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나는 완전히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었다. 어정쩡하게 절반만 꿇어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무것도 안 되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꼭 누구한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좀 놓였다. “한 번 뿐인 인생”이란 말도 동류의 입에서 나오자 유난히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말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석되어 아주 여러 가지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군자의 경우에는, 비굴하게 굽실거려 많은 재물을 얻었다 한들 그것을 무덤까지 갖고 갈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냥 평범한 사람의 경우에는, 나 죽은 다음에 누구 하나 내가 쌓은 덕행을 알아주기나 할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及時行樂)”의 결론이 나올 수도 있고, “극기복례(克己服禮)”의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세상일이란 이렇게 이름 갖다 붙이고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그날 퇴근 후에 나는 안 선생님과 도서실에서 장기를 두었다. 첫 판을 지고 나서 내가 말했다.
“오늘은 장기 둘 마음이 별로 없네요.”
“그럼 얘기나 좀 할까?”
“막상 그 역할에 몰입해서 행동에 착수하려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던데요?”
나는 지난 며칠 동안의 일을 이야기했다.
“나도 그 시궁창 물에서 같이 물장구를 치겠다고 일단 각오한 후 보니까, 그 시궁창조차도 이미 사람들로 꽉 들어차서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네. 결정을 내리고 자기를 버리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닌가.”
“결정이라면 저는 이미 환골탈태할 결심이 섰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일이 닥치니, 여든 먹은 할망구를 안으려니, 어디 손이 나가야 말이지요.”
나는 두 손을 펼치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힘들든가? 자네가 힘든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 아닌가? 그냥 그게 다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걸세. 결국은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지. 자기를 너무 사랑하는 건 도리어 자기를 망치는 길이지. 그 바닥 일은 다 그렇다네. 그 바닥에 들어가고 싶다면서 좋고 싫은 것 얼굴에 다 드러내면 어떻게 하나? 그 바닥에서의 인간관계는 철저히 다 이해관계야. 사랑도, 미움도, 오른쪽도, 왼쪽도 다들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거야. 누가 상대방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신경 쓰겠어?”
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를 비틀고 비틀어서 꽈배기 정도로 만들어야겠네요.”
“그렇다면 자네 도연명(陶淵明)이나 따라 배우게. 쌀 다섯 말에 허리를 굽혀? 그는 굶으면서도 여덟 말에도 안 굽혔어!”
“제가 어찌 감히 따라 배우겠어요?”
안 선생님이 아무렇게나 찻잔을 만지셨다. 나는 바로 보온병을 들어 뜨거운 물을 따라 드렸다. 그가 말했다.
“지 형도 눈치는 빨라. 다른 사람한테 빠지지 않겠어.”
“보면 알기는 하겠는데 행동이 안 따라줘요. 특히 앞에 앉아 있는 게 정소괴면 그냥 모르는 척하게 돼요.”
“어쨌든 자네는 아직 자네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해. 행동이 안 따라주면 눈치 빠른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눈치 없는 게 차라리 낫지. 그렇게 계속 자신이 뭐라도 되는 양 생각하려면 위로 올라갈 생각일랑 아예 하지도 말게.”
나는 급히 말했다.
“저는 이미 결심을 했습니다. 저 자신을 구더기, 음…, 한 마리 벌레라고 생각하기로요. 그런데 막상 일이 닥치면 뭔가에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는 장기판을 펴면서 말했다.
“한 판 더 둘까?”
“그냥 이야기나 해요.”
“그냥 장기나 두자, 장기.”
“그냥 이야기나 해요. 앞으로 고치겠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래, 그럼 얘기하지. 자네 나이 정도 되면 고치기 쉽지 않아. 나도 일찌감치 고쳤으면 이 모양 이 꼴까지 되진 않았겠지. 본성(本性)은 고치기 힘들어.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고쳐야 돼. 자신을 반혁명분자라고 생각하고 진압하게. 절대 미련두지 말고.”
그는 주먹 쥔 오른손을 높이 들어 힘껏 짓누르는 동작을 하면서 말했다.
“일단 첫 발자국만 내딛으면 그 다음부터는 힘들이지 않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된다네.”
나도 오른손을 들고 안 선생을 따라 하면서 말했다.
“진압, 진압, 제가 뭔데, 한낱 구더기에 지나지 않으면서 반항하긴!”
그는 담배를 한 입 빨아서 고개를 들고는 동그란 도넛 모양의 연기를 내뿜었다. 동그란 연기가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크고 희미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동그란 모양 그대로였다. 나도 담배에 불을 붙이고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동그란 모양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가 말했다.
