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굴(屈)과 신(伸): 생활의 변증법**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한 번뿐인 인생인데….”
동류(董柳)가 제기한 그 물음에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뿐인 인생’, 그 말 한 마디로 모든 원칙이며 도리가 다 설명되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간단하고, 또 가장 심오한 이치일 것이다. 나는 감히 더 자세히, 더 깊이 생각할 엄두를 못 냈다. 생각만 해도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물론 위생청에는 사무원으로 정년을 마감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다. 안 선생님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위생청 최초의 석사출신인 내가, 그런 식으로 일생을 마쳐서야 되겠는가?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점점 더 빨리 흘러갔다. 시간은 모든 것의 의미를 규정한다. 인간은 한없이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다. 과장이니 처장이니 하는, 예전 같으면 신경도 안 썼을 직함에서 지금은 어떤 신비한 후광,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닿을 수 없는 그런 후광이 느껴졌다.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인간에게 주어진 공간은 이렇게 작구나! 참으로 불쌍하다. 세상만사, 천하우주를 이야기하고 천추만대(千秋萬代)를 이야기해도, 그러나 결국에는 다시 내 인생의 작은 기점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것만이 현실이다. 결국 인간에겐 주어진 이 인생이 전부이고, 이 인생 자체가 하나의 시각을 형성한다. 눈으로는 하늘의 별 무리를 바라보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시각에 입각해 있다. 나의 이 한평생은 점점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천하(天下)며 천추(千秋)는 점점 더 공허해진다.
동류의 말이 맞다. 별을 바라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시간에 일파 우유나 한 잔 더 데워 먹이지. 사람은 이렇게 불쌍한 존재이다. 그렇게 멀리 생각하고 멀리 보지만, 또 자기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를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 존재가 보잘것없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최소한 자기 문제에 관해서는 성립할 수 없다. 인간은 세계의 입장에서 자신을 볼 수 없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에서 세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나의 시야가 천하로부터 나 자신으로 급속히 좁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련하고 불쌍하고 파렴치하고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를 거부하는 것은 인생 전체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나이든 사무원들을 보라. 몇 십 년을 하루같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의 분부에 순종하는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은 생각이 없어서 그러는 걸까? 그들도 알고 보면, 놀라지 말라, 삼십년 전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지만, 그렇지만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이익은 얼마나 될까? 더 이상 사람 좋음이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 아니다. 손에 쥐어지는 것만이 진실이라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며, 오늘날 유능한 사람들의 논리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자 나는 갑자기 온몸이 싸늘해졌다가 다시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은 어떻게 하지?”
이 문제는 쇠꼬챙이처럼 내 마음을 꿰뚫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았다. 나는 온갖 해결책을 다 생각해 보았지만, 깊이 들어가면 각가지 방도가 가장 험난한 방도처럼 느껴졌다. 세계는 이렇듯 넓건만, 무한한 가능성이 내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은 한 줄기 광선처럼 살건만, 나는 그 광선의 방향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위생청이라는 게 사실 대단할 것도 없는데. 이 정도 기관은 전국에는 말할 것도 없고 성(省)에만 해도 몇 백 몇 천 개가 있는지 모른다. 내일 지진이 나서 위생청사가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지구는 지금처럼 돌아갈 것이고, 사람들도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사건이, 상황이 중요하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사실은 내 자신이 중요하다. 이게 바로 히든카드다. 나는 감히 이 히든카드를 들춰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은가. 사람은 자신을 궁극으로 삼는 순간 궁극을 상실하게 된다. 지금까지 나는 비몽사몽의 상태로 살아왔다. 이제 깨어나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 발자국 앞은 아득한 낭떠러지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일한 희망의 빛은 위생청이란 기관에 있었다. 그 빛은 매우 작고 약하지만 막상 접근할라치면 그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인간은 이렇게 가련한 존재이다. 나는 더 이상 배부른 소리를 할 수가 없다. 그건 윗사람들이나 하는 소리다. 물로 배를 가득 채우고 부자노릇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속이는 것도 한 순간이지, 한평생을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어떻게든 뚫고 들어갈 길을 찾아야 한다. 육년 전 위생청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나는 제법 좋은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출발점은 그때보다 훨씬 뒤처져 있다. 목표를 정하고 나자 나는 마음이 급하다 못해 아플 지경이었다. 지난 육년 동안 도대체 난 뭘 한 거야? 처음부터 위치 정립이 잘못되었다. 굴원(屈原)이니 이백(李白)이니, 그 사람들을 아무나 따라 배울 수 있는 줄 알았다. 나는 벌써 서른넷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좋은 시절 다 가버릴 것이다.
