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흡혈충 조사**
위생부(衛生部)의 계획에 따라 전 성 규모의 흡혈충 표본 조사단을 조직했다. 나는 일도 없이 쉬고 있던 차라 그 조사단에 참여하기로 했다.
조사단은 전부 열 명으로 다섯 개의 작은 조(組)로 나뉘었다. 나는 흡혈충 조사반의 강(江)주임과 같은 조를 이루어 화원현(華源縣)과 풍원현(豊源縣)으로 내려갔다. 이번 일은 정소괴가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출발 하루 전에 강 주임이 사람들을 소집해서 최종 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거의 끝날 즈음에 마 청장이 들어왔다. 정소괴가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모두들 의외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위생청이 얼마나 이번 일을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마 청장이 들어오자 강 주임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도 얼떨결에 따라 일어났다. 강 주임은 피고 있던 담배를 얼른 끄고 말했다.
“마 청장님이 직접 여기까지 오셔서 격려해 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일하는 데에 가장 큰 지지가 될 것이며, 또한 가장 큰 정신적 동력이 될 겁니다.”
마 청장이 말했다.
“다들 어떤지 그냥 보러 왔어요. 다들 수고들 하시오.”
정소괴가 얼른 덧붙였다.
“청장님, 이 분들을 위해 몇 마디 해 주시죠.”
말하면서 먼저 힘껏 손뼉을 치자 다른 몇몇 사람들도 따라서 손뼉을 쳤다. 마 청장이 말했다.
“이번 조사는 매우 엄중한 임무입니다. 모두들 인민을 위해서, 자기가 하는 일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위생청을 위해서 책임을 다한다는 자세로 임해 주길 바랍니다. 절대로 대충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정확한 데이터입니다. 그 데이터가 있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이미 각 현의 흡혈충 감염예방 부서에 공문을 내려 보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사업은 지난 몇 년간 우리 성(省)차원에서 많은 정력을 쏟고 있는 일입니다.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고 그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업적과 더불어 우리의 명예를 지켜야 합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면 강 주임이나 여기 정 처장을 찾으세요. 이 사람들이 지도자급 소조(小組)의 부 조장입니다. 물론 직접 나를 찾아도 좋습니다. 내가 그래도 조장 아닙니까. 그럼 이만 마치겠습니다.”
정소괴와 강 주임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우리도 따라서 박수를 쳤다. 정소괴가 말했다.
“방금 마 청장님께서 아주 중요한 지시를 하셨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중요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에 여러분은 호숫가 지역으로 조사를 나가게 되는데요, 작업이 제법 위험합니다. 그래서 마 청장님께서 이번에 중대한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바로 여러분에게 정상적으로 나가는 보조금 외에 한 사람당 이십오 위안의 보조금을 더 드리겠다는 겁니다.”
어쭈, 돈도 못 받고 하는 고생인 줄 알았더니 제법 배부른 출장이군! 다른 사람들도 얼굴에 기쁜 기색을 보였다. 마 청장이 말했다.
“다들 너무 기뻐하지 마십시오. 권리와 의무는 대등한 것입니다. 우리도 여러분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니, 여러분도 위생청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일해 주십시오.”
강 주임이 당부했다.
“여러분, 좀 더 전체적인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해 주세요. 개인행동 하지 마시고요.”
마 청장이 일어나자 정소괴도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문 옆에서 마 청장이 먼저 나가도록 몸을 비켜섰다가 밖까지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얼른 다시 돌아와서는 헛기침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 앉더니 사람들을 천천히 한 번 둘러보고 우아하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들척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목청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다들 무슨 의견들이 있는지…?”
잠시 멈췄다.
“이야기들 해보세요. 어려운 점들도 이야기하구요.”
강 주임이 곁들었다.
“정 처장님이 얘기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 꼴을 봐줄 수가 없었다. 이제 겨우 입사한 대학생 하나가 말했다.
“위생청의 뜻은, 그러니까, 혹시….”
그는 공중에 손을 휘두르면서 말했다.
“혹시….”
다시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예를 들면 무슨 정해진 기준이라도 있습니까?”
정소괴가 말했다.
“무슨 기준?”
나는 가볍게 웃었고 다른 사람들도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정소괴가 말했다.
“미리 정해진 기준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런 기준이 있으면 조사는 뭣하러 하겠어요? 결론은 조사 전이 아니라 조사 후에 나오는 겁니다. 우리의 일관된 원칙은 실사구시(實事求是)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내가 바로 말했다.
