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8일은 중동 땅에서 제2차 인티파다(intifada, 우리말로는 봉기)가 일어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그 3년 동안의 유혈투쟁에서 3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의 평화운동 단체인 베첼렘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수상의 철권통치와 점령정책에 비판적인 노선을 걸어왔다. 이 베첼렘이 최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2,201명, 이스라엘 794명이 희생됐다. 희생자 비율은 거의 3 대 1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이 가운데는 하마스 간부들을 비롯, 그동안 이스라엘군의 표적사살로 죽은 팔레스타인 무장요원들이 207명 포함돼 있다.
(사진 1) 이스라엘 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한 희생자의 유족(서안지구 헤브론). (사진-김재명)
8백명 가까운 이스라엘 쪽 희생자는 대부분 자살폭탄 공격으로 죽은 이들이다. 이스라엘 군 사망자는 246명(이스라엘 희생자는 민간인 7, 군인 3의 비율). 그동안 100차례가 조금 넘는 자살폭탄 공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팔레스타인 투쟁요원(이스라엘에서 말하는 ‘테러리스트’)는 129명으로 집계된다. 현재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 죄수는 5,278명. 야세르 아라파트를 이을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마르완 바르구티(팔레스타인 최대정치조직인 파타 서안지구 사무총장)도 그 가운데 하나다.
6년 넘게 이어지다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막을 내렸던 1차 인티파다(1987~93년)에서의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166명, 이스라엘 쪽은 이보다 훨씬 적은 90명이었다. 1차 때는 팔레스타인 쪽에 무기가 별로 없었다. 이번 2차엔 AK-47 소총 수준이지만 그런대로 무장돼 있고, 하마스(1987년 말 창립)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들이 죽음을 마다한 항쟁이 드센 까닭에 이스라엘 쪽도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
***유혈사태의 불길 당긴 샤론**
이 유혈사태의 원인제공자로 비난 받는 인물이 아리엘 샤론 수상(당시 야당인 리쿠드당 총재)이다. 2000년 9월 28일 그가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에 발을 들여놓자,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항의가 벌어졌고 인티파다로 이어졌다. 샤론은 그가 국방장관으로 있던 지난 1983년 레바논 파시스트 정당인 팔랑헤당 소속 기독교 민병대가 두개의 팔레스타인 난민수용소(사브라, 샤틸라)에서 무차별 살상으로 많은 난민들을 죽인 사건(국제적십자사에 따르면, 피살자는 2,750명)에 연루된 인물이다. 아울러 샤론은 “예루살렘은 분리할 수 없는 영원한 이스라엘 수도”란 발언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언제가 다가올 독립국가의 수도로 꼽고 있는)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쪽에 내어줄 생각이 없음을 밝혀왔었다. 그런 샤론이 이슬람 성지인 알-알크사 사원에 발을 들여놓자,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가 터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진 2)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피해 몸을 웅크리며 달아나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서안지구 라말라) (사진-김재명)
“내가 총리에 오르면 1백일 안에 인티파다를 끝장내겠다. 내게 기회를 달라.” 2001년 초 이스라엘 선거에서 샤론은 이렇게 장담을 하며 당시 에후드 바라크 총리(노동당)를 밀어내고 총리에 올랐다. 그의 간판상품이자 특기는 강공책이다. 그러나 1천일이 지나도록 인티파다가 이어지는 가운데, 숱한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샤론은 결국 중동 땅에 숱한 피를 뿌린 채 이스라엘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이다. 국제적인 인권기구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도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한 끝에, “사람목숨이 너무 값싸게 희생되고 있다”면서 ‘치명적인 무기를 지나치게 사용함으로써 불법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샤론 정권을 비판한 바 있다.
19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전시 시민의 인명보호와 관한 제4차 제네바협정에 준하는 지역으로 이해된다. 점령군의 피점령지 시민보호규정은 어떠한 경우든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점령군에 의한 자의적인 살인은 제네바협정의 명백한 위반이다. 국제법 규정에 따르면, 시민은 공격목표에서 제외돼야 한다. 이 규정은 전면적인 무장투쟁일 때에도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군이나 정착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 무장요원은 피점령지 시민으로서의 피보호 자격을 잃는다고 주장한다. 제네바협정의 부속의정서(Protocol) 제51조는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는 동안” 시민으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벼랑으로 내몰린 생존의 위기**
3년의 유혈투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쪽에 희생자를 양산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주었다. 특히 팔레스타인 경제는 오랜 가뭄을 겪어 말라 넘어지는 나무처럼 거의 고사(枯死) 상태다. 인티파다로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수출길이 막힌 탓이다. 세계은행 쪽 자료로는 팔레스타인 실업율은 현재 30%. 그러나 가자 지구의 경우 50%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60%가 하루 2달러 아래의 수입으로 입에 풀칠을 하는 빈곤 상태에 내몰렸다. 세계은행 자료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소득이 인티파다 이전에 비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사진 3) 헤브론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이스라엘 탱크. (사진-김재명)
인티파다가 일어나기 전에는 약 14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공장 등에 저임금 노동자로 일해왔다. 그러나 인티파다 뒤 이스라엘 쪽에서 도로를 막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다. 베들레헴 검문소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다 이스라엘 병사들에게 제지당한 한 무리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필자에게 털어놓은 비탄 어린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우리는 감옥 아닌 감옥에서 죄수 아닌 죄수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 이런 감옥에서 풀려날까...”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노동을 하면서 돈을 보내주는 가족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절대빈곤의 벼랑에 내몰린 상황이다. 하마스의 빈민구호사업도 미국-이스라엘의 자금줄 차단 노력으로 어려움에 부딪쳤다.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힘들여 농사를 지어도 판매길이 막혀 울상이다. 필자는 지난해 여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한 농부로부터 5세켈(약 1천원) 어치의 토마토를 샀었다. 그는 무려 15개쯤의 토마토를 봉지에 담아주었다. 인티파다가 일어나기 전에는 이스라엘 쪽으로 팔려나가던 토마토가 판로를 잃었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소득이 줄어들어 과일 사먹을 돈을 아끼니 토마토가 밭에서 썩어나가는 상황이었다. 이스라엘의 1인당 국민소득은 16,750 달러(세계은행2001년), 팔레스타인은 1,350달러다. 이스라엘이 12배나 높다.
