으면서 내가 말했다.

“무슨 좋은 소식? 있으면 나한테도 좀 이야기해 줘요.”

그녀는 마음을 놓는 듯했다. 자리에 조금 앉아 있더니 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들어와서 말했다.

“지대위, 너 나한테까지 비밀로 하려고? 이미 인사 관련 문서를 내려 보냈다던데.”

“그래요. 석사 졸업한 지 칠년 만에 콩알만한 감투 하나 썼읍니다.”

나는 새끼손가락 끝을 잡아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것도 좋은 소식 축에 끼는가요? 내 친구들은 이미 정부 부서의 어느 자리까지 올라가 있는 줄 다 알고 있잖아요.”

“하긴, 현모양처의 내조가 있었으니….”

나는 마음속에서 불이 확 하고 타 올랐다. 저년이 감히, 저년이 어디 감히! 요 며칠 동안 그녀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언젠가 네년이 쓴 맛을 보게 되면 그건 다 네년이 자초한 것인 줄이나 알아라. 전문학교밖에 못 나온 주제에 어딜 감히 나하고 비교하려 들어?

인간의 자기 사랑은 얼마나 그 실체를 깨닫기 힘든 것인가! 그것만 깨달아도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인간을 이해하면 또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그녀를 보았더니, 뭔가를 알아내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언뜻, 그녀로 하여금 내가 오늘의 기회를 얻은 것은 동류 때문이라고 생각하도록 하고, 그런 생각이 여러 사람들과 여러 곳으로 퍼지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나와 서소화의 불행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너그럽게 웃음으로써 그녀의 말을 묵인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절대로 입을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쏠 총알을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방금 말했던 ‘콩알만한 감투’라는 말도 생각해보니 그리 듣기 좋은 표현이 아니었다. 조직의 신임을 뭐로 알고 하는 말인가! 전에는 그 콩알만한 감투를 얻기 위해서 가면을 쓰거나, 자신을 속박하거나, 자신을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양으로 비트는 것이 너무나도 무가치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젠 감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어딜 감히!

이틀 후에 정식 문서가 내려왔다. 지난 몇 년간 유사한 문서를 수도 없이 보아왔지만, 오늘 내 이름이 그 위에 쓰인 것을 보니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한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들이 바로 자기 눈으로 본 이런 것들이 아니겠는가? 의지할 게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그 느낌부터 전혀 다르다. 나는 마음속으로 마청장님께 감사드렸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 사이에는 이미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고, 앞으로의 나의 임무는 그저 마 청장님을 따라 혁명이나 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서소화가 위에 올라갔더라면 내 신세도 더불어 맨 땅에 헤딩했을 텐데 그걸 어떻게 그대로 둔단 말인가? 내 목숨을 걸고라도 막아야지.

그 후로 마 청장님을 우연히 만나면 나는 평소와 똑같이 “마 청장님!”하고 인사를 했지만, 그 부를 때의 느낌은 이전과 달라졌다. 어감부터 달랐다. 마 청장님 역시 나를 보면 “지 군!” 하면서 받아주셨는데, 그 어감이 역시 무언가 달랐다. 무엇이 다른지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그러나 역시 무언가 달랐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아차릴 수 없는,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해서 제 길로 들어섰다(上了路)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왕 제 길로 들어선 이상, 앞으로 어떤 장애가 있을지 잘 생각해야 한다. 생각 안 할 수가 없지. 나는 나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을 하나 둘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급하다 못해 아파지기까지 했다. 나는 지금까지 동료들한테 생각나는 대로 말을 너무 함부로 했던 것 같다. 너무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허점들을 남겼다. 이런 허점들을 다 종합해보니,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내가 서소화에게 했던 그런 방식으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별 생각 없이 지껄였던 말들에 신경을 썼던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그들에게 별로 위협적인 인물이 못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런 식의 헛소리야말로 생명을 위협하는 총알이 될 수도 있다. 내려놓으면 몇 백 그램 안 되지만, 들어올리면 천근만근이 되는 가공할 살상력을 지니는 말들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온몸에 식은땀이 쫙 솟았다.

첫 번째로 나는 윤옥아를 안심시켜야 했다. 위생청에서 이미 문서까지 내려왔으므로 그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듯했고, 남편도 당분간은 무사한 듯해서 나를 의심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동류와 상의해서 윤옥아의 딸을 몇 번 관찰한 후 그녀의 몸 사이즈를 어림잡아서 외투를 한 벌 사주었다. 옷을 사면서 동류는 아깝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도 이렇게 좋은 외투는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는데….”

“조금만 참아. 그렇게 많이 참지 않아도 돼.”

“이자까지 쳐서 갚아줘야 되요.”

“두 말하면 잔소리지.”

사이즈가 안 맞으면 환불해줘야 한다는 약속까지 판매원한테 받아두었다. 이튿날 나는 윤옥아에게 이 외투에 대해 말했다.

“내 처제가 생일선물로 사준 건데, 동류가 입기에는 좀 화려해서 말이야. 애 낳은 뒤에는 이런 옷을 못 입더라고. 댁의 딸한테 입도록 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서….”

“우리 청(靑)이 얼마나 까다로운데. 멋 부릴 줄은 또 알아 가지고….”

“한 번 입어보라고 해요.”

가져가서 입혀보더니 윤옥아가 말했다.