“정 처장님이 아주 중요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실사구시, 그게 우리 위생청의 일관된 원칙이죠.”
그 젊은이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강 주임을 쳐다보고, 또 정소괴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러면 그렇게 알고 저도 따르겠습니다.”
정소괴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자, 강 주임이 말했다.
“정 처장님이 말씀하신 실사구시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성적 또한 중요합니다. 양자간 상호 조화를 이뤄야겠죠.”
정소괴가 말했다.
“그러니까 모순의 대립(對立)과 지양(止揚)을 통해서 말입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생활이 길러낸 변증법의 대가들이군. 미꾸라지보다 더 잘 빠져나가네. 메치나 업어치나지. 언제 나도 변증법을 제대로 배워서 출세 한 번 해봐야 할 텐데. 하긴 우선 얼굴에 철판부터 깔고 양심부터 없애야겠다, 제기랄.”
내가 말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그때 가서 강 주임께서 구체적으로 지시하시면, 저희야 따르면 그만이지요. 좋은 게 좋은 것 아닙니까.”
다음날 화원현으로 가는 기차에서 나는 어제 내가 자연스럽게 썼던“아무려면 어떻습니까”,“좋은 게 좋은 것” 같은 말을 되새겨 보았다. 그냥 우연히 튀어나왔던 건 아니다. 그게 바로 이 시대의 행동수칙이자 생존전략 아닌가. 그것은 일종의 기지(機智), 일종의 총명함이며, 또 일종의 원만함이자 일종의 뻔뻔스러움이다. 사람들이 다 그러한데 누가 곧이곧대로만 살 수 있겠는가? 망할 놈의 원칙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나 역시 별볼일 없는 인물인데 내 어깨로 얼마만큼이나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잘나가는 대단한 인물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뒤집힌 상황들도 다시 되돌릴 수 있고. 누가 감히 나한테 수작을 부리겠어? 제기랄, 확, 개 같이 네 발로 기게 만들어버려?
화원현에 도착하자 위생국에서 나와 강 주임을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위(衛) 국장도 그 자리에 나왔다. 식사 전에 작년에 화원에 왔을 때 알게 된 오(吳) 군이 숙소까지 나를 찾아왔다. 그는 삼하향(三河鄕)에서 위생원장으로 있는데, 오늘 식사 모임에 자기도 좀 낄 수 있도록 말 좀 해달라고 했다. 위 국장과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국장에게 이야기를 했다. 식전에 흡혈충 관련 질병 예방과 소(蘇) 주임의 환영사가 있었다. 첫 번째로 상에 올라온 음식은 담백하게 찐 민물생선이었다. 마오타이(茅台)도 한 병 땄다. 강 주임이 말했다.
“음식은 간단하게 시키세요. 하루 이틀 얼굴 본 사이도 아니고.”
위 국장이 말했다.
“성(省) 분들은 평소에 대접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는데, 오셨을 때 잘해 드려야죠.”
내가 말했다.
“생선도 그냥 평소 먹는 것이면 되고, 술도 진지(秦池) 정도면 충분합니다. 경비도 넉넉지 않을 텐데. 게다가 저나 강 주임 둘 다 술을 잘 못합니다.”
소 주임이 말했다.
“재정상태가 넉넉하진 않아도 이 밥 한 끼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오간다는 것 자체가 발전의 징조 아닙니까. 아무도 오지 않으면 그게 정말 죽어가는 거죠.”
모두들 건배를 했고, 강 주임과 나도 한 잔씩 마셨다. 내가 오군에게 말했다.
“오 군, 승진이라도 하고 싶으면 국장님한테 잘 보여야 될 거 아냐. 가서 위 국장님께 술 한 잔 권해야지.”
오 군은 술잔을 들고 위 국장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말했다.
“위 국장님, 제 잔 받으세요. 저희 같은 아랫사람들은 그저 국장님께서 관심을 가져 주셔야 무슨 일을 해도 합니다.”
위 국장이 말했다.
“거 참, 그 말 한 번 듣기 좋네.”
그리고 술잔을 부딪치면서 잔을 깨끗이 비웠다.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말했다.
“한 병 더!”
내가 황급히 말렸다.
“저희는 술이 별로 안 셉니다. 그냥 진지(秦池)로 시키죠.”
소 주임이 종업원 아가씨를 부르면서 말했다.
“어떻게 술을 섞어 마십니까?”
한 시간도 넘는 식사를 하고 위 국장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소 주임은 계산을 하고는 비틀비틀 걸어왔다. 그를 부축해서 소파에 앉히면서 말했다.