“이까짓 연기 도넛 하나 만드는 것도 다 기술이 필요한데 사람노릇 하는 건 어떻겠나?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온 줄 아나? 다른 사람들 다 잘나가는 데 나는 더 이상 길이 없어진 거야. 한 번 침대에 누웠다 하면 몇 시간씩 이렇게 도넛만 토해댔어. 나름대로 나한테 할 일을 주는 거지. 그렇게 꼿꼿하게 버텨왔네. 내가 자네한테 말했던, 그 부서져 땅에 떨어진 흙이 된 것 같은 기분, 어땠겠나? 내 인생을 포기해 치우자고 결심할 때의 그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라고. 이 도넛 만드는 것도 그 몇 년에 걸친 연습 끝에 얻은 거라네.”
그 시절, 아버지께서 돌조각 같이 침묵하고 계시던 그때의 밤들, 아버님도 분명히 그런 심정이셨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을 포기하기로 결심하는 그 무거운 마음. 이제 내 차례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나는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았다.
“저는 발악이라도 해보겠습니다. 안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선생님 같이 될 용기는 없어요. 저는 발악이라도 해보겠습니다.”
“요즘이 어떤 시댄가? 결과만 묻고 과정은 묻지 않네. 지조를 지켜? 흥!”
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시대가 변했지요.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조작에 능한 자들이 과정은 제켜두고 결과만 중시하게 조작하는 겁니다. 이상주의는 죽고 조작주의는 팽배하고. 세기 말 현상을 방불케 해요.”
그가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는 어떻게 말은 그렇게 잘 하면서 행동으로는 못 옮기나?”
“할 겁니다!”
안 선생님은 빨간 색 장기 알로 사람 인(人)자를 만들더니, 그 위에 또 초록색 장기 알을 쌓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고는 말했다.
“사람이란 말일세, 과정만이 진실이고 결과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군들 눈앞의 몇 십 년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겠나? 자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지.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는 더 중요하고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지. 한 사람이 직위를 몇 개씩 가지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위풍이 얼마나 대단하겠나. 그런 사람이 누가 자기를 건드리는 걸 용서할 수 있겠어? 손가락 하나 건드리는 것도 용서가 안 되는 거야. 아랫사람들에게 그는 영원히 옳고 영원히 완전무결하지. 주위 사람들이야 그 사람 직위를 볼 텐데, 그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겠나? 세상엔 의존뿐이고, 독립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면 모를까…. 사욕(私慾)이 없으면 의연해질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바라는 것이 없는 것도 용납이 안 되네. 기껏해야 침묵하는 아웃사이더가 되는 수밖에. 어떤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오래 앉아 있어서 아래엔 다 자기가 키운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지. 자기 생각이 아랫사람들한테는 신의 분부와 같이 받아들여지고, 그러다 보면 자기가 신이라도 된 듯한 착각을 하게 되는 거야. 그 환상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에는 깨지지 않아. 그 자리라는 게, 그 위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정말 무서운 사람이 되는 거야. 사람이라는 게 말이야.”
안 선생님은 장기알로 만든 글자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자기는 공정한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공정한 입장이라는 것도 사실은 다 백 퍼센트 자기의 이익과 맞아떨어지는 거지. 그런 상황에서는 사람의 약점이 확대되어 극도로 커지게 마련이고. 그건 거의 정해진 코스라서 일단 그 상황에 놓이면 예외가 거의 없어. 성인이란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해. 그게 정해진 코스이기 때문에 저항해 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어떤 특정한 개인을 대하는 것이 아니거든. 마찬가지로 그게 정해진 코스이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는 거지. 입바른 소리 하는 사람들도 그 자리에 올라가면 다를 게 없네. 입바른 소리 많이 한다는 것은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거든. 그런 사람이 위에 올라가면 어떻겠어? 생각해 보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안 선생님께선 오랜 세월 동안 관찰하시면서 모든 것을 다 간파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용케도 마음의 평정을 찾으셨네요. 저도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그렇게 될 수 있겠지요?”
“높은 자리에 있는 인간들은 지위, 좋은 집, 존엄, 돈, 생존에 관계된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지. 사실 멀리 보면 그것들도 다 한 움큼의 건초(乾草)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야. 자네가 소이고 자네 눈앞에 놓인 게 그 한 움큼의 마른 풀밖에 없는데, 자네 같으면 안 먹겠어? 먹으려면 머리를 숙여라, 이거야 (吃就把頭底下來).”
“그저, 그렇게 머리를 숙이면 사람이 뭐가 됩니까?”
안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마(馬) 청장 위풍당당한 것 봤지? 그 사람이 우(牛) 성장 앞에 서면 어떻게 변하는지 아나? 우 성장이 제일 폼 날 것 같지? 그런데 재작년에 홍수 났을 때, 부총리가 시찰을 나왔었지. 그때 그 우 성장이 부총리를 모시고 같이 농가 방문을 갔는데, 내내 초등학생마냥 그렇게 얌전히 서 있더군. 텔레비전에 다 나왔다니까. 우 성장도 참아내는데 자네는 못 참아내겠다는 거야?”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제가 뭐라고….”
