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청장 사모님**
동류가 병원에 갔다가 아주 흥분해서 돌아왔다.
“사(史) 원장이 나한테 어찌나 잘해 주시던지…, 이때까지 그런 적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게 정말이야?”
“사 원장이 잘해 주니까 우리 과 주임도 친한 척하는 것 있지요? 자기도 사 원장 따라 나보고 류, 류 하고 불러대면서요.”
나는 그게 다 마 청장의 영향력이 미치기 때문임을 알았다. 그녀가 싱글벙글거리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좀 태연하게 굴어! 득의양양한 표정 짓지 말고. 과 주임이 잘해 주는 거야 사 원장 때문이고, 사 원장이 잘해 주는 건 청장 사모님 때문인데, 그런데 아직 사모님이 어쩔지 모르잖아. 며칠 이러다가 끝날 수도 있는 건데 그때 가서 어떻게 하려고?”
그녀 얼굴에서 웃음이 싹 가시더니 말했다.
“생각해 보니 또 그러네요. 설에 사모님 댁에 인사를 가봐야겠어요. 그분도 한가한 분이 아니라고요.”
“그럼, 가야지, 꼭 가야지. 안 가면 쓰나? 땅이 꺼지는 일이 있어도 가야지.”
며칠 후에 경(耿) 원장이 내게 전화를 해서 동류와 함께 한 번 들르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 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런 좋은 일이 이렇게 빨리? 동류가 돌아오자 나는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우리 둘은 너무 흥분해서 밤새 잠도 못자고, 또 한편으로는 괜히 헛물만 켜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도 되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성(省) 인민병원으로 갔다. 경 원장 사무실에 가서 문을 열자 경 원장이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나는 좋은 일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경 원장이 말했다.
“성 인민병원은 성 전체 위생계통에서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인재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입니다. 인원 편성이 매우 빡빡하긴 하지만 업무상 필요하기도 하고 또 뛰어난 인재라면 역시 잡아두어야 하지요. 류는 가서 사 원장한테 전근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세요. 우리가 직접 사 원장 수중에서 인재를 빼오는 것은 아무래도 좀 그러니까. 사 원장만 허락한다면 얼른 이쪽으로 오십시오. 여기서는 퇴직 간부과(科)에서 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노인분들 성격이 얼마나 유난스러운지 동일침(董一針) 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여기 간호사들 주사 한 번에 못 놓았다가 그분들한테 꾸중 듣고 우는 일이 자주 있거든요. 동 간호사가 와서 제 부담도 좀 덜어주시고.”
동류는 연신 머리를 끄덕거리면서“예, 좋습니다.”를 연발했다. 병원 문을 나서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가에 고인 눈물이 겨울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갑자기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틀 동안 동류는 하루 종일 사모님 칭찬만 끊임없이 해댔다. 나조차 사모님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마 청장님도 아주아주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말했다.
“역시 큰 인물들은 예의를 차릴 줄 안다니까. 예전엔 우리가 잘못 알았던 거야.”
그렇지만 그분들이 잘해 주시는 것만큼 우리는 그만한 보답을 드릴 능력이 없었다. 몇 년 동안 나는 뱃속 가득 마 청장님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이를 북북 갈았던 적은 물론이고 윤옥아 앞에서 마 청장님에 대한 험담도 꽤 많이 했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지난 수 년 간의 악감정들이 하루아침에 싹 다 사라지다니. 나도 양심이 있지. 사모님이 그날 우리 앞에서 말을 아끼셨던 것은 결코 우리에게 화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류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 또 그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흥분한 가운데서도 내 안의 어떤 목소리, 나를 일깨우는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뼈다귀 하나를 던져주니 아주 좋아서 꼬리를 치는구나! 평소에는 아무리 해도 못하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아주 진심으로부터 좋아서 꼬리를 치는구나!”
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그렇지만 사람이 일단 살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누가 자기 평생을 걸고 도박을 하고 싶겠는가? 무엇 무엇을 지키고 고집한다고 말로 하고 글로 쓸 수야 있지만, 정말로 그대로 실행에 옮기라는 것은 지나친 농담이다. 정신적인 가치가 생활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스스로에게 침을 뱉는 상상을 했다.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바보같이 히히 웃었다.
동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모님 댁에 다녀와야겠다고 했다. 나는 일부러 말했다.
