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다시 울타리 안으로**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나 자신에게 머뭇거릴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불도 켜지 않고 단번에 전화를 움켜잡고, 바깥의 불을 빌어 마청장 댁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마 청장님! 오늘 저녁에 심상치 않은 일을 들어 알게 되었는데 기가 막혀서 잠도 오지 않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침상에서 일어나서 전화를 드립니다. 너무 늦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간단히 사건을 설명했다.
마 청장이 말했다.
“지금 당장 이리로 오게!”
나는 전화를 내려놓고 마당으로 뛰어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마 청장님 댁으로 갔다.
사모님은 나한테 턱으로 마 청장님이 서재에 계신다는 표시를 하면서 침실로 안내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자 서재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익숙한 것 같았지만 누구인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 사람을 배웅하고 나서 심 사모님이 나를 불렀다. 마 청장님께서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내가 건너가서 말했다.
“침대에 누운 다음에도 화가 나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 청장님 쉬셔야 하는 줄 알면서도 그냥 전화 드렸습니다.”
사건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마 청장이 말했다.
“나한테 일곱 가지의 죄가 있단 말이지? 음,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내가 말했다.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워도 유분수지. 아니 도대체 뭐가‘독단적 의사결정’(一言堂)입니까? 그러면 전 성의 위생 시스템에 통일된 핵심, 일원화된 지도자 없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그리고 또‘공명욕’으로 일을 처리한다고요? 이 개혁개방의 시대에 상투적인 사고방식이나 일반적인 속도를 고집하는 것이야말로 문제지요.‘권력 남용’이라는 건 웃기는 소리고요. 성에 이렇게 많은 청급 기관들이 있어도 위생청만큼 경제적으로 문제 없는 곳이 몇 군데나 있습니까? 서소화의 말은 누구 한 개인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의 업적을 무너뜨릴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늑대 심보 같으니라고…. 늑대 심보!”
마 청장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늑대 심보라는 네 글자로 그 사람의 윤곽이 딱 드러나는군. 개인의 사욕이 너무 커지면 사물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을 잃게 마련이거든.”
내가 말했다.
“위생청에서 그가 의료 업무에 보다 적합하다는 판단 하에 행정사무에서 벗어나게까지 해주었으면 마음잡고 일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그 인간이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습니다.”
마청장은 가죽 가방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더니 말했다.
“자네 이 편지 말하는 건가?”
나는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딱 벌어졌다. 두 시간 전에 서소화의 집에서 보았던 그 편지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적잖이 실망했다. 누가 이미 선수를 쳤구나! 나는 편지를 마 청장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습니다. 눈에서 불이 나와 편지를 태워버릴 것 같습니다.”
사모님이 말했다.
“그러기에 내가 뭐랬어요? 당신이 그렇게 밤낮없이 일하면 뭐 하냐고 했잖아요. 이번 기회에 그냥 물러나고 치워요. 몸도 좀 추스를 겸….”
마청장이 말했다.
“그래, 그래, 이 정도 오래 일했으면 이제 보고서 한 장 써 올리고 물러날 때도 되었지. 남의 길 막지 말고.”
나는 얼른 말했다.
“사모님, 사모님께선 청장님께 그런 식으로 권하시는데, 저는 의견이 좀 다릅니다. 아니 좀 다른 것이 아니라 아주 태평양만큼 다릅니다. 마 청장님께서 그 인간들한테 자리를 내어 주신다면 제가 정말 억울해서 못삽니다. 이대로 우리가 쌓아온 성과들을 매장시키시렵니까?”
그때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사모님이 문 앞으로 가서 물었다.
“누구세요?”
밖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저와 팽(彭) 처장입니다.”
저것은 윤옥아의 목소리가 아닌가! 마청장의 손짓에 따라 나는 서재로 뛰어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윤옥아와 그의 남편이 들어와서 역시 그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귀를 문에 대고 엿들었지만, 잘 들리지 않아서 방바닥에 엎드려 엉덩이를 치켜들고 귀를 문틈에 갖다 대었다. 팽 처장이 말을 마치자, 윤옥아가 말했다.
