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창랑지수(滄浪之水)**
그때 또 한 가지 일이 터졌다. 나로 하여금 최후의 용기를 내어 행동으로 옮기게 한 일이.
동훼의 딸이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어 점심에 우리를 왕부(王府) 호텔로 초대했다. 동류는 다른 사람과 근무시간을 바꾸고, 일파도 유치원을 빠졌다. 정오에 임지강이 차를 가지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보아하니 서른 테이블도 넘게 준비한 것 같았다. 임지강의 친구들도 적지 않게 왔다. 모두 밖에 놓인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축의금을 냈다. 그것을 전담하는 아가씨까지 있었다. 저렇게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리를 채워주는 것도 다 실력이다. 만약 나였으면 몇 명이나 왔을까. 식사를 하고 동류는 병원으로, 장모는 일파를 데리고 집으로 가시고, 나는 출근을 했다.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서 누군가가 건물 아래에서 “지대위 씨! 지대위 씨!”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직장에서 누가 저렇게 큰 소리로 남의 이름을 부르는지, 나는 화가 나서 그냥 무시해버렸다. 그러자 그 사람이 또 외쳤다.
“집에 큰일 났어요!”
나는 놀라서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면서 일어났다. 창밖으로 머리를 빼고 보니 이웃집 사람이었다. 두 손을 막 흔들면서 외쳤다.
“댁의 아들, 아들이 뜨거운 물에 데었어요.”
나는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손을 막 떨면서 뛰어나갔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구르다가 시멘트 바닥에 펑, 하고 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박았다.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나서 집으로 냅다 달렸다. 일파가 문 앞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자기 발을 가리키면서 “아빠! 아빠!” 하고 울었다. 장모는 정신이 나가서 멍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일파 발뒤꿈치를 살짝 만지자 살갗이 떨어져 나왔다. 일파는 아파서 “아빠! 아빠!”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아들을 안고 뛰었다. 입구에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빈 택시가 보이질 않았다. 나는 경비실에 일파를 앉혀 놓고 섭(葉) 씨에게 아들을 좀 봐달라고 했다. 그가 말했다.
“지 씨, 얼굴에서 피 나.”
그제야 나는 눈가가 따끔따끔 거리는 것을 느꼈다. 만져보니 역시 피가 나고 있었다. 나는 기사실로 달려갔다. 차가 한 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한 젊은 기사가 차를 닦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달려가서 그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저 여기 위생청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중의학회 사람입니다. 제 아들이 화상을 입었는데 병원에 좀 데려다 주십시오.”
“중의학회요?”
나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중의학회 지대위요, 지대위, 중의학회!”
그는 나를 쳐다보더니 느릿느릿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이 차는 손(孫) 청장님을 공항까지 모셔다드릴 차입니다. 그러면 먼저 손 청장님께 가서 부탁을 좀 드려 보시죠. 손 청장님, 아시죠?”
“제발 부탁 좀 합시다. 저 좀 살려주세요.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젭니다. 제 아들이요.”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땅에 무릎을 꿇고 부탁했다. 그가 말했다.
“정말 어쩔 수 없습니다. 손 청장님이 금방 내려오실 겁니다.”
그때 마침 서(徐) 형이 차를 몰고 들어왔고, 마 청장이 그 차에서 내렸다. 나는 얼른 달려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무릎을 굽히면서 부탁했다. 마 청장은 바로 말했다.
“서 씨! 다녀오지. 얼른 갔다가 얼른 와!”
나는 죽어라 절을 해대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마 청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일파를 성(省)인민병원까지 데려다 주고는 서 형이 말했다.
“난 먼저 가봐야겠네. 청장님 퇴근시켜 드려야 하거든.”
나는 일파를 안고 피부과로 갔다. 일파는 하도 울어서 목소리가 다 잠겼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어 먼저 진료를 받으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몸을 숙여서 “감사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하고 굽실거렸다.
의사가 일파의 상태를 보더니 말했다.
“입원해야겠습니다.”
“해야죠, 입원. 네, 입원해야죠.”
“우선 바지를 좀 잘라 주세요. 벗기지 마시고요.”
