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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도 처음엔 별 것 아니었다”

김재명의 뉴욕통신 <20> ‘이라크 WMD 게이트'의 폭발성

이라크 대량파괴무기를 둘러싼 미국 부시행정부와 영국 블레어정권의 음모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부시-블레어 두 정권의 정치윤리적 결함은 그들의 정치적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오늘내일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물론 낮다. 정치적 몰락은 물밑에서 조금씩 데워지다가 끓어오르는 진행형이다. 30년 전 ‘제왕적 대통령’ 소릴 듣던 리처드 닉슨의 몰락을 가져왔던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도 처음엔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라크 대량파괴무기의 진실을 둘러싼 관심이 높아지면서 어느 날엔가 워터게이트의 복사판인 ‘대량파괴무기(WMD) 게이트’의 대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사진설명) 이라크 침공의 트리오-조지 부시 미 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 폴 월포위츠 부국방.(AP)

***엉터리 첩보에 바탕, 맞춤 정보로 가공**

특히 부시의 경우, 닉슨처럼 임기 중 추락하게 될지, 신뢰도 추락으로 말미암아 2004년 재선 실패로 결말이 날지는 두고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라크 침공의 두 주역(부시-블레어)이 불확실한 (거칠게 말해, 엉터리) 정보임을 잘 알면서도 이라크 침공 명분을 더하기 위해 첩보 수준에 지나지 않는‘정보’를 필요에 맞게 손질했다는 점이다.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를 개발하려 들었고,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거듭된 그들의 주장에 지구촌 사람들은 설마 하면서도 ‘사실’로 믿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이라크 대량파괴무기의 정보 가공은 부시-블레어 두 정권에 포진한 매파들의 공모로 이뤄진 것이라 보아진다. 그들은 ‘후세인 정권 전복’(이른바 regime change)이라는 가이드 라인을 설정, 그와 관련된 모든 정보(정확히 말해 ‘정보’가 아닌 ‘첩보’ 수준)를 꿰맞추기 식으로 ‘맞춤정보’를 가공해 서로 주고 받았다는 혐의가 드러나고 있다.

그렇지만 부시에겐 의회 다수파인 공화당과 9.11 애국주의 바람을 타고 판매부수를 늘린 매파 언론(hawkish journalism)이란 든든한 방패막이가 있다. 주간지 <위클리 스탠다드>의 편집인이자 이른바 신보수주의(Neocon) 진영의 이론가인 윌리엄 크리스톨은 좌충우돌로 부시 비판자들을 공격해왔다. 그는 의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남의 추문을 퍼뜨리는 험담꾼’(scandalmonger), 비판언론들의 보도성향에 대해선 “사실을 부풀리고 성급히 판단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믿고 싶어한다”는 독설을 퍼붓는다.

9.11 사건 뒤 애국적인 성향이 강해진 미 언론들이 이라크 대량파괴무기의 진실 문제를 크게 다루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금 영국 언론은 지면의 상당 부분을 이 문제 보도에 쏟아왔다. 현재 영국에서는 데이비드 켈리 박사(전 영국 국방부 고문, 생화학무기 전문가) 자살사건을 둘러싼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중이다. 이 과정에서 부시-블레어 두 정권이 이라크 대량파괴무기 관련 정보를 과장, 가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 하일라이트는 제프 훈 영 국방(8월27일), 토니 블레어 총리(8월28일 )가 증인으로 출석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블레어 비판자들은 “블레어와 그의 몇몇 측근들이 이라크 반체제 그룹과 연결돼 있는 정보원에 의존, 영국을 이라크전쟁으로 몰아갔다”고 지적해왔다.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하기 위해 엉터리 정보를 그럴듯하게 ‘가공했다(sexed up)’는 비판이다.

