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환골탈태(換骨奪胎)**
나는 새롭게 태어나기로 맹세했다. 이전의 나는 죽여 버렸다. 그러나 결심은 굳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자니 쉽지 않았다.
목표는 정해졌다.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청사 안에서 자리 하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 넓디넓은 세상의 무한한 가능성이 내겐 아주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면, 눈앞에 놓인 것이 시궁창이라 해도 그 속에 뛰어들어 발버둥이라도 쳐야 한다. 예전에는 마치 내가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저 아래 속된 명예와 이익을 위해 구더기처럼 버둥대는 불쌍하고 비참하고 우스운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양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 틈에 끼어들기로 결심한 지금, 저렇게 버둥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동류에게 말했다.
“그 네슬레 분유, 우리가 먹어?”
“정 처장네에 갖다 주기로 결정했어요.”
나는 그녀가 다니는 병원의 처장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가,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고서야 그것이 정소괴를 말하는 것임을 알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나도 그냥 눈 딱 감고 찾아가서 인사할 수 있었지만, 정소괴 그 새끼한테 인사 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내가 말했다.
“그럼, 있다가 저녁에 송나한테 갖다 주면서 정소괴한테 그때 전화해 준 것 고맙다고 인사해.”
동류가 비웃듯이 말했다.
“또 나더러 제일선에 나서라는 건가요?”
만약 내가 말 못할 생각을 품고 있지만 않았다면, 그게 정소괴건 누구건 간에 당연히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겠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내 속마음까지 다 들킬 것 같아 겁이 났다. 그렇지만 곧 내가 한 맹세를 생각해냈다.
“가자, 같이 가. 결단코, 무슨 일이 있어도.”
남들은 없는 구실도 만들어서 어떻게 엮어보려고 난리인데, 나는 그럴듯한 이유를 갖고서도 찾아갈 용기가 없어서 못 간대서야…. 그렇지만 대답을 하고 나자 밥이 제대로 넘어가질 않았다. 속에 뭐가 얹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직도 네가 뭐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거야? 자기를 낮춰, 낮추라고! 그저 똥통 속의 구더기라고 생각해. 구더기 주제에 무슨 자존심을 내세워?”
너무 구역질나고, 또 너무 잔인한 상상이었지만, 그래도 내 자신을 다잡아야 하겠기에 억지로 반복해서 그 모습을 상상했다. 그 꿈틀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더 이상 도망갈 여지를 남겨두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하자 입안에 있던 밥까지 다 토할 것 같았다. 그래도 꾹 참고 삼켰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해도 마음에 얹힌 무언가는 없어지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동류는 설거지를 하고 나는 방안을 빙빙 돌았다. 머리 속에서 갑자기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너를 죽여야겠어!”
금세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나는 우뚝 멈춰 섰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속에 투명한 구멍이 하나 뚫린 것 같았다. 나는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엄지와 검지로 가상의 총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왼손을 가져와 총에 총알을 넣고 검지를 구부려 방아쇠를 당기는 느낌을 상상했다. 그 총을 관자놀이에 갖다 대고 속으로 외쳤다.
“내 아들의 이름으로 너를 죽이겠다! 넌 아직 덜 죽었어!”
질식할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마치 진짜 총이 나를 겨누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효과에 만족감을 느끼고 손을 내려놓았다.
집을 나서기 전에 동류는 꿀을 꺼내려고 했다. 내가 말했다.
“그래, 그것도 가져가자. 정소괴 어머님 연세가 꽤 되시지 아마?”
일파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내가 말했다.
“제기랄, 사람 사는 게 원래 다 이런 거야. 미국 대통령 경선 때도 보니까 다들 우리는 좋은 사람, 저쪽은 나쁜 사람,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 그치들은 텔레비전으로 전 국민한테 그런 말도 하던데, 텔레비전에다 대고. 나는 낯가죽이 이렇게 얇아서 어디에 쓰지?”
나는 가는 길에 안 선생님과 마주치지 않기만 바랬다. 안 선생님께는 한 번도 뭘 갖다 드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걸음을 재촉했다. 오층에 도착해서 왼손으로 얼굴을 쓱 문질렀다. 내 얼굴에 가면이라도 씌운다고 생각했다. 오른손으로는 총을 만들어 관자놀이에 갖다 댔다. 동류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뭐 하는 거예요? 정신병자 같이.”
“뭐 하냐고? 그냥 해본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온 거다. 설마 그 인간이 내 속마음까지 파헤쳐 보기야 하겠어?”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한 손에는 선물을, 다른 한 손은 여전히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고 있다고 생각했다.