“제가 보증합니다만, 우리 이 양반은 그러니까 손오공 흉내를 냈을 뿐입니다. 철선 공주(鐵扇公主)의 뱃속으로 뚫고 들어가서…. 이 양반이 서명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서소화 그 일당들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팽 처장이 말했다.
“원래는 며칠 더 일찍 와서 보고하려고 했습니다만, 그 인간들이 어디까지 가나 한 번 지켜보고, 그런 다음에 조직에 보다 종합적인 보고를 하려다 보니 며칠 늦추어졌습니다.”
마청장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뭐 굳이 말 안 했다고 하더라도 별 상관 없고….”
팽 처장은 다급해져서 말했다.
“보고하려고, 일찌감치 보고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윤옥아가 말했다.
“이 양반은 처음부터 보고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보고하러 간다는 걸 제가 아예 상황을 좀 더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그 다음에 한 번으로 확실하게 보고하라고 말렸었습니다.”
팽 처장이 말했다.
“오늘 저녁 때 모든 것을 확실하게 파악하자마자 서소화에게 전화를 걸어서 제 이름을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 오늘 오후에 이미 성으로 부쳤다는 겁니다. 정말이지 깡패 같은 수법이지요. 워낙은 팔십 명을 모아서 서명을 모두 받은 후에 부친다고 해놓고선…. 하긴 일반 군중들의 눈들이 훤하게 그 인간의 음모를 꿰뚫어보고 있는 걸 보고 안 되겠다 싶어서 앞당겨 행동했을 것이지만. 어쨌든 그래서 제 계획도 다 엉망이 되어버린 겁니다. 저는 정말이지 매복해서 정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청장이 말했다.
“알겠네. 마음속으로 다 알고 있어. 그런데 그 편지 쓸 때 누구누구가 모여서 그 몇몇 조항을 만들어낸 거지?”
팽 처장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게 제가, 제가….”
윤옥아가 말했다.
“우리 이 양반은 그저 좀 더 깊게 잠복하기 위해서, 그래서 그런 회의에도 참가했던 겁니다. 아마 몇 마디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다 뱀을 굴속에서 끌어내기 위한….”
팽 처장이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독사를 굴속에서 끌어내려고 말입니다.”
마청장이 말했다.
“알겠네, 알겠어.”
사모님이 말했다.
“당신 며칠째 쉬지도 않고, 아주 살기 싫은가 봐요.”
윤옥아 부부가 물러갔다. 심 사모님이 문을 꽝! 하고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윤옥아와 그녀 남편이 문 밖에서 마치 심연으로 떨어지기라도 한 듯이 한참 동안 발을 못 옮기는 모습을 상상했다. 사모님이 문을 여는 바람에 나는 벌떡 일어섰다.
“대위씨, 좀 나와 봐요.”
내가 말했다.
“방금 팽 처장인가 봐요. 윤옥아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사모님이 말했다.
“바보 같은 인간들! 내가 저 인간들을 뜯어 먹어도 속이 편치 않을 거야.”
마청장이 소파를 탁탁 치면서 말했다.
“대위, 이리 오게.”
내가 곧 그 옆에 가서 앉자, 그가 말했다.
“이 편지 오늘 저녁에 아무데서나 한 열 부 정도 복사해 오게. 내일 아침 아무도 모르게 신문열람실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되네. 나한테 이거 한 부밖에 없으니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돼.”
내가 말했다.
“목숨을 걸고 완수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내일 언제가 되었든 내 사무실에 한 번 들르게.”
나는 편지를 집어 들고 연구원을 뛰쳐나왔다. 택시를 타고 전 시내를 다 돌아보았지만, 열 몇 군데나 되는 복사 가게는 모두 문을 닫은 후였다. 문을 두드려 봐도 아무데서도 열어주지 않았는데, 남소가(南小街) 거리에서 복사가게를 하나 찾았다. 셔터를 이미 반쯤 닫은 상태였지만, 내가 허리를 굽혀 안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여기 급한 자료가 있어서 그러는데, 죄송하지만 복사 몇 부 좀 해 주세요.”