나는 일파를 의자에 앉히고는 가위로 바지를 위에서 아래로 잘라나갔다. 일파는 더 이상 울 힘도 없는지 그저 아파서“아빠! 아빠!”하고 불러댔다. 나는 손이 떨리고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내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돌아가서 의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손이 너무 떨려서 가위질을 못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말하면서 나는 두 손을 모아 굽실거리고, 또 두 무릎을 연신 굽혔다 폈다 했다. 의사가 말했다.
“그냥 가서 입원수속부터 밟으세요.”
나는 입원수속 서류를 가지고 접수처로 갔다. 줄 맨 앞으로 끼어들다가 막 돈을 내려고 준비하던 여자와 쾅, 하고 부딪치고 말았다. 여자가 뒤에서 말했다.
“세상에 뭐 저렇게 몰상식한 사람이 다 있어.”
나는 몸을 돌려 두 무릎을 연신 굽실거리면서 말했다.
“제 아들이 크게 다쳤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데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접수처 사람이 말했다.
“이천 위안입니다.”
나는 마치 못 알아들은 것처럼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천 위안입니다.”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저는 위생청 사람입니다. 지금 당장 그렇게 큰 돈을 갖고 있지 않아서 그러는데, 일단 접수부터 하고 조금 있다가 나머지를 내도록 하지요. 보충해서….”
그는 나를 무시하고 말했다.
“다음 사람!”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이백 위안을 탈탈 털어서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내 손을 밀어냈다.
내가 말했다.
“저 위생청 사람입니다. 중의학회! 지대위, 지대위.”
그가 말했다.
“들어본 적 없어요. 다음 사람!”
나는 창구를 막고 서서 말했다.
“중의학회! 지대위!”
“왜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에요? 공공장소에서 왜 소리를 지르냐고요!”
나는 내 손에 총이라도 들려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분명히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저 상판때기를 향해 마구 갈겨댔을 것이다.
나는 다시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가 말했다.
“선불이 원칙입니다. 저도 규칙을 위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무실로 곽(郭) 주임을 찾아가 보세요. 뭐라고 하는지….”
“우선 사람부터 살려주세요. 우리 아들….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사람 목숨이요.”
“전에도 일단 병부터 봐줬더니 치료만 받고 그냥 도망가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우리가 어디 가서 그 사람을 찾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원칙이 생긴 겁니다. 아무도 위반할 수 없습니다.”
“저 위생청에 있는 사람입니다. 중의학회, 지대위, 지대위라고요!”
“들어본 적 없습니다. 별 수 없습니다.”
“의사 선생님, 당신은 의삽니다. 의사라고요. 인도주의를 펼쳐야 하는, 인도주의요. 우리 아들이 여기 병원에 온 지가 벌써 언젠데….”
그가 두 손으로 나를 밀면서 말했다.
“방법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중국말 못 알아들으세요?”
나는 닥치는 대로 아무 방이나 들어가 보았지만 곽 주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밖에 서서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곽 주임님, 피부과의 곽 주임님!”
그러자 곽 주임이 나왔다. 그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누가 여기서 소리를 지르는 겁니까?”
나는 몸을 깊숙이 숙여 인사하고 두 손을 모았다. 또 무릎을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구부리면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가 물었다.
“위생청의 누구 아는 사람 있습니까?”
“마 청장님, 손 부청장님요.”
그는 나를 데리고 가서 전화를 걸었지만 두 분 다 자리에 없었다.
“또 아는 사람 없습니까?”
“중의학회로 전화 하면 안 될까요?”
그러나 그의 책상에 있던 조직도에는 중의학회는 나와 있지도 않았다. 그는 조직도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여기서 또 아는 사람이 있나요?”
“원진해와 정소괴요.”
“원 처장이나 정 처장 정도만 되어도….”
약정처(藥政處)로 전화하자 다행히도 정소괴가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사정을 얘기하고 곽 주임을 바꿔주었다.
전화를 받자 곽 주임이 말했다.
“정 처장님, 얼굴 뵙기 힘듭니다. 언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내가 옆에서 안달하고 다그치자, 그가 말했다.
“정 처장님 말씀인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바로 수속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다시 접수처로 가서는 입원증에 사인을 해주었다. 수속이 바로 끝났다.
일파는 환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곧 의사가 왔다.
“가벼운 화상은 아니군요."
