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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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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55>

로마는 모든 길로 통한다

***55. 로마는 모든 길로 통한다**

한밤중에 누가 복도에서 내 이름을 막 불렀다. 나는 놀라 깨어서 옆에 일파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안심한 다음, 그 부름에 대답했다. 동류도 깨어서 손으로 일파부터 더듬었다. 밖에 있는 사람은 문을 두드리면서 계속 외쳤다.

“지대위! 동류, 동류!”

나는 불을 켰다.

“날세, 나야!”

“나라니, 대체 내가 누구요?”

“나라니까, 내 목소리도 못 알아듣나?”

동류가 말했다.

“정 처장님 아니세요?”

나는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다. 사람들이 다 네 목소리를 알아들어야 한다는 거야? 나는 옷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 정소괴가 확 밀고 들어왔다.

“동류, 동류, 빨리, 빨리요!”

동류는 깜짝 놀라서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정소괴도 문 쪽으로 물러서면서 말했다.

“마 청장님 손녀딸 묘묘(渺渺)가 인민병원에 입원했는데, 가서 주사 좀 놔 줘요!”

한참 듣고 나서야 마 청장님의 손녀가 구토로 탈수 증상이 나타나 인민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링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간호사가 긴장한 탓에 주사 바늘이 연달아 빗나간 모양이다. 청장 사모님은 노발대발해서 경(耿) 원장에게 제일 좋은 간호사를 불러오라고 했다. 그러나 새로 데려온 간호사는 앞서 실패한 간호사가 경 원장한테 꾸중을 듣고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손부터 떨기 시작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또 실패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아무도 감히 주사를 놓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고 했다. 청장 사모님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고, 경 원장도 머리에서 땀만 뻘뻘 흘리고 있다고 했다. 동류가 일파한테 주사 놓았던 이야기를 정소괴가 해주자 경 원장이 동류를 불러오라고 했다. 아래에서 차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동류가 옷을 입고 나서자 정소괴가 그녀에게 얼른 가자고 잡아끌었다. 동류가 나한테 눈짓을 했다. 나도 그녀 생각을 알아차렸다. 동류가 일파를 아래 장모한테 데려다 주려고 했다. 정소괴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말했다.

“빨리, 빨리요! 애는 대위가 여기서 보면 되잖아요.”

동류가 말했다.

“당신도 같이 가요.”

정소괴가 내게 말했다.

“걱정 말게, 걱정 마! 동류는 내가 집까지 다시 잘 모셔다 드릴 테니.”

“그럼 난 안 가겠네. 당신 주사 놓을 때 침착하고, 손 떨지 말고….”

동류가 말했다.

“저이가 가야 저도 마음이 놓인단 말이에요. 안 그러면 손이 떨려서….”

정소괴가 말했다.

“애 봐야지요. 어쨌든 차로 오고가고 데려다 드릴 텐데, 아주 안전하다고요.”

나는 정소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일종의 본능적인 방어 의식으로 평소에 다른 사람과 마 청장이 접촉할 통로를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봉쇄함으로써 다크호스(黑馬)의 출현을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세상에 나한테까지 저렇게 경계를 늦추지 않다니…. 내가 말했다.

“그럼 동류 당신만 다녀와!”

동류가 갑자기 어리광을 부리듯 말했다.

“같이 가자니까요!”

정소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같이 가세.”

동류는 일파를 안고 아래층의 장모님께 맡기러 갔다. 복도가 깜깜했다. 동류가 조심조심 걷자 정소괴가 재촉했다.

“빨리요, 빨리! 탈수(脫水)라고 했잖아요!”

나는 속으로 욕을 했다.

“내 자식은 인간도 아닌가? 넘어지면 어떻게 하라고!”

병원에 도착해 보니 경 원장과 몇몇 사람들이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정소괴가 먼저 뛰어 들어가서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왔습니다, 왔어요! 데리고 왔습니다!”

경 원장은 기뻐서 두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왔구나, 왔어!”

마치 무슨 구세주라도 등장한 것 같았다. 내가 보니 아이는 벌써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청장 사모님은 동류의 손을 잡으면서 애원했다.

“동 선생님, 저희 묘묘 좀 살려주세요! 바깥양반은 회의 참가하러 갔는데 벌써 모셔오라고 차 보냈어요.”

동류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게 잠시 살펴보더니 말했다.

“손에 놓으면 아파해서 바늘이 미끄러져요. 이럴 때는 이마에 놓는 수밖에 없습니다.”

경 원장이 지시했다.

“가서 칼 가져와요.”

