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48>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48>

블랙홀

***<제3편>**

***48. 블랙홀**

일파는 입원한 지 열이레 만에 퇴원했다.

아들이 퇴원을 하고 난 후 집안 분위기는 냉랭하기가 마치 얼음창고 같았다. 나와 동류는 병원에 있을 때는 그나마 일파의 상태에 관해서 대화를 나눴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다. 동류는 입을 굳게 다물었고, 일파도 말수가 훨씬 적어졌다. 침대에 누워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두 눈으로 어른들의 행동만 지켜볼 뿐이었다. 심지어 동훼네 집에서 일파를 보살피기 위해 돌아오신 장모님마저 말이 훨씬 적어지셨고 행동도 훨씬 굼떠지셨다. 나는 일파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아빠가 조롱박 인형 얘기를 해줄게.”

그러나 내 말이 끝나는 순간 공허한 적막만이 남았다. 내가 떤 법석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 적막의 중압감을 피하기 위해 나는 밥을 먹자마자 사무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낮에 본 신문을 다시 보고 그냥 그렇게 몇 시간을 앉아 있었다. 그런 외롭고 조용한 시간 속에서 나는 독충(毒蟲)이 내 마음을 갉아 먹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독충의 모양을 상상해 보았다. 온몸에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어서 뱀처럼 미끈거리고, 또 한편으로는 딱딱하고 두꺼운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무수히 많은 작은 발들이 꿈틀대고 있는 독충의 모습을.

나는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사실 나는 일파의 바지를 뜯어낼 때부터 후유증이 남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많은 흉터는 남지 않았다. 왼쪽 발에 동전만한 크기의 피부가 아직 회복되지 않아 보기에 반짝반짝 거리고, 만지면 매끈매끈할 뿐이었다. 만일 여름이었다면? 뜨거운 물이 얼굴로 떨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위생청 사람 몇몇이 일파의 상태를 물었다. 나는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면서 돈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감탄했다. 그러면서도 돈보다 더 중요한 권력에 대해서는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처음에는 다른 사무실 사람들까지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왔다. 이야기가 일단 입에 붙자 내가 누구한테는 얘기했고 누구한테는 얘기하지 않았는지를 잊어버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야기를 해댔다. 어느 날 내가 또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데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다.

“대위 씨, 어쩌면 꼭 상림(祥林) 형수(노신의 단편 소설「축복」에 등장하는 인물--역자)처럼 매일‘난 바보입니다. 난 바보입니다.’하고 떠들고 다니시오?”

나는 곧바로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랬다. 나는 정말 바보였다.

내가 동류에게 말했다.

“이번 일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이야.”

한참 후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다행이요? 지금 화상 입은 게 잘 됐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애 살갗이 조금만 까져도 하늘이 무너지는 양 난리들인데, 우리 일파는 화상을 입어 저 모양이 됐는데도 다행이라니…. 우리 일파가 뭐가 모자라서? 당신이 그렇다고 우리 일파까지 끌어내리지 말아요. 우리 일파는 남들보다 못한 거 하나 없어요!”
내가 어떤 식으로 얘기를 해도 동류는 아주 냉정하게 끊어버렸다. 꼭 할 말이 있으면 아들을 시켜서 나에게 전했다.

“아빠, 설거지 하세요.”

“아빠 올 때 두부 사 오세요.”

저녁에 장모님이 일파를 데리고 주무시러 방으로 내려가셨다. 우리는 밤새도록 말 한 마디 없이 한 쪽에서 때때로 내쉬는 한숨에 한숨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날 밤 동류가 자리에 들고 나도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기나긴 겨울밤을 보낼 준비를 했다. 그 끝없는 겨울밤은 마치 선사시대의 깜깜한 동굴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동류가 갑자기 일어나 앉더니 불을 켜고 말했다.

“난 어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다름 사람들이 그만두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건데. 왜 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와 상관있는 일이리라. 나는 누워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안목도 대단해. 미래를 내다본다니까. 몇 년 후 아니 몇 십 년 후의 일까지 다 내다보고, 제때에 확실한 결정을 내린다니까.”

굴문금을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일어나서 옷을 걸치면서 말했다.

“똑똑한 사람 따라 하고 싶다면 아직도 늦지 않았어. 막을 사람 없다고.”

그녀가 말했다.

“아직 안 늦었다고요? 여자한테 청춘이 두 번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애도 있는데, 애는 어쩌고요?”