내가 말했다.
“흉터 남지 않게 제일 좋은 약을 써주십시오. 저한텐 얘가 다입니다.”
간호사는 바지를 자르고 천천히 벗겨냈다. 일파는 아파서 “엄마! 살려줘! 살려줘!”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빨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살살 좀 하세요, 살살.”
간호사가 손을 멈추더니 말했다.
“그럼 아버지가 직접 하세요!”
나는 힘껏 두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손이 말을 안 들어서요.”
나도 모르게 손이 모아지고, 무릎이 땅에 닿을 정도로 굽혀졌다. 일파의 바지를 다 뜯어내자 살가죽이 떨어져 바지에 붙어 있었다. 가녀린 다리에 분홍색 살이 다 드러났다. 나는 몸이 휘청거리면서 눈앞이 캄캄해져서 벽에 기대어 미끄러져 내렸다. 얼굴이 낮은 궤짝에 부딪쳤다. 나는 그 궤짝을 짚고 일어섰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에서는 마치 칼로 심장과 폐를 피투성이 조각조각으로 찢어내는 것만 같았다. 눈을 뜨자 의사가 나를 멸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밖으로 나가라는 표시를 했다. 내가 로봇처럼 문 밖으로 나오는데 간호사가 뒤를 따라왔다. 밖으로 나오자 뒤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났다. 일파가 안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나는 잠시 밖에서 미친 듯이 뛰다가 병실 복도 끝 창문 앞에 섰다.
나는 밖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마치 보이지 않는 먼 곳에 무슨 원수라도 있는 듯이. 그리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뭔가를 때리고 싶었다. 이렇게 미운데, 미워 죽겠는데, 그러나 내가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누구를 때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앞에 있는 유리라도 내리쳐서 내 주먹에서 피가 줄줄 난다면 마음이 편하겠다. 갑자기 나는 아무 생각 않고 내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쳤다. 힘껏 몇 대 쳤다. 아팠지만 한편으론 시원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시원하다! 시원해.”
몇 대를 더 치고 나서 나는 두 손으로 벽을 짚고 몸을 구부려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쿵쿵 소리가 울렸다. 나는 중얼거렸다.
“네가 이래도 안 죽나 보자! 이래도 안 죽나 보자!”
동류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가 다시 몸을 돌려 돌아왔다. 수화기를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넋이 다 나간 동류가 귀신같은 걸음으로 입원실에 들어섰다. 내가 말했다.
“여보, 일파 잠들었어.”
그녀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이불을 걷어서 일파의 다리를 보더니 침대 머리에 주저앉았다.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나를 겁나게 했다. 차라리 울기라도 하면 나을 텐데…. 잠시 후에 임지강과 동훼, 장모님이 오셨다. 장모님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두서없이 말했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제대로 설명을 했다. 결론은 주전자에 물을 끓여 도마 위에 올려놓았는데, 어떻게 떨어졌는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내가 말했다.
“일파가 워낙 어수선해서 아무거나 다 건드리잖아요.”
동류가 말했다.
“그럼 당신 얘기는 이게 다 애 잘못이라는 거예요?”
동훼가 말했다.
“불행 중 다행이야. 겨울이라 두꺼운 바지를 입었으니 망정이지, 여름 같았으면 다리가 다 익었을 거야.”
동류가 말했다.
“오늘 안 터졌어도 언젠가는 터졌을 일이야. 그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뭘 제대로 볼 수 있겠어? 몇 년 동안 주방도 한 칸 없고….”
그녀 말에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나 때문이구나! 다른 사람을 탓할 게 아니구나! 언제나 나한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다 내 잘못이었구나! 나를 너무 약하게 때렸다, 더 세게 때렸어야 했다. 나는 엎드려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머리 가죽이라도 벗겨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동류는 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지강과 동훼가 달려와서 내 손을 하나씩 잡아끌었다. 내가 말했다.
“그냥 두게, 그냥 둬! 이렇게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아. 나는 아빠 노릇할 자격도 없어.”
그들이 내 손을 떼어놓았다. 오른 손에 한 줌 뽑힌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동훼가 말했다.
“형부, 얼굴에서 피나요. 얼굴 반쪽은 부어올랐고요.”