“그 사람들이야 자기네 편하자고 당신을 전근시킨 것뿐이야. 그걸 당신은 그 사람들이 진심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왜, 지금 가서 절이라도 하려고?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려고?”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사실은 사실이잖아요. 나는 보이는 것만 믿어요! 절할 수 있으면 그것도 복이지요. 매정한 말투로 문전에서 쫓아내지만 않으면 말이에요. 만약 쫓아내면‘저는 아직 일 끝나지 않았습니다.’고 하면서 안 가고 버틸 거예요.”
동류는 현실적이었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가? 일만 성사되면 그게 바로 진짜다. 일만 성사되면 인간관계도 형성되고 암묵적인 동의도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모든 것은 무언(無言) 중에 이루어진다.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이것 역시 게임의 규칙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명백해졌다. 우리도 그 규칙에 따라야 한다. 내가 말했다.
“그럼 새해인사 드리러 가자!”
“연초에는 인사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텐데, 거기에 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생각해 보니 또 맞는 소리였다. 게다가 나는 말씀드릴 것도 있는데. 그러면 선물이라도 사가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을 사가는 것이 좋을지 아이디어가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 안 선생님께 묻자 그가 말했다.
“상대가 누구인지를 봐야지. 그 인간이 없는 게 뭐가 있겠나? 물건 들고 들어가는 거 좋아 보일까? 동기 불순한 모습이지. 동기불순(動機不純)!”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결국 그날 저녁 우리는 빈손으로 마 청장님 댁을 찾았다.
현관 앞에 서자 나는 가슴이 뛰었다. 일파의 손을 잡고 있던 동류는 오히려 별로 긴장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왼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가면을 쓴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좀 차분해졌다. 보모(保姆)가 문을 열어 주었다. 사모님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동류의 이름을 외쳤다.
“류, 류!”
그러나 인사이동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을 않으셨다. 동류는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손을 잡고는 아무 말 없이 코부터 훌쩍거렸다. 사모님이 말했다.
“류, 좋은 일인데 울긴 왜 울어?”
묘묘(渺渺)가 나와서 덥석 일파의 손을 잡더니 자기 피아노를 구경시켜 주러 들어갔다. 마 청장님이 집에 없는 것을 보고 나는 좀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동류가 요 며칠 계속 사모님 얘기만 합니다. 한밤중에 깨서도 사모님, 사모님, 하고 중얼중얼 거리는 거예요. 하긴 그 오랜 세월 바라던 일이 꿈같이 이루어졌으니 자기도 믿기 힘들겠죠. 방금 오는 길에도 저한테 이게 생시냐고 묻더라고요.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몰라요.”
나는 고개를 들고는 동류가 우는 모습을 흉내 냈다. 사모님이 말했다.
“내가 경 원장한테 좀 좋은 자리로 준비해달라고 했는데 어디로 배치됐어?”
“퇴직 간부과요.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죠. 사모님, 다음에 무슨 일 있으면 꼭 저를 찾아주세요. 낮이면 낮, 밤이면 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주사 하나는 잘 놓거든요. 제가 밤낮 지키면서, 사흘이고 닷새고….”
내가 말했다.
“어허, 이 댁에 맨날 아픈 사람이 있으면 안 되지.”
나는 힐끗힐끗 좌우를 살폈다. 사모님이 말씀하셨다.
“남편은 지금 무슨 서류 읽을 것이 있다고 서재에 있어요. 하루 종일 일, 일, 저러다가 언제 한번 쓰러지지 싶어. 그 갑(甲)자 두 개, 세 개짜리 병원 허가 얻어내는 일들이 쉬운 게 아니거든요. 언젠가 저 짐들 다 내려놓으면 내 마음도 편하겠는데.”
내가 말했다.
“마 청장님이야 일이 언제나 우선이시죠. 몇 년 사이에 우리 성(省)의 위생 시스템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주 하늘과 땅이 뒤집혀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워낙 프로 정신이 투철하셔서 전 성 위생 시스템 십 수만 명을 다 신경 쓰시느라 말입니다.”
사모님은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그래도 식구들과도 시간을 좀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동류가 말했다.
“십 수만 명은요, 전 성(省)의 수천만 명의 건강을 모두 신경 쓰시느라 그런 거지.”
사모님이 말씀하셨다.
“성(省)이며 위생부에서는 하고한 날 목표치로 찍어 누르죠. 윗사람들은 그저 수치만 따질 줄 알았지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는 모른다오. 한 걸음만 느긋하게 움직이면 다른 성에서 잽싸게 앞질러버릴 텐데 그걸 못 참는 거지.”