송나가 문을 열더니 안쪽에다 대고 소리쳤다.
“동류가 왔어요. 그리고 지, 지… 도 같이 왔어요.”
그녀의 말에 좀 당황했지만 그녀 탓을 할 수는 없었다. 내 이름 뒤에 붙일 만한 마땅한 호칭이 없어서 부르기 불편했을 것이다. 정소괴는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귀한 손님이 다 오셨네.”
그리고 두 손을 벌려 보이면서 말했다.
“밖에서는 다른 사람을 부리는 입장이지만, 집에 들어오면 이 사람한테 부림을 당하고 살지.”
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동류는 가져온 봉지를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송나가 말했다.
“그냥 오지, 이런 건 뭣 하러 갖고 와?”
동류는 일파를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정 처장님 감사합니다’고 해야지.”
그리고는 목소리를 높여 부엌에 대고 외쳤다.
“저번에 정 처장님 전화 아니었으면 우리 일파가 이렇게 빨리 낫지 못했을 거예요.”
강강이 일파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놀려고 하자, 동류가 말했다.
“일파야, 동생이랑 싸우면 안 돼!”
송나는 아들을 불러 세우고 말했다.
“강강, 아줌마한테 너 잘하는 거 하나 보여드려봐.”
강강이 말했다.
“어떤 거?”
“작은 오리.”
강강은 바로 공연을 시작했다.
“강아지는 멍멍멍, 고양이는 야옹야옹, 개구리는 개굴개굴, 오리는 꽥꽥꽥.”
일파도 같이 하려고 발버둥치자 동류가 두 다리 사이에 일파를 끼우고 꽉 죄었다. 강강이 염소 부분에 가서 동
작을 잊어버리고 송나만 쳐다보았다. 일파가 둘째손가락을 세워 머리에 붙이고는 노래했다.
“염소는 음매음매.”
동류는 일파의 손을 내리면서 말했다.
“너는 관객이야!”
일파가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이상하고, 억울했나 보다. 그때 정소괴가 부엌에서 나오고 애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동류가 “정 처장님”하고 부르면서 일어섰다. 나도 따라 일어서긴 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질 않았다.
정소괴는 우리한테 앉으라고 권하면서 말했다.
“송나가 의학을 배운 나보다 위생을 더 따지지 뭐예요. 설거지한 접시는 하나하나 물기를 닦아서 살균통에다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니까.”
나는 할 말을 찾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집이 좋네. 있을 거 다 갖추고 사네.”
송나가 얼른 끼어들었다.
“위생청이 주택사정이 제일 형편없어요. 옆에 화공청은 똑같은 처장급 간부라도 사는 집이 얼마나 좋은데요.”
동류가 말했다.
“나도 봤어요. 서른 평도 넘고 방 네 개에 거실 두 개, 구조가 정말 좋더라고.”
동류가 송나에게 그 집의 구조에 대해 한 차례 묘사를 하고는 덧붙였다.
“우리 위생청도 신경 좀 써야 해요. 언제 정 처장님 댁이 새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우리가 이 집으로 들어올 수 있을 텐데.”
동류의 말이 마치 내 따귀라도 때린 듯, 나는 얼굴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정소괴는 소파에 기대어 앉아서 다리를 꼬고는 심심하면 발끝을 까딱거렸다. 드디어 자기 지위에 걸맞은 행동이 나오는구나! 이런 바디 랭귀지(身體言語)로 저와 나 사이의 위계질서가 확실해지고 있었다. 마 청장 앞에서 그가 몸을 비낀 채 걷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놈이 나보다 한 살 어린 주제에, 지금 내 앞에서 주름잡고 있는 거야?”
그러나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말했다.
“지난번에 일파 화상 입었을 때 전화해 줘서 정말 고마웠네.”
말을 하면서 미소는 어색하고 얼굴 근육도 제대로 컨트롤되지 않는 것을 느꼈다. 컨트롤하려고 애쓸수록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바닥에 몸담은 이상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훈련을 해야지. 저런 바디 랭귀지, 표정 랭귀지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 그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소괴는 계속 발을 까딱거리면서 나를 쳐다보고 웃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사실 뻔한 일이었다. 제가 아무리 난다 긴다고 해도 정소괴인데, 내가 그 속을 모를까봐? 그러나 그래도 뭔가 조마조마했다. 사람의 정신적인 우세나 열세는 그 사람의 됨됨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쓰고 있는 감투로 결정되는 것이다. 감투를 사람 됨됨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한번 보여주마! 똑바로 보거라! 그런 감투가 주는 느낌은 중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위로 오르려는 동기를 부여한다. 동류가 말했다.