나는 안 선생님을 찾아갔다. 안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냥 툭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들어가자 그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지군, 오랜만에 바둑 두러 왔네 그려.”
“아들 녀석이 좀 아파서 매일매일 거기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왜 몰랐을까?”
나는 그 사건 이야기를 해드렸다. 사모님은 옆에서 계속 놀라면서 물었다.
“정말요? 정말요?”
그런 놀란 반응을 보자 나도 점점 신이 나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바지를 잘라 뜯어내던 시늉이며, 동류가 바늘을 찌르던 시늉까지 해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던 중간에 나는 갑자기 번뜩 상림(祥林) 형수 생각이 났다. 그만 입을 다물고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손을 놓았던 바둑을 다시 두니 기분이 좋았다. 편안했다. 이런 분위기를 깨기가 아쉬워서 원래 왔던 목적은 한편에 제쳐두고 계속해서 두 판을 두었다. 또 몇 판 두다 보니 시간이 제법 늦었다. 안 선생 사모님이 말씀하셨다.
“당신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요. 아아(阿雅)한테 옷 갖다 줘야죠.”
나는 바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눈발이 얼굴에 닿아서 녹는 느낌이 매우 상쾌했다. 마치 생명의 요정이 나를 일깨우는 듯했다. 왜 자꾸 머뭇거리는 거지? 본론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는 건가? 나는 내가 도피하려고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안 선생님이지만 진지하게 내가 어떻게 하면 위로 기어 올라갈 수 있을지를 상의하려니 영 자존심이 깎이는 일이었다. 집을 향해 걸었다. 집 앞에 도착했다. 또 하루가 늦춰졌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던 찰나에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멈춰!”
앞에 들려 있던 오른쪽 발이 아직 바닥에 닿지도 않았다. 나는 그 자세 그대로 자리에 서 있었다. 이렇게 용기가 없어서야. 더 힘든 도전은 아직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에게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다. 세상이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세상에 구속시키는 것이다. 지난 몇 년 간의 사실들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는 일은 결코 무슨 좋은 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일이었다. 손 안에 넣는 것만이 진짜인 것이다. 하늘에서 떡이 그냥 떨어질 리가 있는가?
현재 나의 걸림돌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생각이 이에 미치는 순간 나는 얼른 오른발을 내 왼쪽 다리 옆에 갖다 붙였다. 발에 힘이 빠지자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거의 넘어질 뻔했다. 얼른 한 발을 내딛고서야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었다. 나는 나에게 욕을 했다.
“제기랄, 이것 하나 제대로 못하냐?”
그냥 다시 돌아가려는 나 자신을 다잡고 안 선생님 집에 도착해서 바로 벨부터 눌렀다. 혹시라도 망설이게 될까 봐서였다. 사모님이 문을 열어주시면서 물었다.
“뭐 놓고 간 것이라도…?”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녀는 약간 과장되게 놀라는 기색을 보이면서 손목시계를 흘끔 보았다. 나는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말했다.
“제가 또 사모님을 번거롭게 해드리려 왔습니다. 저같이 번거롭게 구는데, 만약 사모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작 절 미워했을 겁니다.”
그녀는 얼굴이 좀 펴지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위생청에서도 현모양처라고 소문이 다 나셨어요. 안 그랬으면 제가 감히 이렇게 늦게 올 수 있겠습니까?”
안 선생님이 옷을 걸치고 나오셨다. 사모님께서 차를 따라주셨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난로까지 들고 와서 틀어주셨다. 이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냥 멋대로 지껄인 몇 마디였는데 효과가 이 정도일 줄이야. 사모님이 문을 닫고 주무시러 가시자 안 선생이 말했다.
“사람은 다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하지. 자네는 언제 그런 걸 다 배웠나?”
“원래 그랬잖아요.”
그가 웃었다. 안 선생님은 나에게 담배 한 대를 건네고 자기도 한 대를 물었다. 내가 말했다.
“오늘 제가 담배 피우고 싶다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사람은 좀 볼 줄 알지.”
“사람 하나 좀 봐 주시겠어요?”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자네 자신을 봐 달라는 거지?”
나는 허벅지를 치면서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너무 드러내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저 청장님의 여러 개 방들 중에 하나는 사실 선생님이 쓰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는 자조하듯 웃으면서 말했다.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어버렸지.”
나는 용기를 내어 말끝을 꽉 잡았다.
“저는 이미 늦었습니까? 한 번 봐주십시오.”
말을 하고 나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말머리를 끄집어 내기가 생각처럼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는 담배를 피우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긴장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물었다.
