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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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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44>

관리들의 생명줄 : 숫자

***44. 관리들의 생명줄 : 숫자**

오후에 소 주임이 사람 둘을 숙소로 데리고 와서 말했다.

“지금 보고 드릴까요?”

강 주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 앉더니 사람들을 천천히 한 번 둘러보고, 우아하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들척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목청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말씀들 하시지요.”

그리고 나를 향해 말했다.

“지대위 씨가 기록을 하십시오.”

소 주임은 기본적인 상황을 소개한 다음 말했다.

“지난 이년 동안 이 지역에 홍수가 나서 호수 물이 제방을 넘는 바람에 다슬기가 밀려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발병률이 더 높아졌고요. 대부분이 만성이라 아직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그 수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땐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발병률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성(省)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강 주임이 웃으면서 말했다.

“매번 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흥정이 빠지지 않는군요. 저희 성(省)이니까 이렇게 아직도 여러 모로 지원하지, 다른 성에선 벌써 흡혈충 관련 질병 약물을 이젠 시중에서 각자 구입하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그것보다 더 많이 지원합니까? 돈은 매년 딱딱 받아먹으면서 발병률은 계속 올라간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도대체 일들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소 주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만 살짝 쳐다보았다.

강 주임이 말했다.

“지대위 씨, 좀 있다가 다시 기록하세요.”

나는 기록하던 손을 멈췄다.

소 주임이 말했다.

“발병률은 확실히 높아졌습니다. 저희가 전체 집단을 조사해본 것은 아니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건 저희가 일을 소홀히 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제가 오랜 시간 이 사람들을 데리고 농촌들로만 뛰어다니다보니….”

그가 옆에 있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들이 바로 말했다.

“소 주임님은 매일 농촌으로 돌아다닙니다. 오죽하면 사모님께서 다 불평을 하시겠습니까.”

소 주임이 말했다.

“발병률이 상승한 건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저희 몇몇이 홍수를 막을 수는 없잖습니까?”

강 주임이 톡 쏘았다.

“외적인 요소를 너무 강조하는 건 듣기 좀 그렇군요.”

소 주임이 말했다.

“그럼 위생청에 어떻게 보고하실 생각이신지….”

강 주임이 말했다.

“기본적으로 지난번과 같은 수준이라고 해두지요. 홍수까지 고려해서 말입니다. 사실 홍수만 아니면 수치가 내려갔어야 정상 아닙니까? 도대체 그 예산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소 주임이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발병률은 높아졌습니다. 원래의 수치는 위생청의 지시에 따라 지난 몇 해 동안 억눌러왔던 것입니다. 위 국장님께서는 올해에는 사실대로 조사해서 내부적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작성한 후 그 데이터를 기초로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생각이십니다.”

강 주임이 말했다.

“'내부적으로'라니요? 그럼 공개적으로는 없는 걸 갖고 거짓말을 한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내가 물었다.

“현재 발병률을 추정한다면?”

소 주임이 말했다.

“6 퍼센트 정도.”

나는 깜짝 놀랐다. 지난 번 통계결과보다 거의 배나 뛴 것 아닌가? 강 주임은 바로 얼굴색을 바꾸면서 말했다.

“자세하게 조사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 수치를 발표하는 건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성 위생청은 말할 것도 없고 위생부까지 흔들릴 겁니다. 소 주임님,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요? 예산만 생각하고 이야기 함부로 하시면 곤란합니다. 위생청에서는 매년 예산을 올리는데 오히려 발병률이 상승했다니…. 당신들 일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소 주임이 말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작년 홍수로 호수가 다 범람해서 한 달도 넘게 물이 안 빠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통에 온갖 종류의 다슬기가 다 밀려 들어왔고요.”

강 주임이 말했다.

“만일 방금 말씀하신 수치가 사실이라면 위생청에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회계처에서 감사단을 파견해서 예산 사용 내역에 대한 조사에 즉시 착수하게 될 겁니다.”

나는 정말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산을 어디다 어떻게 썼냐고? 아까 받은 고급담배가 쇼핑백에 그대로 들어 있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뛰어난 연기력, 중요하지, 중요해!

소 주임은 당황해서 말했다.

“전체 집단을 조사한 결과는 아닙니다. 과장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과대평가된 것일 수도 있단 말입니다.”

강 주임이 말했다.

