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조작주의(操作主義)**
북경에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나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머리는 맑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한 겹 구름이 낀 것 같았다. 어떻게 해도 떨쳐버릴 수 없는 꿈이 나를 현실과 갈라놓고 있었다. 북경에서의 며칠은 내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지만, 또 동시에 나를 더 큰 혼란에 빠뜨렸다. 어떤 냄새, 묘한 육감적인 냄새가 공기 중에 맴돌고 있었다. 일종의 호소하는 듯한, 끌어들이고 유혹하려는 듯한 냄새였다. 확실한 이유 없이는 거부할 수 없는, 그저 따를 수밖에 없는 냄새, 유혹.
나는 갑자기“마음 내키는 대로”라는 말이 얼마나 영악하고 또 얼마나 뻔뻔스러운 소리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몇 가지 민감한 문제를 제외하고‘마음’이며‘감각’이 사람을 정말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지만 세상에 이 ‘마음’이며‘감각’만큼 현실적인 것도 없다. 시대가 바뀌는데 나라고 안 바뀌고 배겨? 다른 사람들은 자기 행복의 돛을 달고 앞으로 재빠르게 나아가는데 나는 아직도 제자리에서 배회하고 있다. 거대한 물결이 밀려와서 내 발 밑의 땅을 흔드는데, 아니 온 천하가 다 들썩거리는데, 나는 꿈쩍도 하지 않고 이렇게 서 있기만 해도 되는 것인가? 그 흐름을 따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내 핏속에 이상한 것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내 안의 어떤 감정적 본능이 나를 그 흐름에 합류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듯했다. 이전에는 나는 그것이 바로 나의 프라이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점점 그것이 무너지고 있다. 점점 의심스러워지고 있다. 동류도 그렇고, 허소만도 그렇고,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려 하지 않았다. 오직 깊고 고요한 밤, 상상 속에서 이 세상을 뜬 성인들의 망령(亡靈)들과 마주할 때, 텅 빈 공간에 가득히 존재하는 망령들과 마주할 때에만 나는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스스로를 그들의 추종자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따르기 위해서 애쓸 때 비로소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개나 돼지와 같은 인간들을 경멸했었다.
한 번은 마 청장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마침 계단을 내려오던 원진해는 마 청장을 보더니 얼른 계단 한 편으로 비켜서면서 깍듯한 목례(目禮)를 하는 것이었다. 후에 나는 그것이 위생청의 관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동류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또 뭐가 그렇게 잘 났어요? 당신 지금 좋은 집 살면서 돈도 많고 차도 있는 사람들을 깔보려는 거예요?”
동류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참으로 세속적이었지만, 또 참으로 현실적이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세속적인 것에도 그 나름의 논리가 있다. 아무것도 없는 놈이 뭐든 다 가진 놈을 무슨 근거로 무시한단 말인가? 내가 그 사람을 개라 부르고 돼지라 부른들, 그거야 다 내 생각일 뿐, 남들 눈엔 다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 생존에 적합한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고 인격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무능한 사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변증법은 정말로 오묘하기 짝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표현의 선택에 대한 자유를 주었으니 말이다. 모든 도리나 이치, 원칙 등은 다 뒤집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상대적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극도로 당혹스러워졌다. 가치론의 진리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내가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저 그렇고 그런 입장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인가. 어떻게 한 순간에 그 모든 것이 뒤집어질 수 있고, 또 나의 옛 친구들, 한때 애국가를 부르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그 친구들은 또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을까?
희생과 절개가 그저 그렇고 그런 입장들 중의 하나로 몰락해버린 순간, 희생의 의미 또한 퇴색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여러 번 마지막 결론을 내려놓았던 것 같다.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가벼운 차림으로 그들과 한 패가 되어 생존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에 이에 미칠 때마다 나는 놀라면서 그런 생각을 떨쳐내곤 했다.
마음의 문이 또 다시 '꽝' 하고 닫혔다.
“내가 어찌 그럴 수 있어? 그래도 난 배운 사람인데….”
