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35>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 - ‘창랑지수‘ <35>

권력과 돈 : 이 세상의 주재자

***35. 권력과 돈 : 이 세상의 주재자**

그날 나는 사무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밖에서 윤옥아가 말끝마다 공(孔) 과장님, 공 과장님, 하면서 누군가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윤옥아가 말했다.

“앞으로도 자주 와서 지도해 주세요, 공 과장님. 공 과장님은 앞길이 창창하시니까 앞으로 무슨 일 생기면 부탁 좀 해요. 설마 모르는 척하지는 않겠죠?”

그 말을 듣는 내가 다 거북할 정도였다. 과장이면 과장이지, 화장실에서 일 보다가도 마주치는 게 과장인데 저렇게 간드러지게 부를 것까지야. 윤옥아는 그 사람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해주고 돌아왔다. 나는 위생청 내에 공 씨가 없는 걸로 알고 있던 터라 그녀에게 물었다.

“그 공 과장이라는 사람, 위생청 소속인가요?”

“공상능(孔尙能)이에요. 알지요? 퇴휴직과 과장이 되었데요.”

“공상능이 위생청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과장이 돼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동작이 얼마나 빠른데.”

“어쩐지 며칠 전에 우연히 만났는데, 인사하는 말투가 달라졌다 했더니.”

정소괴가 이사하던 날 그가 와서 이사를 도와주는 것을 봤다. 그런데 그 며칠 후에 나는 정소괴가 공상능에게 이것저것 따지면서 엄하게 훈계하는데, 공상능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듣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자기네 이사하는 것까지 와서 도와줄 정도면 어쨌거나 서로 친한 사이일 텐데, 정소괴 저 인간은 어떻게 저런 식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지? 속으로 공상능을 동정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또 며칠 후였다. 도서실에서 공상능이 조(趙) 씨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공상능은 말끝마다‘정 주임님, 정 주임님’하면서 정소괴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저자는 인격수양부터 해야겠군! 정소괴가 어떤 인간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거야? 나는 그의 어리석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를 윤옥아에게 해주었더니, 그녀가 말했다.

“위생청에 이상한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이상한 사람도 적지 않고. 이제는 웬만한 것은 이상하지도 않아요.”

내가 말했다.

“달리 생각하면 이상해 보여도 사실은 이상할 것 하나 없고, 또 바보 같아 보여도 사실은 바보가 아닌 거지요. 그 사람이 정말 바보라면 몇 년 만에 바로 과장이 되었겠어요?”

그렇다. 모든 규범이 뒤집혀버렸다. 그런 일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고, 그 인간을 바보 같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다. 이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심적인 압박감이 느껴졌다. 몇 년만 지나면 공상능마저도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텐데, 그땐 어떻게 하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야 하나. 이 바닥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위를 향해 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도 없고, 살아남더라도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없다. 나는 내 장래를 생각해 보았다. 절망적이었다. 벌써 서른도 넘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하루 종일 멍청히 자리만 지키고 있다. 몇 년만 지나면 만년사원으로 늙겠지. 이백은 일찍이 말했었다.‘청천 같은 큰길인데, 나만 홀로 못 가네(大道如靑天, 我獨不得出)’라고.

나는 그의 고통을 나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이런 식으로 견뎌왔겠지. 그 기상이 하늘에 닿고 비상한 재주를 가졌던 그도 이런 식으로 견뎌왔겠지. 그 속에 담긴 피와 눈물의 의미는 우리가 그의 생명의 주름 속에 새겨진 미묘한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는 한 느끼기 힘들 것이다.

나는 살 길을 찾아내야만 했다. 위생청 안에서 방법을 찾자니 유일한 돌파구는 남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방법은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한다는 건 지난 시절을 허비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그것만큼은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나한테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나를 납득시킬 수도 없다. 더군다나 윗사람들도 이런 나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서른도 더 넘어서 환골탈태하겠다고? 그것이 가능할까? 나 자신마저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후회스러웠다. 애초에 위생청에 남는 게 아니었는데. 중의연구소에 가서 전공이나 살릴 걸…, 그놈의‘천하(天下) 콤플렉스’때문에,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은 마음에, 결국은 지금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정말이지 동류나 일파를 볼 면목이 없다.

육년 전 대학원을 졸업할 때만 해도 석사 출신이라고 하면 봉황의 깃털 같고 기린의 발톱 같은 귀하고 뛰어난 인재 취급을 받았지만, 요즘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 몇 년 동안 발표한 열여 편의 보고서였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중의연구소로의 전근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세상일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어도 내 앞가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동류에게 이야기했다.

“정말 옮기게요? 옮겨봤자 위생청 관할인데, 어디로 옮기든 마찬가지에요. 문제 일으키는 사람은 어딜 가나 문제를 일으켜요.”

“최소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생기잖아.”

“다시 시작하는 건 어디서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위생청은 위생청이에요. 위생청에선 일년 내내 이런저런 물품들을 지급하잖아요. 당신도 그 덕 보고 있고요. 우리 병원에는 그런 것 없어요.”

