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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체제 이후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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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체제 이후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

[김민웅 칼럼]<80> 전쟁을 우려하는 민심에 정치권은 답해야

긴장인가, 평화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북은 후계체제가 예정보다 일찍 들어선 셈이다. 그러나 이미 김정일 건강이상에 따른 사전 준비가 있었다는 점으로 볼 때, 그 준비의 수준과 폭에 얼마만한 질적 내용이 담겨져 있는가가 주목된다. 이제 문제는 이러한 권력 공백과 교체의 전환기가 한반도에 일정한 긴장을 가져다 줄 텐데, 그걸 누가 주도하면서 평화체제로 이끌어나갈 것인가에 있다.

그렇지 않아도 2012년은 동아시아 주변 환경의 격변이 예고되고 있다. 중국은 이미 후계체제가 정비되어 있고, 미국은 오바마 체제가 지속될 것인지가 판정날 것이며 우리는 두 번의 중요 선거를 치른다.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동요와 위기가 새로운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국가들의 정치적 지도력의 노선과 방향이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시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북의 밀착관계 더욱 강해질 것

일단 중국은 북을 더욱 깊이 껴안고 나갈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 평화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중국의 발전계획은 크나큰 부담을 안게 된다는 점에서도 중국과 북의 관계는 훨씬 더 긴밀해질 것이다. 이 점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요인이다.

러시아가 정치적 혼란기를 겪고 있어 한반도 상황에 대한 개입 여지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러시아 역시 북에 대해 중국과 다르지 않은 입장을 취할 것이다. 북과 러시아는 만주-시베리아를 관통하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의 공유라는 점에서 상호 이해관계가 깊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기존의 대북 정책에서 연속적인 패착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권력교체의 맥락 속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필요가 생겼다. 북과 긴장을 도모할 이유가 없고 명분도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북과의 새로운 관계를 정리하는 요구가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일본의 자세는 내부의 우파가 동아시아에 일정한 긴장을 촉발시켜 군사주의를 부상시킬 조건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해지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만한 역량이 없어 보인다.

▲ 지난 2009년 평양을 방문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의 국방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미국의 북한 붕괴전략은 지속될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있을 경우 대화상대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일정한 안정세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여러 가지가 불투명한 상태다. 대북압박을 고조시킬 경우, 전쟁 분위기가 당장 전면화할 수 있고 그것은 대중국 포위 전략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중국과 북의 관계가 고강도로 밀착되면서 미국은 대북 압박정책이 곧바로 중국과의 직접대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미국은 우선 현상유지정책을 취할 것이며 북 내부에 개입여지가 있을지를 관측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남쪽의 정세가 관건이 된다. 미국의 북 압박정책이나 개입정책은 필연적으로 남쪽에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한국은 그런 긴장을 감당하면서 정세를 풀어갈 여유와 역량이 없다. 따라서 대북 정책과 관리방식은 일면 압박과 일면 대화노선을 병행해갈 것으로 보인다. 상대를 점검하고 어떤 정책을 쓸 것인지를 결정하려는 절차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으로 봐야 할 것은, 미국이 "북한 붕괴정책"을 내심으로 유지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북의 대응도 놓칠 수 없다. 권력 공백과 교체의 정비기간을 가져야 할 북으로서는 최대의 단결체제를 만들어낼 것이며 아주 작은 압박에도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변정체의 변화와 상관없이 하나의 독립변수가 되어 상황을 매우 위험하게 끌고 나갈 수도 있다.

결국 미국의 북한 붕괴전략은 너무 부담이 크고 위험도가 강하다. 어디선가의 국지전을 통해 전쟁경제를 보다 강력히 돌려야 하는 위기에 몰린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이기는 하지만, 과거에 비해 전쟁체제에 시동을 걸기는 쉽지 않고 동아시아의 전쟁은 세계대전의 성격을 곧바로 가지기 때문에 선택하기 어렵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김정은 후계체제의 성격이 분명해지지 않는 한, 다른 정책적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우리의 역할은?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김정일 사망 이후 남북관계가 더더욱 불투명해지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대북 대화단절이 큰 몫을 차지한다. 이것을 반전시키지 않으면 한반도는 항상적 긴장상태에 시달리고 특히 경제 환경이 취약해지는 상태에 들어서게 될 수 있다. 평화가 경제의 기초라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김정일 사망은 당장 내년 총선과 대선에 압도적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단 기존의 정세로 보자면 우파 내지 보수 세력의 집결과 함께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민심이 서로 결합할 수 있다. 야권통합을 진척시키고 있는 세력으로서는 불리해지는 지점이다.

그러나 반드시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군사주의적 안보체제의 강화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평화체제에 대한 갈망을 보다 드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대북 관계에 평화정책을 추진해왔던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이 역사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북이 어떤 변화를 보이는가도 중요한 조건이 된다. 북이 대남 정책에 있어서 거친 태도를 드러낸다면 야권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그런데 북의 대남 정책의 태도나 자세는 또한 우리의 대응 여하에도 달려 있다. 당장에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서 북의 입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 하는가의 문제다.

이른바 조문외교라는 것이 남북관계에서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현재 있을지 모르나, 북이 충격과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자극적 공세가 아닌, 평화적 갈망을 담은 방식의 대응을 구체화해나간다면 북의 긴장된 자세에도 일정한 변화를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남쪽 정세는 대북 관계의 긴장이 축적되어가면서 매우 힘든 시기를 통과할 수 있다.

통합 야당, 정치적 선택의 의미 더욱 커져

통합의 진로를 잡은 야권은 이제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짜여지고 있다. 이 두 진영이 남북 관계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2013년 체제를 구체적으로 민심에 설득해나가는가에 김정일 이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가 걸려 있다. 주변 열강들의 대응에도 지속적인 촉각을 세워야 하지만, 우리 자신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이 보다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전쟁에 대한 민심의 두려움을 없게 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북의 정치적 변동은 기존질서의 파괴가 아니라 계승이다. 그 계승의 지점과 우리의 평화정책이 합류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이걸 중심에 놓고 국가적 미래를 구상하고 민심을 결집시키는 것이 당장에 통합 야당에 주어진 책임이다.

한반도는 이제 진짜 평화와 통일의 길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남쪽의 역량이 얼마나 평화주의적 주도권을 창출해낼 수 있느냐에 달린 문제다. 평화를 현실로 말하는 것이 지금처럼 절실해지는 순간이 또 있을까? 그럴 리는 절대 없지만 혹시나 하는 전쟁의 두려움을 즉각 토로하는 민심에 정치권은 답을 마련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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