동류는 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모님은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 나는 뽑힌 머리카락을 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간호사가 일파에게 링거 주사를 놓으러 왔다. 장모님이 말했다.
“애 혈관이 가늘어서, 조심하세요.”
임지강이 말했다.
“여기서 제일 훌륭한 간호사로 불러주세요. 돈은 따로 더 낼 테니.”
간호사는 입을 삐죽거리고는 일파 손을 들고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손바닥으로 찰싹, 찰싹 때린 뒤 천천히 바늘을 찔렀다. 일파가 깨어서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엄마! 엄마!”
간호사가 말했다.
“움직이니까 바늘이 안 들어가잖아. 저쪽 손!”
동훼가 말했다.
“소아과 간호사 오라고 해요.”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간호사가 말했다.
“다들 그렇게 보고들 계시니까 주사를 놓을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나가서 다른 간호사를 불러왔다.
“소아과 간호사예요.”
동훼와 임지강은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새로 들어온 간호사가 말했다.
“주사 놓기도 전에 떨리네요.”
그때 동류가 말했다.
“다 나가요, 다 나가!”
우리는 모두 병실에서 나왔다. 잠시 후 동류가 나와서 말했다.
“두 번이나 더 했는데도 안 됐어요. 손에 있는 혈관이 다 터졌어요.”
우리는 들어가서 보고는 애가 탔다. 동류가 말했다.
“제가 해 볼게요.”
간호사들이 동의하지 않자 동류가 말했다.
“이 일만 칠팔년 했어요. 당신들 간호학교 들어가기도 전부터 한 일이라고요.”
동류가 그들에게 간호사증을 보여주자 그제야 동의했다. 동류는 일파의 이마에 머리를 조그맣게 깎고는 잠시 동안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한테 일파 머리를 잡고 있으라고 했다.
“난 손에 힘이 없는데….”
임지강이 일파의 머리를 잡았다. 동류는 주사기를 잡더니 날렵하게 찔러 넣었다. 피가 도는 것이 보였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 간호사는 혀를 내두르고 서 있었다.
임지강이 도시락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동류가 말했다.
“지금 밥이 넘어가요?”
임지강은 도시락을 옆에 치워놓고 더 이상 그녀에게 먹으라고 권하지 않았다. 동훼가 말했다.
“형부, 가서 얼굴에 피 닦으세요. 이쪽은 다 부었어요.”
나는 그제야 뺨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내가 말했다.
“부었어? 쌤통이군.”
동훼가 손수건을 건네면서 자기 눈가를 가리키고 말했다.
“여기 피 좀 닦으세요.”
나는 손수건을 받지도 않고 그냥 옷소매로 문질렀다. 밤이 깊어 동류와 나만 남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밥 한 술 뜨라고 했더니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빤히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묘사하기 힘든 눈빛이었다. 한참 후에 그녀가 말했다.
“넘어가거든 당신이나 먹어요.”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배가 고파도 먹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주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 자신에게 벌을 주고 싶었다. 그래야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덜해질 것 같았다. 잠시 후 나는 목이 말랐다. 그때 문득 계속 아무것도 마시지 않는 것이 나를 벌주는 가장 좋은 방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곯게 하는 벌은 너무 가볍다. 나는 밤새도록 참았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갈증이 느껴지자 나는 고통의 쾌감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목이 쉬기 시작했다. 침도 다 말라버렸다. 목이 타는 와중에 나는 만약 성냥 하나를 갖다 그으면 입 안에서 불이 확, 하고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참기 힘들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로 될 것 같아? 더 참아야 해. 최소한 쓰러질 정도는 돼야지.”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옆 입원실에 있는 여자 아이 침대 주위에 꽃바구니가 잔뜩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침대 아래에도 네다섯 개가 더 있었다. 시(市) 공상국 부 국장 딸이 맹장염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 일파가 남보다 못한 게 뭔데? 어떻게 꽃바구니를 보내는 사람도 없고, 보러 오는 사람도 하나 없지? 꽃바구니는 화려했지만 세상은 정말 파렴치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파렴치할 수가…. 국장 부인이 일파의 상황을 듣고 우리 병실로 꽃바구니 두 개를 들고 왔다. 나는 얼른 거절의 손짓을 해서 그녀의 말을 막았다. 의사가 진찰을 하고 나가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나왔다. 아들에게 꽃바구니를 두 개 사다 주고 싶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모든 것들 위에 한 층의 암록색 기운이 씌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세상이야. 이게 바로 세상이라고.”