“정 처장님, 그날 일은 정말로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지…. 조금 있다 일파한테도 제대로 인사시킬게요.”
내가 맞장구 쳤다.
“그럼, 그래야지.”
동류가 말했다.
“우리 일파까지 정 처장님 덕을 입네요. 어딜 가든 정 처장님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안 되는 일이 없겠어요.”
나는 동류가 좀 오버하는 걸 보고 아무리 정소괴라도 낯이 간지러워서 몇 마디 겸손은 떨겠거니,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웬 걸, 정소괴가 말했다.
“제가 병원 쪽으로 많이 돌아다니고 감사 업무를 많이 맡다 보니 아랫사람들도 저를 많이 알죠. 제 자랑이 아니라 그 정도쯤은 그쪽도 제 체면을 세워줘야지요. 아니 이것보다 더한 경우에도 해줘야지요.”
나도 맞장구 쳤다.
“그럼, 그럼.”
그러면서 속으로는 생각했다. “인간성의 맹점이라는 게 저 정도로 눈을 멀게 할 수도 있구나. 앞으로 아무리 닭살 돋는(肉麻) 말이라도 그냥 하고 보자. 듣는 사람은 별로 닭살이라고 생각 않는 것 같으니 말이야.” 나는 정소괴란 인물을 가소롭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나는 반드시 참고 견뎌야 했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장시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면 알랑대는 말투며 굽실거리는 태도에 이미 익숙해져서 판단력을 상실하고,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 사람을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주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줍어하고 겸손한 얼굴들을 하고 있으므로, 기고만장한 모습을 그들은 평생 가야 한 번도 보기 힘들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허구의 진실, 허구의 진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동류가 말했다.
“정 처장님, 저희 병원에서도 정 처장님 성함을 많이들 알고 있더라고요.”
정소괴는 득의양양해서 어쩔 줄 모르고 물었다.
“정말요?”
동류는 입만 열면 정 처장님, 정 처장님 했는데, 또박 또박 부르는 말투가 영 듣기에 불편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그 호칭으로 그를 불러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소괴 저 녀석,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민감할 것이 분명했다. 기회를 찾아서 “정 처장”, 이 세 글자를 반드시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파 이야기를 마치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와 정소괴의 입장이 달랐기 때문에 위생청 이야기도 꺼낼 수 없었다. 괜히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저 인간이 그 말을 퍼뜨리기라도 한다면 나만 입장 곤란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 동류가 또 집 이야기를 꺼냈다.
송나가 말했다.
“화공청 사람들 사는 집은 보니까 집 안에 작은 별실이 달려 있는 식으로, 같은 식구 간에도 서로 간섭하지 못하게 되어 있더라고요. 그 정도는 돼야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위생청은 그 사람들이랑은 비교도 안 돼요. 똑 같은 사람인데.”
정소괴가 헛기침으로 송나의 말을 막았다.
그가 말했다.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래? 누가 뭐래도 마 청장님께서 멀리 내다보시고 결정하신 거지. 몇 개 대형 병원부터 확실하게 지어놓고, 병원들을 다 업그레이드 시킨 다음에 그땐 예산을 따내기가 훨씬 수월해지는 거라고.”
내가 말했다.
“그럼, 그럼.”
그리고 또 한참 앉아 있었다. 동류가 방에서 놀던 일파를 불러내어서 그만 물러나왔다. 문을 나서면서 나는 “정 처장”이란 세 글자를 끝내 써먹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저 인간이 무슨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오늘 안 오느니만 못했을지도….
내려오자 동류가 말했다.
“나 속이 갑갑해요.”
단지를 벗어나서 길가로 나오자 동류가 말했다.
“당신이 일파 안고 가요.”
“이제 다 컸는데 혼자 걸으라고 하지.”
“안고 가라면 안고 가요! 자기 아들인데. 그 정도로는 힘들어 죽지 않아요.”
이어서 말했다.
“나 지금 엄청 화가 나거든요. 좀 전에 방에 들어갔더니 강강이 일파의 등에 타고선 자기는 기사고 우리 일파는 말이라면서, 내려오라고 해도 안 내려오는 거예요. 어린 게 벌써부터 남 괴롭히는 것만 알아서…. 정말 생각 같아서는 따귀라도 한 대 때려주고 땅바닥에다 홱 내동댕이치고 싶었는데….”
