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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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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37>

동창회

***37. 동창회**

대학 동창인 광개평(匡開平)이 출장 차 이 지역을 지나가게 되었다. 나를 만나자마자 그가 말했다.

“생각해 보니 졸업한 지 벌써 팔구년이네. 팔구년! 일부러 자네를 보러 왔어. 내일 바로 다시 떠나. 비행기표도 이미 예약해 놓았어.”

옛 동창을 만나자 그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 놓은 것 하나 없는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그를 집으로 데려가기 싫어서 그냥 좀 멀리 산다고 핑계를 댔다. 그가 말했다.

“제수씨 얼굴도 못 보여주겠다는 건가?”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입 하나, 코 하나, 눈 두 개 있는 여자라서.”

나와 허소만의 일을 다 알고 있는 그가 동류를 보면 속으로 비웃을 것 같았다. 그는 내 책상에 널려 있는 책들을 보고 말했다.

“직장에서 전공서적을 다 보다니…. 이런 것 좀 덜 보고 정치 방면의 책을 더 읽어야지.”

그는 처장이 되어 있었고, 허소만도 처장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와 밖에서 식사할 요량으로 그에겐 잠시 일이 있다고 하고는 얼른 집으로 가서 동류에게 돈을 좀 달라고 했다. 동류가 말했다.

“있는 척 하기는. 그냥 집에 와서 먹으면 되지.”

“있는 척이라도 해야겠어.”

나는 그녀에게서 돈을 받아들고 말했다.

“오늘 밤 집에 안 들어오면 그 친구와 같이 자는 줄로 알고 있어.”

그녀가 언짢은 듯이 말했다.

“집이 먼 것도 아닌데.”

“당신이 낭군님과 함께 자고 싶어한다는 건 잘 알지.”

“내가 당신 몸 한 구석에 꽃을 수놓았거든.”

사무실로 돌아오자 윤옥아가 광개평과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마치 칼로 벤 듯 그녀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실실 웃었다.

“왔어요?”

이 수다쟁이가 또 무슨 말을 했을까.

나는 광개평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갔다. 식사 중에 많은 동창들의 근황 이야기가 나왔다. 식사가 끝나자 그는 기어코 나를 밀치고 자기가 계산했다.

“이래서야 주인 체면이 뭐가 되나?”

“걱정 말게. 어차피 접대비인데 뭐.”

이렇게 말하고는 종업원 아가씨에게 영수증을 끊어달라고 했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그는 기어코 숙박비까지 자기가 계산했다. 내가 물었다.

“자네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가?”

“선공후사(先公後私)라 했어. 공(公) 돈 먼저 쓰라는 소리지.”

그는 제일 좋은 방을 달라고 했다. 왕년엔 다 같은 친구였는데 이제는 이런 사소한 것에서까지 다 차이가 나는구나. 사람이 어떤 자리에 오르면 돈도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이다. 이것 역시 게임의 규칙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가 돈을 다 내다니. 저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우습게 보이겠지. 내일은 서(徐) 형한테 부탁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친구를 공항까지 차로 데려다 주도록 해야겠다. 그 정도 체면치레는 해야 할 것 아닌가. 그가 자리에 기대어 담배를 권해왔다. 한 모금 빨고 나서 내가 말했다.

“어떨 때는 담배가 친구 같아.”

“나는 담배 없으면 안 돼. 쓸쓸할 때 담배에 불을 붙이면 금세 분위기가 잡히지.”

그는 내년이 우리가 대학 졸업한 지 십년 째 되는 해라면서 북경에 있는 친구들이 동창회를 하려고 하는데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안 가면 내가 공공(公共)의 적이 되는 것 아냐? 나중에 동창들 얼굴 어떻게 보려고 안 가겠어?”

“그럼 꼭 와야 해. 내가 나중에 연락해 줄게.”

그는 나더러 요즘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가 혹시 비웃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내 연구계획과 방향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자못 관심이 있는지 나와 토론하기 시작했다. 현대적 분석방법으로 중약을 분류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법 자세한 부분까지 물어왔다. 그가 말했다.