상황이 좋지 못하기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1948년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에 내몰렸다”는 표현들을 흔히 쓸 정도다. 예루살렘 시내를 걷다 보면 50%, 심지어는 80% 할인 광고를 상점 입구에 내붙여놓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2001년도 이스라엘 경제성장률은 1948년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0.5%)를 기록했고, 2002년에도 -1.1%를 기록했다. 지난 8월 이스라엘 국립은행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의 경제적 손실은 28억 달러. 관광산업 붕괴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예루살렘의 큰 호텔들 가운데 상당수가 관광객들 발길이 끊어져 문을 닫은 상태다. (팔레스타인 쪽은 사정이 더 험악하다. 가자 시내에서 필자가 묵었던 ‘팔레스타인 인터내셔널’ 호텔은 객실 100개의 호텔이었는데, 손님은 오로지 필자, 일본인 사진작가를 합쳐 단 두 명이었다).
(사진 4) 이스라엘 군의 포격으로 또다시 집을 잃고 천막에서 지내는 두 팔레스타인 여인 (가자 지구 남쪽 칸 유니스 난민수용소). (사진-김재명)
모든 면에서 극단적인 대립을 하는 이-팔 양쪽이지만, 의견일치를 보이는 대목이 하나 있다. “지금의 유혈사태가 멈추고 평화가 와야 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부시-샤론-아바스 3자가 합의했던 중동평화 단계적 이행안(이른바 road map)이 좌초된 것은 정치적 측면뿐 아니라 경제 측면에서도 큰 타격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군사부문의 과다한 지출로 큰 폭의 재정적자를 기록중이다. 이스라엘 실업률은 11%. 중진국 수준에선 높은 편이다. (지난 8월 이스라엘 국립은행은 소비재와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경제가 조금씩 되살아날 조짐을 보인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 유대인들이 ‘모국을 살리자’며 보내주는 연 100억 달러의 지원금과 미 부시행정부의 연 20억 달러 규모의 경제지원은 이스라엘 경제회생의 젖줄이다).
문제는 팔레스타인이다.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수출입이 막혀, 경제가 벼랑끝에 내몰린 상태다.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 빈민들에게 나눠줄 식량과 의약품 등 구호물품을 실은 차량들의 통행마저도 걸핏하면 ‘보안’을 구실 삼아 막기 일쑤다. 임산부가 출산을 위해 시내의 큰 병원으로 가려 해도 이스라엘 군은 보안을 내세워 막는다. 지난 8월 서안지구에서는 한 임산부가 나블러스의 병원으로 가려다 검문소 통행을 저지 당한 탓에 길에서 아이를 사산(死産)하는 아픔을 겪었다. 인티파다 3주년을 맞아 20개의 국제적인 구호단체들이 함께 이스라엘 군에게 통행자유를 보장하라는 성명을 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서안지구에는 약 450개의 이스라엘 군 검문소가 설치돼 있다.
***"봉쇄정책은 곧 경제전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노동장관 가산 카티브는 팔레스타인의 대표적 온건파 지식인의 한사람이다. 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이스라엘 취업을 원천적으로 막게될 방벽 건설은 팔레스타인 내 도로 봉쇄정책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경제를 마비시킬 것”으로 진단했다. 팔레스타인 주요 도로를 봉쇄하는 샤론의 정책은 ‘팔레스타인을 서안지구와 가자로 분리시키고, 그 안에서도 다시 도시와 마을들을 고립시켜 팔레스타인 경제를 마비시키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카티브 장관은 2002년 초부터 샤론이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방벽 건설이 나치 히틀러가 세웠던 유대인 격리지구 게토(ghetto)의 복사판이나 다름없다고 여긴다. 방벽 건설과 유대인정착촌 건설은 지난 1967년 6일 전쟁 뒤 유엔이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요구했던 유엔 결의안 242에 바탕, 중동평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그는 “지난날 소련이 막강했을 때 세운 동베를린 장벽도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막을 수 없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끝내 무너졌다. 이런 역사적 실패 사례를 샤론은 잊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안지구 라말라 외곽에 자리한 비르제이트 대학의 아델 자그하 교수(경제학)는 “인티파다로 이스라엘 경제도 타격을 입긴 했지만, 팔레스타인 경제는 말 그대로 고사(枯死) 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웃 이집트나 요르단에서 넘어오던 물자들이 끊겨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금 심각한 생필품 빈곤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스라엘 군의 봉쇄 정책은 팔레스타인 경제를 마비시켜 항복을 받아내려는 ‘경제전쟁’이다. “군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을 파괴시키지 못하더라도 경제적으로 말려 죽이는 것은 가능하다”는 게 자그하 교수의 우울한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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