“예전에 약이 없을 때도 발병률이 4퍼센트 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약도 있고, 약 가격도 내리고, 약효도 개선되었는데 발병률이 올랐다고요?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소 주임이 말했다.

“위생청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지난번과 같은 수준, 그 수준으로 하지요. 사실 위 국장님도 위생청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저 발병률은 작년 수준으로 하더라도 예산은 좀 늘려 주십사 하는….”

강 주임이 말했다.

“그 문제는 조사 끝나고 다시 이야기합시다.”

최후에는 샘플 조사할 대상지역을 확정했다. 소 주임은 호수 부근의 장항향(長港鄕)으로 하자고 했지만, 강주임이 말했다.

“아무래도 풍택향(豊澤鄕)으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풍택향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구릉지대가 나왔다. 나는 참지 못하고 불쑥 말해버렸다.

“풍택향이라면 거의 산자락 아닙니까?”

강 주임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장항향의 발병률이 더 높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아닙니까? 대표성이 없어요. 하긴 풍택향도 대표성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강 주임은 두 향 중간의 오화향(五華鄕)으로 결정하고 싶어했다. 소 주임이 말했다.

“오화향은 호수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물이 거기까지 흘러들지는 않았습니다.”

말하면서 그는 지원을 요청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강 주임께서 하신 말씀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강 주임은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눈만 몇 번 깜빡였다. 나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 주임이 말했다.

“만약 발병률에 눈에 띌 만한 변화가 발생하면 위생청만 놀라고 감사단 파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자칫하면 위생부에서까지 감사가 내려올지도 모릅니다.”

소 주임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업무순서를 상의했다. 자리를 뜨면서 소 주임이 또 말을 꺼냈다.

“사실은 저희 위 국장님께서 이번 샘플 조사 대상지를 가능하면 호수 주위의 몇 개 향(鄕)으로 해달라고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흡혈충 조사 아닙니까.”

강 주임이 말했다.

“무슨 이야기하시는 줄은 알겠습니다. 저희도 최대한 신경 쓰겠지만, 예산 문제라면 전 성에서 일괄적으로 정합니다.”

소 주임이 말했다.

“그러면 제가 위 국장님께 위생청의 입장을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아마 현 차원에서 위생청으로 따로 연락이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을 좀 봐가면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 어떨지….”

강 주임은 무표정하고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은 우리더러 며칠 더 기다렸다가 조사를 시작하라는 말입니까? 시간 맞춰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그 잘못은 저희가 뒤집어쓰게 됩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겁니다.”

소 주임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자리를 떴다.

강 주임은 소 주임 들으라는 듯 그의 등에 대고 코를 높이 쳐들면서 말했다.

“일개 계장 정도가 말이야, 위생청 안에 책상도 하나 못 들이미는 주제에 내가 예의 갖춰서 주임, 주임 하고 불러주니까 이젠 아주 나와 흥정을 하려고 들어.”

듣는 내가 다 기분이 나빴다. 아직 계장도 못 달고 있는 내 앞에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강 주임의 얼굴을 보아하니 그는 아직 자기가 방금 실수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이런 인간들은 어떨 때는 무지 민감하면서 또 어떨 때는 무지 둔하단 말이야. 주로 누구를 상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지. 그들의 감각기관은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만, 예를 들어 대단한 어르신이 자리를 함께 했다거나 하는 상황에서만 제 기능을 발휘하나 보다.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그도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했다.

“지대위, 당신 위생청 사람 아냐? 위생청의 입장에서 얘기를 해야지.”

내가 말했다.

“요 몇 년 동안 홍수가 많아서 발병률이 높아졌다는 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수치를 보고하면 위에서 놀라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보고 안 하면 피해를 입는 것은 서민들이죠.”

강 주임이야 위생청에서 기껏해야 겨우 일개 과장에 불과하고 또 직접 나와 관련되어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별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러자 그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그래도 흡혈충 질병예방과 주임일세. 코딱지만한 감투지만 난들 좋은 일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 왜 없겠나. 나도 아직 그렇게 속까지 시꺼멓지는 않아. 그렇지만 일단 위생청에 몸담고 있는 바에야 어쩔 수 없지 않나. 누가 행여 뒤에서 의자라도 잡아 빼면, 톡 건드리기만 해도 나는 그냥 넘어질 텐데 말이야. 이 문제 정도면 날 쓰러뜨리기에 충분하지. 그때 가서 누가 내 고통을 알아주겠어?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것은 생각도 못하지. 마흔도 넘은 내가 그렇게 쓰러져서 새파랗게 젊은 과장이나 처장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나 들으면 창피해서 어떻게 얼굴 들고 사나, 죽어야지! 다른 말 할 것 없이 집사람은 무슨 면목으로 보나.”

