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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에 빨려들어간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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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에 빨려들어간 부시

<분석> 이라크는 인명ㆍ자금 잡아먹는 블랙홀

부시 대통령의 7일 밤(현지시간) 대국민 연설로 이라크사태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날 연설에서 부시는 미국의 독단적 이라크경영이라는 기존 정책을 접고 유엔 등 국제사회에 대해 지원을 호소했다. 다시 말해 부시행정부의 이라크정책이 일방주의에서 다자주의로 전환했음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나홀로 일으킨 전쟁, 당신들이 책임져라?**

또한 이날 연설은 미국의 일방적 무력행사에 의해 이라크를 시작으로 중동지역 전체를 미국 영향권 안에 확고히 편입시키고, 이를 통해 앞으로 수십년간 세계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세계전략이 심각한 장애에 부딪혔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문제는 이번 부시의 연설이 이라크사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의 반응은 ‘아니다’라는 쪽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8일 부시의 연설에 대해 “이라크의 조기 평화정착 및 자치 실현이라는 당초의 기대가 무너졌다는 가장 공식적인 인정”이라고 평했다. 로이터는 이어 부시가 이날 연설에서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 일정도,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대량살상무기의 발견 전망에 대해서도 밝히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정당한 명분도, 해결의 전망도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부시가 이날 연설에서 오사마 빈 라덴,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 실현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라크전을 통해 국제테러분자들을 소탕하고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며 나아가 중동평화를 실현하겠다던 부시에 대한 간접적 비판인 셈이다.

이 신문은 또 ‘부시의 과제: 장기 전쟁을 준비함’이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서 지난 달 바그다드 주재 유엔사무소에 대한 폭탄테러, 그리고 부시가 중동평화를 위해 그토록 희망을 걸었던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총리의 사임 등으로 미국의 중동정책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지난 5월 미국의 압력에 의해 팔레스타인 총리에 기용된 압바스는 부시의 이번 연설 하루 전인 지난 6일 돌연 사임했다.

***15분 연설로 15개월 잘못을 만회한다고?**

한편 민주당 대선 후보 중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부시가 아직도 이라크의 혼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초부터 이라크전쟁을 반대했던 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5개월간 우리가 왜 이라크와 전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미 국민들을 오도하고, 이라크를 점령한 지난 15주간 재건사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잘못을 15분에 걸친 오늘의 연설로 벌충할 수는 없다”며 부시를 몰아부쳤다.

이처럼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부시가 엄청난 규모의 예산 증액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사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총체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시는 이날 연설에서 오는 10월부터 내년 9월까지 1년간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작전과 재건 비용으로 8백70억 달러를 요청했다. 이중 국방부 몫이 6백60억 달러이며 나머지는 재건비용 등에 충당될 예정이다. 또 이라크 몫으로 7백50억 달러, 아프간 몫으로 1백20억 달러를 요청했다.

***걸프전 비용 90억 달러, 이라크전은 1천6백억 달러 이상**

이는 당초 예상됐던 6백50억 달러보다 2백억 달러 이상 많은 액수로 미 의원들은 충격과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 의회는 전쟁이 시작된 후인 지난 4월 이라크관련 예산으로 올해 9월까지 7백90억 달러를 승인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예산이 그대로 승인된다면 전쟁이 시작된 후 약 1년반동안 미국이 이라크 등에 쏟아 붓게 될 돈은 1천6백억 달러가 된다. 또한 4천8백억 달러로 예상됐던 미국의 2004 회계연도 재정적자는 사상최초로 5천억 달러를 돌파, 약 5천6백억 달러가 될 전망이다.

지난 91년 걸프전의 전쟁 비용은 약 8백억 달러였다. 그러나 당시 비용의 대부분은 사우디와 일본, 독일 등이 부담했고 미국이 낸 돈은 고작 90억 달러였다. 반면 이라크는 이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앞으로 미국이 몇 년이나 더 이라크사태에 매달려야 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라크 통치를 책임지고 있는 폴 브레머는 최근 깨끗한 수돗물 공급을 위해서만 1백60억 달러, 전력시설에 완비에는 1백30억 달러가 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앞으로 5년간 이라크의 국가기간시설을 정비하는 데 1천억 달러가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브레머의 전망은 오히려 낙관적인 편이다. 미 국립과학예술원은 앞으로 10년간 1천60억-6천1백50억 달러가 들 것으로 추산했다. 또 한 시민단체(Taxpayers for Common Sense)는 1천1백40억-4천6백50억 달러라는 숫자를 내놓았다.

다시 말해 부시가 이번에 요청한 8백70억 달러는 내년 9월까지 사용될 금액이고 그 이후까지를 포함하면 수천억 달러 규모가 소요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을 미 국민의 혈세로 충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라크 석유생산 내년 10월에나 정상화**

전쟁 종결 직후까지만 해도 부시 행정부는 세계 2위 매장량을 가진 이라크의 석유를 팔아 이라크 재건자금에 충당할 것이라고 큰소리쳤었다. 그러나 올 8월이면 이라크 석유생산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될 것이라던 지난 6월의 전망은 7월에 가서 오는 10월로 늦춰졌고, 이제는 내년 10월로 더욱 늦춰졌다. 하지만 이라크 내 후세인 잔당과 외국에서 몰려든 테러리스트들의 끊임없는 파괴공작 때문으로 내년 10월까지 석유생산이 정상화될 것이란 보장은 전혀 없다.