「중의연구(中醫硏究)」에 내가 발표한 논문이 실렸다는 데에 나는 엄청난 희망을 걸었다. 나는 내 노력이 내 처지와 심지어 내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웬걸, 주위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논문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나는 내 논문이 성(省)의 논문심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고 그냥 버려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며칠은 잠도 이룰 수 없었다. 특별히 마음이 아프다기보다 그저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날, 배후 조작(操作)이 팽배한 이런 시대에 공정함을 바라는 것이 우스운 일이라는 것 정도는 최소한 나도 알고 있었다. 세상은 변하는데, 나는 어쩌면 좋지? 나는 노력해야 할 명분을, 방향을 상실했다. 내가 논문 몇 편 더 쓴들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그런데 윤옥아만 한 마디 했다.
“지대위 씨, 역시 대단해요. 여기 일하면서도 그렇게 전공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위생청에 지대위 씨 하나밖에 없을 거야.”
나는 갑자기 그녀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랫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출근해서는 신문 보고, 퇴근해서는 텔레비전 보고. 유럽의 축구 리그라는 리그의 경기는 다 찾아서 보았다. 이태리의 세리에 A,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는 이제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프랑스의 지단 등 몇몇 선수와는 감정까지 서로 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축구를 신앙 삼고, 축구에 미쳐 있는 인간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일병에게서 수원호텔에서 차나 한 잔 하자고 전화가 왔다. 저녁때 우리는 만났다. 그가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나 방송국 그만두려고….”
내가 말했다.
“농담도 잘 하는구먼. 방송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아주 자기 복을 차버리려고 하네. 너는 대학 들어갈 때도 꿈이 기자였잖아. 꿈을 이뤘는데도 분에 안 차?”
“지대위, 너도 알다시피, 어릴 때는 나한테 오늘 같은 날이 오게 될 줄은 꿈도 못 꿨지. 중학교 때 내 꿈이 뭐였는지 알아? 하루는 우리 부모님이 땡볕 아래 밭에서 밥 한 술 뜨고 계시는데 공급판매 합작사(협동조합) 직원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서 희희덕 거리고 있더라고. 그 때부터 내 꿈이 바로 공급판매 합작사에서 물건 파는 거였어. 햇볕에 그을리면서 밭일 할 필요도 없고, 얼마나 좋아. 나중에 대학 가고 나서야 그 꿈이 얼마나 우스운 거였는지 알게 됐지. 어쨌든 어렵사리 오늘까지 왔으니 이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내가 고른 주제를 상사한테 몇 번씩이나 퇴짜 맞으면서도, 이게 어떻게 주어진 기회인데, 참아야지, 하면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도 다 참았지.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더 이상 그 기회에 연연한다면 그건 내가 아니야.”
사정인즉슨 이러했다. 얼마 전 그가 만드는 프로그램 팀 앞으로 맹포구(孟甫區)에서 구 시가지 개발 명목으로 주민을 이주시키는 것에 대해 제보가 들어왔다. 그는 영상기자를 데리고 현장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열 명을 취재했다. 그 중 한 명은 만족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또 한 명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 나머지 여덟 명은 불만이 대단했다. 우선 주택 수용가격이 너무 낮고, 이사 가야 할 곳이 시내에서 너무 먼 데다 조건도 형편없고, 애들 학교 다니기도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당초의 약속을 하나도 이행한 게 없다고 했다. 그는 돌아와서 그것을 뉴스에 내보냈고, 주임도 심의할 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날 밤 구청에서 황(黃) 국장에게 전화를 해서, 방송국은 여론에 주의해 달라는 부탁을 해 왔다고 한다. 황 국장이 얼렁뚱땅 받아넘기자, 다음 날 시청에서 또 전화가 왔다. 선전부에서까지 사람이 직접 찾아와서 구청에서 하는 일을 지지해달라고 했다. 결국 국장은 호일병을 비평하면서 이튿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만족한다는 사람의 화면을 내보내라고 했다. 마치 그것이 민심을 대표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말했다.
“무관의 제왕한테도 가끔 성질 죽여야 할 때가 있다네. 성질 좀 죽인다고 어떻게 되지 않으니까 안심해! 날 봐, 매일같이 죽어지내도 아직 멀쩡하잖아?”
