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 짧아졌다. 어젯밤 쌓인 눈은 벌써 길 양쪽으로 치워져 있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 네온 불빛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공허하고 들뜬 느낌을 주었다. 나와 동류는 유화(裕華)상점에서 네슬레 분유 두 통과 백화(白花)표 꿀 두 병을 사서 버스를 타고 중의연구원으로 갔다. 연구원에 도착해서 나는 동류에게 말했다.
“이 물건들은 당신이 들어. 난 싫어!”
“조금 있다가 문 앞에서 줘요. 내가 당신을 알지. 뼛속까지 저 모양이면서 새롭게 다시 사는 거 좋아하시네.”
나는 몇 동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어두컴컴한 곳에 동류더러 물건을 들고 서 있으라고 하고는 길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새 집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동류가 나더러 앞서라고 했다. 불이 다 꺼진 어두운 계단으로 동류가 뒤에서 물건을 들고 따라 올라왔다. 문 앞에 도착하자 안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단 내려가자고 동류를 잡아끌었다. 내려오자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벌어질 난감한 상황이 일단 뒤로 미뤄진 것이다.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는데 어떤 남자가 손에 물건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건물 입구에 도착해서 그 남자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 동작이 얼마나 신속하던지 보는 내가 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동류에게 말했다.
“내 가서 좀 보고 올게.”
아니나 다를까, 그 남자는 마 청장님 댁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윗층에 사는 사람인 양 계속 올라가다가 꺾어지는 곳에 멈춰서 고개를 내밀고 살펴보았다. 사모님이 문을 열고 사람을 들이는 것이 보였다. 얼른 내려와서 동류에게 말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자.”
그녀가 깜짝 놀라 말했다.
“물건까지 사 갖고 왔는데, 돌아가다니?”
“방금 그 사람이 뭘 사들고 왔는지 알아? 서양인삼(西洋人參)이더라. 문 열릴 때 불빛에 비친 것을 봤어.”
내 말을 듣더니 동류도 입을 다물었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네슬레 분유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일파도 몇 번 못 먹어본 건데 어떤 사람한테는 선물하기에도 모자란단 말인가? 같은 사람인데 정말 너무 차이난다.”
“그리고 이 꿀 말이야,‘중노년(中老年)을 위한 꿀’, 이‘노년’이란 단어가 마음에 안 들어. 누굴 노인으로 생각하는 거야? 선물 안 하느니만 못하겠어.”
동류가 봉투를 바닥에 툭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핑계만 산더미처럼 찾아서는….”
말을 마치고 동류는 고개를 돌려 그냥 가버렸다. 그녀를 따라 거의 단지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물건들이 아직 저기 있는데….”
그제야 그녀가 멈춰 섰다. 입으로는 “필요 없어, 다 필요 없어.”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다시 돌아갔다. 그 나무 아래에 거의 다 도착하자 아까 그 남자가 다시 나오고 있었다. 손에는 들어갈 때 들고 갔던 서양인삼 상자가 그대로 들려 있었다. 나는 물건을 집어 들고 그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멀리 가지 않아 어둠 속에서 한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가 남자한테 말했다.
“선물은 왜 다시 들고 왔어요? 안 된대요? 그냥 밀어 넣고 나오지 그랬어요?”
남자가 말했다.
“이런 거 안 먹는다잖아. 생각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아.”
두 사람은 한숨을 쉬면서 가버렸다.
순간 나는 마 청장에 대해 일종의 호감을 느꼈다. 닥치는 대로 다 움켜잡는 그런 인간은 아니군! 그리고 경솔하게 뛰어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들고 들어가는 것도 문제였겠지만 들고 나오기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동류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무거웠지만 나는 마음이 가벼웠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끼는 가뿐한 심정이 사실 매우 위험한 신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이런 가뿐한 심정 뒤에는 처절한 실패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상황 역시 실패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나는 나의 심리적 수용능력이 너무 약하다는 것을 아주 처절하게 느꼈다. 여전히 체면 차리려 드는 것 하며, 자기가 무슨 군자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고, 아직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만 걱정한다. 정말 소질 없다, 소질 없어! 오늘 도망치면, 내일은? 평생 도망만 칠 수는 없지 않은가? 도전이 닥쳤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을 것이다. 특히 나는 남보다 몇 년을 더 허비했으므로 노력을 남들보다 더 해야 한다.