그녀도 옷을 걸치면서 말했다.

“나도 나부터 챙기는 법 좀 배워야지. 저 인간 앉으면서 옷부터 걸치는 것 좀 봐. 마누라는 이렇게 홑겹으로 입고 있는데도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지?”

“한편으로 내 가슴에 칼을 쿡쿡 꽂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한테 관심을 가져 달라는 거야? 아예 내 마음을 둘로 쪼개 놓지 그래.”

그녀는 스웨터의 단추를 채웠다. 며칠 동안 아무 말도 안 하더니 할 말이 한 바가지는 쌓였겠군. 그녀가 말했다.

“여자는요, 천하대사(天下大事)가 뭔지도 모르고, 만고천추(萬古千秋)가 뭔지도 몰라요. 그깟 게 다 뭐람! 그래요, 여자한테 세계는 코앞에 놓인 이만큼이 다예요. 여자가 남자를 찾을 때도 다 제 코앞의 고만한 세상만 보고 고르는 거예요. 그럼 당신은 여자가 뭘 더 본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코앞의 세상도 못 보는 인간이 천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녀의 말을 듣자 나는 세상에 대한 나의 이해가 또 틀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지간에 이런 현실주의가 놓여 있을 줄이야. 내가 말했다.

“당신, 말 다했어?”

그녀도 지지 않고 얼른 대꾸했다.

“그래요, 말 다했어요. 그럼 당신은 여자가 남자한테 그 정도도 기대 못한다는 거예요?”

나는 화를 내면서 말했다.

“출세하려면 당신도 출세할 수 있잖아. 나도 덕 좀 보자고. 남녀평등 아냐?”

그녀가 말했다.

“아휴! 창피한 줄이나 알아야지. 남자가 돼서 어떻게 여자한테 기대 살겠다는 말을 다 해요? 술 먹고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나 하는 소리인 줄 알았더니….”

“출세가 뭔지 알아? 노예마냥 굽신거리고, 하고한 날 윗사람한테 비굴한 웃음 웃는 거, 그게 출세야!”

나는 말하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도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돈이면 다 되는 시대라고요. 내 손에 쥐어진 것만이 진짜고 나머지는 다 가짜에요. 다른 사람들은 좋은 집 살면서 돈도 있고 살림에선 기름기가 잘잘 흐릅디다. 물론 아들네미가 화상당할 일도 없고 말이에요. 당신, 그래, 그 사람들 비웃어 보시지! 요즘 사람들 물건만 자기 손에 들어오면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건 신경이나 쓰는 줄 알아요? 남들이 뭐라고 비웃든, 뭐라고 욕하든, 우습게 보든 신경이나 쓰는 줄 아냐고요? 천만에요. 전혀 신경 안 써요! 사람 똑똑한 게 다 그런 데서 티가 나는 거예요. 아니면 똑똑한 게 어디서 드러나겠어요? 구름 속요? 안개 속요? 그건 똑똑한 게 아니고 어리석은 거예요. 산소 결핍에다 뇌진탕 환자라고요. 우리가 부엌 있는 집에만 살았어도 우리 일파가 이런 일은 안 당했을 거예요. 송나 아들네미가 화상 입을 일이 있겠어요? 요새 세상은 결과만 봐요. 과정은 묻지도 않아요. 어떻게 걸어왔든, 남들이 뭐라고 웃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또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세상은 변했다. 이치를 따지는 방법도 변했다. 손에 넣는 자가 승리자이고, 최후의 승리자다. 나는 내가 실패자라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들은, 그러나 결국에는 아무 근거도 없는 것이었다. 궁극이 상실되던 순간 최후의 근거도 상실되었다. 나는 뭔가 날카로운 것으로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뜨거운 피가 솟구치는 그런 상쾌한 통증이 아닌, 바늘로 후벼대는 듯한 그런 통증이었다. 그 통증에 나는 본능적으로 움찔했고, 반항하듯 말했다.

“당신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 그래도 공부를 몇 년 덜 했기 때문에 이해 못하는 일들이 있어.”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그 몇 년 공부 더 한 탓에 그 안에만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벌써 몇 년을 버둥거렸는데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단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다 목표를 높게 세우고 살아요. 그게 다 그 사람들 밑천이죠. 당신은요? 당신은 윗사람한테 의견이나 제시하고 말이에요. 당신은 당신이 윗사람들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죠? 쓴 맛이나 보라지. 윗사람 무서운 줄 알아야 해요.”