“사실 정부기관에 몇 년 몸담고 있으면서 이런 생각은 거의 못했어. 매일 생각하는 거라곤 누가 누구와 어떤 관계냐, 뭐 이런 것들뿐이지. 그런 관계를 제대로 몰랐다가는 말 한마디 실수로 일을 망칠 수도 있고 심지어 아주 끝장나는 수도 있거든. 나중에 아마 우리 동창 중에 자네가 제일 성공할 거야. 우리야 그저 굴러먹는 거지.”

그는 지금의 내 처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더 비참하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어쩌다 나는 남들이 화제에 올리기조차 기피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까? 이런 부끄러운 감정은 나로 하여금 나도 사실은 남들처럼 세속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그리고 또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지위가 없으면 떳떳해질 수도 없다. 아무리 강인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조류에 저항할 일련의 가치체계를 만들 수는 없고 그저 부평초처럼 물결에 쓸려 다니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꿋꿋하고 강직하게 세속적인 것들을 경시한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나 자신의 인격의 뿌리는 그리 깊지 못하여 자기도 모르는 새 늘 세속적인 기준으로 남들과 교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관직에 있었지만 우리 위생청의 관료들처럼 철저한 관료적 풍모나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느낌을 그에게 말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구든 자기 직장에 있을 때는 잠재의식 속에 있는 연기자적 본능이 드러나게 마련이지.”

이튿날 서 형에게 부탁해서 그를 공항까지 바래다주도록 했다. 헤어지면서 내가 말했다.

“내년에 동창회 할 때 꼭 연락 주게나.”

“사실 동창회라고 해봤자 별거 있겠어? 그냥 얼굴 한 번 보는 거지. 다 그런 거지 뭐.”

이후에 동창회 소식을 알려온 것은 광개평이 아닌 허소만이었다. 그녀는 내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몇 년 만인지,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본에서 두 친구가 오기 때문에 동창회가 앞당겨졌다면서, 나더러 금요일에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기차편을 타고 올 것인지도 물었다. 나에게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고 그녀가 말했다.

“48호 기차를 타고 오면 되겠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역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결정도 시원스럽게 내리는군. 그런데 연락이 끊긴 지 벌써 몇 년 만인데 전화를 하면서 어떻게 내 안부도 물어보지 않는지 이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내 상황에 대해 대충 들은 바가 있어서 날 배려하느라 묻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북경에 다녀오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 보았다. 최소한 몇 백 위안이 필요했다. 동류에게 손을 내밀자니 자기 살점이라도 베듯이 아까워할 테고, 할 수 없이 감찰실의 막(莫) 여사한테 오백 위안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녀는 바로 빌려주었다. 저녁에 나는 동류에게 북경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고 했다. 동류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하도 많이 다녀와서 이젠 질렸나 보죠? 그러니까 당신한테 차례가 돌아왔겠지. 내 말이 맞죠?”

“맞지, 그럼. 당신이 언제 틀리는 거 봤어? 당신이 정답이지.”

“당신이 가게 된 걸 보니 좋은 일은 아닌가 봐. 높은 분 뵈러 가는 건 분명 아닐 테고, 맞죠?”

“맞아, 딱 맞췄어. 이렇게 정확할 수가. 당신 아니면 누가 이렇게 똑 소리 나게 맞출 수 있겠어?”

기차에서 내려 출구 쪽으로 나가려는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위! 대위!”

허소만이었다. 그녀가 마중 나올 줄이야!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동되었다. 내가 마중 나올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던가. 그녀가 사람들의 무리를 헤치고 다가와서 말했다.

“나는 저쪽 끝에서 찾았잖아.”

저쪽 끝은 침대칸이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북경까지 그 먼 길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왔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말했다.

“네가 너무 급하게 오라고 하는 바람에 침대칸 표를 살 수가 없었어. 여기까지 앉아 오느라 다리가 다 부었다.”

“대위, 너는 예전 그대로네. 하나도 안 변했어. 시간이 너를 깜박 잊고 내버려뒀나 봐.”

“뇌막염 후유증이야. 일에도 얽매이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고, 신경 쓸 일이 없으니까.”