“권력만 있으면, 내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면 일이 다 그렇게 저절로 굴러가더라. 성질 같아서는 다 까발리고 싶다고.”
이번 개발은 금엽부동산(金葉置業) 회사와 구청이 같이 하는 일이라고 했다. 낡은 주택을 헐고 빌딩을 올려서 금엽부동산 회사는 그냥 돈을 쓸어 모을 거라고 했다. 그 공사는 또 어떻게 땄을까? 왜 모든 기관들은 금엽만 편드는 걸까? 그 안의 비리는 얼마나 될까?
그가 말했다.
“무관의 제왕? 흥, 날 너무 높게 보는군. 홍콩의 주식회사 하나도 못 이기는데 무슨. 금엽의 여(余) 사장인가? 정말 대단한 인간이야. 그 인간의 사람 쓰는 능력은 정말 상상 이상이더라고. 지랄 같은 돈과 지랄 같은 권력이 아주 잘 어우러졌다고 할 수 있지. 그 많은 빌딩을 짓는데, 그 건물 한 동 한 동이 다 엄청난 비리들을 깔고 앉아 있다는 거 아냐. 권력이 있으니 돈 잃는 거 걱정할 필요 없고, 돈이 있으니 권력 잃는 거 걱정할 필요 없고. 성질 같아서는 확 다 까발렸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난….”
그가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냥 넘어가야지 뭐. 내 까짓게 어떻게 한다고 뭐가 바뀌겠어?”
“그 정도를 갖고 숨 막혀서 그만 두겠다고? 그만 두면? 밥 먹고 살기는 쉬운 줄 알아? 왕년의 명 기자였다고 성깔 부리고 다니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아무도 못 건드릴 줄 알아?”
그가 말했다.
“그만 두면 눈 딱 감고 이 지랄 같은 꼴 안 봐도 되잖아. 적어도 당당하게 사람을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귀신을 귀신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 돈 못 벌까 걱정인가?”
내가 말했다.
“북경을 가겠다는 인간도 살기 위해서 간다고 그러고, 성(省)에 돌아오겠다는 인간도 살기 위해서라고 하니, 도대체 사람한테는 밥통이 몇 개나 되는 걸까? 아등바등 거리다가 젠장 귀신 되어버리겠어.”
그가 말했다.
“닭이 뭘 쪼아 먹냐? 기껏해야 쌀알 몇 개지. 사람은 어떨 것 같애? 마찬가지야. 사람도 그 쌀알 몇 개 쪼아 먹고 사는 거라고. 그 몇 알 안 되는 쌀알이 오히려 제일 진실에 가깝지. 아무리 생각해도 소용없어. 세상에 모든 충돌은 정의(定義)나 개념이 엇갈리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야. 시간의 조류 속에 흐르고 있는 일종의 신비로운 파괴력, 그리고 강제적 동화력, 그 두 힘의 조화야말로 현대와 전통의 어우러짐이지. 자네 정신력이 아무리 대단해봤자 별수 없어. 아무리 심오한 진리도 가장 간단한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지. 생각해봐. 몇 십 년 후면 세계의 석유가 다 고갈된다. 남극 하늘의 오존층에 뚫린 구멍은 점점 커지고 있어. 온실효과로 빙산이 녹고, 상해가 물 아래로 잠기게 생겼다고. 복제인간이 무더기로 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는데 너 혼자 무슨 의미를 추구하고 꿈을 꾸겠다는 거야, 도대체! 거짓 명제(命題)야! 그러니까 생각 접고 그냥 그 쌀알 몇 개나 챙기는 게 훨씬 현실적인 거야. 생각하면 정말 불쌍하지 않아? 인간의 한 평생이라는 게! 그렇지만 비극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야.”
호일병은 종업원을 불러 맥주 몇 병을 가져오라고 했다. 종업원이 쟁반에 받쳐서 맥주를 가져오더니 허리를 굽히면서 물었다.
“사장님, 아가씨 불러드릴까요?”
