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Le Monde)와 마몽드(Ma Monde).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둘은 어떤 관계일까. 사실 아무 관계도 없다! 르몽드는 프랑스 언론을 대표하는 유수한 일간지이고, 마몽드는 한국 모 화장품회사의 화장품 브랜드다. 하지만, 둘 다 ‘몽드’라는 단어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르, 마, 몽드는 각각 별개의 단어이므로 사실 표기상으로는 ‘르 몽드’, ‘마 몽드’라고 띄어쓰는 것이 맞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통상적으로 붙여쓰고 있으므로 여기서도 편의상 붙여쓰기로 하겠다.
'몽드’는 영어의 ‘World’에 해당하는 단어다. 즉 ‘세계’라는 뜻이다. 르몽드의 ‘르’는 정관사(the)이므로 르몽드는 ‘The World 신문’이다. 화장품 마몽드의 ‘마’는 1인칭 소유격이다. 그래서 마몽드는 ‘My World 나의 세계, 내 세상’이란 뜻이다.
개인적으로 마몽드 화장품은 써보지 않아서 이 제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마몽드라는 이름은 문법적으로는 잘못됐다. 프랑스어에서는 모든 명사가 남성 또는 여성의 ‘성’을 가지는데, 성에 따라 소유격이나 형용사가 달라진다. 명사의 성에 일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1인칭 소유격 남성형은 mon(몽)이고 여성은 ma(마)이다. 가령 나의 친애하는 아저씨는 ‘몽 쉐르 통통’이다. 그런데 문제는 몽드가 남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세계’는 마몽드가 아니라 ‘몽몽드’가 된다. 몽몽드가 아니라 마몽드라고 이름을 붙은 것은 아마도 어감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상품홍보를 위해 더 부드럽게 들리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마’가 있을 자리가 아닌데 이렇게 낀 것을 두고 ‘마가 꼈다((!)’고 할 수 있을지. 어쨌거나 마몽드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래도 언어에는 문법이라는 규칙이 있는데 남의 나라말이라고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마몽드 이야기는 대충 여기서 끝내기로 하고, 개인적으로 나는 르몽드 신문의 열렬한 팬이다. 르몽드 신문은 그야말로 격조있는 지성지이며, 상징적인 독립언론이기 때문이다.
르몽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여러 언론들과 비교해 본다면 오히려 신생언론에 가깝다. 60년이 채 못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1944년 8월 빠리가 나치로부터 해방되면서 우후죽순처럼 신문들이 창간되었는데, 그해 겨울 마지막으로 탄생한 신문이 바로 르몽드다. 르몽드 창간에는 법학자 뵈브-메리를 중심으로 하는 레지스탕스 출신들이 대거 참여했다. 당시 드골 장군은 외국인에게도 신뢰받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론지가 탄생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종이도 귀했고, 자금도 부족했던지라, 드골 정부는 신문 창간을 위해 당시 돈으로 100만 프랑이라는 거액을 지원했다. 이를테면 르몽드 신문은 드골 장군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창간된 이른바 ‘관제언론(?)’인 셈이다.
하지만 르몽드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이듬해 4월부터 원금을 갚기 시작해 1년도 되지 않아 드골 정부로부터 받았던 지원금을 완전히 갚았던 것이다. 그리고 르몽드의 언론인들은 창간 초기부터 신문사의 지분을 외부인에게 절대 양도하지 않겠다고 서약한다. 특정 이데올로기, 그리고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려면 무엇보다도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신문의 역사는 언론독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 초기에는 교권(종교권력)의 언론검열과 싸웠고, 다음은 정치권력의 압력과 맞섰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언론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금권(경제권력)이다. 대기업의 광고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한, 자본주의 언론은 진정한 독립성을 견지하기가 힘들다. 이런 언론의 속성을 르몽드는 창간 초기부터 분명히 인식했던 것이다.
외부권력으로부터의 철저한 독립과 재정적 자립은 반세기 이상을 지켜온 르몽드의 전통이다. 르몽드가 대기업의 광고보다 신문판매수입에 더 의존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르몽드의 재정구조를 보면 지대(신문판매)수입이 72%이고 광고수입이 28%인데, 이것이 바로 경제권력, 즉 자본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는 르몽드의 힘이다. 광고가 재정의 70-80%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언론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유럽언론 중에는 유력하고 유서깊은 신문들이 많다. 가령 유서깊은 영국신문 ‘더타임즈(The Times of London)'는 1785년에 창간되었다. 르몽드가 이런 오래된 신문에 비래 역사가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더 영향력있는 신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으로부터 독립,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고집하는 르몽드의 올곧은 정신 때문일 것이다.
한편 르몽드는 신문의 이름처럼 특히 국제문제에 큰 비중을 두는 신문이다. 그것은 르몽드의 창간 배경과 관계있다. 르몽드가 창간 초기부터 국제기사에 비중을 둔 이유는 2차대전 당시 조국이 독일에 패했던 것이 바로 이웃나라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조차 제대로 몰랐던 ‘프랑스의 게으름’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르몽드 창간을 주도한 뵈브-메리는 창간 때부터 줄곧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르몽드는 안으로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내세우면서도, 밖으로는 세계에 대한 정확하고도 폭넓은 인식에 주력했던 것이다.
또 르몽드는 창간 초기부터 사진을 쓰지 않고 엄격한 문체를 고수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진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딱딱한 신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석기사와 가치있는 정보로 ‘속이 꽉 찬 신문’이다. 어떻게 보면,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바뀌고 있는 현대 언론의 추세에 맞지 않는 신문이다. 이렇게 르몽드가 사진을 쓰지 않는 이유는 ‘이미지나 스펙터클’이 자칫 사건의 의미를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르몽드는 사진 대신 희화적인 삽화을 주로 사용한다. 이는 대부분의 대중신문들이 기사를 압도하는 사진을 싣거나 신문 1면에 대형사진을 사용하는 편집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현재 르몽드는 120개국에 걸쳐 배포되고 있고 프랑스에서는 발행부수가 40만부이다. 하지만 열독인구는 2백만명을 넘고, 그 사회적 영향력은 엄청나다. 중요한 이슈나 사건때마다 르몽드의 논설은 펜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르몽드를 보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르몽드가 분명한 논조를 가진 신문이고 어떠한 권력에도 부화뇌동하지 않는 독립적인 언론이라는 점이다. 이제 곧 창간 60주년을 맞는 르몽드는 창간부터 지금까지 ‘언론의 진실은 언론의 독립성에 의해서만 보장된다’는 창간자 뵈브-메리의 신문관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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