“생각해 보게. 팽덕회(彭德懷)는 어떻게 물러났고, 임표(林彪)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설마 자네 보스가 그 위인들보다 더 위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세상에 대해 아주 절망적으로 느껴집니다.”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감만 잡히면 다 방법이 있는 거야. 죽을 고비에 이르렀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하지 않나.”
하늘이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이미 상대방의 얼굴도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불 좀 키겠습니다.”
“우리 뭐 좀 먹으러 가자.”
그는 나보고 먼저 떠나라고, 식부(食府) 국수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같이 가시죠”
“먼저 가라면 먼저 가게.”
밖으로 나와 국수집에 도착했다. 막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들어왔다. 내가 말했다.
“저는 또 사모님께 말씀드리러 집에 다녀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며칠 전 같으면 그냥 자네랑 같이 왔겠지만, 지금은 자네도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지 않나? 생각하는 바가 있는 사람은 조심해야 할 게 많다네. 내가 위생청에 있는 동안 말을 워낙 거침없이 해댔지 않나.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또 나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런 거지. 그런 사람들이 보기라도 하면…. 굳이 자네한테까지 영향을 줄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 영향은 평소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드러나게 마련이지.”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써주시다니….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요 뭐. 생각하다 신경줄이 끊어지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지 군, 앞으로 나가려면 말일세, 절대로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식의 그런 기분파처럼 굴어서는 안 되네.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한 것들이 다 쌓이게 마련이야.”
“제가 매일같이 선생님 댁에 바둑을 두러 가면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요.”
“앞으로는 조심해야 하네. 우리 집에 올 때는 문 앞에서 이름 부르지 말고 그냥 문만 똑똑, 똑똑 두 번씩 두 번 두드리게. 그럼 자네인 줄 알 테니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지킬 게 많아서야…. 자신을 그렇게까지 얽어매면서 사는 게 어디 사는 맛이겠습니까?”
그가 바로 대답했다.
“나처럼 사는 건 무슨 사는 맛이 있는 줄 아나? 얻기만 하고 대가는 치르기 싫다는 거야?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나? 위로 올라갈 생각이 없다면 모를까, 기왕 그럴 생각이 있다면 골치 아픈 일 투성이지.”
“정소괴가 선생님 댁 위층에 살아서 제가 선생님 댁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 사람은 자네를 경쟁 대상으로 보지 않으니까 그 사람은 상관없어. 하지만 앞으로는 모르는 일이지. 시 청장과는 가능하면 아무 말도 하지 말게. 그 사람은 마 청장의 경계 대상이니까.”
“예전에 보니까 저쪽에 서성거리면서 이야기 같이 할 사람을 찾다가 못 찾더라고요. 참 불쌍하던데요.”
“그 사람이 불쌍해? 왕년에 시 청장 잘 나가던 시절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 권력이 손에서 떠나면 하늘도 무너지는 거야. 당사자가 누구보다도 괴롭겠지만 그게 다 이전에 진 빚이라네. 세상에는 모든 게 다 완벽한 그런 좋은 일은 없어(世界上 沒有兩全其美的好事吧).”
종업원이 냄비국수 두 그릇을 가지고 왔다.
먹으면서 안 선생님이 말했다.
“사람의 한평생은 발 한 번 내딛는 걸로 모든 게임 다 이기거나, 아니면 다 지거나 하는 것이라네. 그 이기고 지는 것의 차이를 돈으로 측정할 수는 없어. 사람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온갖 잇속들이 저절로 따라붙게 되어 있어서 그건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지. 그 경지에 이르면 자넨 그저 머리속으로 떠올리기만 해도 나머지 모든 일들은 신의 도움으로, 그 모든 것들이 다 자동으로 눈앞에 대령할 걸세. 부귀영화는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고. 그런 게 아니라면 그 자리가 그런 무궁한 매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뭐겠나?
발을 제대로 내딛는다는 게 뭐냐고? 그건 바로 중요한 어르신을 잘 쫓아다니란 이야기지. 별 것 아닌 것 같은 과장이며 처장 같은 자리들, 그런 자리에 대해선 성 단위 조직부에서 웬만해선 간여하는 일이 없어. 그러니까 결제 도장을 쥐고 있는 사람 마음대로지. 그 사람 생각 하나에 자네는 천국과 지옥이 엇갈리는 거니까, 이제 그 어르신이 얼마나 중요한 분인지 알겠지?”
“청장은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나요?”