절반쯤 와서 내가 동류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 나는 유약진한테 좀 들렀다 갈게.”
말하면서 봉투를 동류에게 건넸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안 가져가면 내가 유약진한테 줘버린다.”
그녀가 얼른 봉투를 잡아채었다.
유약진은 문을 열더니 나에게 말했다.
“불청객!”
“그냥 갈까?”
그가 나를 안으로 잡아끌면서 말했다.
“요즘 머리가 좀 어지러워서….”
그의 집에 웬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아주 곱게 생긴 여자였다. 나를 향해 다소곳이 몸을 굽혔다. 내가 말했다.
“나는 또 요즘 책 쓰느라 머리 아프다는 줄 알았네.”
그가 책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쓰고 있어, 쓰고 있다고.”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나오려고 말했다.
“두 사람 일하는 데 방해 안 할게요.”
그도 나를 잡지 않았다. 그가 아래까지 배웅을 나왔다. 일층에 내려와서 내가 말했다.
“자네도 서른셋이야. 잘해 봐.”
그가 말했다.
“우리 고향 지방극단 배우야. 내가 올해 부교수가 되면서 고향에서 가족을 불러올 수 있게 되었거든. 그러니까
나도 감히 고향에서 찾을 생각을 한 거지. 안 그러면 서로 떨어져 어떻게 살겠어?”
“너도 이제 인생의 재미를 좀 봐야지.”
학교에서 집까지는 두 정거장밖에 되지 않아서 나는 그냥 걷기로 했다. 동풍(東風) 대로를 따라 일부러 한 쪽으로 치워둔 눈을 밟으면서 걷다가 나는 불현듯 이 세상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룻밤 사이에 번화해진 것일까? 무수히 많은 네온사인들이 차가운 밤을 불 밝히면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도로에는 각종 차들이 물 흐르듯 쉼 없이 흘러가고, 사람들도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한 상점 앞을 지나는데 크리스마스트리 두 그루와 그 옆에 세워둔 풍선으로 만들어진 산타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제서야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걸 알았다. 한 아이 엄마가 딸에게 산타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할아버지” 하고 불러보라고 했다. 아이가 친근하게 “할아버지” 하고 불렀다. 호화로워 보이는 대문을 지나치다가 갑자기 그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서 오세요!”
맑은 목소리가 일제히 귀에서 부서졌다. 양쪽으로 중국 전통의상을 입은 아가씨 두 명이 문을 열어주면서 나를 맞았다. 나는 얼른 몸을 돌려 나오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어서 오세요’라고? 나는 또‘어서 엎으세요.’라고 외치는 줄 알았네.”
물러서서 보자 금화살(金箭) 나이트 클럽이라는 새로 개업한 곳이었다. 수원호텔에 거의 다 왔을 때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났다.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고 보니 웬 아가씨였다. 그녀가 내 몸짓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쉬었다 가세요!”
“쉬라고? 왜 쉬어?”
그녀가 부끄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랑 쉬세요.”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농담하나? 여기는 중국이야.”
“긴장하지 마세요. 중국이 개혁 개방한 지 벌써 몇 년인데…. 남자들도 자기를 개방해야죠.”
“안 돼, 안 돼!”
그녀가 말했다.
“Why not?”
세상에, 영어를 다 쓰잖아. 아, 얘들은 외국 사람도 상대를 했나보다 하는 생각이 금방 떠올랐다. 내가 말했다.
“집사람이 기다려.”
“입맛을 좀 바꿔 보시죠. 저도 아무한테나 이러는 거 아니에요.”
나는 옷을 툭툭 털면서 말했다.
“돈도 안 갖고 왔어. 다음에, 다음에.”
그제야 그녀는 물러났다. 물러나면서 옆에 있던 다른 여자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여자 살 사람 같지 않다고 했잖아. 네가 괜히 가라고 그래서.”