“진짜야?”
나는 무의식중에 주먹을 꽉 쥐고 외쳤다.
“젠장!”
그렇지만 욕을 해봐도, 주먹을 휘둘러도, 욕하면서 주먹을 휘둘러도 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인간보다 높은 위치로 올라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파, 넌 왜 그렇게 못났니? 너보다 어린애도 너를 올라타는데, 너는 왜 못하고 가만 앉았어? 걔가 무서워?”
일파는 억울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말했다.
“일파는 아빠도 무서워하지 않는걸. 우리 일파가 아무도 겁내지 않게 되면, 아빠도 기쁠 거야.”
말을 하는데 코끝이 다 시큰해졌다.
동류가 말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지(有其父, 必有其子). 유전이란 게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우리 일파는 돌려놓을 수 있을까 몰라. 안 그러면 내 팔자는 정말 깜깜하다. 그러나 아빠가 가진 것 아들도 다 가지라는 법 없고, 아빠가 안 가진 것 아들도 갖지 말라는 법은 없지. 당신 아까 정소괴가 다리 떨면서 거들먹거리는 거 봤죠? 내가 입으로는 정 처장님, 정 처장님, 하면서도 속으로는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속으론 이 새끼, 저 새끼, 했다고요.”
화에 받쳐 그녀가 울분을 터뜨렸다.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살면서, 방 두 개에 거실 하나인 집에 사는 사람 집 걱정이나 해줘야 하고, 정말 속상해 못살겠어. 일파 너까지 엄마 속상하게 하고 말이야. 걔가 너 올라타는데 넌 왜 그 애를 끝까지 안 타겠다는 거야. 그리고 널 타겠다는 녀석 확 물어버리지 말이야. 네가 호랑이라는 걸 알려주라고. 제가 감히 호랑이를 타겠어?”
일파가 말했다.
“다른 사람 물면 선생님이 혼낸단 말이야!”
나는 일파를 내려놓고 손을 잡았다. 그리고 동류에게 말했다.
“어린애한테 그런 생각을 심어주면 안 되지.”
동류가 말했다.
“물지 않으면 네가 물리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그리고 당신, 일단 들어갔으면 얼굴도 펴고 말도 좀 편하게 해주고 그래야 찾아간 효과가 날 것 아니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럼, 그럼. 뭐가 그럼이에요? 방귀를 끼더라도 좀 다른 걸로 두 개 끼든가.”
“당신 어디서 그런 악다구니를 배웠어?”
“그럼, 그럼요, 이게 다 당신이랑 같이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배운 거예요.”
“나보고 남한테 고개 숙이고, 허리 굽히고, 머슴노릇 하라고 하느니 차라리 여든 살 할망구를 안으라고 해라.”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당신한테 고개 숙이고 허리 굽히라고 했어요?”
나는 정말로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는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해야지만 굽실대는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람의 말이며 표정을 살피면서 알랑대는 게 더 비굴한 거지.”
“당신 생각하는 것 봐도 당신은 평생 별볼일 없이 끝날 거예요. 우리 식구도 더불어 시꺼먼 우물 바닥으로 곤두박질하게 되고. 이 정도 갖고 그렇게도 억울해요? 병원에 있다 보면 남의 똥 받고 오줌 받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하고한 날 죽이며 계란만 날라대는 사람도 있어요. 당신이 새롭게 다시 태어나겠다고 하는 것도 그저 두 쪽 입술로만 떠드는 거지, 마음은 아직도 그대로, 혈액 속으로 녹아든 건 더더욱 아니고요. 그게 피 속까지 녹아들어야 그제서야 환골탈태했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변하지 않으려면 아예 변하지 말든가, 변하려면 확실하게 변해요. 어정쩡하게 중간에 떠서 그게 뭐예요? 그나저나 그저께 마 청장님 댁에 안 들어간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당신 행동하는 걸로 봐서는 들어갔다간 그날로 끝날 뻔했어요. 재기하겠다고? 흥! 어느 세월에?”
“부인이 남편한테 환골탈태해서 소인배질 하라고 시키는 건 들어보질 못했다.”
“그럼 무슨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요? 나는 당신이 소인배가 되는 건 상관없어요. 나는 당신이 재목이 아닐까 걱정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노예가 못될까 그게 걱정이 되요, 진짜로. 한 마디로 이야기할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번 사는 인생 이런 식으로 구차하고, 어정쩡하고, 흐릿하게, 얼렁뚱땅 사는 건 절대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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