안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겨우 그 몇 장 복사하려고 복사기 새로 켜기도 뭣 한데요. 예열까지 해야 된단 말입니다.”
“돈을 세 배로 드리겠소. 그 정도면 되지 않겠소?”
그렇게 해서 열다섯 부를 복사하고는 세 배의 가격을 치렀다.
사택 단지에 도착해서 나는 다시 한번 안 선생님 댁을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가 말했다.
“역시 정치하는 사람이라 다르군. 사적으로 자료를 배포하는 행위야말로 안정과 단결을 해치는 비조직적 활동이라고 해서 윗사람들이 제일 반감을 갖는 것이지. 서소화는 이제 황하에 뛰어들어도 씻어내지 못할 오점을 남기고 말았군.”
내가 말했다.
“제가 마 청장님 댁에서 한 말과 행동들, 혹시 너무 지나치진 않았나요?”
그가 말했다.
“전혀! 그도 물론 자네의 감정이 좀 과장되었다거나 약간은 가식적이라거나 하는 점을 알아차렸겠지만, 지금 그런 거야 별로 중요하지 않아. 문제는 자네가 그와 한 편에 서 있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지. 이 점만 확실하다면 다른 것들이야 마 청장한테는 다 상관없는 일이지. 큰 인물이 작은 인물을 볼 땐 말일세, 그 실질적인 내용만 보고 세세한 구절은 생략하기 마련이거든. 인삼을 갖다 바친들 뭣 하겠나. 그 인간이 부족한 게 뭐가 있겠어? 문제는 정치적으로 같은 선상에 서 있다는 것, 그게 큰 문제이고 다른 것들은 문제도 안 된다고. 이 바닥에선 영원한 친구라는 것도 없지만, 마찬가지로 영원한 적이란 것도 없는 법이거든. 영원한 이익만이 있을 뿐이야. 정치적인 동맹관계야말로 가장 진실되고 믿을 만한 것, 가장 안정된 것이지. 어느 날 이해관계가 갑자기 변하지만 않는다면 말일세. 그가 자네에게 이런 임무를 맡긴 것은 자네를 믿는다는 것이지. 자기 사람으로 본다는 뜻이야. 이런 기회는 평생에 한 번뿐이고, 또 한 번이면 족하지. 큰 인물들은 인정(人情)을 중시하고, 그것보다도 더 공리(功利)를 중시하지. 자네가 그를 지지했으니 그도 분명히 자네에게 보답할 걸세. 이것도 역시 게임의 법칙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 게임 더 이상 할 생각 말아야지. 나중에 누가 그 사람을 따르겠나? 시장에서만 교환의 법칙이 작용하는 건 아니야.”
내가 말했다.
“그 일당들은 나 때문에 다 죽겠네요.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요.”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 양심대로 하게나.”
이어서 말했다.
“자네가 뭐 그리 대단하다는 거야? 그 사람들의 운명은 이미 다 정해졌어. 자기가 무슨 권모술수의 대가라고, 하늘 높고 물 깊은 줄 모르는 인간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그 사람들이 재수 없는 일 당하게 된 것은 이미 다 정해진 일이고, 내가 어떻게 하건 그들은 이제 도망을 갈 수 없게 되었다.
이튿날 새벽같이 신문 열람실로 달려가서, 입구에서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 그냥 나왔다. 열시쯤 되자 열람실에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면서 사람들이 좀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들어가서 신문 한 장을 보다가 그 편지들을 슬쩍 신문 아래에 쑤셔 넣고 신문을 좀 더 보는 척하다가 나와 버렸다. 조금 있다가 마 청장님 사무실에 가자, 마침 무슨 문건을 보고 있던 마 청장님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대위, 자네 왔나?”
