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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촌강 전투 이후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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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촌강 전투 이후 동아시아

김민웅의 세상읽기 〈241〉

지금의 금강에서 663년 벌어진 전투를 역사는 백촌강(白村江) 전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만 백제의 잔류세력은 당시 왜라고 불렸던 일본에 구원군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자 왜는 3만에 가까운 대군을 보냈고 무려 400여 척의 전함까지 파견합니다.
  
  이러한 두 나라의 동맹관계는 백제의 국가적 운명과 왜의 장래가 서로 분리되지 않았던 상황을 보여줍니다.
  
  동아시아의 전체 판도에서,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격파되고 백제까지 무너진 이후의 상황은, 왜로 하여금 이후 나-당 연합군의 협공을 예상하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촌강 전투는 백제 잔류저항 세력과 왜의 연합군이 당에게 철저하게 패배하는 것으로 결말지어집니다. 왜는 이 전투의 결과로 나-당 연합군이 역습할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즉각 일본 열도의 방비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 백제 유민들은 왜로 무수히 망명하였습니다.
  
  백촌강 전투는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에서 매우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왜는 이 시기를 경계로 일본이라는 국가체제를 집중적으로 정비해나가고, 일본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본서기(日本書紀)> 집필에 착수하는 등 전투 패배의 충격을 정치적, 사상적으로 일본의 동력이 되게 전환시켜나갑니다.
  
  당은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백제가 지배했던 영토를 자신의 점령지로 인식하고 총독부에 해당하는 도독부를 설치하지만, 즉각 신라의 반격에 직면하게 됩니다. 신라에 의한 통일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중국 대륙과 한반도, 그리고 일본 열도는 각기 독자화 됩니다.
  
  당과 신라, 백제와 일본,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라는 상호 동맹관계는 매우 한시적이었고, 신라의 통일은 이러한 동맹관계를 모두 소멸시키면서 새로운 국제적 긴장상태를 가져오고 고구려 유민의 영향력 아래 있게 된 발해지역은 통일신라와 더불어 남북국(南北國)시대를 이루는 축이 되었습니다.
  
  7세기 동아시아의 이러한 정세는 한반도 내부의 변화가 주변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당과 왜의 한반도 출병은 훗날 청과 일본의 동학농민전쟁 과정에서의 개입과 청일전쟁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기도 했으며 1950년 한국전쟁에서 중국과 미국의 충돌과도 인연을 맺습니다.
  
  지정학적 요건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 요인입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통일도 동북아시아 주변 정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한반도는 이렇게 주변 강국들의 관계 속에서 그 국가적, 민족적 운명을 가늠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통일은 국제적 긴장이 아닌 협력을 낳아야 합니다.
  
  6.15 남북 공동성명은 7세기 이후 우리의 역사 전체에 걸쳐 목격되는 국제적 비운을 넘어서는 선택과 노력의 지향점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 스스로 주인이 되어 국제적 협력과 조화의 중심에 서는 것, 그것이 한반도 통일과 우리의 미래에 가장 절실한 입장의 확립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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