“어떻게 딱 우리 딸애 몸에 맞춘 것 같았어. 입어보더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또 강(江) 주임이 있다. 나는 기회를 봐서 밥 한 끼 사면서 감정의 교류를 시도할 생각이었다. 전에 샘플 조사하러 갔을 때 내가 이상한 소리를 너무 많이 지껄였으므로 그의 입에 테이프라도 좀 붙여놓아야 했다. 나는 그의 활동규칙을 잘 관찰해서, 어느 날 수위실 입구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일곱 시 조금 전에 그가 운동실의 당구장에서 나올 때에 맞추어 자전거를 끌고 옆으로 지나면서 갑자기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강 주임, 퇴근하십니까?”

“지 과장, 아직 축하를 못 드렸네. 승진 축하해!”

“시간이 꽤 되었는데, 식사 하셨어요?”

“이제 돌아가서 먹으려고.”

그리고는 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했다.

“저도 아직 안 먹었는데, 제가 살 테니 가서 맥주 한 잔 안 할래요?”

그가 기뻐하면서 말했다.

“자네가 한 번 사야지. 옛날에는 장원급제하면 기쁜 나머지 미쳐버릴까봐 사람들이 일부러 그가 좋아하는 물건 몇 개를 부셔버렸데. 자네도 오늘 기뻐서 미칠 지경일 테니 피 몇 방울 뽑는 것도 자네한테 좋을 거야.”

자전거를 타고 위생청을 나왔다. 그가 길가의 주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냥 저기서 한 잔 하자고.”

“아니 내가 누구를 대접하는데, 내가 어떻게 강 주임을 저런 길가 술집으로 모신단 말입니까? 내가 어디 표범의 간이라도 먹었답디까?”

금성주가(金城酒家)에 도착해서 강 주임한테 요리를 시키라고 했더니, 그가 훈제 고기와 마늘종 볶음을 시키기에 내가 메뉴판을 가로채면서 말했다.

"밥 한 끼 사고서 제가 망할까봐 걱정돼서 그러십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쏘가리 찜을 주문하자 강 주임이 말했다.

"정말 피 몇 방울 뽑으려나?"

이어서 내가 바다가제 요리를 시키자 그가 연신 한탄까지 하면서 말했다.

“아이구, 아이구, 이런 걸 개인 돈으로 먹다니….”

내가 또 새우 요리를 시키려고 하자, 그가 말했다.

“됐어, 그만 됐다니까.”

나는 마음속으로는 그에게 감사하면서, 입으로는 말했다.

“이왕 먹는 거 제대로 한 번 먹어봅시다.”

그는 종업원 아가씨를 불러서 새우를 빼고, 그 대신에 토란과 돼지고기 찜으로 달라고 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그는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끝내 못 참고 말했다.

“대위, 자네 나한테 뭐 부탁할 일이라도 있나?”

“꼭 뭔가 부탁할 일이 있어야 밥을 산다면 너무 소인배 같잖아요. 우리가 어떤 사이입니까. 한 손으로 돈 넘겨주면서 다른 한 손으론 물건 받는 그런 사이는 아니잖습니까.”

“이런 식으로 문제를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서 말이야. 정말로 무슨 일 없나? 자네가 나한테 간단하게 한 턱 낸다면 나도 별다른 생각 안 할 텐데 말이야. 문제는 그런 소인배가 세상에는 너무 많다는 것이지. 자, 마시세!”

맥주를 마시고 분위기가 익어가자 경계심도 늦춰지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오륙년 동안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서 몇 마디 불평을 늘어놓았고, 나도 그가 계속 불만을 토로하도록 유도했다.

“강 주임처럼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 위생청에 몇이나 됩니까? 위에서도 다 보고 있을 겁니다.”

그가 한 잔을 쭉 들이켜고 나서 말했다.

“우리는 그 사다리 타고 위로 올라가긴 다 글렀어. 연극도 몇이서 다 맡아 하고 있어. 자기들이 무슨 배우라고 말이야!”

계속 얘기하는 중에 그는 심지어 마청장의 이름까지 들먹였다. 이야말로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큰 수확이었다. 내가 만약 그가 방금 한 말들을 적절히 주물리면, 어느 날 그가 나를 향해 총알을 쏘려다가도 아무래도 뒤가 켕기게 되겠지? 술을 다 마시고 내가 계산할 때, 그가 말했다.

“자네 오늘 돈 많이 썼네.”

나오면서 그가 덧붙였다.

“나는 자네를 친구로 생각하네. 친구 사이에 술 마시면서 한 얘기들은 문을 나서는 즉시 잊어버려야 해.”

“잊어버리고 말구요. 다른 사람이 무슨 말 했는지 그런 걸 기억하고 있는 인간이라면 어찌 사내대장부라 할 수 있겠어요?”

집에 돌아와서 동류에게 돈 쓴 걸 보고하자, 동류가 말했다.

“이번 달 구멍이 이렇게 크게 뚫렸으니, 어디 말해 봐요,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순모 외투, 이거 내가 사 입었어요? 바다가제 요리, 이거 우리가 먹었어요?”

“당신 어머니한테 가서 어떻게 돈 좀 돌려봐. 나중에 돌려드릴 테니.”

“나중이라는 게 있을지 없을지 누가 알아요?”

그렇다. 그걸 누가 알겠는가? 작은 거품을 불어서 조금씩 키워나가는 건 중대한 일이다. 천하에 중대한 일이다. 그 일을 제대로 해내려면 천만 가지 지혜를 다 동원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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