간호사가 바로 면도칼을 가지고 왔고, 동류는 알코올로 소독한 면도날로 아이의 이마에 잔머리를 동그랗게 밀어내고 자세히 살폈다.

“혈관이 너무 가늘어요.”

청장 사모님은 안달하다 못해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애 아빠랑 엄마는 다 미국에 있는데, 혹시라도 잘못되면 무슨 낯으로 얘 부모를 봐요?”

동류가 말했다.

“한 번 해보죠.”

말을 마치고 동류는 이마를 톡톡 몇 대 치더니 바늘을 집어 들었다. 청장 사모님은 고개를 돌렸고, 나도 긴장되어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동류가 바늘을 찌르는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다시 떠보자 피가 도는 것이 보였다. 사모님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경 원장에게 외쳤다.

“이거예요, 이거!”

경 원장이 말했다.

“유명한 동일침(董一針) 모르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는 동류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동류가 그를 구해준 것이다. 안 그랬으면 나중에 마 청장을 무슨 낯으로 보겠는가. 잠시 후에 간호사가 약을 들고 들어와서 말했다.

“약 먹을 시간입니다.”

청장 사모님이 말했다.

“왜 좀 더 일찍 안 먹이고. 방금 주사 놨는데 또 움직이라는 거야?”

간호사는 억울하다는 듯이 손목의 시계를 쳐다보았다. 사모님이 말했다.

“약은 먹어야 하니, 먹여야지.”

정소괴가 재빨리 조심스럽게 아이를 부축했다. 사모님이 약을 받아 들고 말했다.

“내가 하지, 내가.”

사모님은 정소괴를 보면서 말했다.

“오늘 다들 수고하셨어요. 서 기사한테 집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하죠.”

우리는 모두 병실에서 나왔다. 나오면서 고개를 돌려 꽃바구니가 몇 개나 왔는지 보았다. 벌써 여러 개가 와 있었고, 하나는 이미 밟혀 뭉개져 있었다. 사모님이 따라 나오면서 말했다.

“동 선생님, 오늘 밤 수고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혹시 바늘이 또 뽑히기라도 하면….”

경 원장도 말했다.

“안 그래도 옆방을 이미 비워 놓았습니다. 오늘 밤은 거기서 주무시죠. 유능한 사람이 일 많이 하게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나와 동류는 병실로 들어갔다. 정소괴는 가지 않고 밖에 있었다. 마 청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 청장에게 자기가 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커튼 틈으로 정소괴가 두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멍청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밖에 저러고 그냥 있는 꼴 좀 봐. 불쌍하잖아? 여기 침대 하나도 비어 있는데 들어오라고 하지.”

동류가 말했다.

“싫어요. 기 좀 꺾어 놔야 해요. 평소에 다른 사람들이 정 처장님, 정 처장님, 하니까 아주 기고만장해서는…. 아마 지금쯤 밖에서 괜히 동류 얘기를 꺼냈다가 자기만 허공중에 떴다고 후회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도 나는 문을 열고 나왔다.

“정 처장, 안에 들어와서 쉬지. 여기 침대 하나 비었어.”

그는 멍하게 있다가 화들짝 놀란 듯이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응? 내가 아직 안 갔나? 내가 왜 아직 안 갔지? 나도 가 봐야지. 서 기사가 차를 갖고 가버려서….”

그의 말을 듣고 나는 괜히 나섰다고 후회를 했다. 괜히 저 사람 우스운 꼴만 일깨워준 셈 아닌가! 나는 좋은 뜻으로 한 말이었는데 속으로 나를 욕하는 건 아닌지. 하여튼 난 마음이 너무 약해. 마음이 너무 약하다고! 그때 마침 등(鄧) 기사가 마 청장님을 모시고 총총 걸음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정소괴는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마 청장님!”

마 청장은 고개를 끄덕했지만 얼굴은 나를 보고 있었다.

“주사바늘이 들어갔다고? 좋아, 좋아. 대위 자네 부인 솜씨가 정말 대단하군!”

그 길로 병실로 들어섰다. 나와 동류가 따라 들어갔다. 청장 사모님은 우리를 들어오게 한 다음 따라 들어오려는 정소괴에겐 손짓을 해보였다.

“조용, 조용!”

정소괴는 문 밖에 멈추어 섰다. 얼굴에는 어색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나는 얼른 문 가로 물러났다. 사모님은 침대 머리맡의 의자를 가리키면서 나더러 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 가로 물러나 정소괴 옆에 가서 섰다. 경 원장이 급히 들어오더니 묘묘의 상황을 마 청장에게 보고했다.