내가 말했다.
“어떤 성에선요, 제 친구가 거기 사는데요, 데이터 수치들을 어떻게 만드는 줄 아세요? 그냥 문서 작성 프로그램으로 써낸답니다! 우리 성처럼 이렇게 제대로 하는 데는 전국에 몇 군데 없습니다.”
동류가 재빨리 입술에 침을 발랐다. 내 말이 좀 과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몇 번 만나본 결과 나는 사모님한테는 그렇게까지 신중하게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말했다.
“맞아요, 바깥양반 책임감이 너무 강해요, 너무.”
한참 얘기를 하다가 동류가 말했다.
“저는 그날 사모님께서 그저 저한테 농담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진담이셨어요. 관음보살 입에서 연꽃 나오는 것처럼.”
내가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진담이지, 그럼. 하도 확실한 진담들이라 아마 벽에 가서 부딪치면 벽에 구멍이 날 걸?”
사모님은 흥분해서 말씀하셨다.
“나도 그렇게 유능한 건 아니에요. 다음에 무슨 일 부탁받아도 이번처럼 이렇게 바로 효과를 본다는 보장은 없어요.”
나와 동류가 얘기하는 것을 듣고 그녀는 우리가 또 다른 부탁이 있는 줄 알고 경각심이 생겼던 모양이다. 나와 동류는 거의 동시에 혀로 입술에 침을 발랐다. 동류가 말했다.
“앞으로 또 무슨 신세를 져요? 이번 일로 이미 너무 황송해요.”
내가 말했다.
“한 번 잘해 주면 그것을 시작으로 끝없이 뭔가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저희는 그런 코끼리 삼키려는 뱀처럼 염치없는 사람들(蛇呑象的人) 아닙니다.”
사모님이 말씀하셨다.
“저도 그런 사람들을 봤어요. 그런 사람들한텐 웃는 얼굴도 못 보인다니까요. 틈만 보이면 거기로 비집고 들어오려고 난리를 치죠.”
내가 말했다.
“사모님과 마 청장님께서 이렇게 주동적으로 아랫사람 입장에서 생각하고 계실 줄 누가 알겠어요? 저희도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입니다.”
동류가 말했다.
“관직에 있는 사람들 중에 서민들의 고충을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마 청장님처럼 이렇게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사모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로 우리 바깥양반 같은 사람은 몇 없다니까.”
내가 말했다.
“만약 마 청장님께서 관할하시는 범위가 조금만 더 크면, 정말 전 성 인민들의 복일 겁니다.”
사모님은 나를 보며 아주 신비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묘묘와 일파가 손을 잡고 들어왔다. 동류가 말했다.
“애들은 보자마자 저렇게 친해지네요. 우리 일파가 별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닌데 묘묘랑은 마음이 잘 맞나 봐요.”
사모님이 말씀하셨다.
“요즘 애들은 너무 외로워요. 정말 너무 불쌍해. 앞으로 자주 일파 데리고 놀러 와요.”
나는 한 번 떠보는 차원에서 말했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것도 큰 실례인데, 몇 번씩이나 오다니요? 마 청장님도 쉬셔야지요.”
사모님이 말씀하셨다.
“그 양반이야 서재에서 일하니까 방해될 것 없어요. 류는 그냥 애 데리고 오기만 해. 묘묘도 친구 있으면 좋고, 나도 얘기할 사람 있어서 좋고…. 우리는 서로 말도 잘 통하는 것 같은데.”
묘묘가 말했다.
“할머니, 나랑 일파 오빠랑 결혼사진 찍어줘요.”
말하면서 종이로 접은 사진기를 사모님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 일파 예쁜 신부랑 결혼하네.”
사모님이 감탄했다.
“정말로 천사 같이 예쁜 한 쌍이네.”
그리고는 정말로 사진기를 가져와서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모님은 묘묘에게 당시(唐詩)를 외워보라고 시켰다. 아이가 시를 두 수 낭송했다. 동류가 말했다.
“묘묘는 천재인가 봐요. 당시도 외우고, 피아노도 잘 치고….”
일파는 자기도 뭔가 보여주고 싶은지 동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엄마 나도 하나 외워도 돼?”
동류가 못 들은 척 일파 등을 떠밀면서 말했다.
“자, 가서 묘묘랑 놀아!”
그때 마 청장님이 서재에서 나왔다. 나와 동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 청장님이 말했다.