“밥 한 끼에 몇 백 위안이 날아갔습니다. 술값만도 오 백 위안입니다.”
그가 말했다.
“이 밥 한 끼 먹는다고 거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먹는다고 부자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이렇게 사람 올 때마다 접대하려면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가 말했다.
“양털이 양에 붙어 있어야지 개에 붙어 살 수는 없잖습니까? 어렵게 오신 손님들인데 대접 소홀히 하면 안 되죠. 당연한 거예요. 그리고 달리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저 성(省) 차원에서 앞으로 저희의 실제 상황을 좀 더 감안해서 예산이나 좀더 넉넉하게 마련해 주시면 고맙지요.”
내가 말했다.
“예산도 다 용도가 정해져서 거기에만 써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가 말했다.
“지 동지, 당신 무슨 외국에서 온 사람도 아니면서 중국의 실정을 모른단 말이오? 중국 특색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우리 위생국 안에서 그나마 형편이 제일 나은 게 우리 사무실이다 보니, 손님 오시면 접대비는 자연히 우리가 내게 되어 있답니다. 저희가 아깝다고 접대 안 하겠다고 할 수 있나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 접대한 게 몇 번인지 아십니까? 그래도 두 분은 저희를 도와 정말로 일을 하러 오신 분들 아닙니까!”
내가 물었다.
“그런 식으로 쓰면 몇 십만 위안 예산은 금세 없어지겠군요?”
“위 국장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온 손님을 접대 안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 바닥에서 일 계속 안 할 것도 아니고. 이게 수준 조금만 낮춰도 양 쪽 다 체면이 안 서거든요. 손님은 또 자기를 우습게 본다고 불쾌해 하죠.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을 써야 됩니다. 안 쓸 수 없습니다. 중국 실정 잘 아시지 않습니까. 누구 하나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어느 한 쪽 사람들만 잘 접대했다고 해서 마음 놓을 수 있는 게 아니죠. 모든 분야의 인간관계가 다 필요한 것 아닙니까. 성(省)에 얘기 좀 잘 해서 우리 예산 좀 늘리도록 도와주십시오. 환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두 분의 입김이 중요합니다.”
그는 말을 마치면서 한숨을 쉬었다. 자리가 끝나자 사무원 하나가 나와 강 주임에게 봉투 하나씩을 주었다 안에는 홍탑산(紅塔山) 담배가 두 보루씩 들어 있었다. 강 주임이 그냥 받는 것을 보고 나도 그냥 받았다. 오 군이 우리를 숙소까지 데려다 주면서 말했다.
“오늘 어렵게 윗사람한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는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너무 절박한 티를 낸 것 같아서 말이에요. 관심 안 가져 주셔도 일 열심히 하겠다고, 술 권하겠다고 했어야 하는 건데, 다음에 만회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도와주십쇼.”
이런 코딱지만한 향(鄕) 위생원장조차 이런 일에 이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을 쓸 줄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나는 소 주임이 한 이야기를 강 주임에게 하자, 그가 말했다.
“사실 어디나 다 마찬가지지 뭐, 여기라고 다르겠어.”
“다음부터는 편하게 대하라고 하세요. 제가 소 주임에게 말하지요.”
“별다른 소리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게. 우리가 나서서 주동적으로 우리 수준을 낮출 필요가 어디 있나? 누가 뭐래도 우리는 성(省)에서 내려온 사람들인데. 먹고 마시는 거야 사실 상관없지만, 체면은 깎일 수 없지. 체면 문제라고! 일단 체면 한 번 깎이면 그 사람들이 자네를 우습게 생각하기 시작할 텐데, 앞으로 일은 또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결코 우리 자신을 비하시켜서는 안 되네. 우리의 몸값은 말 한마디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사실 밥상 위에서 술의 등급으로 드러나는 게 제일 중요한 거야. 우리가 아무리 입에 대지도 않는다고 해도, 오늘 만약 정말로 진지(秦池)를 올렸다면, 그건 우리 따귀를 한 대 올리는 것과 다를 게 없어. 아니 따귀 맞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지. 그 사람들이 자네를 그 정도로 본다는 거니까! 보아하니 위 국장은 역시 국장 정도는 오를 사람이야. 술, 그거 우습게 보지 말게, 이게 다 업무상 필요에 의한 거야! 업무상 필요!”
강 주임은 역시‘주임’인지라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흡혈충에 물려 병에 걸린 환자들만 불쌍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의 체면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 세상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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