수원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어린 남자와 여자애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었다. 손에는 다들 무슨 노트들을 들고 있었다. 한 여자 아이에게 물어보니 오늘 어떤 가수가 거기서 묵는다고 했다. 콘서트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이 그들의 스타가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기만 기다리면서 밖에다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가수 같기에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그 여자 아이는 무슨 외계인 보듯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도시에는 어떤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그런 기운이. 그 기운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사람마저 변하게 한다. 그것이 일종의 잠재의식의 정복임을 깨닫고 반항하고 싶은데 그 반항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이렇게도 자연스럽게, 거스를 수 없게,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진행되는 과정에는 알 수 없는 어떤 역량이, 극도로 강한 와해력(瓦解力)을 동반한 어떤 힘이 개입되어 있어 모든 진지하고 심오한 것들을 빛바래게, 심지어 희극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가장 심오한 사색조차 가장 간단한 사실을 변화시킬 수 없고, 따라서 가장 간단한 사실이 사장 심오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이 시대의 돈키호테임을 깨달았다. 아니 돈키호테만도 못하다. 돈키호테가 희극을 신성시하게 되었던 것은 자신이 역사적인 근거를 잃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 흐름에 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도 그 흐름에 영합할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아무 가치도,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흐름만 거스르려고 했다. 사실 그 흐름이라는 것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앞도 뒤도 없이 흐르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 흐름이 형성된 데에는 심오한 원인이 있을 것이고, 나름의 필연성이 있고, 또 역사적인 근거도 있다. 그 필연성에, 그 역사에, 개인적인 혈기로 저항하려고 드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다. 그것은 숙명이다. 여전히 무언가를 믿고 지키려는 인간들의 가장 큰 비애라 하겠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에게조차 그러한 믿음과 신념의 근거나 이유를 대지 못한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결국 시간 뒤에 숨겨진 유일한 진실은 허무라는 것을 알게 될 뿐이지만, 그러나 그런 다음에도 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나는 결코 어리석지 않기에 사실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희망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잔인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허비하고 나서야 그 진실을 바로 보게 되었다. 이 세계는 영원히 세계이고, 인간은 영원히 인간이다. 다시는 환상 같은 건 품지 않을 것이다. 그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모든 진실을 파악하고 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모든 짐을 덜어낸 것 같았다.
이런 생각에서 빠져나왔을 때 나는 불현듯 이미 집으로 가는 길목을 지나쳐버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때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앞의 골목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크리스마스이브의 모습을 보기 위해 교회 쪽으로 향했다. 그 입구에 멈추어 섰다. 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나는 맨 뒷줄로 가서 앉았다. 단 위에는 촛불에 아른거리는 예수 상이 있었다. 예배가 이미 끝나고 신도들이 접시를 돌리고 있었다. 그 위에는 포도주 한 잔과 빵 한 조각이 있었다. 예수의 피와 살이었다. 신도들은 주의 은혜를 받는다는 의미로 술잔에 입술을 부딪쳤다. 종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종소리에서 뭔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느꼈다. 일종의 부름 같기도 하고, 호소 같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 같기도 했다.
그때 나는 종교의 허망함을 무신론(無神論)으로 증명하는 것은 결국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돌아갈 곳이 필요하고, 궁극이 필요하고, 최후의 근거가 필요하다. 만약 그것이 인간세계에 없다면 천국에라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신의 문제란 실상은 인간의 문제이고, 영원의 문제란 바로 현실의 문제인 것이다. 이 인간들은 자신의 신을 만들어냈다. 마치 내가 천하천추(天下千秋)를 꾸며냈던 것처럼 말이다. 공자도 사실은 일종의 교주와 같다.
그때 신도 중에 젊은 청년 한 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유일한 젊은 사람이었다. 내가 한참 어떤 힘이 그를 여기까지 불러왔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누군가가 얼른 그를 부축했다. 절름발이였다.
