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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지금 이혼 성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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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지금 이혼 성수기

윤재석의 지구촌 Q&A <35>

Q) 최근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미국 다음으로 높아 세계 2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는데, 이탈리아에선 여름철이 이혼 성수기라는 얘기가 있다죠?

A)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8월 7일자에 흥미로운 기사가 게재돼 이를 토대로 얘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요즘 이탈리아의 가족법 관련 변호사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쇄도하는 클라이언트(의뢰인)들의 이혼 처리 요구 때문이라는데요. 로마에서 개업중인 마레타 스코카(Maretta Scocaㆍ여) 변호사의 경우, 사르디니아의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면서도 휴대전화 두 대를 항시 켜놓고 있다고 합니다. 의뢰인들이 이혼과 관련해 언제 어떤 요구를 해 와도 즉시 일을 처리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라는데요.

Q) 이탈리아는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로 이혼이 쉽지 않을 텐데요.

A)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이탈리아의 이혼율은 다른 유럽국가들의 이혼율을 뛰어넘어 버렸습니다.

이탈리아의 이혼(divorce)은 일단 일정 기간의 별거(separation) 후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별거는 10만4천건, 이혼은 5만건으로 각각 추정돼 2000년(별거:7만1천9백69건, 이혼:3만7천5백73건)에 비해 각각 44.5%, 33.1%가 늘어난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2000년도의 별거 및 이혼 건수도 1995년에 비해 각각 37.5%, 39%가 늘었다고 합니다. 이같은 증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철에 특히 이혼이 러시를 이룬다는군요.

Q) 여름철 이혼 러시 현상은 왜 일어나나요.

A) 사랑이 식어버린 배우자를 하루 빨리 정리하고 바캉스는 새 파트너와 지내고 싶다는 별거자들의 여망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Q) 이탈리아의 이혼 절차를 좀더 자세히 알고 싶군요.

A)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이혼은 쉽게 용인될 수 없는 사건입니다. 현행 이탈리아법에 따르면, 이혼하려는 커플은 일단 법적인 별거 기간(legal separation period)을 가져야 합니다. 현행 법정 별거기간은 3년입니다. 이 기간이 경과해야 이혼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Q) 이혼을 지금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 의회에 상정돼 있지만, 현재 계류중이라는데, 왜 그런가요?

A) 구성성분상 보수적인 중도 우파가 다수인 의회에서, 이혼을 보다 간편하고 또 짧은 기간동안에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안의 상정 자체가 엄청난 비난의 소용돌이에 직면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물론 중도 우파 의원들도 심정적으로는 이 법안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겠지만요.

이혼까지 3년이 소요되는 법적인 별거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은 제1야당인 중도좌파성향의 민주좌파(Democratic Left)에 의해 제출돼, 지난 3월 이후 표결에 부치기 위해 상정됐지만 차일피일 미뤄져 오던 중, 의회가 재개되는 9월 표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Q) 하지만 이 법안의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죠?

A) 바로 로마 가톨릭 세력의 강력한 압력에 다수당이 굴복해 이 법안의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가톨릭에서는 혼인을 취소할 수 없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혼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로마 가톨릭의 강력한 제동으로 인해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에야 이혼이 법제화되었고, 1974년에 가서야 국민투표로 추인되었습니다.

또 이혼에 필요한 법적인 별거 기간도 당초 5년이었다가 1987년에 가서야 현재와 같은 3년으로 단축되었을 정도입니다.

가톨릭은 지난 3월 새 이혼법안이 상정되자 여러 통로를 통해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가톨릭계 신문들은 새 이혼법이 가정의 일체성을 더욱더 손상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아울러 의회의 가톨릭께 정당과 우파 국민연합 등이 상정 법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가톨릭 세력의 반발 때문에 새 이혼법의 통과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Q) 하지만 현행 이탈리아 이혼법이 시대에 뒤떨어져 법령의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죠?

A) 토리노대학의 치아라 사라세노(Chiara Saracenoㆍ여ㆍ61) 교수(사회학)는 “현행 이혼법은 가학적”이라고 까지 폄하하고 있습니다. 그는 별거 커플의 상당수가 결혼 5년 이내, 특히 1년 이내에 발생하고 있다는 최근 통계를 예로 들면서 이같이 말합니다. 사라세노 교수는 “일찍 결별하는 커플이 기나긴 기다림의 세월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이탈리아 의회가 이탈리아 사회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법안을 제출한 민주 좌파(Democratic Left)의 몬테치(Montecchi) 의원은 “이 법안이 이미 종료된 가족관계를 완결시키는 법”이라면서 “사랑이 식은 후에도 그들을 함께 묶어 두어야 하는지를 우리 스스로에게 반문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집권 중도우파의 일부 의원들도 새 이혼법에 지지성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선 포르자 이탈리아 당(Forza Italia Party)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 총리 내각의 스테파니아 프레스타지아코모(Stefania Prestagiacomo) 고용 균등 장관은 별거기간 3년이 너무 길다는 데 동의하면서 “이는 부모나 자녀들 모두를 황폐화하는 것”이라며 “득을 보는 이는 오직 변호사들뿐”이라고 일갈했습니다.

Q) 이혼과 관련된 법과 현실과의 괴리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A) 가톨릭 가족법 담당 세사레 리미니(Cesare Rimini) 변호사(71)에 따르면 가톨릭 교회는 교회대로 이혼에 대한 스탠스를 유지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가톨릭 교도들은 이혼에 관한 교회의 율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리미니 변호사는 현행 이혼법에 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유럽 역내의 다른 나라에서 6~7개월 정도 거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체류국에 이혼 서류를 제출해 처리한 후 귀국해서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이를 승인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탈리아에선 ‘이혼 여행’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라고 합니다.

새 이혼법의 통과 여부에 관계 없이 이탈리아의 이혼 사조는 점점 더 리버럴한 경향을 띠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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