내가 말했다.

“듣고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하지만 저나 소 주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맡은 역할이 다 다른 거죠.”

그가 이어서 이야기했다.

“그러게 말이야! 자네는 아직 마흔 전이라 모를 거야. 사람이 나이 마흔이 되면 사실은 이십년 전 막 그 대문을 들어서던 순간에 이미 모든 각본이 이미 다 짜여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네. 내 생각, 내 꿈대로 무슨 일이든 한번 해보고 싶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거든. 다 별 수 없어. 나이 사십에 어디 엉덩이 붙일 곳도 없이 사타구니에 머리 박고 있으면 그 기분이 어떻겠어?”

강 주임은 위생청에 전화하기 위해 전화국으로 갔다. 나는 침대에 기대고 생각했다. 과연 인간들은 자기 역할을 맡기 전부터 어떤 신비한 힘에 의해 앞날이 결정되는구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그 바닥에 들어선 이상 저렇게 정해진 각본대로 가게 되는 것이다. 주어진 무대 위에서 정해진 역할의 연기만 허락될 뿐, 저항할 수 없다. 어떤 특정한 상대에게 저항해서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든 마찬가지다. 정해진 단계에 따라 정해진 궤도에 진입해야 한다.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고집 센 사람도 마찬가지다. 손오공이 덜 똑똑해서, 고집이 덜 세서 석가여래의 손바닥을 못 벗어난 건 아니다. 그래서 무릇 인간은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짜여진 각본대로 살아야 한다. 그 누구도 자기는 특수한 인물인 양 떠벌려서는 안 된다. 세상 그만 살고 싶다면 모를까.

위생청과 현(縣)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결국 오화향에서 조사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이틀간 기다리면서 강 주임이 몇 번이나 위생청에 전화를 걸어댄 끝에 모든 것이 정해졌고, 우리는 조사에 착수했다. 일행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매일 주로 하는 일은 대변검사와 동네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정해진 구역 내의 다슬기 밀도를 측정하는 일이었다.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곳 농민들은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비싼 약도 아니건만 환자들은 그 약조차 살 형편이 못 되었고, 또 그 약을 먹는 사람들도 그 약이 간장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간 보호제를 함께 복용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말했다.

“돈은 아껴도 약값은 아끼면 안 되죠. 간 보호제 안 드시면 위험합니다.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러자 한 노인이 말했다.

“의사 선생! 당신 같이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이 우리의 고충을 어떻게 알겠소. 살충제 살 돈도 없는데 무슨 간 보호제를 사요. 내 이 병에 걸린 게 벌써 몇 년째인데, 좋아질 만하면 또 발작하고…. 내 여기 집만 없었으면 일찌감치 어디 다른 데로 유랑을 떠났을 거요.”

그 옆에 있던 중년의 사람이 말했다.

“예전에는 다 나라에서 고쳐주더니 이제는 우리더러 돈 내고 고치랍디다. 우리가 그 흡혈충을 기르는 것도 아니고 호수 때문에 걸린 건데. 그 호수는 정부 것 아닙니까?”

그 노인이 말했다.

“정부에서 자네보고 병 걸리라고 그런 건 아니잖아. 자기가 걸려놓고선…."

내가 말했다.

“정부에 편지를 써 보지 그러세요. 북경으로.”

그러자 그들이 앞 다투어 말했다.

“그런 것 쓸 줄도 모르고, 써도 소용없어요.”

“당신도 정부에서 나온 사람이라 역시 똑같은 얘기를 하는군.”
사지에 힘이 없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는 환자들을 보자 나는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일주일이 지나 강 주임 집에서 전화가 왔다. 딸이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강 주임은 황급히 돌아갔다. 그가 가자 소 주임이 말했다.

