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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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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57>

마 청장의 일곱 가지 죄

***57. 마 청장의 일곱 가지 죄**

다음날 아침, 계단에서 마 청장님과 마주쳤다. 나는 ‘마 청장님!’하고 부르면서 옆으로 비켜섰다. 이것이 위생청의 교통규칙이었다. 예전에는 지키지 않았지만 오늘은 별 생각 없이 바로 딱 멈추어 섰다. 그는 평소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나갔다.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의 그런 태도가 나로 하여금 의구심이 들게 했다. 청장의 표정은 절대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니다. 나는 어제 저녁의 그 묵계가 이뤄진 다음 마 청장이 최소한 어떤 제스처를 통해서 우리의 묵계를 긍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미소를 짓는다거나 아니면 눈빛으로라도. 그러고 보면 그는 아직도 몇 년 전에 내가 저지른 잘못을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는 내가 정말 정신이 나갔었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말이야. 사람이 자기가 몸담은 바닥에서 생존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 바닥 사람과 일에 대해 이것저것 멋대로 떠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몸서리가 처지면서 등에 한 줄기 차가운 기운이 전기마냥 찌릿 하고 발끝까지 전해지는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심연 속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곳은 끝도 없는 암흑 속, 얼음 기둥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는 가운데 한 줄기 희미한 빛이 보이고 한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두 손을 앞으로 뻗어 더듬더듬 앞으로 나갔다. 손에 차가운 얼음이 와 닿았지만 저 빛이 어디서 오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조금 아까 전의 마 청장의 표정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나는 나의 판단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평소와 조금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무적이지만은 않았었던 것 같고, 다만 내가 기대했던 것과 좀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좀 놓였다. 오후에 퇴근할 때 입구에서 마 청장님과 다시 한 번 마주칠 기회를 만든 다음 그 표정을 다시 한 번 느껴봐야겠다. 그저 내가 사람 표정 관찰하는 수준이 아직 한참 떨어짐을 탓하는 수밖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에 들어서자 윤옥아가 말했다.

“지 씨, 왜 그렇게 얼굴색이 안 좋아?”

“나 같은 빈농의 얼굴색이 안 나쁘면 누구의 얼굴색이 나쁘겠어요? 배불리 먹고 배 쓰다듬는 지주나 부농의 얼굴색이 나쁘겠어요?”

그녀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대위 씨 같이 유능한 사람이 이런 데서 썩고 있으니….”

그녀의 그 한 마디가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내가 방금 한 말, 문제가 없을까? 역시 정체불명의 수상쩍은 말이 아닌가! 희로(喜怒)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아직도 수련이 부족하구나!

그녀가 말했다.

“어디 안 좋으면 의무실에 가보지 그래.”

그 말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하긴, 몇 년 동안 나와 이렇게 마주 앉아 일한, 마흔이 다 되어서도 소녀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몇 년을 같이 일했는데, 입이 좀 싸긴 해도,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요즘 같은 시절에 다른 사람 해치지만 않으면 다 좋은 사람이지.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나는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도 나를 물 먹였던 것은 아닐까? 여기 이 자리에 앉아서 몇 년을 한가롭게 보내는 동안 도대체 누가 날 팔았을까?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있는 걸 보고 분명히 즐거워한 사람이 있겠지.

그 순간 정소괴가 떠올랐다. 혹시 그가? 그 인간한테 팔린 적이 있을까? 갑자기 그놈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한 방 날리고 싶었다. 누구를 팔아넘기려 해도 조건이 필요한 법이다. 윗사람이 그 사람한테 조그마한 불만도 없다면 팔아넘기려야 팔아넘길 수도 없고, 그에 걸맞은 보상도 받지 못하게 마련이다. 다 윗사람한테 잘못 보인 내가 잘못이지. 그러니 다른 사람이 나를 팔지.

나는 윤옥아와 여느 때보다 더 다정한 분위기에서 집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중학교 다니는 딸 얘기를 하다가 내 칭찬 몇 마디에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 흥분하기 시작했다.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렇지만 큰 인물이 될만한 재목도 아니지. 그녀는 승진 못한 것에 대해 뱃속 가득 불만을 품고 괴로워서 목이라도 매겠다는 듯이 굴었지만, 아무래도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다. 얼굴에 저렇게 감정이 다 드러나서야 평생 잘 풀릴 수가 없다. 순간 내 표정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미소의 정도를 조절하면서 내 얼굴을 마음속으로 가지고 와서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제기랄! 네가 그런 표정 연기를 할 기회나 있겠냐? 그냥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고, 그렇게 통쾌하게 살지 그래! 그렇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 과연 통쾌하게 살 수 있을까?