“자네가 서른 좀 넘었나?”
“서른넷입니다.”
오른 손으로 3과 4를 그려 보였다. 그가 말했다.
“늦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고….”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늦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지.”
“희망이 없나요?”
그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보게. 여태 뭐 하다가….”
나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그는 마치 내 얼굴에서 뭔가를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한참 지나서 그가 말했다.
“자네는 말이야, 자네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
“아무 직함도 없는 주제에 제가 무슨 수로 저를 과대평가하겠습니까?”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신을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 쪽 관직도 못 오르는 거야. 그 기세로, 심지어 윗사람들한테 도전까지 하면서, 그 와중에 또 모든 걸 얻겠다고 하는 것은 논리에 안 맞아. 사나이는 자기를 굽힘으로써 자신을 펴는 걸세(大丈夫以屈求伸). 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자기를 굽히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는가? 사내대장부 되기가 쉬운 게 아니네. 중국 사람이라면 이 굽힐 굴(屈)과 펼 신(伸) 두 글자를 마음속에 새기고 반복해서 그 뜻을 헤아려야 하네. 그 뜻을 이해해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는 두 주먹을 쥐고 겨드랑이 아래로 움츠렸다가는 힘껏 쭉 뻗으면서 말했다.
“굽힌다는 것은 기운을 모으는 거지. 기운을 모으지 않고 힘을 쓸 수 있나? 자기를 너무 귀하게 생각하면 귀해질 수가 없다네. 그것이 바로 생활의 변증법이지.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야 그 아무 것이 될 수 있는 걸세. 시작부터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면, 그건 결국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 거지. 이것 역시 생활의 변증법일세. 자네를 귀하게 여기다 보면 혜안(慧眼)을 갖춘 윗사람들이 영웅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나? 그게 가능할 것 같은가? 천만에! 인성(人性)에 부합되지 않는다네. 굴원은 자네가 존경하는 사람 아닌가? 이백도 그렇고. 그 사람들도 자기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지.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나? 그 사람들이야 정말로 몇 백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천재여서 그나마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은 거지. 그들 외에도 그 물결에 이름도 못 남기고 쓸려간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네.”
“그런 위대한 인물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다 보니 생전에 팔자(八字) 고달프지 않았던 사람이 몇 안 되더군요. 혹시 어둠 속의 어떤 힘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는 담배 한 대를 더 피워 물면서 말했다.
“아직도 그 타령인가, 자네는? 그 사람들은 재기(才氣)가 하늘을 뚫을 듯했지. 그래서 사회에 받아들여지지도 못하고 관계에도 발을 못 들여놓았던 거지. 밀려날 수밖에. 그런 경험이 바로 그들을 만들었고, 또한 그들을 해쳤던 걸세. 그들은 하나같이 비참하고 처량한 생을 살다 갔지. 기가 막히게 총명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 모두 어떤 특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어떤 특수한 국면, 형세에 처해야만 했네. 그들이 맞서 싸워야 했던 것은 어느 누구가 아니었다네. 바로 그들이 처해 있던 상황, 결코 거스를 수 없는, 그들조차도 어쩔 수 없었던 그런 상황들과 맞서 싸워야 했던 것이라네. 그러한 인물들이 하나의 전통을 이룬다면,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전통이라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 이름들을 떠올리니 아무리 굽히려 해도 굽힐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말들은 입에 담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랬다가는 그분들한테 죄송스러울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방금 우리 안 사람한테는 말만 잘 하더구먼 뭐. 그냥 그 흐름을 타면 되는 거야. 괜히 아무데서나 함부로 꽃 한 송이 뽑아들고 말하지 말구.”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죄송스러워? 세상에는 그 이름들한테도 떳떳하고 자신한테도 떳떳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일은 없다네.”
그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조설근조차 하지 못했던 일을 자네 지대위가 하고 싶다고? 자네가 그 사람보다 더 똑똑해?”
“사람 구실하기 정말 힘듭니다.”
“생각해 보게, 생각해 봐. 굽힐 굴(屈)자와 펼 신(伸) 자를 우선 이해하고, 그 다음에 계속 이야기하세.”
안 선생님은 내게 담배 한 대를 더 권하셨다. 나는 라이터를 집어 들고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드리고 내 담배에도 불을 붙였다. 그는 담배를 절반만 태우고 껐다. 나도 얼른 따라서 담배를 껐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살짝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자네한테 부족한 건 이해력이 아니라 의지라네.”
“의지는 천천히 키우면 되겠죠?”