“지대위 왔나?”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고, 나와 동류는 전기라도 통한 듯이 자리에 앉았다. 동류가 집에서 준비해 온 대사를 읊었다.
“마 청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려고 왔습니다. 늦은 시간에 혼자 오기가 좀 그래서 남편하고 같이 들렀습니다.”
말을 하면서 나를 가리켰고, 나도 옆에서 머리를 끄덕였다. 동류가 말을 이었다.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결혼한 다음부터 계속 성 남쪽에서 성 북쪽으로 바쁘게 뛰어다녔는데, 앞으로도 평생 그렇게 살아야 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마 청장님이 말씀하셨다.
“이번 일은 동류 자네 재능이 탁월해서 데리고 온 거야. 외지에 가족들 두고도 데려 올 수 없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우리 시(市)의 규정에 따라 일률적으로 처리한 것일 뿐 특별히 봐 준 건 없어.”
내가 말했다.
“이 사람이 요 며칠 줄곧 마 청장님, 사모님 이야기를 얼마나 하는지, 어제는 한밤중에 자다 깨서까지 또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마 청장은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동류에게 물었다.
“거기서 부서는 어떻게 배치되었나? 다른 사람들이 딴 소리 하지는 않고?”
“경 원장님께서 퇴직 간부과에 배속시켜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제가 일이 너무 잘 풀리는 것처럼 여기겠죠.”
마 청장님이 말씀하셨다.
“무슨 일이든지 딴 소리 하는 사람들이 꼭 한둘은 있게 마련이지. 그런 소리 듣는 게 무서우면 아무 일도 못하지. 지대위, 자네는 우리 집 처음 온 거지?”
“예전에 유자 갖다 드리러, 전번 집으로 한번 와봤습니다.”
“일하기는 괜찮지?”
“한가합니다.”
나는 하마터면 “벌써 몇 년째 한가합니다.”하고 말할 뻔했다.
“일 년 동안 처리해야 할 일이 얼마 없어서, 일이 없을 때는 책 읽고 논문 쓰고, 그 중에서 몇 편은 북경에서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마 청장은 관심을 보이며 무슨 논문을 어디다 발표했느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자 말했다.
“내 연구 분야와도 제법 가깝군. 위생청 내에 행정 일을 하면서 연구 계속하는 사람 몇 없는데….”
사모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바깥양반도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논문 몇 편씩은 꼭 쓴다오.”
내가 말했다.
“마 청장님께선 일찌감치 연구원도 되셨고, 책도 벌써 내셨는데, 하루 종일 그렇게 바쁘시면서 논문까지 쓰신다니 저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언젠가 마 청장님께서 박사 지도교수가 되시면 그때 저도 마 청장님 아래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싶습니다.”
나는 그가 출판한 책들과 논문들을 이미 다 자세히 읽었기 때문에 얘기하기가 아주 수월했고, 상황과 정도에 꼭 맞는 반응을 보일 수 있었다. 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는지 약간은 놀랍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분위기가 좋아졌으므로, 이제 화제를 어떻게 예정된 궤도로 진입시킬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위생청 내의 일을 경솔하게 이러쿵저러쿵 해도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동류가 말을 꺼냈다.
“지대위가 다른 과로 좀 옮겼으면 좋겠어요. 윤옥아라는 여자가 말이 너무 많아서 하루 종일 출처불명의 소문들만 떠든다니까요.”
마 청장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또 여기서 막히는구나. 어떻게 하면 얘기를 진전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웬걸, 사모님이 물으셨다.
“무슨 출처불명의 소문?”
나는 마음 모질게 먹고 입을 열었다.
“청사에 관한 이야기죠, 뭐. 그 사람 남편이 회계과에 있어서 듣는 이야기가 많은가 봅니다. 진짜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요.”
윤옥아의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마 청장님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아? 난 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지?”
나는 이를 악 물고 대답했다.
“아무리 일이 잘 되어도 그 사람들은 이런저런 문제가 눈에 띄나 봅니다.”
마 청장님이 말씀하셨다.
“무슨 문제? 정말 문제가 있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나는 평소에 윤옥아가 늘어놓은 정체불명의 수상한 얘기들을 했다. 마 청장이 말했다.
“그 말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네.”
마 청장이 이런 식으로 대꾸할 줄이야. 더 이상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진전시켜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안 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 사람은 다 자기 자신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큰 인물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했는데, 아니 도대체 마 청장님은 그 예외란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말했다.
