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양심의 논리와 생존의 논리**
우리 열 명은 수원호텔에 합숙하면서 정소괴의 사회로 모아온 자료들에 대해 이틀간 토론을 계속하고, 또 조사보고에 관한 개요를 작성했다. 정소괴가 그 개요를 가지고 위생청에 간 사이 우리는 하루를 쉴 수 있었다. 그가 그 개요대로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위생청의 지시를 가지고 돌아왔다. 우리는 보고서를 나누어 작성하면서 서로 의미심장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한 사람이 말했다.
“이처럼 정확한 보고서는 세상에 몇 안 될 거야. 봐, 소수점 이하 두 자리까지 다 계산했잖아.”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이런 정확성은 정 처장의 지휘 하에서만 가능하지. 물론 강 주임의 지도편달도 빼놓을 수 없고.”
강 주임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척했다. 이렇게 심각한 일도 이런 식으로 조작이 가능하다니,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다. 윗사람이 바라는 일이면 어떤 식으로든 상황을 왜곡시키고 왜곡시켜서 결국은 그분의 뜻대로 결론을 몰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제야 윗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를 알 수 있었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실제로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른 걸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사실 다른 사람이 우리가 보기를 원하는 그런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발병률은 지난 번 통계보다는 약간 오른 수치였다. 그 원인은 몇 년 동안 계속된 큰 홍수였다. 삼년 내로 발병률을 3.2 퍼센트 이하로 낮춘다는 것을 다음 단계의 목표로 설정했다. 나는 삼년 후의 통계수치까지도 벌써 알 수 있다. 보고서를 최종 검토할 때까지도 나는 발버둥치고 싶었다. 내가 말했다.
“계속된 큰 홍수로 발병률이 더 올라갔을 겁니다. 큰 홍수가 났단 말입니다.”
아무도 내 말을 받지 않았다. 한참 후에 누군가가 말했다.
“됐어요, 지대위 씨! 됐어요.”
“그러면 이렇게 끝인가요?”
강 주임을 쳐다보았다. 그가 말했다.
“처음부터 다시 할 수는 없는 거잖소? 아니면 대위 씨가 정 처장과 마 청장님께 직접 보고를 올리든가. 나더러 다시 하라면 나는 가서 짐 싸겠소.”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따라서 억지웃음을 지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그러니까 너희가 다 인간이고, 또 지식인들이란 말이지. 다들 너무 지나치게 똑똑한 놈들이라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하다 이거지? 그래서 누구 하나 입도 뻥긋하기 싫다 이거지?”
내가 문제를 제기할 때 누구 하나라도 동조해 주면 상황이 좀 바뀔지도 모르련만, 아무도 내 말을 거드는 사람이 없었다. “됐어요.” 그 한 마디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팔아넘겼다. 양심이나 책임의식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다들 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사람 목숨 소중히 여기는 것은 기본 아닌가! 보고서는 백 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 통계수치와 그래프들을 넣어서 책으로 제본했다. 그로써 위생부에 보고할 준비가 끝났다. 마지막 정리 모임은 정소괴가 사회를 보았다. 모두들 이번 표본조사의 수치가 건국 이래 가장 정확한 수치일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구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이게 다 정 처장님 지도 덕분이죠. 정 처장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정확한 수치가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나는 긴장해서 땀이 다 흘러내렸다. 정소괴가 그 말 안에 담긴 의미를 알아듣고 안색이 바뀌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정소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저 말의 진의를 못 알아차릴까? 그런데, 웬걸. 정소괴는 화 난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여기서 인성(人性)의 맹점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저런 입에 발린 소리에 어떻게 한 사람의 판단력이 저렇게 확실하게 무너질 수 있지? 내 참! 앞으로 나도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나 자신부터 얼굴이 두꺼워져야 할 것 같았다. 닭살 돋는 것도 참아야 한다. 내 말을 듣고 상대방이 거부감이라도 일으키면 어쩌나 하는 따위의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일을 성사시키려면 인성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보고서는 이미 올라갔고, 나는 그 무력한 병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한참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옛날 나와 아버지가 그 산골 벽지에서 버둥거리면서 살 때에도 저렇게 무력했었다. 공정함이 과연 시간의 길목에서 저 무력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침묵을 지켰다.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침묵은 곧 동의(同意)이고 공조(共助)였다. 그렇다, 나는 공조한다. 몇 번이나 나는 갑자기 뜨거운 피가 머리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소리쳐 외치자! 외치자! 내게는 소리 내어 외칠 책임이 있다. 이렇게 외칠 수 있는 기회가 인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그러나 내가 거의 결심을 내리려 하는 순간 나는 또 뒤집어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왜? 나로 하여금 소리 내어 외치게 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그것도 별로 확고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주말에 성(省)에서 일하는 중학교 동창 열 명 정도가 호일병네 집에 모였다. 다들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현상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번 조사 나갔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들이 깜짝 놀랄 줄 알았는데, 웬 걸, 아무도 내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이번 일은 내가 위에다 찌르지 않으면 아무도 안 나설 거야. 그냥 이렇게 치울 순 없잖아?”