윤옥아는 흥분해서 말을 하다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밖에서 바람을 쐬고 들어오는데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구절은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직접 말씀하시는 게 낫겠어요, 직접 말씀하세요.”

이런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녀는 힐끔힐끔 전화 쪽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의 지시라도 받은 것처럼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잽싸게 수화기를 낚아챘을 그녀가 웬일인지 나한테 전화를 받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중의연구원의 서소화(舒少華) 교수였다. 저녁에 자기네 집으로 좀 와달라고 했다. 그는 이전에 중의연구원 원장으로 전국에 이름이 난 정형외과 전문의였다. 전화를 끊고 나는 의아했다. 서소화가 왜 나를 찾지? 윤옥아를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신문을 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이상한 침묵으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저녁에 나는 서소화 교수의 집으로 갔다. 노크를 하자 문이 바로 열렸다. 마치 누가 이미 문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아주 친절하게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내가 말했다.

“서 교수님께서 절 찾으시다니, 뭐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습니까?”

“앉아서 천천히 얘기하세.”

직접 차까지 따라주면서 그가 이야기를 꺼냈다.

“지대위 씨가 위생청에 온 게 언제지?”

“85년입니다.”

그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아이고, 강산이 다 변했겠네. 석사 마치고 들어와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했다.

“논문도 적지 않게 발표했다면서?”

그가 나에 대해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설마 나와 무슨 연구 프로젝트라도 같이 하고 싶어서 이러나?

“몇 편 발표했습니다.”

그는 관심 있게 논문의 내용을 묻더니 다음부터는 자기가 내 논문을 추천해 주겠다고 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의심스러웠다. 아무런 이유 없이 무턱대고 잘해 줄 리가 만무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지! 그가 말을 돌렸다.

“인재야, 인재. 지대위 씨는! 그런데 위생청은 인재는 별로 대접하지 않고, 그저 누가 말 잘 듣는지 그거만 보지.”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그분들은 그분들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요.”

“그게 문제야, 아주 심각한 문제! 국가에서는 지식을 존중하고 인재를 존중하라고 하는데 우리 청은 뭘 하는 건지. 그러면서 뻥은 또 얼마나 쳐대는지! 그 소리가 너무 우렁차서 산천이 다 흔들릴 정도지만, 그러나 그게 다 뻥인걸! 석사 출신인 지대위 씨는 그런 자리에 이렇게 오랜 세월 앉혀 놓고, 그 사이 위로 올라간 인간들 수준 하고는….”

그 말이 내 가슴에 쾅, 하고 와 닿았다. 나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수리청(水利廳) 얘기 들어 봤소?”

“윤옥아 씨가 하는 말 조금은 들었는데, 잘 모릅니다.”

“다 같이 합심 협력해서 오(吳) 청장을 끌어내렸대요.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거지.”

그는 수리청의 얘기를 하면서 그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다 응분의 대가를 받았다는 점을 암시했다. 그가 말했다.

“우리 위생청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민주와 법치를 외치는 시대 아닌가? 그런데도 아직도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자기 말을 따르는 사람만 살리고 어기는 사람은 망하게 하는 그런 짓을 하고 있으니….”

나는 겉으로는 머리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당신 서소화는 그 자리에 올라가면 그렇게 안 하리라는 보장 있어? 당신 아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고, 어떻게 상을 받았는데? 뭐 하나 특별한 것도 없으면서 말이야.”

그는 내가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보더니 서류 가방에서 컴퓨터로 출력한 편지 한 통을 꺼내 보여줬다. 성(省) 위원회 앞으로 쓴 그 편지에는 마 청장의 일곱 가지 죄목이 열거되어 있었다. 첫째는 전제 독재에 독단적 의사결정(一言堂), 둘째는 지나친 공명욕(好大喜功), 셋째는 인사에 있어서의 권력남용(以權謀私)이었다. 서소화가 말했다.

“모두 다 하나같이 살상력(殺傷力)을 지닌 문제점들이지. 첫째 조항으로 말하자면, 그 인간이 청장 자리에 오른 지 칠년 남짓 되었는데 부 청장이 벌써 다섯, 여섯 명이나 바뀌었어. 두 번째 조항은 요 몇 년 입원병동을 많이 지었다고는 하나 외관이야 화려하지만 그로 인한 적자가 도대체 얼마인가? 그게 다 조만간 폭발할 화약통이지. 셋째, 인사에 있어서 권력을 남용했다는 점이야. 성 인민병원의 하고 많은 의사들 중에 왜 하필이면 자기 아들을 외국으로 연수 보내며, 또 성 위생계통에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있는데 기어코 자기가 하리하량(何利何梁) 장학금을 받느냐 이거야. 자그마치 오만 홍콩 달러나 말이야.”