“천천히 키운다고? 어느 세월에! 사람이 몇 년 사나? 기회는 가끔 자네 앞에 그 꼬리만 슬쩍 드러내 보이지. 그때 그걸 얼른 잡지 못하면 그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네. 나도 젊었을 때는 도무지 굽혀지질 않더라고. 처음엔 섭(聶) 청장, 그 다음엔 시(施) 청장에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참치 못하고 다 얘기해야만 직성이 풀렸지. 내 자신이 좋은 뜻에서 말하는 거니 상대방이 이해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 말게. 절대 그런 일 없네. 옛날 시 청장은, 무슨 생각이 하나 떠오르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황소고집이었어. 아무도 못 말렸지.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많았고, 또 당시 내가 비서였으므로, 윗분 생각하는 마음에서 기회를 봐서 사람들의 생각을 말씀드렸지. 나야 시 청장의 이미지도 더 개선하고 일도 더 잘 진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얘기했던 거였는데, 그 인간이 즉석에서 나를 골로 보내버릴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나. 그때 그가 하는 말이, 그딴 소리 하는 작자들은 다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 인간들이라 하더군. 그때부터 나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지. 말 한 마디에 인생 게임 종친 거지! 문화혁명이 터지고 조반파(造反派)에 속했던 사람들, 문화혁명 끝나고 숙청당하면서 그 인생들도 다 끝나버린 것처럼 말이야.
나는 몇 십 년의 세태를 보면서 사람 인(人) 자를 똑바로 보게 되었네. 사람들은 다 편견을 가지고 있네. 인간은 영원히 자기의 이익이라는 입장에서 모든 걸 생각하지. 그래서 한 번도 제대로 원리 원칙을 따진 적이 없네. 자기 입장에서만 그 원리 원칙을 따지기 때문이지. 누구 하나 딱히 자네 버릇을 고쳐주겠다는 사람도 없고, 자네 잘못에 대해 말 한마디 하는 사람도, 심지어 불편한 얼굴 보이는 사람 하나 없네. 그렇지만 자넨 이미 그 바닥에서 퇴장당한 거야. 게임 끝났다고. 사람들이 자네한테 기회를 안 주는데 어디 가서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겠어? 그게 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약한다는 걸세.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공정함을 구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게. 그건 보통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비록 그 사람이 공자, 맹자라도 안 될 일일세.”
“그 자리에 앉은 인간들만큼 공정(公正)의 화신인 척하는 사람들도 없는데 말이지요.”
“맞아. 그런데 그것도 자기들이 원해서 또는 원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자리가 요구하는 거지. 자네도 그 위치에 가면 다 그런 척 연기를 해야 하는 거야.”
“편견도 있어야 하고, 충동도 있어야 하고, 거기다가 공정한 역할까지 연기해야 한단 말이지요? 그야말로 이중인격이네요. 그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맞는 말이긴 한데 절반만 맞는 말이야. 일단 그 역할에 몰입하면 그것도 자네 생각처럼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라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음속 캄캄한 곳에서 칼 한 자루가 춤을 추면서 내가 미련을 가졌던 작은 즐거움을 완전히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정말 사는 게 힘드네요. 조금 고상하게 살려고 하면 산더미 같은 문제들이 앞에 놓이게 되니 어디로 숨어야 하는 건지…. 그래서 사람들이 모든 걸 버리고 중이 되나 봅니다. 심지어 여자들 사이에서 흥청망청하던 고보옥(賈寶玉)마저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갔잖아요. 게임 규칙에 적응할 수 없어서 도피한 거죠.”
“복잡하게 생각하면 점점 더 복잡해지는 거야. 계속 그렇게 하나씩 물어 나가면 끝이 없지. 철학자들을 보게. 평생을 파고들어도 바닥에 도달하지 못하잖아. 그렇지만 또 간단하게 생각하면 정말로 간단한 문제일세. 해야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야. 저 산골짜기 농사꾼 할아버지도 다 아는 사실이지. 자네는 어떻게 해야겠는가?”
나는 눈앞에서 손을 휘휘 돌리면서 말했다.
“사람이 겪는 크고 작은 곡절들도 결국 다‘살 활(活)’자 하나를 위해서지요. 더 잘살기 위해서, 존엄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한 번 사는 인생, 눈앞에 놓인 그까짓 물질들, 그저 속편하게 인생 끝내면 그만이죠.”
“그런 이치를 입에만 달고 살려면 모르는 것만 못하네. 나처럼 이렇게 평사무원으로 썩을 수는 없지 않나? 산산이 부서져 진흙이 되고, 시간이 지나 다시 먼지로 부스러지면 그 옛 향기만 남게 되지. 이렇게 말로 하면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이지만, 정말로 부서져 땅에 떨어지고 진흙 꼴이 되어 보게. 누가 와서 그 향기를 맡아나 보겠나? 아무도 냄새 맡는 이 없고 그 향기도 점점 스러질 걸세.”