“난 그저 새로운 곳으로 가서 보기 싫은 사람들 좀 안 보고 살고 싶은 거지. 정소괴, 정 주임, 어쨌든 눈에 좀 안 띄었으면 좋겠어.”

“지금 당신은 현실을 도피하려는 거예요. 사실 어딜 가나 눈엣가시 같은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에요. 우리 병원에는 없는 줄 알아요?”

“어쨌든 나는 옮길 생각이야. 여자들은 코앞의 고만큼만 볼 줄 알았지 여기는 도무지 보지를 않는군.”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여기, 여기.”

“나는 도대체 당신이 말하는 그놈의‘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꼭 옮겨야겠다면 나도 당신 다리를 밧줄로 붙들어 맬 생각은 없어요. 그저 조건이 있어요. 어디를 가건 우리 방 두 칸짜리 집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요, 나는 여자에요. 여자라서 코앞의 고만큼만 본다고요. 난 우주니 별이니 달이니 하는 거 신경 안 써요.”

나는 정철군(程鐵軍)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내가 중의연구소에 있을 때의 친구였다. 그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자, 그가 말했다.

“자네 뭐 잘못 먹었어? 위에서 아래로 옮기겠다고? 그게 말이 돼?”

“내가 워낙 외골수라서 기관 쪽 일은 잘 맞지 않아. 그저 전공을 살리고 싶어서 말이야.”

“내가 진료부에서 의사로 있지만,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서 그렇고 그런 환자들이나 보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 그만둘 수만 있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네. 나더러 중의학회에 가서 월급 받으면서 매일 신문이나 읽고 차나 마시면서 하루하루 보내라고 하면 감지덕지 하늘을 향해 향이라도 피우겠네.”

내가 말했다.

“환자를 접해야 연구도 하지. 나도 논문을 열여 편 발표했지만 말이야.”

“오자마자 연구 쪽으로 가고 싶다고? 몇 년 더 다녀보고 얘기하세. 나는 자네와 바꿀 수만 있으면 좋겠네. 나와 바꿀까?”

“위생청에 있으면 얻는 것이 좀 있기는 하지. 그런데 사람들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나보다 한 급도 아니고, 딱 반 급 높은 인간이면 그 차이로 사람을 얼마나 눌러대는지.”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 연구소는 무슨 외국인 줄 아나? 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야. 그리고 자네가 육년 전에 여기 안 오는 바람에 같은 해 졸업한 친구들은 벌써 다 부(副)주임 의사며 부(副) 연구원이 되었는데, 자네는 지금 주치의 자격도 없잖아. 마음이 편하겠어?”

나는 일단 부딪쳐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정철군은 나를 인사과 정(鄭) 과장에게 데려다주었다. 정 과장은 우리더러 앉으라고 하고는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통화가 끝났는가 싶더니 또 한 통 걸기 시작했다. 정철군은 앉아 있는 내내 몸을 꽈대더니 결국 못 참고 핑계를 대고 먼저 나가버렸다. 한참 후에 정 과장이 통화를 마치고 내게 말했다.

“지대위 씨, 여기도 나름대로 부(副) 청급 기관이라 오려는 사람도 많고 쉽지가 않아요. 자리도 모자라고, 주택도 모자라고, 위생청과는 비교도 안 되죠. 전공 쪽 경력은 어떻소?”

나는 바로 논문 복사본을 꺼내놓았다. 그는 손으로는 논문을 넘겼지만 눈은 벽에 붙은 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생청에서 우리 쪽으로 내려오겠다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혹시 누구의 눈밖에라도 나서 그래서 오겠다고 하시는 건 아닌지요? 사실대로 말해 주세요. 우리도 아무것도 모른 채 위생청과의 관계만 나빠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누구의 눈밖에도 난 적 없습니다. 그저 전공을 살리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어쨌든 팔 년이나 공부했지 않습니까.”

그는 다시 내 논문을 뒤적이면서 말했다.

“괜찮네, 괜찮아요. 졸업하자마자 바로 왔으면 훌륭한 재목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전 인재를 존중하거든요.”

그는 연구소에 얼마 전에 중급(中級) 직함을 갖게 되었다는 서(舒) 씨 성을 가진 젊은이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중의연구>에 논문을 발표하고, 그 논문으로 성(省)에서 내리는 우수 논문 이등상까지 받아 그 다음 해에 바로 부 연구원이 되었다고 했다.

“그게 다 내가 처리한 겁니다. 인재에 대해서는 아주 파격적으로 길을 열어주는 거죠.”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두부찌꺼기 신세, 아니 구걸을 하러 온 거지신세라도 된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인재를 아끼는지에 관한 실례들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말이 끊긴 틈을 타서 인사를 하고 빠져나왔다.

나중에 정철군이 내게 얘기해 주었다.

“자네 그 상 받은 사람 누군지 아나? 바로 서 소장 아들이야! 아니면 어떻게 그 사람 논문이 일급 간행물에 게재되고, 또 그 논문으로 상까지 받고, 파격적인 인사 승진까지? 그 논문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나도 다 알아. 그렇지만 누가 그걸 감히 까발리겠어? 그 사람한테 아부하는 사람은 있어도 자네나 나한테 아부하려는 사람은 없지. 논문 쓰고, 발표하고, 상 받고, 진급하는 것까지가 풀 서비스(一條龍服務)라니까.

