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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떼빌, 센트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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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떼빌, 센트레빌

최연구의 '생활속 프랑스어로 문화읽기' <4>

요즘 ‘아파트’가 세간의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자고 나면 가격이 뛰는 아파트는 한국사회의 요물단지임에 틀림없다. 강남권의 아파트 1만 가구는 지난 8월 한달동안에만 매매가격이 1억원 이상 올랐다고 한다. 87년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죽었을 때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하더니, 이제는 ‘한달이면 억’하고 가격이 오르니 무주택 서민들은 그저 하루하루가 불안할 따름이다.

정부의 강도 높은 ‘9.5 재건축대책’ 발표에 힘입어 강남아파트들의 가격상승세가 한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이미 아파트 가격이 천문학적인 액수인지라 그런 신문기사의 분석은 피부에 도대체 와 닿지가 않는다. 전체적인 경제지표에 비해 집값이 이렇게 비싼 나라가 세계 어디에 또 있겠냐 싶다. 이렇게 땅값이나 아파트 가격이 비싸니 우리나라의 부동산을 처분하면 유럽 전대륙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치부와 투기의 대상이 돼버렸다. 아파트값이 서민들의 현실적인 구매력을 벗어난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이 즐겨보는 공중파 방송에는 아파트 광고가 끊이질 않고 있어 내집 마련의 꿈이 요원한 서민들의 심사만 뒤틀리게 한다. 래미안, e-편한세상, 롯데캐슬 등 대기업의 파워브랜드들이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프랑스말로 된 아파트 이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새로운 풍속도라면 풍속도일 것이다.

아르드뽀, 드봉 등의 화장품명이나 요리계, 베이커리계에서의 용어를 이미 석권한 프랑스어가 아파트명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프랑스어가 가지는 고급스런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불황일수록 업계는 오히려 내놓고 고급화 전략, 리치 마케팅으로 나가고 있는데, 이런 것을 보면 정말이지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를 실감할 수 있다.

최근 라디오나 TV에서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 광고는 ‘상떼빌’이다. '상떼(Santé)'는 건강이란 뜻이고 '빌(ville)'은 마을이란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설계의 중심을 건강에 둡니다. 상떼는 프랑스어로 건강이란 뜻입니다. 상떼, 상떼빌” 흘러나오는 방송카피문구에 귀가 솔깃해진다. 건강을 생각하는 아파트라, 참 그럴하군! 내가 견문이 짧아서인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에서 7년을 사는 동안 프랑스에서 설계의 중심을 건강에 둔다는 말은 사실 들어본 적이 없다. 결국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어쨌거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을’이라니 그리 나쁘지는 않다.

각설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외국어표기법에 의하면 프랑스어의 경우는 경음대신 격음을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니까 ‘빠리’가 아니라 ‘파리’, ‘삐에르’가 아니라 ‘피에르’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왜 이런 식으로 표기법을 정해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어, 이태리어 등 라틴어의 경우 첫음의 p는 경음이 원음에 가깝다. 빠삐용(나비), 쁘띠 부르주아라고 읽는게 원음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앵글로 색슨인들은 아예 경음발음을 못하므므로 빠리, 삐에르, 빠삐용을 ‘패리스’,‘피에르’,‘파피욘’이라고 발음하지만, 우리말에는 엄연히 경음발음이 있는데도 격음을 바른 표기법으로 정해놓은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상떼빌도 현행 바른 표기법에 의한다면 ‘상테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외국어표기법을 무시하고 원음에 가깝게 ‘상떼빌’이라고 표기한 건 오히려 마음에 든다.

한편 모건설회사의 또다른 아파트브랜드 ‘센트레빌’은 좀 문제가 있다. 센트레빌이란 표기는 국적불명이다. 영어도 아니고 프랑스어도 아니고 도대체 알파벳 철자를 보기 전에는 국적을 파악하기가 힘든다. 나도 광고판에서 자주 보았는데, 어느날 유심히 보니 센트레빌은 프랑스어였다. ‘Centre(상트르)’와 ‘ville(빌)’의 합성어인데, 상트르는 영어의 센터(중심)에 해당하는 말이고, 빌은 마을이란 뜻이다. 상트르빌은 프랑스어로 ‘시내중심가’란 뜻이다. 영어의 downtown, 독일어의 Zentrum에 해당한다. 이것이 프랑스어인지 모르고 사용했는지, 그냥 ‘마을의 중심’이란 뜻으로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런 설명없이 센트레빌이라고 읽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프랑스어에서는 마지막의 e가 묵음인데 이런 프랑스어발음법을 잘 모르는 한국에서는 굳이 e를 힘줘서 읽는 무지를 드러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센트레도 아마 그런 경우인 듯 싶다. 그렇다면 아예 ‘센트레빌레’라고 하든지 말이다. 상떼빌에 살건, 센트레빌에 살건 그 아파트의 입주자라면 아파트 이름의 의미 정도는 파악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한다면 지나친 걸까.

사람이 사는 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의식주이다. 지금은 보릿고개시절이 아니기에 우리 사회도 먹고 입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다. 하지만 주택문제는 여전히 물음표이다. 생각해보라. 우리나라의 경우 정상적인 직장인이 봉급을 모아서 서울에서 아파트 하나 장만한다는 것이 가능이나 한지 말이다. 평생 아끼고 모아도 제 힘으로 제 집하나 마련하기 힘든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서민들에게는 상떼빌이건 센트레빌이건 그런 이름은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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