그의 말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도 좀 움직이기 시작해야겠습니다. 몇 년을 이렇게 숨죽이고 살다보니 이제는 병이 날 지경입니다. 마음은 허하고 사람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아들 다쳐서 고생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권력과 돈, 이 두 가지 속물이 길을 떡 하니 막고 서 있는데 그걸 피해 갈 길이 없더라고요. 사람이 살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권력과 돈이라는 이 두 가지 속물에 의존할 수밖에요. 이 세상이 더 분명하게 보일수록 점점 더 어쩔 수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모님이 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얼른 인사를 드렸다.
“이제 가보겠습니다.”
“오늘 자네와 한 이야기 정말 즐거웠네.”
그가 아래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나는 들어가시라고 했다. 그는 춤추듯 내려오는 눈꽃을 보면서 무언가 느껴지는 거라도 있는 것처럼 말했다.
“또 일년이 지났군!”
그 말을 들자 마음이 아파왔다. 내가 말했다.
“지난 몇 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도 안 나요.”
“가서 잘 생각해 보게. 자기 마음속의 오뚝이(不倒翁)를 쓰러뜨리기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닐 거야.”
“이미 다 쓰러뜨렸습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미 마음속에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예전의 나를 묻어버렸다. 역사와 함께 묻었다. 사람은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과정을 다 거쳤다. 심지어 이런 과정을 아예 뛰어넘은 사람도 있는데, 그런데 나는 그토록 발버둥을 쳐대다가 결국 이제야 삽을 들었다.
집에 오자 동류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나는 불도 안 켜고 더듬더듬 침대를 찾아 자리에 누었다. 동류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많이 늦었네요.”
“바둑 두러 갔었어.”
“바둑 둘 마음이 생겨요? 세상에 당신 같이 속없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녀는 말하면서 화가 나서 이불을 확 끌어당겼다. 나는 이불을 다시 끌어오면서 말했다.
“사실은 안 선생님이랑 상의하러 갔었어. 사는 방법을 바꿔 보려고. 안 선생님도 나를 지지해 주시더군. 내 생각을 말씀드렸지.”
“진작 그랬어야지, 이제 와서….”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사람이 어디 가요? 변하면 얼마나 변하겠어요. 개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난 아무 말도 안 할래요.”
“닭 똥구멍 같은 입으로 말하는 것 하고는…. 두고 봐! 이번엔 어떻게 하는지.”
“그럼 내일 저녁에 마 청장님 댁에 가요. 갈 수 있어요?”
“거긴 뭣 하러 가? 갈 이유가 없잖아. 아무 이유도 없이 가기는 그렇잖아.”
“안 선생님이 당신을 지지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마 청장님이 밀어주셔야 힘을 받을 것 아니에요. 안 선생님이 뭐 별거예요? 또 마 청장님은 어떤 분이시고요?"
“아무 일도 없는데 가는 건 좀 그렇잖아.”
그녀는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말 다했어요? 내가 뭐랬어요, 개가 제 버릇…. 관 둬요.”
나는 결심을 내리고 말했다.
“알았어! 가자고. 그렇지만 그 문턱 넘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거야.”
그녀가 말했다.
“왜 아무 이유가 없어요? 우리 일파 병원까지 누구 차타고 갔어요?. 당연히 가서 고맙다고 인사드려야죠. 만약 제 시간에 병원 못 갔으면 일파가 저렇게 빨리 나을 수 있었겠어요?”
“그렇다고 집까지 찾아가서? 구실이라는 게 뻔하잖아.”
“구실까지 있는데 못 가겠다는 거예요? 남들은 없는 구실도 만들려고 안달을 하는데, 당신 그래서 앞으로 뭘 하겠어요? 턱도 없지! 시작부터 남보다 뒤쳐진다니까. 새롭게 살겠다는 건 그냥 자기만족으로 해 본 소리죠? 내가 딱 보니 못 믿겠더라고. 나야 당신과 평생 살더라도 별 상관없지만, 우리 일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아들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얼른 말했다.
“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자고! 당연히 가서 감사드려야지. 고마웠다고 말씀드려야지. 그러지 않으면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지. 안 그래?”
이렇게 말하자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잘난 사람들은 무(無)에서 유(有)도 만들어 내던데, 나는 유(有)에서 유(有)를 만들려는 건데 겁날 게 뭐야! 무서울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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