그렇게 계속해서 되뇌다가 나는 뭔가 새로운 발견, 생활의 히든카드가 확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한 줄기 강렬한 빛이 그 어둡고 암울한 곳에 놓인 사물들을 환하게 비추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방금 지나간 어제가 아주 멀게만 느껴졌다.
“이게 세상이야. 이게 바로 세상이라고.”
일이 닥친 다음 두 손 모아 부탁한들 무슨 소용인가? 무릎 꿇어가며 부탁한들 무슨 소용인가? 울고 싶어도 눈물 흘릴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지대위, 너 언제까지 아무도 너를 꺾지 못한다고 큰 소리만 치고 있을 건가? 나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오랫동안 거절했었다. 그러나 생사의 기로에 서서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식으로 세상을 인식할 방도가 없다.
나는 내 발견에 흥분했다. 정소괴 그치들이 벌써 옛날부터 실천해 오던 원칙. 사실 나도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에야 뼈저리게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용기가 솟았다. 갑자기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 흥분하니 입안에 침이 다 고이고 굳었던 혀도 촉촉하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벌주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나서 침을 뱉어 버리려 했다. 세 번이나 뱉어도 아무것도 뱉어지는 게 없었다. 손바닥에 대고 힘껏 토해 봤지만 손바닥에는 침 한 방울 묻어나지 않았다. 마음속에 독한 기운이 감돌았다. 손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었다. 행인 중에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오른손의 집게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겨 그대로 쏴 죽이는 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벌써 아흔아홉 명이나 쏴 죽였다. 그때, 사실 제일 먼저 죽여야 할 인간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을 들어 태양혈에 겨누고 집게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마음속에서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머리가 흔들거렸다. 그래도 나는 살아 있었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졌다. 겨울에 이런 장대비가 내리다니….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고, 금세 길에는 사람들이 거의 안 남았다.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냥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빗방울이 얼굴을 따라 입가로 흘러내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혀로 입가를 핥았다가 바로 내가 지금 벌을 서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나서 입을 꽉 다물었다. 한 떠돌이가 빗속을 하염없이 걸으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묻지 말아요. 내 고향은 먼 곳이라오. 왜 유랑(流浪)하나, 멀리 유랑하나, 유랑….”
나는 그를 가로막고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봐요! 비가 오고 있어요.”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늘은 비를 내리려 하고, 아가씨는 시집을 가려 하고, 그냥 가게 두세요.”
그리고는 계속 갔다. 나의 머리카락이 빗물에 다 쓸려 내려왔다. 나의 두 눈이 흐릿해졌다. 나는 옷을 걷어 올려 얼굴을 문지르고는 노래를 불렀다.
창랑의 물 맑으면 내 갓끈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 흐리면 내 발 씻으면 되지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나도 모르게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를 걷다가 나는 그곳이 재개발중인 구(舊) 시내라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집의 벽에는 빨간 페인트로 크게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그 가운데에 “철거”라고 쓰여 있었다. 벌써 적지 않은 집들은 지붕이 부셔져 있었다. 나는 문 하나를 밀어 제쳤다. 안에 있던 젊은 남녀가 화들짝 놀라서 몸으로 뭔가를 가렸다. 집 안에는 이상한 향이 퍼져 있었다. 나는 그들이 마약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말했다.
“그냥 피워요. 뭐 하는지 다 아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왔다. 계속 가자 막다른 골목이었다. 나는 계단 위에 주저앉았다. 처마 위의 물이 하나로 모여서 내 몸 위로 떨어졌다. 나는 추위에 몸을 떨면서 말했다.
“좋다! 좋아, 좋아.”
몸을 뒤틀어 얼굴을 들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이 내 얼굴에 맞고 튀었다. 갑자기 참지 못하고 입이 벌어졌다. 그 물을 받아 꿀꺽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아, 시원하다! 물이라는 게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입가에 뭔가가 묻었다. 혀를 갖다 대어보니 썩은 나뭇잎이었다. 비리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나는 꾹꾹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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