그 편지를 보고 나는 등줄기에서 땀이 다 흘렀다. 모두 일곱 가지 항목으로 하나하나가 옳은 말이었다. 내가 편지를 다시 돌려주자 그가 물었다.

“없는 말 아니지?”

“예, 그러네요. 그래요.”

“우리가 지대위 씨를 부른 건 두 가지 이유에서야. 첫째는 중의학원에 수상평가 내역에 대해 이야기해줬으면 하는 것이고, 둘째는 여기에 서명을 하지 않겠냐는 거지. 사람이 많으면 힘도 더 커지는 것 아니겠나.”

그가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거기에는 이미 오십 여 명의 서명이 있었다. 유명한 전문가들의 이름도 몇 있었다. 서소화의 이름이 제일 처음에 있었고, 윤옥아 남편의 이름도 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망설이고 있는데 연구원 인사과 정(鄭) 과장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몇 달 전에 내가 이곳으로 부서를 옮기려다 벽에 부딪쳤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서소화가 이곳 원장이었지. 순간 나는 그들과 함께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수상평가에 관한 일은, 저야 그저 논문 접수에만 관여했기 때문에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서 교수님이 평가위원이셨으니 저보다 더 잘 아실 텐데요.”

물론 수상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졌을 리가 없었다. 그것도 일종의 이익배분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자기도 평가위원인데 손해 보는 짓은 하지 않았겠지….

그가 말했다.

“물론 알고는 있지만 전반적인 상황은 나도 잘 몰라.”

“다른 평가위원들도 교수님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만약 공정(公正)과 함께 할 용기가 있다면, 우리와 함께 여기에 서명하겠다면, 우리는 두 손 들어 환영하겠네. 일이 잘되면 우리가 그 점 반드시 배려해줄 거고.”

“모두들 아시다시피 제가 별로 대범하지 못해서요, 집사람과 상의를 해봐야 합니다. 안 그랬다가는 꾸중을 듣거든요.”

그도 웃으면서 말했다.

“마누라 무서워서. 아무튼 서둘러 주게. 늦어도 내일 오후까지는 나한테 전화 주면 돼. 기다리겠네.”

나는 얼른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를 하고 나오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찬 바람이 불어오자 머리가 맑아졌다. 내가 지금 중간에 껴서 이게 뭐람? 일이 성사되어도 나야 주동세력이 아니니 콩고물도 별로 안 떨어질 테고, 만약 실패로 돌아가면 나도 참여했다고 죄만 뒤집어써야 할 텐데….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돈 생각이고 뭐고 그냥 택시를 잡아타고는 안 선생님 댁으로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안 선생님께선 이야기를 듣더니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머리를 천천히 앞뒤로 흔드셨다.

“좋은 일이네, 좋은 일이야.”

“그럼 저도 서명을 해야 할까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정도 죄목으로 마 청장을 끌어내리겠다고? 그게 말이 된다면 오늘은 마(馬) 청장, 내일은 용(龍) 청장, 이어서 양(羊)청장이 있을 거고, 그리고 다시 그 위로는 우(牛) 성장(省長)에 견(犬) 부장(部長)…, 끝도 없게? 같은 바닥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동일 전선에 놓여 있어서 그들 사이엔 고도의 묵계가 형성되어 있지. 사람 하나 처치하려고 해도 웬만한 폭탄으로는 어림도 없어! 그 인간들이 환자 진찰할 줄만 알았지 정치는 통 모르는군!”

“그렇지만 열거된 일곱 가지 조항들이 다 일리가 있던데요.”

그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전제 독재? 그건 어떻게 보면‘지도자의 일원화’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 사공이 많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지나친 공명욕’이라, 그건 어찌 보면 생각하는 바를 실천으로 옮기는 패기, 박력이지. 빚을 졌다고는 하지만 건물이 올라가지 않았는가? 병원들도 다들 갑(甲) 두 개, 세 개짜리로 승격되었고 말이야. 그리고 몇 천만 위안 빚 없는 정부기구가 어디 있나? 그리고 ‘권력남용’이라, 권력을 손에 쥐고 자기 아들 하나 안 봐주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그걸 성(省)에 갖다 일러보게. 성장 아들은 뭐 외국 안 나갔나? 요즘이야 정치문제는 문제도 아니지. 어떤 관리가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하겠어. 품행 문제도 별 문제가 아니고, 그건 사생활이니까 말이야. 업무도 문제가 안 되지. 어떻게 하든지 간에 말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꼬투리 잡기가 힘들거든. 유일한 문제가 바로 경제문제인데, 일곱 가지 조항 중에 경제문제가 없네. 이 정도 폭탄으론 어림도 없어. 마 청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야. 그런 유혹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쉬운 일이 아니지. 이 정도 관리를 끌어내리겠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관리를 끌어내려야겠나. 중국에서는 관직에 오르기도 힘들지만 내려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네.‘능상능하, 능관능민’(能上能下, 能官能民: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고 자리에서 내려올 수도 있고, 관리가 되었다가 서민이 될 수도 있다)은 신문에서나 하는 말이지 현실에서 그런 일이 어디 있나?”