“저와 장항향에 가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는 그를 따라 가기로 했다. 장항향은 갈대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마침 갈수기(渴水期)라서 갈대를 다 걷은 상태였다. 다슬기만 여기저기 보였다. 다리가 다 후들후들 떨릴 지경이었다. 배가 크게 부어오른 환자가 열 서너 살 정도 된 딸을 데리고 호수에서 오는 길에 우리와 마주쳤다. 내가 말을 걸었다.

“흡혈충 병에 걸리신 것 같은데, 검사 한 번 받아보시죠.”

그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병 걸린 지 벌써 십 년도 넘었는데 새삼 검사는 무슨 검사를 받습니까? 내 딸도 걸렸는데 속수무책입니다. 치료받을 돈이 있어야지요. 몇 년에 한 번씩 나눠주는 약 가지곤 어림도 없어요. 이 마을에 저와 같은 병 걸린 사람이 열 명도 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다 일하러 갔습니다. 다들 소 팔자를 타고 태어났는지…. 몸 무겁다고 일 안 하고 그러면 밥 먹여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휴!”

그가 한숨을 쉬면서 가버렸다.

소 주임이 말했다.

“저런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성(省) 차원에서 실제 상황을 고려해 예산을 더 늘려달라고 그러는 겁니다.”

“얼마 더 준다고 그 얼마가 이 사람들한테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이래저래 돈 쓸 일이 또 생길 테니 말입니다. 어쨌든 위생청에 돌아가면 말 좀 잘해 주십시오. 상황이 어떤지 다 보셨잖아요.”

“마오타이 마시는 것도 봤죠.”

그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숙이고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그건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는데, 근데 전들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요즘이 어떤 시대입니까? 숫자가 관리를 만들고(數字出官), 관리가 숫자를 만들어내는(官出數字) 시대잖아요. 숫자는 곧 관리들의 생명입니다(數字就是他們的命).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은 안 보이고 숫자만 보이는 거죠. 요즘 같은 세상에 남한테 그 숫자를 바꾸라는 건 상대방더러 목숨을 내 놓으라는 것과 같은 소리입니다. 상대방 목숨이야 우리가 어떻게 하고 싶다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쪽에서 나를 물먹이고 싶다면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지요. 숨통을 끊어놓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물먹이는 정도야 누워서 떡먹기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보신(保身) 철학만 느는 거예요.”

그가 그 동네에서 밤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우리는 밤차를 타고 돌아왔다. 며칠 후 강 주임이 돌아왔을 때, 나는 장항향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했다. 그가 말했다.

“나도 가 봤네. 호숫가라서 매년 수해가 나는데 상황이 좋아질 수가 없지. 그 동네 사람들 갈대 탕을 먹고 사는데, 그것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보고 있지.”

나는 그곳에 보건소를 하나 설치하자고 건의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위생청의 의견부터 먼저 알아보고.”

위생청의 의견이 무엇일지는 나도 알고, 그도 알았다. 아무 의견도 없다는 게 그 의견이었다. 화원현에서 열흘도 넘게 머문 끝에 겨우 조사를 마쳤다. 발병률 3.62 퍼센트라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내 생각에는 소 주임이 말한 6 퍼센트라는 수치가 더 믿을 만한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진작 이런 수치를 원하는 거였으면 여기까지 굳이 조사하러 올 필요도 없지 않았습니까? 시간 버리고, 돈 버리고….”

강 주임이 말했다.

“위에서 주어진 임무는 완성해야지.”

“이 고장 사람들 정말 찢어지게 가난합디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뭐. 하느님도 이 많은 인간들을 하나하나 다 돌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신도 아니고 말이야. 우리는 그저 하라는 조사만 하면 되는 거야.”

그의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여튼 수가 있는 사람은 다 수가 있던데, 별 수 없는 인간들은 눈앞에 해결책이 주어져도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머리가 깨져서 피가 흘러도 어쩔 수 없나 봐요.”

우리가 떠나는 날 위 국장은 환송 파티를 열어주었다. 나는 밥만 한 그릇 뚝딱 해치운 다음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에 받은 담배를 종업원에게 주면서, 담배도 안 피우는 나한테 주는 것은 낭비이니 소 주임에게 돌려주라고 부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 정도뿐이었다. 이 정도가 바로 나라는 인간이 이 세상에 대해 갖는 의미이며, 짜여진 각본대로 따라야 하는 내게 하늘이 주는 선택의 공간 전부였다. 이게 나다. 나는 내가 얼마나 하찮고 무능한가를 깨달았다.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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