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국정토론회에서 '언론횡포는 용납할 수 없다'며 또 다시 언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언론과의 전선을 확대, 심화시켰다. 노 대통령의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은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그 표현방식과 빈도, 대응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동아일보 오보 파문에 이어 중앙일보의 신계륜 의원 오보논란,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 대한 '몰래카메라 사건' 등 최근 청와대를 둘러싼 언론의 비판적 혹은 공격적 보도에 대한 불만은 분명히 근거가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본질적 의제설정을 외면하고 지엽적이고 부정적 가십거리를 주요뉴스감으로 다루는 일부 언론에 대해 감정이 상했을 수도 있다. 이미 이런 식의 보도는 처음이 아니었고 새삼스런 것도 아니다. 조중동의 보도에서 노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는 대통령 취임 이전에도, 첫날부터도 존재하지 않았다.
새 정권 초기 언론과의 한시적 밀월관계의 관행은 노 대통령의 등장으로 중단됐다. 2월 25일 취임식날 동아는 "노, 당선 기여한 매체 외엔 부정적"이란 제목으로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동아와 똑같은 제목으로 보도한 내용 외에 '노무현식 언론개혁(30면)', 이름만 바꾼 대북정책(5면) 등 4건의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 역시 취임식날 '문창극 칼럼'을 통해 '취임식날 이 아침에'라는 칼럼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런 비판, 비아냥류의 기사는 그 다음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들 세 신문에 공통적으로 등장했다.
각 신문사의 색깔과 정체성을 분명히 나타내는 사설을 비교해보면 이런 행태는 더욱 두드러진다(2003년 신문과 방송 4월호 참조). 사설을 통해 노정권을 가장 많이 비판하고 공격한 신문은 취임후 50일간 관련사설 총35건중 21건이 비판조인 동아일보였다. 그 다음은 37건중 19건을 게재한 조선일보였으며 중앙일보(13/35)가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서 경향신문의 경우 사설 총 39건 가운데 비판조의 사설은 6건으로 분류됐으며 한겨레의 경우 총 33건 가운데 4건에 그쳤다.
단순한 수치비교가 아니라 그 사설 내용을 분석해도 조중동의 경우 새 정부에 대한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 각 신문사가 어떻게 대응하며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보면 간단하다. 예를들면 '대북 특검법'과 관련하여 조선일보는 '특검, 진실이 국익이란 자세로(2/27)', '특검법 거부권 행사는 명분없다(3/1)'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야당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동아일보도 '특검, 뒤집으려 해서는 안된다(3/3)'고 했으며 중앙일보 역시 '특검안 거부권 행사 안된다(3/3)고 보도했다. 그러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특검법에 대해 어떻게 보도했는가.
한겨레는 '여야 특검법 협상 적극 나서라(3/4)'며 집권당의 주장을 대변했다. 경향의 경우 '특검, 정략적 이용은 안돼(2/28)'라는 제목으로 특검이 어떤 형태로든 정략적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는, 보다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노 대통령 취임직후인 2월 27일과 28일 이틀동안 각 신문의 사설은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조선은 이틀동안 사설 6건 모두를 노정부 공격 논조로 일관했다. '새 정부 외교 초보티 빨리 벗어야' '역시 언론공격 뒤에는 권력 있었다' '공안 사범이 인수위에 똬리 틀다니' '대통령 형의 말과 처신' 등이 그 주요내용이다. 동아와 중앙도 이틀동안 '인터넷 심리전이 민족 공조인가' '파격내각 기대와 우려' '보안사범이 인수위에 참여했다니' '노대통령 형의 부적절한 처신' '대통령 친인척 관리 소홀히 말라' '보안법 수배자가 활보했던 인수위' 등의 사설로 노정부를 비판했다.