“사실 몇 년 동안 딱히 의견을 제시한 적도 없어.”

“살면서 자빠질 기회가 몇 번이나 주어지겠어요? 등소평은 세 번 쓰러졌다 세 번 일어났다지만, 당신이 그런 주제나 돼요?”

“나한테 강요하지 마. 나보고 정소괴처럼 그런 길을 택하라고, 그런 식으로 비굴하게 웃으라고 강요하지는 말라고.”

그녀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

“그럼 당신 말은 당신이 그 사람들보다 잘났다는 얘기에요? 그럼 어떻게 그 사람 말 한 마디에 우리 일파가 입원을 할 수 있었죠? 당신은 그렇게 사정을 해도 안 됐는데. 어떻게요? 그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요. 당신은 그냥 옆에 비켜서서 다른 사람들 노는 거 구경이나 하세요. 그렇게 구경하다 보면 거의 인생 종칠 때 될 거예요. 나는 당신 때문에 더불어 바라는 것도 없어요. 그저, 우리 일파를 생각하면 안타깝다는 거죠. 저렇게 우수하고 가능성이 많은 애가 환경이 안 받쳐줘서. 몇 년 있다가 학교 들어가면 숙제는 어디 앉아서 하지?”
그 몇 마디에 나는 답답해서 숨도 내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자존심이 밥 먹여줘요? 당신 속을 내가 모를 줄 알고.”

동류 입에서 이렇게 큰 살상력을 지닌 말이 나올 줄이야. 동류는 요 며칠 결코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상황에 대해 거듭거듭 심각하게 분석을 했던 것이다. 내가 말했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 다른 법이야. 자기 속 편한대로 살아야지. 속 불편하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려 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아지는 거야.”

“그래서, 당신은 우리 일파가 다치니까 속이 편하던가요? 송나네 집 강강이 다칠 일이 있을 줄 알아요?”

동류는 말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일파는 다리에 흉터까지 생겼어요. 당신 속 편한대로 하려면 아예 내일 아침에 우리 일파 고아원에 갖다 주고 치우지 그래요?”

눈물이 방울방울 이불 위로 떨어졌다.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아들과 아내를 위해서라도 나는 발버둥쳐야 한다. 나에게는 떨쳐버릴 수 없는 책임이 있다. 생존은 확고한 원칙이며, 다른 어떤 원칙도 그보다 확고할 수는 없다. 현실에는 시(詩)를 위한 공간이 없다. 그저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인 생존만이 있을 뿐.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똑바로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생활과 유효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 구름 속 일, 안개 속 일, 만고천추의 일은 다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블랙홀과 같아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는지와는 상관없이 일단 빨려 들어가면 아무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애가 조용히 마음속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저항할 수 없었다. 도연명, 조설근의 부인과 아들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청렴하고 고귀해지는 것도 최소한의 밑천이 있어야 하나보다. 매소평(梅少平)은 문연(文聯) 주석 자리를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가 은거한다지. 그 사람이야 성공하고 명예까지 다 얻은 다음에 그 모든 걸 버리고 내려갔으니 고향에 별장도 있고, 차고도 있고, 정원도 있고, 게다가 시내에 집도 있고, 월급도 그대로 나오고, 일체의 보장을 다 누리고 있다. 나를 그 사람과 비교해? 주제도 모르면서 흉내를 내다니!

나는 한참 생각했다. 어떤 방향에서 이 세상을 경험해 나가더라도 결국은 정신적인 공격을 받게 되어 있다. 어떤 생존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도 없다. 기왕 그렇다면 왜 굳이 내가? 세속적인 삶을 한 편으로 밀어둔 그런 생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는 점차 내 정신이 사실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무형의 틀에 갇혀 그 틀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 관념적인 초월도 점점 더 허약해지고 창백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머리가 마비될 정도로 생각을 하다가 나는 고개를 힘차게 비틀었다. 이런 사색의 내용들을 저 멀리 포물선을 그리며 날려 보내고 싶었다. 세상에 생각 없이 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고도 나보다 더 잘만 살더라만. 생각이 이에 미치자 이런 모든 사색(思索)의 의미가 상당히 애매해졌다. 사색. 사색은 나의 자랑이자 또 나의 재난이었다.

***<‘창랑지수’ 전3권이 비봉출판사에서 출간돼 현재 서점에서 시판되고 있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