원칙은 죽었지만 사람은 살아 있지(原則是死的, 人是活的). 산 사람이 못할 게 뭐 있나? 원칙이라는 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나 덮어씌우는 거지. 오늘날 재주 좋은 인간들이 도장을 손에 넣지. 도장을 손에 넣지 못하면 억울하단 소리도 하지 말아야 해. 안 그랬다간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나 제공하고 말아. 누가 잡지 말래? 그런데도 자네는 이런 곳으로 옮겨오겠다는 거야? 열 받아서 죽지 않을 자신 있으면 옮겨오게나.”

연구소에서까지 물 먹을 줄이야. 나는 자신감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나, 인간 지대위가 이 정도로까지 몰락하다니, 정말 믿을 수 없는 노릇이다. 세상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어떤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이 보이지 않게 존재하면서 나를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착하게 살면 다 그 보답을 받는다고? 웃기고 있네! 나는 착하게 살지 않을 용기가 솟는 것 같았다. 내겐 그럴 권리도 있다. 어차피 세상은 힘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선악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나름대로 근성도 있고, 사람 사는 원칙을 지키려는 강인함도 갖추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웃음거리, 무능함의 표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또 하나의 추상적인 자아가 내 육체에서 빠져나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냉정하게 심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조소 섞인 눈빛도 다 이유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너 별 것 아니잖아. 무슨 근거로 다른 사람들이 너를 대단한 인물로 봐 주길 바라는 거지?

세상은 바뀌었다.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낯설고 환멸스럽다. 권력과 돈(權和錢), 이것은 세상의 주재자로서(這是世界的主宰), 어떻게도 피해갈 수 없는 진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런 진리 앞에 고개를 숙인다면, 내가 그러고도 지식인이라고,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착하게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바라서도, 시간의 인정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세속과의 타협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결국 끝으로 남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정신적인 이유이다. 나는 그렇게 하길 원한다. 정소괴를 따르는 데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그런 정신적 이유가 과연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선재(先在)하는 역량이 나를 규정지은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굳이 나 스스로를 규정지으려 하는 걸까? 나는 내 자신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수염을 깎다가 전기면도기에 달린 작은 거울에 우연히 내 얼굴을 비춰보게 되었다. 이마, 눈썹, 눈, 아래로 내려와서 코, 입,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진짜 같기도 하고 가짜 같이 보이기도 했다. 이게 바로 나로구나. 이 순간에 존재하는, 이런 거로구나. 그때 문득 턱 언저리에 그을린 듯한 갈색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진짠가? 벌써 갈색 수염이 다 생겼단 말인가? 시간은 정말로 예외 없이 찾아드는구나. 마치 창 밖의 은행나무처럼 말이야. 내가 저 나무를 관찰한 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다. 매년 저 나무의 잎사귀들이 정말로 충만하고 부드러운 신록을 자랑하는 것은 며칠 뿐, 그 아름다움을 미처 다 펼쳐내지도 못한 채 금세 짙은 녹색으로 변해 버린다.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내 인생도 이렇게 끝나버리는 건가?

어쨌든 나는 뭔가 탈출구를 찾아야만 한다. 한참 고민 끝에 두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첫째는 그냥 정소괴의 뒤를 따르는 것, 그리고 둘째는 제대로 된 논문을 몇 편 써서 <중의연구>에 발표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넓디넓건만 내 코앞에 놓인 것은 ‘고작 이 정도’(這麽一點點)였다. 우주를 아무리 넓고 깊이 사고해도 결국은‘고작 이 정도’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유일한 진실이다. 세숫대야 안의 폭풍도 역시 폭풍이고, 어쨌든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물며 이 정도, 깨알 하나라도 나한테는 매우 유용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머뭇머뭇, 우물쭈물하면서 보내버린 지난 육년이라는 세월이 너무나 아쉬울 뿐이었다. 정소괴를 따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깨닫고 있듯이, 이윤의 극대화야말로 핵심적인 시장 원리지만, 그러나 나의 감정적 본능은 이에 강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심리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랬다. 내 피 속에 흐르는 어떤 힘이 나를 막고 있는 것이다. 내게 이윤극대화의 원칙으로 인생을 운영할 권리가 있을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람의 몸에는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신비한 역량이 있어서, 그것이 그 사람을 규정짓고, 사람은 그 힘에 복종할 때에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믿었다. 내 혈관 안에 무수히 많은 작은 영혼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상상에 빠졌다. 그들이 나에게 계속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그 때문에, 나는 나를 지나치게 억누를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나의 이런 생각을 동류에게 이야기하자, 그녀가 말했다.

“당신 뜻대로 해요.”

그녀의 관대함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몇 년이나 그렇게 참아주었고, 또 앞으로도 참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도서실에서 빌려온 책들을 출근해서도 보고, 저녁에도 바둑 두는 일을 최대한 삼갔다. 그렇게 나는 금세 감각을 회복했고, 종종 창조적 불꽃들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나는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좋은 논문을 한 편 완성할 수 있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