동류는 병원에 며칠 더 머물렀다. 매일 밤 나도 병원으로 가서 동류와 함께 있었다. 동류가 말했다.

“저 사람들 사는 것 좀 봐요. 손녀가 아프다니까 차 두 대가 다 움직이더라고요. 같은 사람인데 비교되는 것 봐요. 아주 열 받아 죽겠어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다른 사람 때문에 열 받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 열 받게 하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남 열 받게 할 주제는 못 되고 그냥 다른 사람 때문에 열 받는 사람이에요.”

동류마저 현실의 잔혹함에 대해 심오한 깨달음에 도달했군. 우리는 매일 밤 어떻게 이 기회를 이용해서 마 청장에게 잘 보일까를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들은 꿈도 못 꿀 그런 기회였던 것이다. 눈앞의 첫 번째 단계는 청장 사모님과의 관계를 잘 다져놓아야 한다는 것, 그게 급선무였다. 낮에는 병문안 오는 사람이 끊이질 않아서 저녁마다 수십 개씩 치우는 데도 넘치는 꽃바구니를 이젠 심지어 우리 방에도 더 이상 놓을 데가 없었다. 나와 동류는 옆에서 세태의 염량(炎凉)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같은 사람이라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그 다르다는 것도 사실 별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위치에 앉아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상대적으로 독립된 많은 생활의 영역들. 개인이 그 영역 안에서 어떤 위치에 처하느냐,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는 그와 핵심인물 사이의 관계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그 핵심 인물이 손에 쥐고 있는 몇 개의 모자, 그 모자 아래에 모든 것이 있다. 그가 바로 자원의 원천이며, 그는 제법 자유롭게 또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그 자원을 자기가 인정하는 곳으로 분배할 수 있다. 권력이 전부이다. 권력은 매우 넓고 강하게 뻗쳐나가는 전부의 전부이고, 인생의 대(大) 근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條條大道通羅馬)고 하는데, 로마가 모든 길로 통하는 줄(羅馬通往條條大道)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돈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어도 권력으로는 못할 일이 없다. 심지어 동류까지 그 덕을 입었다. 제 5병원의 사(史) 원장이 문병을 왔을 때 동류를 대하는 태도가 깍듯하기 그지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왜 사람들이 모든 것을 바쳐서, 심지어 생명까지 걸고서, 승부를 내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동류가 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병을 오지만 이 중에 정말 묘묘가 걱정되어서 온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만약 조국의 다음 세대에 관심을 갖는 거라면 어째서 우리 일파한테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죠? 조국을 살린다느니 어쩌고저쩌고 갖다대지만 결국은 다 자기 자신을 살리기 위한 거예요. 요즘 사람들은 인간관계 챙기는 걸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는다니까요. 어차피 그 뒤의 타산적(打算的) 동기야 뻔한 것 아닌가요?”

“당신 하루 종일 여기 앉아서 사람들 연기하는 거 관찰하는구나.”

청장 사모님은 할 일이 없으면 우리 방으로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선물을 한보따리 들고 와서 말했다.

“가져가서 아들 주세요. 이렇게 많은 과일 다 못 먹으면 아깝게 버려야 하잖아요.”

동류가 사양이라도 할라치면 그녀가 말했다.

“도와주는 셈 치고 받아줘요. 이거 다 좋은 물건들이에요.”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사모님도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동류가 말했다.

“사모님, 전 사모님이 정말 이렇게 편하신 분인 줄 몰랐어요. 어쩜 그리 격의 없이 대해 주시는지 저는 감동했다니까요. 정말로 사람을 편하게 해주세요. 마음속에 막혀 있던 것까지 다 뚫리는 것 같아요.”

나는 옆에서 들으면서 동류가 벌써 상류층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의 정수를 파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절대 없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없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상대도 어색해 한다. 그러나 있는 사실은 아무리 과장해서 말해도 괜찮다. 칭찬에 약하다는 인성의 약점은 상대로 하여금 기꺼이 그러한 과장을 받아들이도록 해줄 것이다. 사모님 역시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그럼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면 정말로 상대하기 싫은 사람들이 있어요. 마음에도 없으면서 그저 우리 바깥양반 때문에 오는 사람들, 물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계속 얼굴 찌푸리고 있을 순 없잖아요?”

“그러게요. 그런 건 재미없죠. 마음에도 없으면서 완전히 무슨 사모님 앞에서 연기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상대방이 연기하고 있는 배우 같다고 느껴지면 정말 기분 그렇지요. 그래도 사모님은 사람을 많이 보셔서 진짜인지 아닌지 척 보면 아시겠어요. 두 번 볼 필요도 없죠?"