***블레어 총리의 최측근이 정보조작 ‘주범’**

자살한 켈리 박사가 영국 공영방송 BBC에 은밀히 폭로한 내용에는 이미 알려진 바처럼 “앨러스테어 캠벨 공보수석이 ”이라크는 공격명령을 내린 뒤 45분 안에 생물ㆍ화학무기를 실전에 배치할 수 있다“는 내용을 영국 통합정보위(Joint Intelligence Committee, 약칭 JIC) 보고서에 삽입하도록 했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들어있다. 켈리 박사는 결국 이라크 침공명분이 옳았느냐를 둘러싼 BBC-블레어 정권 사이의 싸움에서 진실과 국가이익 사이에서 고민 끝에 자살한 것으로 믿어진다. (블레어 정권은 문제의 ‘ WMD 45분 배치설‘ 정보 제공자가 이라크 군의 한 고급장교라고만 밝혔지만 아직껏 그 실체가 없다. 아마도 켈리 박사가 지난 7월 자살하지 않았다면, 이런 음모들이 영원히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자살사건 진상조사를 맡은 영국 브라이언 허튼 판사는 최근 무려 9천쪽 분량의 문건을 인터넷에 올려 공개했다. 이 문건들은 영국 총리실과 국방부, 그리고 BBC 등에서 제출한 문건들이다. 여기에는 캠벨(총리실 공보수석)과 스칼렛(통합정보위원회 의장), 이 두 사람이 주고 받은 문제의 메모와 이메일이 포함돼 있다. 일부 보도된 바처럼, 캠벨은 지난해 9월 19일 당시 이라크 대량파괴무기 관련 보고서를 다듬고 있던 스칼렛에게 “이라크가 1-2년 사이에 핵무기를 생산할 수도 있다”는 문구를 넣어달라는 메모를 보냈다. 이로 미뤄, 정보가공의 ‘주범’은 기자 출신으로 1997년 블레어 정권이 출범한 이래 ‘부총리’ 소릴 들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캠벨이고, ‘종범(從犯)’은 영국 정보부 M-I6 우두머리 출신인 스칼렛이다. 8월26일 조사위에 얼굴을 드러낸 스칼렛은 그러나 “아무도 나보다 정보를 더 많이 아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할 뿐, 정보 조작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캠벨 공보수석의 이메일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라크 대량파괴무기 관련)문건을 대폭적으로 다시 고쳐 써서 다음주 금요일까지 미국 측에 건네줄 것”이란 문구다. 부시 미 대통령은 블레어총리가 건네준‘가공된’ 정보보고서를 바탕으로 2002년 하반기 내내 이라크 침공 나팔을 불어댔다. 부시는 말했다. “내가 말한 모든 것에 개인적으로 책임(personal responsibility)을 지겠다” 그가 말한 것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특히 문제되는 것이 "영국정부는 최근 사담 후세인이 상당량의 우라늄을 아프리카에서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부시의 연초 1.28 국정연설문 속의 16개 단어다.

“영국정부는...알게 됐다”는 이 문장은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이 주장했듯, ‘기술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언뜻 보면, 단순한 서술적 문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하려는 음모가 스며있는 허구의 정보다. 그런 말을 듣는 미 국민을 포함한 지구촌 사람들은 “이라크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거니...” 하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문제의 9.24 영국 정보기관 문건은 이라크 우라늄 구입설에 대해 이렇게 간단히 적고 있다.

“우리의 판단으로는 이라크가 우라늄을 필요로 하는 어떠한 민간용(civil) 핵에너지 개발계획이 없음에도 아프리카로부터 상당량의 우라늄을 구입하려 했다.”

미 CIA와는 달리 영국 블레어 정권은 아직도 ’이라크 우라늄 수입설'이 잘못됐음을 시인하지 않는다. 그 정보가 그들 나름의 ‘정확한’ 정보원으로부터 얻었다고 우기는 상황이다.

***'네오콘’(Neocon) 음모설**

이미 드러난 사실이지만, 조지 테닛 미 CIA 국장은 이라크의 우라늄 구입설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시 국정연설 거의 1년전인 2002년 2월 조세프 C. 윌슨(전 가봉 주재 미 대사)을 비밀리에 니제르에 파견, 영국이 제기한 이라크 우라늄 구입 ‘정보’의 사실여부를 파악,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을 확인까지 했었다.(윌슨은 지난 7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내가 아프리카에서 찾아내지 못한 것’이란 이름의 칼럼에서 아프리카에 다녀온 ‘전직 외교관‘이 바로 자신임을 밝히면서, “부시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위해 정보를 선택적으로 이용했다”고 강력하게 비난했었다).