그렇다. 종교는 약자에게 위안을 주고,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놓아준다. 유한한 생을 사는 인간에게 종교는 영원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신성함은 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신에 대한 필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신화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궁극이 없는 침체와 허무를 견뎌낼지언정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해 궁극을 꾸며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기만할 수가 없다. 어떤 철학자가 말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갈망하는 돈, 명예, 모든 것들이 다 사소해지는 거라고. 나의 가난한 생활에 위안을 주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이었다. 바로 죽음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더 중요하고 신성시되는 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은 무한히 기다릴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보잘것없는 존재들로서, 그 앞의, 혹은 그 뒤의 시간 속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때 나를 주의 깊게 보고 있던 신도 한 명이 목사에게 뭐라고 귀띔했다. 목사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는 법의(法衣)를 입고 있었지만 그 걷는 모습으로 보아 그는 그저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다. 신의 사자가 저렇게 걸을 리가 없었다. 법의가 그의 발걸음을 가려 주었지만,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인간에 불과했다. 나는 얼른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왔다. 길가에 서서 다시 교회를 돌아보았다. 십자가가 흐릿한 불빛을 받고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새로 개장한 입화(立華) 백화점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일층부터 죽 켜져 올라간 네온사인이 건물 전체를 황금색 광채로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 풍경이 내 마음속에 하나의 실루엣을 남겼다.
큰길가에 나오자 사람들의 소리로 북적거렸다. 나는 교회 안에 왜 사람들이 그렇게 적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그 술 취한 듯한 분위기로 빠져들었다. 그런 분위기만이 줄 수 있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때때로 진하게 화장을 한 아가씨들이 옆으로 지나갔다. 나는 그녀들에게 아무런 반감이 없었다. 그녀들도 자기의 방식으로 행복을 이해할 권리가 있으니까. 그리고 나와 그녀들 사이에도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큰 차이가 없었다.
나는 내가 세상을 다 꿰뚫어본 듯 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내세라는 것도 없고, 궁극도 없으며, 시간 뒤에 숨겨진 본질이란 것도 없다. 따라서 희생의 이유도 없다. 설마 내가 죽고 난 후에 남은 내 뼛가루들이 이 세상에 뭔가를 기대하지는 않겠지? 시간 속의 역사적 요소는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시장은 이상주의도 영웅주의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신화를 필요로 하지만 그 신화는 영원히 파괴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바로 궁극이자 유일한 의미의 원천이 된 것이다. 과정과 궁극은 이미 그 흐름에 합류하였다. 이것이 해독된 진실이고, 히든카드, 현실, 이 시대 최대의 각성, 그리고 이 시대 최대의 비애다. 생존만이 생존의 유일한 근거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불쌍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사람은 개나 돼지가 아니므로 생존 이외의 다른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의미의 원천으로 여기고, 자신으로부터 무한, 영원으로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슬프다. 그는 잔인한 슬픔을 감수하고, 모진 마음으로 세계에 걸었던 모든 기대들을 잘라버려야 한다. 도의와 인격과 양심도 버리고 친근하고 가깝고 슬프고 비열한 현세주의를 따라야만 한다. 나는 자기의 생활경험에만 근거해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편협한 사람이라고, 자기밖에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세상에는 또 다른 종류의 목소리가, 신비한 허무로부터 나오는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는 어떻게 제어할 수도, 증명하거나 묘사할 수도 없지만, 확고하게 존재한다. 그것은 더 높은 차원의 진실이다. 그 진실은 신(神)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속의 충동과 갈망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고 또 그에 의해 감화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생활과 경험을 거역할 힘을 갖게 한다. 무릇 성인이란 바로 그런 거역자(拒逆者)들이다. 나는 여전히 그들을 숭배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 나는 이 세상에 손들었고, 내게는 포기할 권리가 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어찌할 힘도 없고, 어찌할 도리도 없다는 게 나의 이유이며, 또 나의 해탈이다.
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가뿐했다. 그런 개 같고 돼지 같은 인간들이야말로 사실은 똑똑한 사람들, 행복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한평생 살면서 코앞에 놓인 고만큼의 물질이 가장 현실적이다.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불쌍하고 슬픈 존재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가련하고 슬픈 가운데서만 현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고, 또 그 가운데서만 그나마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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