내가 말했다.

“사모님께서 마 청장님과 함께 지난 몇 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봐오셨을 텐데. 이젠 아마 손오공과 같은 금 눈동자, 불의 눈을 연마하셔서 한 번 보면 그 사람의 폐부까지 뚫어보실 걸?”

사모님이 말했다.

“무슨 불의 눈, 금 눈동자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그래도 사람은 좀 보죠. 요 며칠 우리 손녀 문병 왔던 손님들 중에 몇 명은 사실 우리 바깥양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나는 그녀에게 그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 물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내가 나중에 공격을 감행할 때 정확한 공격점을 가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만 공연히 물었다가 그녀의 반감을 살지도 모르기 때문에 꾹 참았다.

내가 말했다.

“마 청장님이야 워낙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불만 갖는 사람들도 있겠죠.”

사모님이 말했다.

“불만이 얼마나 많은지 아주 두 눈에서 불길이 다 솟더라고요. 사실 그 자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매일 다른 사람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거지.”

동류가 말했다.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그게 어디 보통 무거운 짐입니까."

동류는 두 팔을 크게 벌려 보이면서 말했다.

“귀찮은 일은 또 얼마나 많고, 또 투덜거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겠어요. 전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아무리 희생해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어디 주말에도 온전히 쉬실 수나 있겠어요?”

사모님이 말했다.

“자기 손해 보는 거 나밖에 몰라요. 이때까지 시간 맞춰 퇴근을 한 날이 있기나 하나. 내 진작부터 그만두라고 했는데, 성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바깥양반이 그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하니…. 이 사람을 대신할 사람이 없답니다. 이젠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죠.”

“전 성(省)의 수천만 인민의 건강에 관련된 일이니, 정말 엄청난 책임이죠. 사실 세상에 인구 몇 천만 되는 나라도 얼마 안 되지 않습니까?”

동류가 말했다.

“마 청장님은 그러면 웬만한 나라의 위생부 장관하고 같겠네요.”

나는 동류가 좀 오버를 한다 싶어서 발로 그녀의 발을 툭 쳤다. 그런데 웬 걸, 사모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아이구, 다른 나라의 위생부 장관들도 이렇게 이것저것 다 신경 쓰고 관여하진 않을 거예요.”

그녀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데야 뭐, 나도 마음을 놓았다.

사모님이 나가자 동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물었다.

“효과가 괜찮지?”

“사모님이야 뭐…. 마 청장님 있는 데에선 그렇게까지 하지 마. 마 청장님이야 듣기 좋은 소리 어디 한두 번 들었겠어? 다음에 혹시 마 청장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소박하게 말해. 괜히 쓸데없는 수작부리지 말고 적당히 하라고. 다 알아들을 테니까.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대한 감각이 워낙 발달해 있기 때문에 너무 오버해서 얘기하는 건 아무 얘기 안 하는 것만도 못하다고.”

“당신만 제일 똑똑한 줄 착각하지 말아요. 방금 나를 발로 찬 것도 예리한 사람 같았으면 단박에 당신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럼 우리끼리 암호를 정하자. 상대방한테 주의를 줄 때는 입술에 침을 바르는 거야.”

말을 하면서 입술에 침을 발라 보였다.

“이렇게.”

그녀는 내 혀를 바라보더니 역시 입술에 침을 바르면서 말했다.

“그 대단한 마 청장님께서는 어쩜 매일같이 병원에 오시면서 나는 한 번도 보러 안 오시지?”

“사람이 그런 위치에 오르면 동작 하나하나에 다 의미가 담겨 있는 거야. 우선은 당신이 특별히 찾아와 볼만한 사람인지, 그리고 찾아왔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다 생각하는 거지. 몸소 당신을 찾아오면 경 원장 체면이 뭐가 되겠어? 성(省) 인민병원에 주사 제대로 놓는 사람 하나 없어서 다른 병원에서 사람을 불러와 놓게 하다니! 다시 말해서, 주사야 그냥 주사이지, 수술하는 것과는 또 수준이 다르잖아.”

나흘째 되는 날 동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모님이 말했다.

“류(柳)는 집에 돌아가서 며칠 푹 쉬다가 출근해. 내가 이미 그 쪽 사 원장한테 전화해 놓았으니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사모님이 동류를‘류’라고 부름으로써 순식간에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나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동류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사모님, 저한테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다니. 며칠 더 쉬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그리고 저를‘류’라고 불러주시니 제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지는지 몰라요.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가 저를 그렇게 부르셨거든요. 사람들이 그렇게 안 부른 지도 오래 되었어요. 저희 엄마도 이제는 그렇게 안 부르세요. 아직도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니 가슴이 막 따뜻해져요.”