“아직도 술 따르는 아가씨들이 있나? 나는 구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에서나 봤는데.”
종업원이 말했다.
“사장님은 사상개혁 좀 하셔야겠습니다. 개혁개방을 한 지가 벌써 십년도 넘었습니다.”
“경찰이 단속하지 않나?”
“경찰들도 가끔 와서 같이 술 한 잔 하고 그런답니다. 아가씨들한테도 기회를 주는 거죠. 불쌍하잖아요.”
호일병이 말을 잘랐다.
“다음에.”
종업원은 그냥 가버렸다. 내가 말했다.
“요즘은 이런 일도 아주 떳떳하구먼. 아니면 내가 고지식한 건지….”
호일병이 말했다.
“봤지?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어느 한 부분이 바뀌는 게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다 바뀌고 있어. 그러니까 저항해도 소용이 없는 거지. 우리 방송국에 있는 두운(杜芸)이라고 알지? 누구나 다 아는 그 유명한 사회자. 그 여자가 사회를 보는‘오늘 밤의 진심’이 우리 방송국 간판프로잖아.”
“말도 잘 하고, 외모도 청순하고, 보기 좋더라.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그 여자가 사생활이 좀 그렇다면서?”
“요즘엔 그걸 능력이라고 하더라. 그 여자가 뭔데, 소문난 ‘버스’잖아. 그 여자가 무슨 진심을 논해? 다 쇼야. 다른 사람들이 그 프로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는 손님들 불러놓고 원숭이처럼 갖고 노는 거라고. 그 여자 제법 그럴듯하게 다른 사람 감정을 분석하지? 블랙 코미디도 그런 블랙 코미디는 없어. 사람들은 매일같이 이런 거짓말 같은 세상을 마주하고 사는 거지. 두운 같은 사람이 나와서 수많은 시청자들을 앞에 두고 감정을 논하고 진심을 논해? 세상이 이렇게까지 되었다고. 무슨 진실을 우리가 더 바랄 수 있겠어? 나는 나조차 이 블랙 코미디의 마지막 대상이라고 생각한다네.”
“그‘버스’, 너도 한 번 타 봤냐?”
“요즘 그 여자 몸값이 얼만데. 백만장자도 벌린 입 못 다물어.”
“너희 방송국에서는 사회자 안 바꾼데?”
“시청률도 높고 그러니까 사람도 함부로 못 바꾸지. 시청률만 높으면 장땡이지 누가 연기를 하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윗사람들은 실질적인 것만 따지거든.”
“사람은 말이야, 체면을 차리려고 하면 어려운 일이 많아.”
“요새 장자(莊子)를 읽고 있는데, 장자가 두 마리 거북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더라. 한 마리는 더러운 진흙 속에 묻혀서 온몸에 퀴퀴한 냄새를 풍기면서 살아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죽어서 사당에 놓인 채 제왕이 점 볼 때 쓰는 거야. 너 같으면 살아서 진흙 속에 묻혀 있을래 아니면 죽어서 사당에 보내질래? 진흙 속에서는 체면이고 뭐고 필요 없는 거야. 온몸에서 퀴퀴한 냄새를 풍기면서 체면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체면!”
밤이 깊었다. 다른 손님들은 하나둘 돌아가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수상쩍은 남녀 한 쌍이 바짝 붙어 앉아서 입술로 애정표시를 하고 있었다. 호일병이 말했다.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 너 위생청에서 그렇게 빌빌대고 있지 말고 그만두고 나와서 나와 같이 한 탕 하지 않을래?”
“너도 알듯이 나 별볼일 없잖아. 마음이 독한 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할 줄 모르고. 내가 그만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금엽부동산의 여(余) 사장 얘기를 들으니 힘이 나더라. 팔년 전만 해도 그저 보통 시멘트공이었데. 친척인가 누군가만 믿고 홍콩으로 이민을 갔다가 아주 큰 기업가로 변신을 했지. 지금은 어느 수준인지 알아? 그 사람이 마시는 술 한 병이 천 위안은 거뜬히 넘고, 하고 다니는 벨트도 만 위안이 넘는다면 믿겠어? 그 많은 돈이 자기 거라고 생각해 봐.”