그녀는 확실히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예전의 젊고 활기찬 모습이 아니었다. 중년 부인의 티가 제법 났다. “너도 하나도 안 변했네”라고 말해야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너무 가식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너도 별로 많이 변하지 않았어. 하긴 허소만이 어디 가겠어?”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아주 기뻐하면서 말했다.

“정말? 살도 찌고, 애가 벌써 여섯 살인걸.”

역을 나오니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역시 잘 나가는 사람은 다른 걸.”

차 안에서 나는 그녀가 나의 최근 근황을 물어오기를 기다렸다. 언젠가는 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묻지 않았다. 기사 앞에서 나도 그녀 상황을 묻기가 좀 불편하기에 그녀와 이런저런 동창들의 소식들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위생부(衛生部) 내의 숙소에 묵기로 되어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면서 내가 말했다.

“위생 계통에서 몇 년을 일했지만 위생부에는 처음으로 와보는데 신성한 장소 같이 느껴져. 너는 매일 여기 있으면 꿀통 속에 빠져 있는 것 같겠다.”

“위생청 사람들도 자주 와서 일을 보고 그래.”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그녀가 현재 내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덧붙였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오겠지.”

이렇게 말하고 나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이야기하는 데 있어 장애가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녀는 놓치지 않고 물었다.

“아직 중의학회에 있어?”

“벌써 사오년이나 됐어.”

차에서 내려 나를 방까지 데려다주고 그녀가 말했다.

“일부러 하루 일찍 오라고 한 거야. 가끔은 머리를 써야 할 때도 있어. 무슨 물건이든 일단 갖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가질 수 있어. 또 갖고 싶다고 생각하면 결국은 가질 수 있는 거고. 너도 그렇게 해봐.”

“그쪽으론 재능이 없어. 그냥 논문이나 몇 편 쓰면 됐지.”

“논문도 물론 써야지. 그렇지만 다른 것들도 없이 지낼 수는 없잖아.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으면 안 되지. 빈궁함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貧窮不是社會主義) 했잖아.”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고 보니 너무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야기를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하나는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사람.”

나는 웃으면서 대꾸했다.

“이 방 안에 세상 모든 부류의 사람이 다 있네.”

그녀는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와 말장난이나 하자는 거야?”

나는 일부러 명랑한 척 나의 상황을 숨기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대로라면, 나는 그녀를 멀리 밀쳐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그래, 그럼 우리 진지하게 얘기해 보자. 왕년의 허소만이 언젠가 처장이 될 줄은, 그것도 서른이 갓 넘어서 처장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네.”

“사실, 처장도 다 그렇고 그런 거지. 그렇지만 세상에 그렇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니?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고, 그 그렇고 그런 일(那麽回事)이라도 있는 게 그나마도 없는 것보단 나은 거지. 사람은 있잖아, 어느 한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그 한 사람이 생각을 왼쪽으로 돌리면 흥하게 되고, 오른 쪽으로 돌리면 망하게 되는 거지. 흥하고 망하는 것, 천당과 지옥, 자기는 지금 천당에 올라가고 있는지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봐. 우리 같은 사람들 대다수의 마음은 그 한 사람의 마음에 쏠리게 마련인 거야. 모든 노력을 다해서 그 한 사람의 마음을 왼쪽으로 돌리도록 해야지. 만약에 오른 쪽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모든 게 끝장이거든. 가끔은 그 한 사람의 눈빛만 심상치 않아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끝장이야. 끝장나고도 자기가 어떻게 끝장났는 줄도 몰라.”

“딱 내 얘기군. 지난 몇 년간, 정말이지 되는 일 하나 없더라고.”

나는 그녀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대위야!”

내가 말했다.

“사실 나도 바보는 아니거든.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알아. 그런데 뭔가가 계속 나를 막고 있어. 알아도 소용이 없어.”

“나는 너를 알지. 나는 널 알아.”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너한테는 말 빙빙 돌려서 하지 않을게. 너 마음 아파도 난 상관없어. 예전에 한 농부가 나귀를 몰고 절벽 옆을 지날 때였어.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였지. 농부는 나귀더러 안쪽으로 붙어서 가라고 채찍질을 했지만, 나귀는 끝까지 가장자리 쪽으로 걷는 거야. 아무리 잡아끌어도 소용이 없더래. 결국에는 나귀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지. 농부가 탄식을 하면서 뭐라고 했는 줄 아니? 그래 네가 이겼다, 네가 이겼어! 사람이 고집부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야.”