“예.”
“거기 앉게.”
내가 문 쪽에 놓인 소파에 앉자 그가 말했다.
“가까이 와서 앉게.”
나는 그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 앞에 가서 책상 가를 잡고는 천천히 앉았다. 그가 말했다.
“자네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요 며칠 너무 바빠서 오늘에야 겨우 시간이 나서 그래.”
“무슨 일이든지 분부만 내리십시오. 칼산이라도 오르라면, 제가….”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내 말을 끊고는 말을 이었다.
“자네 지금 그 집에서 꽤 오래 살았지?”
“이제 칠년 되어 갑니다.”
“며칠 후에 신(申) 과장한테 찾아가서 어떻게 집 하나 구해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게. 자네가 쓴 글들 읽어봤는데, 아주 괜찮아. 위생청 기관 내에서 정말 몇 안 되는, 일 제대로 하는 인재들, 우리도 어떻게 특별대우라도 해줘야 하지 않겠나? 지난 몇 년간 자네 고생 많았네.”
나는 감동해서 말했다.
“마 청장님, 이런 때에 제 이런 사소한 일들까지 걱정해 주시다니!”
“그리고, 맞아, 자네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학력을 좀 더 쌓아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없나?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이런 저런 요구치도 높아지고 있잖아. 사람은 홍곡지지(鴻鵠之志)라고 뜻을 크게 갖고 하드웨어를 잘 정비해 둬야 하는 거거든. 우리 같은 사람이야 뭐, 오늘 내일 역사의 무대 뒤로 물러나겠지만 말이야.”
나는 마음속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듯, 몸이 심하게 앞뒤로 흔들려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지만 겉으로는 감추고 말했다.
“마 청장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마 청장님, 영원히, 영원히….”
그가 손가락을 두드려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자네 박사학위 해보는 게 어때?”
“전 언제까지나 위생청에서 일하는 것이….”
“두 군데 다 걸어두면 되지. 두 쪽 다 잘 하면 되잖아. 워낙은 내가 직접 자네를 지도해주고 싶지만, 그게, 우리 위생청에 박사학위를 수여할 자격이 내년에 떨어질지 안 떨어질지 아직 모르는 일이라서…. 시간도 급한 만큼 자네 그냥 중의학원에 등록해서 박사과정을 밟게. 올해 당장 시작해. 외국어나 좀 준비해 둬. 다른 건 내가 어떻게 해 볼게.”
나는 마음이 뜨거워져서 말했다.
“마 청장님, 청장님, 전… 저는….”
눈물방울이 눈가에서 굴렀고, 목소리는 꽉 잠겨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전 정말이지, 어떻게 제가, 이전에….”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가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어, 정소괴인가? 뭐? 다시 한 번 말해보게. 편지? 누가 쓴 거라고? 내용이 뭐라고… 알겠네.”
그는 곧장 다시 성 위원회 조직부를 비롯, 곳곳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종 처장인가? 나 마수장일세. 바빠? 자넨 늘 바쁘구만. 일년 내내 고생하네, 정말.… 아니 다름이 아니라 우
리 위생청 내에서 나를 고발하는 연명으로 된 성명서 같은 것이 발견되었는데, 도처에 마구 뿌려져 있더라고. 아주 한 바퀴 돌았나본데 그 쪽엔 아직 안 갔나? 아직까진 비조직적 활동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뭐 여럿의 의견을 반영하는 거겠지. 어쨌든 성에서 사람을 좀 보내주게. 군중의 의견을 수집해 봐야지. 죄목이 자그마치 일곱 개라네.… 경제방면으로는 별 이야기 없는데, 날조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겠지. 뭐라고? 맘 놓으라고? 아이고, 죄목이 하나만 돼도 죽을 지경인데 일곱 개나 된다니까, 하하!”
전화를 하면서 굳이 나를 피하려고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 청장님과 보다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는 이미 나를 자기의 가장 핵심 울타리 안으로 집어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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