공짜로 이라크를 경영할 수 있을 것이라던 부시행정부의 호언장담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앞으로 미 국민의 혈세 수천억 달러를 퍼부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미 국민들이 과연 순순히 동의할 수 있을까? 이미 빈사 상태에 빠진 미국경제가 그 정도의 지출을 견대낼 수 있을까?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부시행정부는 이라크 재건을 위해 동맹국들에 3백억-5백5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한다. 당초 다른 나라의 도움은 필요없다며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으킨 전쟁의 뒷감당을 위해 과연 동맹국들이 이처럼 엄청난 재정지원을 해줄 수, 아니 해줄 용의가 있을까?

더욱이 뉴욕타임스 6일자 보도에 따르면 선진국들의 재정지원이 이라크에 쏠리게 되면 그만큼 개도국들에 대한 지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게 돼 개도국들의 반발마저 예상된다. 보도에 따르면 내년 1년동안 이라크 군정 운영을 위해서는 약 2백억 달러가 소요되는데 이는 선진국들의 연간 개도국 지원자금의 3분의 1이 넘는 액수다.

이에 대해 지난 주 미국이 유럽 등 동맹국들의 이라크 재정지원을 위해 개최한 브뤼셀 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리는 “생각해 봐라.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가 전세계 개도국들이 나눠 써야 할 자금의 3분의 1 이상을 가져가다니... 다른 가난한 나라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란 말인가. 아마 아프리카 전체를 합해도 그 정도의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전 이후 전사자가 전쟁기간중 전사자보다 많아**

돈보다 더 시급한 것은 사실 병력지원이다. 전쟁 공식 종결된 5월 이후 7일까지 미군 전사자는 1백49명으로 이미 전쟁 기간동안의 전사자(1백38명) 숫자를 넘어섰다. 이제까지의 전사자는 2백87명으로 걸프전 때의 2백93명에 육박하고 있다. 부상자도 지난 2일 현재 1천1백27명에 이른다.

점령 이후 치안유지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부시행정부는 전쟁 종결 이후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 군 및 경찰을 모두 해산시키고 치안유지를 오로지 미ㆍ영군에 의존했다. 완벽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전쟁 직전 2만명에 달했던 수도 바그다드의 경찰은 6천명으로 급감했고 그나마 대부분은 훈련생들이다. 20만에 육박했던 이라크 육군에는 이제 고작 1천명의 신병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같은 치안 공백을 틈타 아랍권 전체의 과격분자들이 속속 이라크로 몰려들면서 이라크의 치안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지난 주 부시 대통령이 유엔에 지원을 요청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파월 국무장관은 이라크 다국적 평화유지군 결성의 근거가 될 안보리 결의 채택을 위한 교섭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 교섭이 순탄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가장 강력히 반대했던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과 독일의 쉬뢰더 총리는 이미 지난 4일 미국이 충분히 양보할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거부 의사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동맹국 병력지원 고작해야 1만5천명**

설사 안보리 결의가 채택된다 해도 동맹국의 병력 지원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껏해야 1만-1만5천명 정도가 파견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파월 장관은 7일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새 안보리 결의가 채택된다 해도 국제사회가 많은 숫자의 추가 병력을 보낼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시행정부의 고민은 현재 미군의 병력 규모(약 14만)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마당에 이라크 평화 유지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일부 군사평론가는 최대 50만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내놓고 있다. 반면 미 의회예산국(CBO)은 미군이 세계 다른 곳에서의 군사작전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내년 봄 이전에 현재 주둔 병력을 절반 이상 감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진 것이다.

***미 다자주의 전환, 한반도 상황엔 유리할 듯**

부시행정부의 다자주의 전환이 전술적 후퇴인지, 진정한 정책 전환인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으나 일단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예컨대 북핵 사태와 관련해서는 고무적인 일이다. 뉴욕타임스 6일자 분석기사 'U.S. setbacks abroad led to policy shift'는 "부시 팀이 일련의 국내외에서의 실패 및 압력에 의해 이라크 및 북한에 대한 접근방법을 재고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미 부시행정부내의 균형추는 외교 쪽으로 옮겨갔고 파월 장관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이어 부시행정부가 최근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왼전히 폐기한 이후에야 보상을 논의할 수 있다는 기존 방침을 바꿔 단계별 보상책을 제시한 것으로 그러한 변화의 사례로 꼽았다. 특히 이라크사태가 꼬여갈수록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강경책을 구사할 여지는 좁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이 진행되고 이라크에 관한한 미국의 자세전환이 긍정적 결과를 맺을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 미 군사평론가이며 퇴역 육군 대령인 다니엘 스미스는 지난 3일 외교 관련 민간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에 실린 글 ‘Quagmire? What Quagmire?’를 통해 ‘이라크는 베트남이 아니며 우리는 수렁(Quagmire)에 빠져들지 않고 있다’는 부시행정부 강경파들의 주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라고 비꼬았다.

이라크전 종결 이후 미국이 당초 예상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와 액수의 인적ㆍ물적 자원을 투입하면서도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라크는 수렁이 아니라 블랙홀이라고 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부시는 지금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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