호일병이 말했다.
“그냥 그렇게 치워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넌 왜 그냥 못 넘어가겠다는 거야? 네가 뭐라고? 자네 일이나 신경 써. 그런 일은 하느님이 알아서 하실 거야. 사회정의 실현하려면 끝도 없어. 그렇지만 자네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유약진이 말했다.
“우리 명 기자 양반까지 말을 저런 식으로 하니, 세상에 무슨 희망이 있겠나?”
호일병이 말했다.
“나는 더 이상 기자가 아니야.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일에 대해 논하지 말랬어(不在其位, 不謀其政). 나도 이젠 양심의 부담이 없어졌어. 사실 그 부담을 견딜 수 없어서 직업을 바꾼 거야.”
당시 그는 대출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의 신경은 온통 어떻게 하면 건설은행의 신용대출 담당 은행원을 일에 끌어들일까 하는 데 쏠려 있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맡은 일이잖아. 나도 내가 조사하러 안 갔으면 입 다물고 있겠어.”
모두들 한숨을 쉬면서, 인생에는 두 가지 논리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양심(良心)의 논리이고 다른 하나는 생존(生存)의 논리이다. 이론상으로는 두 논리는 일치해야 한다. 양심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자기의 생존공간을 넓힐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두 기자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하고는 명 기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유약진이 말했다.
“호일병, 너도 이젠 장사꾼이잖아. 돈으로 된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뭐든 다 돈으로 보이지. 완벽한 하나의 경제동물이 되는 거야.”
호일병이 말했다.
“유약진! 너 지금 연설하냐? 무슨‘정신’이며‘도리’같은 걸 고추마냥 줄줄이 엮어 매달려고? 보기야 좋지만, 정말 현실에 부딪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러는 너는 뭐 매사에 그렇게 공정하냐? 난 네가 나서서 옳은 소리 하는 거 한 번도 못 봤다.”
그 말에 유약진은 발끈해서 공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건 모르는 거지. 모르는 거야.”
내가 나섰다.
“어이, 다른 길로 빠지지 말고, 얘기를 너무 확대하지 말라고. 그럼 자네들 뜻은 내가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거야? 눈앞에 놓여 있는 명백한 사실을 보고도 가만히 있어야 된다고 하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다들 웃으면서 얘기했다.
“대위가 역시 우리보다 가방 끈 몇 년 더 길잖아. 먹물 티가 좀 많이 나지?”
호일병이 말했다.
“몇 천 년 동안 밝혀지지 않은 비밀을 네가 밝혀내겠다고? 그게 그렇게 쉽게 밝혀지는 거라면 굴원(屈原)은 왜 강에 뛰어들었고, 악비(岳飛)는 또 왜 죽임을 당했으며, 유소기(劉少奇)는 또 왜 그런 의문의 죽음을 당했겠어? 그리고 자네 아버님은 또 왜? 자넨 지금 계란으로 바위를 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계란으로 지구를 치겠다는 격이야!”
이 말은 나로 하여금 용기를 잃게 했다. 내가 말했다.
“여기 앉아서 이야기 하기야 쉽지. 그 환자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못 봐서 그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지. 하나는 목숨조차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과, 또 하나는 체면과 정치적 업적이 태산보다 무거운 사람이지. 후자를 위해 전자는 끊임없이 대가를 치루고 있지.”
이에 유약진은 1959년의 여산(廬山) 회의 얘기를 꺼냈다. 원래는 반우(反右)로 시작했던 회의였는데, 팽덕회가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을 반대하는 편지 한 통을 썼다가 갑자기 반혁명 분자로 분류되어서 결과적으로 삼년 동안 모진 고생 다 하다가 굶어죽었다고 했다.
그때 누군가가 배가 고프다며 호일병에게 음식 좀 해오라고 했다. 호일병이 말했다.
“벌써 유일(唯一)호텔에 전화해서 식사를 갖고 오라고 했어. 이미 예약해 놓았다고.”
내가 말했다.
“대출 때문에 걱정하면서 술자리까지 다 준비했다고?”
그가 말했다.