부시의 측근 강경파들은 부시의 1.28 국정연설에 우라늄 발언은 ‘실수‘였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라크가 아프리카에서 우라늄을 손에 넣으려고 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었다. 이를테면 부시의 국정연설 하루 전날 럼스펠드 국방은 펜타곤 기자회견에서 “후세인 체제는 핵무기 보유를 꾀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상당량의 우라늄을 구입하려 했던 게 최근에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딕 체니 부통령, 폴 월포위츠 국방부장관도 비슷한 발언을 방송 인터뷰, 집회연설 등에서 하고 다녔다. 따라서 부시 비판자들은 “이라크 대량파괴무기 보유설은 부시 행정부 강경파들과 ‘네오콘’(Neocon)이라 일컬어지는 신보수주의자들의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여긴다. ‘어떻게든 후세인 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자기망상(self-delusion)에 빠진 나머지 엉터리 정보를 이라크 침공에 악용하고 국민을 속였다는 비판이다.

지난 4월 바그다드 점령 뒤 미국과 영국, 그리고 호주의 정보기관 요원-생화학무기 전문가들 약 1천4백명으로 구성된 ‘이라크 조사그룹’(Iraq Survey Group, ISG)은 사담 후세인이 숨겨두었을 것으로 믿어지는 대량파괴무기(생화학무기)를 찾는 작업을 벌여왔다. 그러나 지금껏 허탕이다. 만에 하나 이라크에서 살상무기가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 부시는 신뢰도를 회복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부시 비판자들은 그렇게 내다보질 않는다. “가공된 정보임을 알면서도 이라크 침공 명분을 쌓으려고 단정적으로 말해, 미 의회와 국민을 속인 사실이 분명하다”는 비판적인 인식 때문이다.

***'WMD 게이트’ 터질까**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아프리카 우라늄 구입설을 제기한 부시의 1.28 국정연설을 가리켜 “단지 한 문장 속에 든 16개 단어일 뿐인데...”라며 그냥 넘어가려 한다. 그러나 CNN의 ‘십자포화’(Crossfire) 프로그램 진행자인 정치평론가 폴 비게일러의 시각은 다르다. “단지 16개 단어일 뿐인데...라는 말은 내게 (1972년 민주당 선거사무소가 들어있던 워터게이트 빌딩으로 침입한 사건으로 끝내 닉슨의 사임을 몰고 왔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연상시킨다. 그때도 닉슨 대통령 쪽에선 '단지 3류 도둑질'(just a third-rate burglary)일 뿐이라고 사건을 덮으려 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처음엔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고 따라서 스캔달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걷잡을 수 없는 들불이 됐다.

올해 8월에 나온 신간『대량 속임수 무기들(Weapons of Mass Deception)』의 공동저자인 셀돈 램프톤과 존 스토버는 “부시와 그의 강경파 참모들이 국민을 속인 데 대해 말로만 책임진다고 하질 말고 실제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폴 크루그먼(프린스턴대 교수. 경제학)은 <뉴욕 타임스>에 쓴 ‘국민기만으로 소환 받아야 할 부시대통령’이란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부시를 비판했다.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도록 대중이 조작돼왔다. 거짓발표와 기만이 부시 행정부의 기준 행동방식이다. 부시 행정부는 미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진실을 조직적으로 또한 철면피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헌법에 규정된 대로 국민소환으로 심판 받아야 한다”

이라크 대량파괴무기를 둘러싼 진실게임의 본질은 곧 정보를 독식(獨食)하는 권력자가 그 정보를 정책적 필요에 맞춰 가공함으로써 일어난 사건으로 보여진다. 권력자가 어떤 의도된 정치적 목적(이를테면, 이라크 침공으로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을 이루기 위해 국민들에게 그릇된 정보(disinformation)를 전하는 것은 권력의 남용이나 다름없다. 부시는 이즈음 밤마다 ‘워터게이트 악몽’으로 죽은 닉슨을 만나 가위눌린 뒤 깨어나는지도 모른다. ‘WMD 게이트’가 현실로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이 주제와 관련, <신동아> 9월호 필자의 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의 진실’을 참조 바람).

관련 링크 http://news.bbc.co.uk/2/hi/uk_news/politics/3181429.s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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