“그럼 마 청장이 무사할 거라는 말씀이세요?”

그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말이야 하기 나름 아니겠나. 그 일곱 가지 죄목은 말만 바꾸면 일곱 가지 공적이 되는 거야.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 윗사람들이 바꿔 치울 마음이 있으면 별 힘 안 들이고도 그냥 쳐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누가 뭐래도 자리 마련해서 표창장이라도 내릴 걸?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나는 연신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정말 오묘하네요. 오묘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에요.”

“사람이 출세를 하느냐 아니면 평생 그 모양 그 꼴로 사느냐는 바로 윗사람들이 자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린 걸세. 그 사람들 마음이지.”

“제 한 평생이 결국은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 속까지 서늘해집니다. 저는 제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그렇게 고개 빳빳이 세우고 살았는데요.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요? 예전에는 그게 무슨 격언이냐, 세상에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제는 좀 알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네요. 이렇게 긴 세월 머리 깨지고 코피 터지고 나서야 이런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너무 기고만장했어요. 하늘 높은 줄 몰랐던 거죠.”

“서소화가 바로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의 전형이지. 학계에서 이름 좀 알려지니까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알고 마 청장한테 반기를 드는 것이야. 오늘이야 제가 명사(名士)이지 내일 가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그 학계에서의 지위라는 것이 권위자의 입을 통해 확인되는 것인데, 그 사람이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이니까. 그 인간은 그 권위자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는 거야.”

생각해 보니 나도 그들처럼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좌지우지되는 목숨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늘 가는 게 아니었어요. 황하의 물에 뛰어들어도 씻어지지 않을 잘못을…. 얼떨결에 해적선에 합승한 꼴이 되었어요.”

안 선생님이 손을 아래로 내리치면서 말씀하셨다.

“아니지! 이 정보야말로 엄청난 재산이야! 잘 이용해야 하네. 자네 얼른 마 청장한테 전화를 해서 보고하게나.”

나는 본능적으로 거부하면서 말했다.

“그건 좀 너무 그렇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서 교수님 댁에서 나올 때 반드시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요.”

“자네가 오늘 얘기 안 하면 내일이나 모레엔 너무 늦어버리게 되네. 자네도 사회불안 조장하는 체제전복 기도 세력이 되고 말아. 자네 맘대로 하게.”

그 말을 듣자 머리 속에서 웅웅 소리가 났다. 그렇게 되면 나는 너무 억울하다. 너무너무 억울하다. 이런 게 정치라는 것인가? 일단 발을 들여놓은 이상 중립을 유지할 수도 없고, 발을 들여놓지 않고 한 쪽으로 물러서 있을 수도 없다.

“오늘은 너무 늦었어요. 벌써 열시도 넘었는데요.”

“오늘은 늦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네. 내일 아침이면 아마 너무 늦어버릴지도 모르네.”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말했다.

“아아아, 전 정말 못하겠어요. 이것도 배신 아닐까요?”

“잘 생각해 보게. 오늘 밤에 해결하지 않으면 자네 안 사람, 동류 일도 물 건너가는 거야. 아직 수속 다 안 마쳤지? 이유라도 대면서 물 먹이면 그나마 자네 체면 생각해주는 거고, 이유까지 찾을 필요도 없지. 자네 집 동류가 진짜 무슨 인재라도 되는 줄 착각하지 말게. 그 사람들이야 쉽게 한 말이고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는 거니까. 자네 양심 따지나? 시간 지나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이런 일에 있어서 양심보다 더 일을 망치는 건 없네.”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고통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안 선생님이 옳다! 내 본능이 이끄는 방향은 한 번도 옳았던 적이 없었다. 안 선생님이 화장실에 가셨다. 동류도 이렇게 큰 충격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려서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었다. 나는 사지로 몇 걸음 기다가 고개를 들고 이를 드러내고 속으로 으르렁대고 혀를 아래로 늘어뜨리면서 “멍멍”짖어 보았다. 화장실 문 닫는 소리가 났다. 나는 화들짝 다시 소파에 앉았다.
“저 사무실로 가서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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