“제 생각에 그 친구는 흠을 잡다 못해 계란에서 뼈를 고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공기 중에서까지 뼈를 발라내려는 사람 같습니다. 어떤 말들은 정말 듣는 제가 다 화가 납니다.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해야지, 자기 기분대로 떠들어선 안 되지요.”
사모님이 톡 뛰어들었다.
“글쎄, 그 여자 남편이 그렇다니까요.”
마 청장님이 눈짓을 하자 사모님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마 청장님이 말했다.
“일국의 간부로서 가장 중요한 소양은 바로 실사구시(實事求是)임에 틀림 없어. 이것은 당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지. 감정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오류를 범하게 되어 있지.”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마음이 놓였다. 내가 꺼낸 이야기가 그가 평소에 느끼던 바와 서로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과연 큰 인물도 예외는 아니로군. 다른 사람이 자기를 험담하고 다닌다는 데 기분 좋을 턱이 있나! 마 청장이 말했다.
“위생청 업무 중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매우 많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곤란해.”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제 생각엔 위생청 차원에서 자신을 좀 더 드러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지 못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저희나 겸손 떨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별 노력도 안 하고 착실하게 업무에 집중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티가 나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위생청도 정말로 진열관 내지 작은 박물관을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위생청 발전의 흔적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서 뒷사람들에게 앞사람들이 겪은 창업의 노고를 깨닫게 해야 합니다.”
마 청장은 생각나는 것이 있는 것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젠 그만 가도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곧장 자리를 뜨면 마치 이 말 때문에 온 것처럼 보일 것 같아서 일부러 사모님과 묘묘 이야기, 어린애들마다 성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동류는 말을 하다하다 정신을 못 차리고 연신 우리 일파 자랑만 하기 시작했다. 사모님이 묘묘의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하자, 동류가 얼른 이어서 일파의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몇 번이나 혀로 입술을 문지르고 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사모님이 주로 이야기하시도록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류가 말했다.
“원래는 진심으로 그분들한테 감사드리러 갔던 것인데, 어찌 된 셈인지 당신과 내가 번갈아 가면서 혀를 굴리다 보니 진심도 거짓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정말이지 사모님한테 죄송해요.”
“어쩔 수 없지 뭐. 이렇게 안 하면 또 별 수 있냐?”
“그래도 효과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진심이라고 말하려면 무슨 효과를 따져선 안 되는 거야. 당신 지금 효과라는 두 글자를 쓰려면 정말로 진심으로라는 말은 써서는 안 되는 거라고. 그땐 벌써 연기(演技)가 돼버리는 거야, 연기. 다행히 그분들이야 이미 익숙하지만, 그래도 청장 자리에 몇 년을 앉아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연기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어? 문제는 그 사람들도 그런 연기를 필요로 한다는 거지. 그렇게 오랜 세월 연기하다 보면 거짓도 진짜가 되는 거야. 그래도 우리는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잖아. 혼자 힘으로 살 수 있다면 몰라도 다른 사람의 힘에 의존해서 살겠다고 하면서도 연기는 못하겠다고 해서는 안 되지. 당신 모든 사람들한테 다 진심으로 대해봐. 당신을 갖다 팔아도 당신은 어떻게 팔렸는지, 누가 팔았는지도 모를 거라고.”
“오늘은 당신도 다른 사람을 팔았어요!”
그 말에 마음이 좀 언짢아졌지만 사실이었다.
“어쨌든 내가 꾸며내거나 뭘 덧붙인 것도 아니고 다 윤옥아 입에서 나온 말 그대로라고.”
“당신, 앞으로는 말조심해요. 당신은 너무 솔직해서 통제를 못하는 것 같아. 솔직하고 싶으면 호일병씨와 얘기할 때나 솔직하고 다른 데서는 그러지 말아요. 솔직하다는 것, 그거 산소가 부족하다는 것 아니에요?”
“맞아, 맞아. 내 성격이 좀 그렇지. 이젠 나도 나름대로 생각도 있는데 기분 내키는 대로 함부로 떠들어선 안 되지. 조직 안에서 무슨 개성이니 성격이니 하는 게 있어? 개성이니 성격이니 하는 것들 죄다 갈고 닦아서 대세에 복종하게 만들어야지. 안 그랬다간 조직이란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대로 밖으로 밀려나버리고 말 텐데.”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더 갈고 닦아야 할 것 같다. 스스로를 적으로 삼고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그래도 싸워야 한다.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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