사모님이 말했다.

“나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불러지더라고.”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또 무슨 일이 있으시면 동류를 부르세요. 아마 만사 제쳐놓고 달려갈 겁니다. 사모님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고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아주 좋아서 뛰어갈 겁니다.”

그녀가 대뜸 동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이쪽으로 아예 전근 오는 것은 어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

그녀가 자기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우리 생각대로라면, 이런 문제를 꺼내려면 얼마나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이런 연막 저런 연막 다 처가면서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동류가 심 사모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벌써 몇 년 동안 바라고 바라던 일인지 몰라요. 정말이지 매일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왔다 갔다 하느라 해 뜨기 전에 나갔다가 해 저문 후에나 돌아온답니다. 그저 이곳으로 옮겨오는 일이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라서 저는 사모님한테 말씀드리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감히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사모님께서 저 자신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일까지 생각해주시니 가슴이 정말로 찡해집니다. 이쪽이 조건들이 다 좋아서 보통 사람들은 여기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도 없답니다. 그저 사모님이 난처해지실까봐 그게 걱정이지요.”
내가 말했다.

“당연히 난처한 일이지. 그렇지만 난처해도 일을 성사시키는 사람이 있고, 난처하기만 하고 일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다 사람 따라 다른 거지.”

사모님은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그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너무 엉뚱한 말을 했던 것 같아 후회되었다. 너무 지나쳤다. 그쪽에서야 뭐 우리한테 빚진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주사 몇 대 놓아준 것쯤이야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치워도 그만 아닌가! 게다가 대신 휴가까지 내주었는데. 모든 일은 그저 느긋하게 기다려야지 결코 조급하게 굴어서는 안 되는데.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모님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요, 그럼 난 가 볼게요.”

동류의 손을 토닥거리고 자리를 떴다.

나와 동류는 그녀를 문 밖까지 배웅했다. 몸을 돌리자 우리 두 사람 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동류가 말했다.

“막 희망이 보이는가 했더니 다 꽝이네! 이렇게 끝날 것 같았으면 차라리 좋아하지나 말 걸. 나보고 이렇게 말해라 저렇게 말해라 가르칠 땐 언제고 자기는 왜 그런 말을 한데? 내가 입술에 침 바르려고 보니까 벌써 늦었더군.”

“나도 오늘 처음으로 내가 그렇게 비굴하게 웃을 수 있다는 걸 알았어. 그게 어디 사람 웃음이냐? 개나 그렇게 하지. 당신 개 웃는 것 본 적 있어?”

나도 사실 정말 슬펐다. 보아하니 영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이래서야 어떻게 그 역할에 몰입을 하겠어? 이렇게 생각하자 리더십 역시 일종의 예술,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심오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지도자의 예술’이라느니 그런 소리 들을 때마다 비웃었는데…. 직접 강을 건너보지 않고서는 그 물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법이다(不曾涉河, 不知水之深淺).

집에 돌아와서도 나와 동류는 함께 사모님의 표정을 거듭 분석해 보았지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화가 나신 걸까? 그럴 것까지야 어디 있어? 그런데 화가 난 것이 아니라면 왜 또 그렇게 갑작스럽게 자리를 떴을까? 「표정학(表情學)」이라는 책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것도 ‘지도자의 예술’의 하나인데 말이다. 만일 언젠가 내가 그 정도 높은 자리에 오른다면, 나는 희로애락을 느낄 때 철저히 표정관리를 해서 주위 사람들이 내 마음을 쉽게 읽지 못하게 해야지. 이런저런 분석을 하다가 나는 짜증이 났다.

“나 지대위, 이때까지 남의 말이나 안색 살핀 적 없었고, 남의 표정 안 살피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내 표정도 관리한 적 없었잖아! 이게 뭐야. 남의 눈치나 살피고 표정이나 관리하려 하고. 이런 것 좀 안 하면 어때서.”

동류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또 시작이야. 그래서 어쩌자고?”

그녀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서 우리가 사는 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사람이 잘 나가도 한평생, 무너져도 한평생이에요. 사람은 한 번 사는 인생이라고요!”
나는 뱃속 가득했던 울분이 사라졌다. 그녀의 말 한 마디에 김이 빠져버렸다. “인간의 이 한평생”, 이렇게 간단하고 명료하고, 또 조악하며 천박한 진실이 너무나 크고 너무나 깊은 모든 담론(談論)들의 의미를 애매하게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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