“돈 쓰는 게 습관이 되었는지 고칠 수가 없네. 하루에 백 위안도 안 쓰면 그날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
유약진이 대꾸했다.
“시장은 이렇게 사람을 동화시키고 있어."
한 여자 동창이 말했다.
“호일병, 여자를 다시 만나지 그래? 그러면 최소한 우리한테 밥해 줄 사람은 생기잖아. 결혼 한 번에 겁먹을 것까지야. 여자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혼자가 자유롭고 좋아.”
그 여자 동창이 말했다.
“남자들은 정말 너무 이기적이야.”
밥을 먹으면서 내가 말했다.
“내 문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어.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들 좀 해 봐.”
호일병은 한 쪽 눈은 뜨고 한 쪽 눈은 감은 이상한 모습을 하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유약진이 말했다.
“자식, 너무 독해.”
호일병이 말했다.
“임마, 내가 무슨 뱀 소굴에서 기어 나왔냐? 독하긴….”
내가 말했다.
“이런 비인도적인 일에 난 침묵할 수 없어. 침묵한다는 건 나도 공조한다는 거잖아. 그 환자들에게 너무 미안해.”
유약진이 말했다.
“우리 모두 자기 코가 석 자인데 누가 거기까지 마음 쓸 수 있겠어?”
호일병이 말했다.
“야, 그렇게 마음 쓰이면 조금만 기다려. 이번 일만 잘되면 내가 한 이삼만 위안 기부할 테니 그걸로 약을 사서 보내는 거야. 그리고 나는 방송국에 있는 친구한테 내 얘기를 보도하게 해야지. 나도 손해 볼 수는 없잖아.”
“이삼만 위안으로 몇 명이나 구할 수 있겠어?”
“너는 네가 무슨 하느님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그럼 나도 방법이 없다.”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호일병 너는 방송국에 아는 사람들 많으니까 기자 한 두 명 그 동네로 보내서 뉴스 보도를 내보내도록 하지 그래.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고.”
호일병이 바로 대꾸했다.
“기자가 무슨 신(神)이라도 되는 줄 아냐? 그런 식으로 대책 없는 일을 했다가 무슨 화라도 입으면 그때는 어떻게 빠져나오려고? 다시 말해서, 누구 하나 정확한 데이터 갖고 있는 사람도 없는데 대위 말만 듣고 보도를 하라고? 별볼일 없는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세상의 터럭 하나 변화시킬 수 없는 거야. 귀머거리에 벙어리로 사는 건 지식인으로서 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척하지 않으면 사람 구실도 못할걸?”
이 말은 나를 소스라치게 했다. 또 그것이 바로 포기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희생을 하려면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면 희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말했다.
“이 일은 정말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네. 길이 보이지 않으니.”
유약진이 말했다.
“길은 네 발 아래 있어. 단지 갈 용기가 없는 거지. 가야 할 길이 어디인 줄 알지만 못 본 척하는 거라고.”
“내가 감히 그 길을 갈 수 있겠어? 마누라도 있고 아이도 있는 몸인데….”
나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면서 말했다.
“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사람이지만, 사실은 사람이 동물보다 더 불쌍해. 더 불쌍해.”
말하면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한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이렇게 해보지 그래. 장항향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인 척 가장해서 익명으로 위생부에 편지를 쓰는 거야. 신문사에도 한 통 보내고 말이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으면 그게 너라고 누가 알겠어?”
모두들 그 방법이 괜찮다고 했다. 호일병이 말했다.
“정말 흔적을 조금도 남기지 않는다면 모를까, 그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데 말이야…. 자기가 몸담은 곳에서 생활을 유지하려고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직장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건 논리에 안 맞는 것 같아. 그래서 너희들이 불쌍하다는 거지.”
그날 호일병의 집을 나서면서 나는 마음속에 납덩이가 누르고 있는 듯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호일병이 말했다.
“대위, 그만 둬. 네가 신도 아니면서 그런 데까지 마음 쓸 것 뭐 있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자넬 알아. 평범한 무위(無爲)의 생활을 거부하는 거지. 자기 자신한테 증명해 보이고 싶은 거라고. 지대위라는 사람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난 너를 알아. 그러나 난 말이야, 더 이상 그런 유치한 사명감을 갖고 세상을 대하지는 않아.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환상은 버렸지. 내가 나한테 뭔가를 증명해 보이려고 해도 우선은 나 자신을 지켜야 해. 내가 너보다 좀 나은 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거지.”
내가 말했다.
“그건 나보다 나은 게 아니고 못한 거야.”
나는 그를 이해한다. 신념을 상실한 자는 책임과 희생의 명분을 상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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