그는 또 두 손을 들어 자기 가슴에 갖다 대고 말했다.
“아마 숨도 제대로 못 쉴 거야. 그 많은 돈을 생각해 봐. 그만한 돈을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겠어? 물 위를 걸으라면 걷는 거고, 땅 위를 걸으라면 걷는 거지. 어차피 다들 조작하면서 사는 거야. 큰 인물들도 그렇고 도덕군자도 그렇고. 돈도 많이 벌고 양심도 지키려면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여 사장한테 진 거라고. 시장의 원칙은 이윤극대화야. 청렴하고 선한 것은 비겁하고 무능하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아. 정말로 자네 나와 같이 한 탕 해보자고.”
“나는 사업이란 바다에 뛰어드는 순간 빠져 죽을지도 몰라. 난 그저 몇 푼짜리 술만 마시고 살아도 괜찮아. 허리 띠? 팔 위안짜리도 이렇게 잘 차고 다니는데 뭐. 장사꾼은 가죽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가죽도 아니거든.”
“그렇게 너를 너무 낮추지 마. 일단 그만두고 나면 너도 생각이 바뀔 거야. 네 잠재능력이 표출되어 나올 거라고. 네가 여 사장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
“여 사장을 너무 우습게보지 마. 그 사람한텐 다른 사람에겐 없는 특별한 뭔가가 있을 거야. 지금 네 손 안에 들어온 복을 걷어찼다가 나중에 너는 다른 사람의 적수가 못 된다는 걸 깨닫게 되면, 그땐 이미 늦는 거지.”
“다른 사람들의 그런 특별한 점은 배우면 되지.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이생에서 지은 죄 다음 생애까지 갖고 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겁나나?”
그의 말을 들으니 도덕과 양심에 관한 원칙에 의문이 가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든 관계(官界)에서든, 또 하나의 법칙이 행해지고 있다. 조작주의(操作主義)의 법칙. 자기가 올라서기 위해서는 남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정말이지 세상은 사람을 슬프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호일병은 맨손으로 늑대 때려잡는 방법을 계획했다. 우선은 공상국(工商局)을 뚫고, 그리고 은행을 뚫은 후에, 마지막으로 정부 부문을 뚫기로 했다는 것이다. 뚫어야만 살고, 그러려면 원칙대로만 해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아주 그럴 듯하게 들렸다. 단계마다 다 아는 사람 혹은 친구들이 분포해 있어서 모든 일이 확실하게 진행될 것 같았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삼년 안에 서쪽 시가지에 주택지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말했다.
“조심하게나.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그냥 끝이겠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처녀 없고(沒有追不到的姑娘), 열 번 공격해서 함락 안 되는 성 없다(沒有攻不下的關)고 했어. 내가 벌써 이 친구들 도와준 게 몇 년인데, 그 친구들이 날 돕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나. 아니면 자네도 은행돈이 내 손에 들어오는 거 확인하고 참여하든가. 듣기 안 좋겠지만,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내가 파산하더라도 누가 날 잡아먹기라도 하겠어? 사람 고기는 시큼하거든. 먹을 사람도 없을 거야.”
“자네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야? 나는 사회에서 그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간들이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그는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형님, 아직도 그 타령이요? 그럼 내가 하나 물어보자. 넌 네 인생 어떻게 할 거야? 만약 사람이 두 번 산다면야, 나도 이번 생애에서 덕 쌓고 다음 생애에 보답 받겠다. 그게 그렇지 않다는 걸 자네도 언젠가는 깨달아야 할 텐데 말이야. 깨닫고 나야 툭툭 털고 씩씩하게 나갈 것 아냐. 그런데 영 납득이 안 가나? 그렇게 답답하게 굴면 자네 인생 살아봐야 앞으로 별로 재미있는 일 없을 거야. 신나는 일 없을 거라고.”
그 말을 들으니 전기가 통한 것 같이 속이 찌릿하면서 머릿속의 모든 환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내가 말했다.
“생각해 볼게, 생각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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