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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선생님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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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담임선생님 면담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18> 학교이야기 2

담임선생님과 면담 시간 언제로 하면 좋을지 적어보내라는 통신문을 아이가 가지고 왔다. 그 날은 특별히 오전 수업만 하고 담임과 부모가 면담을 하니까 아이들을 일찍 데리고 갈 것과 만일 여의치 않으면 학교에서 정상적인 하교시간 3시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 원하는 부모는 그 여부를 체크해서 보내라는 추가사항과 함께. 적당한 오후 시간을 적어보내고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냥 내 몸만 가면 되는가. 뉴질랜드에 와서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국에서 나는 부적응 학부모였다. 어떻게 학부모 노릇할 건지에 대해 거의 매일 밤 남편에게 하소연했었다. 남들 다 한다고 하는 대로 하지는 못하겠고 아이가 학교가기 싫어하고 늘 겉도는 것은 마음 아프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아직 아이들 청소시키기는 어려우니까 시간이 있는 부모들이 와서 일주일에 한번 청소해주면 좋겠다는 통신문을 받고 자원했다. 한 학기 내내 일주일에 한 번 가서 열심히 청소를 했다. 여름방학이 가까와 오면서 나는 나름대로 궁리를 했다. 남들처럼 봉투 줄 용기는 없고 학기가 끝나는 것은 우리 옛날에 했듯이 일단 책을 뗀 셈이니까 책걸이 떡을 선생님께 드리자고. 그래서 마지막 청소하는 날 부지런히 신촌 이대 앞의 유명한 떡집(지금도 유명한지 모르겠지만) 호원당에 가서 떡을 한 상자 샀다. 내 나름대로는 큰 배짱을 가지고 큰 상자 가득 샀다. 선생님과 그리고 같이 청소한 엄마들이 다 같이 먹을 수 있게 또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들끼리도 나눌 수 있게.

책걸이 떡이라고 하면서 상자를 건네는데 선생님이 그것을 나눠먹을 생각 안하고 슥 책상 속으로 넣는 순간 나는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함께 나눠먹으려고 가지고 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 소심한 성격 때문에. 그 7월 더운 여름 날 따끈한 떡이 상자에서 쉬지나 않았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올 일이다.

2학년이 되었다. 그 전 해 일년 내내 거의 매일 선생님에게 봉투를 주어야 되냐 마냐로 고민을 했던 나의 문제가 다시 시작되었다. 남편이 주는 충고는 한 반에서 한 두명 준다면 그것은 뇌물이지만 모두 줄 때 안 주는 한 두명은 학비 안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그 정도로 생각하고 너무 고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정말 아파트 앞 뒤 동을 통틀어 나밖에 없었다,

모든 엄마들이 진지하게 우리 아이를 염려하며 충고를 했다. 우리 아이의 소원은 그 때 칠판 지우개를 밖에 나가서 털어오는 일을 한 번 해보는 것이었다. 학년 초에 학부모 면담하는 날이 정해졌다. 시간은 아무 때나 적당히 가면 되었다. 교실에 가니 누군가 엄마가 나오고 있었다. 연달아 내가 들어갔다. 옆집 엄마에게 배운대로 했다. 도대체 어떻게 봉투를 건네주냐고 걱정하는 나에게 그 엄마 하는 말 그냥 내밀면 선생님이 다 알아서 하니까 그냥 내밀기만 하라는 거였다. 그 엄마 말대로였다.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봉투를 서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물었다. 나는 당황하여 아이가 칠판 지우개 털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알았다고 했고 그리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1,2 분도 안되어 집에 돌아오면서 이건 완전 코메디다 그런데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애는 그 다음 일주일 지우개를 털며 분필가루 마시며 행복해했다. 적어도 학기초와 말 이렇게 일년에 네 번, 부지런하면 달마다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의 학부모노릇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3학년 일학기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뉴질랜드로 왔다. 면담할 때 여기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가면 될 건가 꽃이라도 사들고 가야 하나 생각만 하다 그냥 갔다. 선생님은 미리 약속되어 있는 순서대로 아이들에 관한 자료를 챙겨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쓴 글 그린 그림 등을 보여주고 교실 벽에 붙은 것이 있으면 그것도 보여주고 (거의 모든 아이의 것이 다 붙어있다). 그러니까 면담 시간은 선생님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아이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첫 면담하는 날 나는 초등학교에서 처럼 열심히 교실을 찾아 갔다. (한국의 학교처럼 이삼층의 커다란 건물이 아니라 단층의 작은 건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교실 배치도를 보아야 교실을 찾을 수 있다.) 아무도 없었다. 이게 웬일인가, 옆 반을 들여다보아도 아무도 없다. 아이가 가져온 면담에 대한 통신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장소가 강당으로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 경험 있다고 장소에 대한 설명은 읽지 않아 헛다리 품만 팔았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당으로 갔다.

커다란 홀을 빙 둘러 선생님들이 책상 위에 이름과 반 표시를 하고 앉아 있고 중앙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부모들로 약간 복잡했다. 나도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어디 있나를 찾아서 그 근처에서 기다리는 다른 부모들 옆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아이의 학습결과 자료를 과목 별로 설명해주고 공부에서 걱정할 일은 없다고 선생님이 말하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은 없냐고 했다. 학교 생활은 어떠냐는 나의 물음에 친구들이 주변에 늘 모여있고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염려할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붙이는 말, 사실 부모 면담할 필요가 없는 아이들의 부모는 면담하러 오는데, 말썽을 부리는 아이의 부모는 꼭 면담하러 오라고 부탁해도 안 온다고.

고등학교에서도 학부모 면담이 있다. 다른 점은 담임선생님을 만날 일은 아이가 선택한 과목 중 어느 하나를 담임선생님이 가르치지 않는 한 없다는 것이다. 학기 중간에 면담하는 날이 정해지면 방과 후부터 밤 9시까지 학부모가 편리한 시간을 과목별로 적어주면 아이가 선생님의 사인을 받아온다. 5분 내지 10분 간격으로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선생님을 찾아 다니며 면담을 한다. 과목 별로 선생님들이 한 방에 서너명씩 둘러 앉아 있는 것은 중학교의 강당을 축소해 놓은 셈이다. 미리 받은 중간 성적표를 가지고 가서 선생님이 보여주는 자료를 함께 보면서 아이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도 중학교와 마찬가지이다.

Form 4 때 지리선생님은 담임선생님이었다. 환갑이 다 된 분인데, 학급 사진 찍을 때 반바지에 무릎까지 오는 양말을 신었듯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분이었다. 그 분이 우리 아이에 대해서 하는 말, 전형적인 십대이다. 매사에 비판적이다. 과목 시간 외에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잘한다. 공부를 조금 더 하면 좋겠는데, 딱 필요한, 최소한만 한다. 그러나 걱정 안 한다. 알아서 계속 잘 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우리 아이에 대해 잘 아냐고 감탄하자, 자신있게 그 분이 대답하는 말, 내가 네 아이를 아주 잘 안다고. 나는 그 선생님의 말에 감동했다. 내가 네 아이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담임선생님을 만난 게 우리 아이에게 뿐 아니라 나에게도 축복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선생님과 아이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사실은 둘이서 아이 흉을 보면서, 십대들의 심리를 이야기하면서 즐거웠다.

이 곳에 온 이후로 학기 초가 되면 언제 면담하는 날이냐고 챙기는 나를 보고 남편과 아이는 선생님과의 면담이 나의 취미생활이라고 놀린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선생님과 아이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아이가 잘 한다는 칭찬을 듣는 일이 어느 부모인들 즐겁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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