만약 다른 사람이 했으면 내가 벌써 발로 걷어차고도 남을 이야기였지만, 허소만이 하니까 별다른 반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자조적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언제 풀이라도 뜯어서 날 좀 먹여줘.”

“너는 자기 자신을 막고서 뭘 하려는 거야? 손을 뻗을 때는 손을 뻗어야지.”

그녀는 허공을 향해 뭔가를 잡아채려는 듯 재빠르게 손을 뻗었다가 끌어들이는 동작을 해보였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허소만한테서 이런 동작이 나올 줄이야. 내가 말했다.

“허소만, 너도 현실주의자가 되었구나.”

“누구는 뭐 구름 속에 살다가 갑자기 인간세계로 떨어진 줄 아니? 처음에는 누구든지 그런 심리적 장애가 있기 마련이야. 너나 나나, 누구는 뭐 자존심이 없니? 그렇지만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자기를 굽히지 않는다면, 그럼 어떻게 하니? 세상더러 바뀌라고 할까? 그건 불가능하지.”

허소만과 나는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밥을 먹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이번 모임을 위해서 돈 번 동창 몇몇의 도움을 받았어. 다른 사람들은 그냥 성의만 표시하고, 숙비와 식비는 따로 걷지 않기로 했어. 그런 것까지 걷으면 너무 속돼 보이잖아.”

“그럼 나도 성의를 보여야지.”

성의를 보여 봤자 한 백 위안 정도겠지. 그런데 그녀가 말하기를 능국강(凌國强)이 오천팔백 위안, 오외(伍巍)가 사천칠백 위안씩을 냈다고 했다. 하나는 사업을 하는 놈이고, 하나는 관리인데, 서로 일등을 차지하려고 경쟁을 하다가 결국은 능국강이 더 큰 금액을 내게 됐다고 했다. 그 액수를 듣고 나는 머리카락까지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우리 같은 서민은 성의만 보이는 게 어느 정도야?”

“나는 팔백 위안 냈거든.”

“그럼 나도….”

그녀가 손짓으로 내 말을 막았다.

“넌 됐어. 내가 네 이름 써서 올릴게.”

나는 내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지갑에 겨우 사백 위안밖에 없었다. 형편없이 빈약한 주머니 사정으로 무슨 큰소릴 치겠는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아무 말도 않고 있자니 방금 전에 ‘서민’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 정말 추하게 여겨졌다. 못 보일 꼴 다 보였군.

오후에 우리는 모교를 방문했다. 나는 차를 교문 앞에 세워두고 가자고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차를 몰고 들어가자고 고집했다. 나는 그녀가 그런 금의환향 식의 감상에 젖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느낌을 가지려면 먼저 어느 정도 자리에 오른 후여야겠지. 나는 그녀와 같이 옛날에 그녀가 살던 기숙사로 갔다. 학생들은 모두 수업을 가고 없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오는데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내가 살던 기숙사에도 갔었다. 예전에는 미색이었던 문 색깔이 지금은 갈색으로 바뀐 것만 빼고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가 오년 내내 사용했던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한 남학생이 모기장에서 얼굴을 내밀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누굴 찾으세요? 기척도 없이 들어오시면 어떻게 해요?”

“잘못 들어왔네.”

얼떨결에 이렇게 말하고 그냥 나와 버렸다. 우리는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그해 3월 20일 밤에 횃불을 들고 손에 손을 잡고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면서 교문을 향해 나아가던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귓가에 격정적인 구호 소리들이 들려왔다.“일어나라, 노예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여. 우리의 살과 피로 다시 만리장성을 쌓자!”,“단결! 중화 부흥!”과 같은 구호들이 밤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졌었다. 십년 전의 일들이 아득히 먼 옛날 같이 느껴졌다.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그날 밤이 생각나서.”

그녀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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