“뭣 하러 그런 생각을 하나? 다른 사람이 와도 상황은 마찬가지야. 자리에 있을 때 자기 몫 챙기는 것,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이상할 것 하나도 없는 일이야. 심지어 불변의 진리라고까지 할 수 있지. 그것만큼 인간의 본성에 잘 맞는 것도 없지. 만일 자네라면 어떨 것 같나? 아래 사람들도 딱히 불평하지 않을 거야. 다 입 다물고 따르게 되어 있어. 능력이 되니까 거기까지 올라가는 것이고, 능력 없으면 그냥 인정하고 따라야지. 따르는 수밖에.”
나는 속으로 좀 당혹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겁니다.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꼭 있을 겁니다.”
“꼭 그렇지 않다고? 두고 보게나. 내가 몇 십 년을 봐 왔는데 아직도 모를까? 사람은 사람이야.”
나는 고개를 들고 탄식했다.
“사람은 정말 자유롭지 못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시각도 가질 수 없고 남의 생각을 자기의 생각으로 받아들여야 하니 말입니다. 모든 일을 도장 쥔 사람의 생각만 살펴야 하고. 차라리 인격을 바닥에 내던져버려 굴리다가 공삼아 차면서 놀고 말지. 보니까 나 혼자만 공을 차는 게 아닌 것 같은데….”
그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 공짜 점심(免費午餐) 같은 것은 영원히 없는 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소괴는 제가 옆에서 보아 왔습니다. 집을 분배받더니 부인까지 불러오고, 남동생은 수위 시키고, 여동생은 식당에서 식권을 팔고. 그러니까 겨우 부 처장이면서 저 산골짜기에 살던 집안 식구들 다 끌어올려 팔자 고치도록 한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저도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집 사람이며 아들 볼 면목이 없어요. 원칙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인데 제가 누구에게 원칙을 따지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네가 방금 한 말 듣기 싫어해.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그 이야기의 진실성을 가장 절실하게 공감하는 사람들이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매일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반대로 자기네들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들, 예를 들어 ‘업무가 우선한다’거나, ‘능력 보고 사람 쓴다’, ‘사사로운 이익을 따지지 말자’, 아니면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말하도록 한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는다.’ 등등이지. 사람은 많이 겪어봐야 남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
종업원이 와서 상을 닦기 시작했다. 그 거칠고 큰 동작은 우리더러 그만 나가라는 뜻이었다. 내가 물었다.
“여기 주방장은 한 달에 얼마씩 받습니까? 정말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맛없는 국수를 만들 수 있는지 존경스럽습니다.”
그녀는 못 들은 척했다. 나는 상을 손가락으로 찍어대면서 말했다.
“두 그릇 더 주세요.”
그녀가 바로 행주를 거뒀다. 안 선생님이 말했다.
“천 마디 만 마디 한들 무슨 소용인가. 우선 도장을 쥐고 있는 인간부터 확실하게 파악해야 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제대로 이해해야 해.”
“그 사람의 무의식까지 파고들라는 거군요. 사실 육칠 년 전에는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 새삼 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려니 쉽지가 않습니다. 가는 길마다 누군가가 이미 군사를 배치시켜서 겹겹이 봉쇄해 놓아서 좀처럼 뚫고 들어갈 기회를 안 줍니다. 큰 인물들도 사실 다 속고 있는 거죠. 그 사람들이 누가 자기를 분석하려고, 심지어 자기의 무의식까지 뜯어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아직 이야기한 적 없는 것으로, 뭐 그 사람 마음에 딱 가서 꽂힐 것 같은 아이디어 없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정말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네요. 단 한 번에 끝내줄 만한 그런 아이디어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말해버린 것 같고 말이에요.”
“자네 요 며칠 다른 청사들을 돌아다니면서 그쪽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구호를 내걸고 있는지 좀 보고 오게.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이 바닥으로 가지고 와서 팔면 되지. 다른 사람들의 지혜를 빌리라고. 그이가 올해 쉰 넷이지? 나이 쉰 넷에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성장쯤 되면 할 말이 많을 텐데….”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성장이라면 거꾸로 마 청장이 자네를 관찰하고 분석하려고 안달하겠지. 자네가 무슨 말할 필요 있겠나!”
나는 확실히 곰곰이 관찰하고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뭔가 힘이 있는 말을 몇 마디 찾아내야 한다. 인생은 과정만 볼 뿐 결과는 보지 않는다. 누구든 결국에는 동일한 결과로, '영원한 사망'으로 귀착되기 마련이며, 그 뒤에서는 모든 것이 무(無)가 된다. 나는 반드시 이 과정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일단 이 조작적 현실에 참여한 이상 사람들은 결과만 보고 과정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부끄러워 할 이유가 어디 있어? 나는 용기가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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