새삼스럽게 노 대통령 초기 언론보도를 다소 길게 소개한 것은 대통령의 입장에서 주요 신문사들이 비판의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들이 어느 정도는 사실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런 신문들은 말실수라는 측면에서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심각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삼지 않았다. 'YS 언론장학생‘이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로 정권과 언론의 초기 밀월관계는 대조적이었다. 김 전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서 질문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변을 해도 관대하게 웃어 넘겼다. 일본 우익인사의 망언에 대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식의, 외교적 문제로 비화되는 위험한 언사를 구사해도 언론은 현재처럼 대통령 발언의 문제점을 부각시키지 않았다. 현재 언론은 분명 이중잣대를 들이대며 노 대통령의 발언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그것이 지엽적인 문제든 가십거리 정도든 그 판단은 언론이 하는 고유권한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요구하는 '공정한 의제, 정확한 정보, 냉정한 논리' 위에서 생산되는 언론보도와 여론형성에 대한 기대는 현재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방식으로는 개선되지 않는다. 언론이 보는 '공정한 의제, 정확한 정보, 냉정한 논리'와 서로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론에 대한 타당한 요구와 지적조차도 그 표현방식과 빈도 때문에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권에 의한 횡포 있어선 안된다. 부당하게 짓밟고 항의한다고 더 밟고 '맛볼래'하며 가족 뒷조사하고 집중적으로 조지고, 이런 횡포 용납할 수 없다."
"한마디로 자존심, 인내심 안 죽는다. 정부 무너지지 않는다. 대통령 하야하지 않는다."
이 정도쯤 되면 누가 대통령이 감정적이라고 지적하지 않겠는가. 대통령 스스로 '하야' 운운 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며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오버액션이다. 이런 식으로는 대통령이 무슨 지적을 했는데 그 본질은 사라지고 분노만 비이성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기억에 남게 된다.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언론의 신중하고 정확한 보도, 책임있는 보도와 논평이라면 수시로 언론에 대해 감정적으로 불쾌한 언사를 내뱉는 방식은 누구로부터도 지지받을 수 없다. 조중동뿐만 아니라 한경대 등 다른 신문, 방송조차도 비판적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결과가 될 것이다.
실제로 노정부는 법무, 교육 등 많은 분야에서 추진력있게 일을 해나가고 있지만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언론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모습이 부각됨에 따라 일반시민들은 ‘대통령이 저렇게 언론과 싸워서 뭘 할 수 있나’라는 식의 선입관이 더욱 고착되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라는 직은 불평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최고권력자로 문제가 있으면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나가면 되는 자리다. 말로 떠드는 것은 야당의 몫이고 대통령은 각료들과 함께 입이 아닌 몸으로 실행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무능한 지도자가 불만을 공개적으로 거칠게 나타내는 법이고 이는 지지도 수직낙하로 이어지는 비결이 된다.
선진언론을 위한 대응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책임있는 언론, 신중한 보도를 담보하는 방식은 하루속히 법제를 강화하는 방법뿐이다. 민주주의를 먼저 실행한 국가들은 한결같이 언론자유를 존중하지만 동시에 언론자유 횡포에 대해 민형사상 엄중한 책임을 묻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간법이 통과되면 좋겠지만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부분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원용하고 언론전담 재판부 신설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사법부가 언론에 대해 견제, 감시 역할을 못한다면 법치사회로 볼 수 없다. 현재 문광부에서 고려중인 언론중재위원회내의 언론구제감시제도는 한계가 명백하다. 옴부즈맨 제도는 정부가 나설 일도 아니다. 이런 식이니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대해 민사상 소송을 해서 이긴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신중하게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의 언론관련 발언은 잦아질수록 ‘자신감 상실’로 이어질 것이고 ‘국정 잘 수행하라고 뽑아줬더니 허구헌날 언론과 싸움만 한다’는 식으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말이 아니라 정책으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역대 대통령중 가장 자기표현이 능란한 ‘청문회 스타’출신이 말 때문에 지지자들로부터도 손가락질을 받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다. 대통령의 어법은 후보시절과 달라야 하며 보다 정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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